765화. 서령천화(噬靈天火)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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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영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의 입에서 녹색 검이 교룡처럼 꿈틀 거리며 나와 핏빛 안개를 베어나갔다.
챙!
가벼운 충돌음이 들리고 금빛이 핏빛 안개 속에서 튀어나와 녹색 빛줄기를 막았다. 한 척 길이의 금빛 비검이었다.
황량영군이 냉소하며 한 손으로 녹색 빛줄기를 가리키자 녹색 빛줄기가 금색 비검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어 녹색 빛줄기가 빠르게 회전하며 금색 비검을 잘게 썰어내려 했다.
채채챙!
금속의 마찰음이 귀를 파고들었고 금색 비검이 조금 암담해졌으나 초록 검의 난도질에도 아직 멀쩡했다.
아직도 물러나지 않고 초록 빛줄기를 막아내는 중이었다.
“허, 이런!”
황량영군도 조금 표정이 달라졌다.
그의 비검이 비록 역천의 재료로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연허기에 이르러 공들여 완성한데다가 몇 천 년 동안 배양해 평범한 영보에도 밀리지 않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비검이 화신기 수사의 비검을 잘라낼 수 없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황량영군은 내심 놀랐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수결을 맺었다.
웅!
초록 빛줄기가 맑게 울며 모호하게 변해 36개의 빛으로 갈라졌고 빼곡하게 핏빛 안개를 향해 날아들었다. 당장이라도 한립을 갈가리 찢어낼 기세였다.
그러나 황량영군이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핏빛 안개 속에서 한립이 어깨를 툭 터니 등 뒤로 수십 개의 금빛 검들이 날아올라 초록 검빛들을 막아버린 것이다.
황량영군의 눈빛이 더욱 서늘해졌다. 그가 노란 기운을 내뿜자 제 자리에서 사라졌다.
“…….”
한립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고 미간에 혈흔이 번뜩였다. 그러자 핏빛 선이 갈라지며 새까만 제3의 눈에서 가느다란 검은 빛기둥이 뻗어 나가 사라졌다.
퍽!
열댓 장 밖의 허공에서 나지막한 폭음이 터졌고 노란 기운이 검은 빛과 교전하다 황량영군의 신형이 튀어나왔다.
“파멸법목! 네 녀석이 이런 보물을!”
그는 조금 놀란 듯했지만 곧 희희낙락했다. 그가 한 손을 뻗어 천천히 허공을 쥐자 한립 머리 위로 폭음이 들리고 광풍이 몰아치더니 무수히 많은 기운들이 뭉쳐져 한 장 크기의 도끼가 괴이하게 나타났다.
황량영군이 다섯 손가락을 쥐고 손을 아래로 휘두르며 소리쳤다.
“갈라라!”
오색으로 빛나는 옥도끼가 부들부들 몸을 떨다 핏빛 안개를 가르려 했다. 아직 도끼날이 닿지도 않았는데 천둥소리가 울렸다.
푸른 뇌전이 번뜩이고 주변의 공간에 왜곡되는 것만 봐도 옥도끼의 위력이 어떠할지 상상이 되었다. 핏빛 안개 속에서 파멸법목을 펼쳤던 한립도 이것을 보고 안색이 급변했다.
그 모습에 한립은 입을 벌려 거무튀튀한 작은 산을 내뱉었다.
거무튀튀한 산 위로 회색빛의 고리가 잔잔히 퍼져나가자 한립의 금빛 비검을 밀어붙이며 꼼짝 못하게 만들던 초록 검빛들이 애달프게 울며 위력이 급감했다.
그러나 거대한 옥도끼는 잔잔한 빛의 물결을 순식간에 흩어버리고 허공을 갈랐는데 그 기세가 조금도 줄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한립이 의식을 움직였다. 그러자 작은 산 뒤쪽에서 열댓 개의 회색빛의 고리들이 하나로 응결해 더없이 두꺼운 올가미를 만들어 냈다.
올가미가 몸을 떨며 사라져 옥도끼 근처에서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그것을 가두었다. 옥도끼는 오색 영기의 빛을 깜빡이며 마치 통제를 잃은 것처럼 허공에 멈춰버렸다.
멀리서 지켜보던 황량영군이 놀라 낮게 중얼거렸고 수결을 맺어 연달아 법결을 날렸다.
꽈광! 꽈과광!
동시에 옥도끼가 크게 울면서 뇌전을 방출했고 드디어 회색 빛고리를 쪼갰다.
그러나 핏빛 안개 속의 한립은 신형이 모호해져 한 줄기 핏빛으로 변해 수백 장 밖에서 검은 점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비검과 조그만 산도 그와 함께 사라졌다. 한립의 목숨을 여러 번 살려주었던 혈영둔이었다.
