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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63화 (520/2,000)
  • 763화. 거인과의 전투

    *

    거대 늑대의 표정이 절망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거인이 늑대를 집어채기 전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휙! 휙!

    거대 늑대 옆에 노란빛이 반짝이며 여윈 인영이 허공에서 나타나 두 주먹을 날린 것이다. 바로 경서족 장로 환천기였다.

    그의 주먹 하나는 날아드는 거대 손으로, 다른 주먹은 삼색빛 속의 거대 늑대를 향하고 있었다.

    꽈광! 쿵!

    주먹에서 영기의 빛이 터지자 노란 빛의 주먹이 나타나 거대한 손바닥을 막았다.

    그리고 또 다른 주먹은 보호막에 둘러싸인 은색늑대를 쳐 강력한 흡입력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이후 몸이 흐릿해지더니 소년도 귀신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그는 수십 장 밖에서 나타나 튕겨 나가던 늑대 요수 앞을 막고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푸른빛이 응결해 거대한 푸른 거울로 바뀌었다.

    늑대 요수의 커다란 몸이 거울의 맑고 투명한 표면에 부딪혀 파문을 만들고는 천천히 멈춰 섰다.

    “환 선배님! 살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지러워 머리를 흔들던 세 개의 늑대 머리가 상대를 확인하고는 얼굴이 밝아졌다.

    “네가 상대할 자가 아니니 멀리 물러나 있거라. 이곳에 상고거인이 있을 줄이야! 아무래도 삼경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이곳에 잠들어 있었던 것 같구나.”

    주변 허공에 하얀빛이 반짝이고 하얀 장포를 입은 사내가 뒷짐을 지고 나타나며 말했다.

    황량영군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신중하게 거대한 생명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야 당연한 소리지요! 상고거인처럼 눈에 띄는 것이 인족과 요족의 경계까지 오는 것을 몰랐을 리 있겠습니까. 그래도 다행히 독목족(獨目族) 거인이고 아마 중상을 입었을 겁니다. 그러니 이렇게 오래 골짜기 속에서 잠이나 자고 있었겠지요. 우리 둘이 협공을 하면 원기는 약간 소모하겠지만 충분히 죽일 수 있을 겁니다.”

    환 씨 소년이 흉흉한 얼굴로 상고 거인을 쳐다보았다.

    “물건은 어찌 나눌 작정이십니까? 듣자니 거인의 몸속에 커다란 낙양정도 들어있다던데. 그건 극양의 성질을 지닌 영보를 만드는데 가장 좋은 재료 아닙니까?”

    “저는 영족의 배신자가 갖고 달아난 물건에는 관심 없으니 낙양정으로 하겠습니다.”

    환 씨 소년은 미리 고민을 마친 듯 거침없이 선택했다.

    “그럼 그렇게 하지요! 너희도 조심하거라. 비록 영족들이 잠시 물러났지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

    황량영군은 고개를 돌려 멀리서 날아오는 인영들에게 말했다. 한립이 높은 곳에서 보니 남 성주와 궁장 여인 등이 인족과 요족의 다른 이들을 이끌고 돌아오고 있었다.

    골짜기 밖의 욱천 현령의 신통은 대단했다. 그러나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황량영군과 환 씨 소년의 공법이 뜻밖에도 서로 상호 보완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전투가 길어지면서 합을 맞추기 시작하자 둘의 실력이 거의 연허기를 대성한 수사와 비슷해졌다.

    그러자 욱천이 크게 놀라 승산이 없음을 알고는 전투를 포기했다.

    그는 대충 인사를 하고 영족들을 이끌고 과감히 철수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환 씨 소년과 황량영군이 이렇게 빨리 골짜기 내부로 돌아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골짜기 안에 사람들이 많아지자 땅 속에 묻혀 있던 거인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눈빛이 흉흉해졌다.

    크하아아!

    고개를 쳐들고 갑자기 괴성을 지르더니 하나뿐인 눈에서 하얀 광선들을 수도 없이 분출했다.

    “흥! 낙양정을 완전히 연화했을 줄은 생각도 못 했구나. 그러나 겨우 이런 것으로 우리를 어찌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야.”

    황량영군은 거인의 행동에 코웃음을 치며 소매를 펄럭였다. 그러자 팔각 거울처럼 생긴 보물이 다시 나타나 번뜩이며 거대하게 불어났다.

    하얀 빛의 실들이 닿자 거울 표면에 영기의 빛이 크게 번졌다. 빛의 실들을 분분히 튕겨내 거인의 육체로 돌려보낸 것이다.

    그러나 실들은 거인의 몸에 닿자마자 반짝이며 사라졌고 전혀 해를 가하지 못했다.

    환 씨 소년이 지니고 있던 푸른 거울로 보낸 실들도 전부 튕겨냈다.

    거인은 공격이 무효로 돌아가자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눈에서 뿜어내던 광선 공격을 멈추고 한 손을 펼쳐 황량영군과 환 씨 소년을 향해 휘둘렀다.

    후웅!

    돌풍이 밀어닥쳤다.

    이에 황량영군은 어두운 얼굴로 입에서 하얀 종이부채를 뱉더니 그 것을 들고 거인의 손을 향해 맹렬히 부쳐댔다.

    그러자 하얀 바람이 생겨나 밀려드는 돌풍을 다가오지 못하게 막았다.

    환 씨 소년도 두 손을 마주쳐 회색 뇌전을 뿜자 뇌전이 회색 장도(長刀)로 변했다. 가늘고 긴 도(刀)는 전혀 보물로 보이지 않았다.

    소년이 주술을 읊기 시작하자 얼굴에 노란 털이 자라나고 두 눈에는 청록색 요기가 감돌았다. 연이어 기합소리를 내자 소년의 몸에서 영기의 압력이 폭발했고 수중의 장도가 회색 선을 그리며 거인의 손을 베었다.

    회색 선은 한 장 크기로 길어져 순식간에 거인의 엄지손가락을 휘감았다.

    휘릭!

    거인의 손이 움찔하더니 엄지손가락이 소리 없이 떨어져 내렸다.

    크하하학!

    거인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고 무의식중에 손을 거두며 하나뿐인 눈에 핏발이 섰다. 그리고 환 씨 소년을 주시하며 추레한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비도는 거인의 손가락을 잘라낸 후 허물어졌고 소년의 얼굴도 약간 창백해졌다. 원기를 조금 상한 듯했다.

    “방금 일격이 상대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이제 진짜 실력을 드러내겠지요. 그나저나 부상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완전히 회복되었다면 골치 아플 텐데요.”

    황량영군은 종이부채로 돌풍을 없애고 거인의 충혈된 눈을 보며 말했다.

    “노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전 거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본 것 아닙니까? 이렇게 쉽게 손가락이 잘려나가다니 평범한 거인이 분명하군요.”

    환 씨 소년은 거인이 손을 회수하자 담담히 답했다. 하지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거인의 잘려나간 손가락이 녹색빛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핏줄과 살이 생겨나며 온전한 손가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환 씨 소년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흠…….”

    “불멸체!”

    황량영군도 동공이 수축해 중얼거렸다.

    콰콱!

    이때 거인의 두 손이 땅을 내리쳐 혼돈곡 전체가 격렬하게 떨렸다. 거인은 이제 드디어 일어서려 하고 있었다.

    황량영군과 환 씨 소년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거인은 일어나 한쪽에 덮여 있는 흙을 뒤적이더니 거무튀튀한 돌방망이를 찾아들었다.

    방망이는 거인 키의 절반쯤 되었고 표면에 기이한 푸른빛이 번뜩이는 것이 소문으로만 듣던 청령사(靑靈砂)를 제련한 듯했다.

    이것은 강철보다 무거워 평범한 영기며 법보는 물론이고 연허기 수사도 저것에 맞으면 멀쩡하지 못할 것이다.

    “저런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니 성가시게 되었습니다. 전력을 다해야겠어요.”

    황량영군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수사께서 말씀하지 않으셔도 잘 압니다. 움직입시다. 저 흉물스러운 것이 달아나게 둬서는 안 되지요.”

    환 씨 소년이 무표정하게 말하고는 길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허공에 빛이 어리더니 주먹 크기의 나방이 나타났다.

    환천기의 영충인 환염아 성충이었다. 나방은 몸을 부르르 떨며 아름다운 빛을 흩날렸고 몸이 순식간에 한 장 크기로 커졌다.

    그리고 소년의 모습이 조금 구부정해지더니 몇 촌 길이의 노란 털이 온몸에 자라나 입과 코가 짐승처럼 변했다.

    반인반수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곁에 있던 황량영군도 가부좌를 해 뒤통수를 치자 노란 기운이 머리 위로 치솟아 반 자 크기의 원영이 나타났다.

    원영은 황량영군과 똑같이 생겼는데 은빛 찬란한 갑옷을 입고 한 손에는 작은 녹색 검을 그리고 다른 손에는 하얀 옥 인장을 쥐고 있었다.