화신기 수사의 신통과 고계 연체사의 강인한 육체 덕분에 이 둔술은 신묘한 경지에 이르렀고 몇 번의 번뜩임 끝에 그는 하늘 끝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 황량영군은 물론이고 멀리서 싸우고 있던 욱천과 환천기도 할 말을 잃었다. 세 명의 수사는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고 수결을 맺어 세 개의 빛줄기로 튀어 나갔다.
열댓 장에 이르는 꼬리를 남긴 빛줄기들은 미친 듯이 날아갔고, 연달아 번뜩이며 날아가는 속도가 한립의 혈영둔과 비슷했다.
혈영둔 덕에 한립은 잠깐 사이에 골짜기 입구에 다다랐다.
둔술이 너무 난폭하고 제멋대로라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기 힘들었는데 화신기에 이르니 그마저도 해결되었다.
한립은 순식간에 백 리를 달아난 후에 그가 지나온 곳을 의식으로 훑었다. 그러자 황량영군을 포함한 수사들이 엄청난 둔술로 쫓아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바짝 쫓아오다니…….’
기왕 연허기 수사들 손에서 벗어나기로 했으니 한립도 혈영둔만으로 간단히 달아날 수 있다 여기지는 않았다.
핏빛 속의 그는 손바닥을 뒤집어 붉은색과 검은색의 구슬을 꺼내 그대로 뒤쪽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수결을 맺으며 주술을 외웠다.
그가 막 혼돈곡 입구를 지나칠 때였다.
뒤에서 다급히 쫓아오던 세 명의 수사들도 혼돈곡 입구에 가까워졌다.
콰아앙!
두 개의 구슬이 데굴데굴 구르며 웅! 하고 울더니 경천동지할 굉음이 터졌다. 직경이 열 장에 이르는 붉고 검은 두 개의 태양이 허공에 떠 오른 듯했다.
그리고 곧 영기의 파동이 광포하게 몰아쳤고 찰나의 순간 엄청난 돌풍을 만들어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었다.
한립을 뒤쫓던 수사 중 욱천의 법력이 가장 심후했기에 그가 조금 더 앞서 오고 있었다.
그러나 비술을 써서 둔술을 가속하는 바람에 돌풍을 피하지 못하고 휘말리고 말았다.
조금 뒤떨어져서 쫓아오던 황량영군과 환천기는 방향을 틀어 겨우 돌풍 양쪽으로 흩어졌다.
두 수사는 돌풍에 휘말린 욱천을 보더니 시선을 마주치고는 이를 이용해 욱천에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환천기는 소매를 펄럭여 회색 요풍을 방출했고, 황량영군은 한 손으로 노란 빛기둥을 쏘아 보냈다.
두 수사의 공격까지 돌풍 안으로 몰아치자 폭음이 연달아 들렸고 분노한 욱천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보아하니 꽤 손상을 당해 한동안 몸을 빼기 어려운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황량영군과 환천기는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피식 웃고는 둔광을 번뜩이며 골짜기 입구 상공으로 향했다.
이때 멸선주를 터트린 한립은 벌써 멀리 날아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러나 두 수사는 대수롭게 않게 생각했다.
푸확! 푸확!
그들이 자신만만하게 비술을 펼쳐 속도를 높이려는데 골짜기 입구 한쪽의 암벽에서 은색 불기둥이 분출 되었다.
골짜기 입구가 좁기도 했지만 은색 불기둥의 속도가 빨라 순식간에 두 수사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놀란 황량영군이 한 손으로 허공을 갈라 노란 검기를 방출했다. 하지만 검기는 은색 화염에 닿자마자 텅! 하고 스스로 불타올라 터져나갔다.
은색 불기둥이 어찌나 흉흉한지 엄청난 고온에 연허기 수사들의 입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황량영군의 안색이 달라져 소리쳤다.
“멸령백골화(滅靈白骨火)!”
그리고 독사라도 본 듯 기겁하여 수결을 맺어 그 자리에서 사라지자 은색 불기둥은 허공을 갈랐다. 환천기도 상황은 비슷했다.
요풍을 내뿜어 상대하려다가 은색 불기둥에 깔끔하게 먹히고는 잔영을 남기며 달아나 겨우 공격을 벗어났다.
“그럴 리가요! 멸령백골화는 은색이지만 사기(邪氣)로 충만합니다. 백골노조 단 한 명만이 조종할 수 있고요. 절대 다른 이에게 전수했을 리 없습니다.”
난색을 표하며 환천기가 황량영군 옆으로 다가와 고개를 저었다. 그들 앞에 나타난 두 줄기의 은색 불기둥은 하나로 뭉쳐져 한 장 크기의 거대한 불구슬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불구슬은 수축하며 은색의 우아한 새가 되었다.
“화령(火靈).”
두 수사는 불새를 보며 넋을 놓았다. 그러나 은색 불새는 서늘하게 둘을 바라보다가 날개를 펄럭였다.
은빛이 반짝이는 주먹 크기의 불구슬들이 무수히 많이 나타나 진동했고 몸을 떨던 불구슬들이 촘촘히 둘을 향해 날아든 것이다.
이미 멸령백골화가 아니란 소리에 안심한 황량영군은 코웃음을 쳤다. 그는 손을 뻗어 팔각 거울을 꺼내 앞을 막았고, 환천기는 회색 뇌전을 내뿜었다.
은색 화염의 진정한 위력은 알 수 없었지만 무턱대고 경시하지 않고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하늘을 뒤덮고 쇄도하던 불구슬들이 은빛을 크게 뿜으며 그대로 흩어졌다.
황량영군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은색 불새를 응시했다.
펑.
그때 은색 불새도 스스로 폭발해 사라졌다. 황량영군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돌려 환천기를 보았다.
“이게 멸령백골화가 아니라고 해도 내력이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인족에 이런 수사가 있다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환천기의 서늘한 목소리에는 불신이 묻어났다.
“모릅니다. 다른 2경의 출신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천원경에서는 처음 보는 자예요. 그러나 이런 얕은 꾀로 우리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은 것은 아니겠지요? 표식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강력한 의식이라면 낙일지묘에 있는 화신기 수사를 찾아내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지요. 만 리 밖으로 달아났다면 모를까. 우리의 의식을 피해 갈 수는 없을 겁니다.”
황량영군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자 환천기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눈을 감고 천천히 의식을 퍼트렸다. 그러나 잠시 후 둘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마치 이런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어찌 이럴 수가! 그자의 기운이 사라졌습니다. 흔적조차 없어요!”
황량영군은 번쩍 눈을 뜨며 소리쳤다.
“저도 찾을 길이 없습니다. 이런 경우, 상대가 우리의 수행을 초월하는 존재이거나 아니면 특수한 비술을 써서 기운을 숨겼다는 것인데……. 그것도 아니면 이미 죽었어도 이렇게 빨리 기운이 흩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분명 두 번째입니다. 조금 전까지도 지척에 숨어 있었는데 우리 둘이 전혀 모르지 않았습니까! 보아하니 모종의 은닉술에 정통한 자로군요.”
황량영군은 인상을 찡그렸다.
“이거 귀찮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찾을 방법이 없겠어요.”
“그건 아직 모르지요!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은닉술을 펼쳐 아무리 빨리 달아났어도 아직 수천 리 내에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을 풀어 인근을 뒤지게 하고 환수사가 환염아의 천아술(千蛾術)을 이용한다면 숨을 곳이 없을 겁니다.”
황량영군이 서늘한 눈빛으로 대책을 상의했다.
“천아술은 환염아의 정원(精元)을 소모해야 하는 술법입니다. 물론 성공만 한다면 가치 있는 일이겠으나 낙양정은 그럼…….”
환천기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말끝을 흐리며 황량영군이 들고 있는 보물을 바라보았다.
“영족의 물건만 찾을 수 있다면 당연히 낙양정은 내드려야지요. 추적에 실패한다고 해도 환 형에게 절반을 양보하겠습니다.”
미리 생각해둔 듯 황량영군이 고민 없이 대답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됐습니다. 그럼 어디…….”
환천기의 말이 끝나자 그들 뒤에서 무언가 길게 울부짖었다. 경천동지할 굉음이 골짜기를 뒤흔들고 영기의 파동이 하늘로 치솟았다.
그 소리에 인족과 요족은 급히 몸을 들렸다. 머지않은 곳에서 돌풍이 사라지고 열댓 장 크기의 핏빛 연꽃이 회전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고요한 얼굴의 욱천이 서 있었는데 눈빛만은 형형하기 그지없었다. 눈앞의 수사들이 자신이 곤혹스런 상황에 처했을 때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 눈치였다.
“욱천 수사, 저희와 아직도 다투려 그러십니까? 영족의 물건을 들고 달아난 녀석은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셋이 다투는 동안 달아났으니까요.”
환천기가 두려운 기색 없이 차분히 말했다.
“흥, 본존이 이 일을 그냥 넘어갈 줄 아시오. 두 분과는 다시 볼 날을 기약하겠소.”
욱천은 이리저리 둘러보고 한립이 보이지 않자 황량영군과 환천기를 노려보며 답했다. 그리고 갑자기 핏빛 연꽃이 욱천을 품고 골짜기 바깥으로 쏘아져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종적을 감추었다.
그러나 황량영군과 환천기는 영족 현령의 위협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곳은 인족과 요족의 구역이라 영족이 오래 머물 수도 없을뿐더러 싸우게 되더라도 둘이 협공을 하면 우위를 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은 두 수사는 서로 이후의 일을 상의하고 갈 길을 갔다. 수사들을 모아 주변 수천 리를 봉쇄하고 보물을 갖고 달아난 녀석을 수색할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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