    그의 원영은 진짜 사람과 똑같아서 더는 허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잠시 후 황량영군의 원영이 두 눈을 뜨자 한 손을 뻗어 옥으로 만든 인장을 발동했다. 그러자 인장이 빛을 내뿜으며 거인의 머리를 향해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반요화(半妖化)된 환천기가 흔들리는 빛처럼 튀어 나가 두 손톱을 마구 휘둘렀다.

    그러자 수정처럼 빛나는 손톱이 공간을 가르며 빼곡하게 거인에게 날아들었다.

    그리고 요수가 변한 둔광은 손톱에서 내뿜은 빛 사이로 번뜩이며 사라졌다.

    크하하하아!

    갑작스런 공격에 거인의 괴성이 끊이지 않았고 하나뿐인 눈에서는 검붉은 빛기둥을 뿜었다.

    거인은 떨어져 내리는 거대한 인장을 향해 돌 방망이를 휘둘렀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땅을 쥐어 대량의 흙을 빨아들여 암석으로 만들었다.

    거인이 손을 휘두르자 암석이 날카롭게 긴 파공음을 내며 황량영군 쪽으로 날아갔다.

    쾅! 쿠콰쾅! 쿠쿵!

    환천기의 손톱이 검붉은 빛기둥과 충돌해 경천동지할 폭음이 터지고 방망이가 그대로 거대한 인장에 꽂혔다.

    드디어 엄청난 규모의 전투가 시작됐다.

    숨어서 싸움을 지켜보던 한립은 미간을 좁혔다. 연허기 수사들과 전설 속의 상고거인의 전투는 처음 보았으나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천지원기가 미친 듯이 요동쳤던 것이다.

    특히 황량영군의 원영이 조종하고 있는 거대한 인장은 공격할 때마다 주변에서 영기를 마구 빨아들여 위력을 크게 높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인장의 위력이 강해도 돌방망이에 두들겨 맞고 버틸 수가 없었다.

    흐르는 빛처럼 변한 반요의 소년도 몸이 깜빡일 때마다 그 주위로 소용돌이가 치듯 영기가 빨려 들어갔고, 독목거인도 입을 여닫을 때마다 대량의 영기를 삼키고 있었다.

    거인이 집어삼키는 영기의 양은 황량영군과 환천기 보다 훨씬 많았지만 정순함으로는 그 둘이 흡수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한립은 처음으로 이렇게 근거리에서 연허기 수사들의 전투를 보며 자신이 익히는 공법과 대조해 보는 중이었다.

    그 결과 수확이 대단했다.

    ‘뭐지?’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한립이 갑자기 표정이 달라져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없었는데 의식이 무언가에 반응한 것이다.

    그는 명청령안을 발동하고서야 모호한 인영이 그곳에 서서 대전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욱천!’

    그의 눈으로도 상대의 모습을 또렷이 볼 수는 없었지만 이곳에 숨어있을 영족이라면 단 한 명밖에 없었다.

    한립은 가슴이 뛰었다. 상황이 난장판이 되어 갈수록 유리한 것은 그였다. 한립이 투명한 그림자를 말없이 보고 있는데, 상대도 고개를 슬쩍 움직여 한립을 보았다.

    이에 한립은 놀라 뜨끔했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고개를 돌렸기에 자신을 발견한 것인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민에 잠겼다.

    전투는 장장 반나절동안 지속되었다. 거인과 연허기 수사 둘이 날뛰니 혼돈곡은 아예 이전과는 다른 곳이 되어 있었다.

    땅은 울퉁불퉁해졌고, 회색빛으로 어스름하게 깔려 있던 안개는 깨끗하게 걷힌 지 오래였다.

    게다가 그들 때문에 천지원기가 급격히 변했다.

    먹구름이 끼고 장대비가 쏟아지다가도 곧 태양이 작렬했고, 또 잠시 후에는 폭설이 휘날리고 칼바람이 난무하다가 우박이 쏟아지는 등 아주 난리가 났다.

    그래서인지 궁장 여인 등 몇몇 화신기 수사들은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았고 나머지 수사들은 괜히 전투에 휘말릴까 후퇴해 혼돈곡에서 물러났다.

    외눈박이 거인의 공격은 무척 사나웠고 끝없이 이어졌지만 한립은 직감했다. 상고거인의 패배는 시간문제였다.

    돌방망이를 휘두르고 암석을 던지는 속도가 처음보다 현저히 떨어졌던 것이다.

    거인이 황량영군의 공격으로 주춤한 틈에 환천기의 손톱이 빛을 뿜자 거대한 발가락이 잘려나갔다.

    크학!

    역시 이번에는 녹색 빛이 나타나도 발가락을 재생시키지 못했다. 그러자 황량영군과 환천기는 동시에 눈을 빛내며 드디어 전투를 마무리 지을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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