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2화. 자광담(炙光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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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장 여인은 인족들이 당장이라도 공격할 기세를 보이자 짙은 눈썹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비술로 요족 수사들을 일깨우며 소매 속에 숨겨진 손으로 무언가를 쥐었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이었다.
콰르릉!
그때 돌연 연못 주변의 땅이 진동하더니 평온하던 연못물이 요동쳤다. 이어 우윳빛 광선들이 물속에서 마구잡이로 뻗어나가 일부는 인족에게, 일부는 요족에게 뻗어 나갔다.
그리고 인근의 암석들은 광선에 의해 벌집처럼 구멍이 뚫렸다.
인족과 요족은 크게 놀라 서둘러 술법을 펼치거나 보물을 발동해 광선을 막았다.
그 순간 맑고 투명하던 연못물에서 엄청난 빛이 발산되며 태양처럼 밝은 빛덩이가 천천히 떠올랐다. 물이 끓어 넘치는 것으로 보아 빛덩이는 엄청 뜨거운 것이 분명했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연못 아래에서 영족이 수작이라도 부린 건가?’
허공에 숨어 염탐하고 있던 한립이 광선을 허겁지겁 막고는 연못의 변화에 안색이 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궁장 여인이나 남 성주 역시 가슴이 철렁했다.
“이상한 일이군. 분명 물속에 있어야 할 것이 어찌 수면 위로! 설마…….”
남 성주는 이곳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는지 무어라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열댓 개의 하얀 빛기둥이 솟구쳤다.
빛기둥은 수면을 벗어나자마자 괴이하게 꺾여 인근의 인간과 요족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습격에 그곳에 모여 있던 이들은 크게 당하고 말았다.
궁장 여인과 남 성주처럼 수행이 높은 이들은 사태가 심상치 않자 즉시 비술을 펼쳐 피했지만 빛기둥에 닿은 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을 본 이들은 황당하면서도 무척 열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쿵! 하는 굉음이 터지고 노란색 기둥 다섯 개가 연못 주위 언덕에서 솟아올랐다.
기둥들의 표면에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그곳에 모인 이들 중 인족 원영기 수사들의 수가 많아 비참하게 죽어 나간 이들도 더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남 성주가 오랫동안 양성한 심복이거나 문하의 제자였으니 그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누구냐?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쉬쉬쉭!
남 성주가 호통을 치면서 다섯 개의 작은 남색 검들을 불러냈는데 튀어나온 검은 어느새 거대한 검으로 변해 그 주위를 맴돌았다.
“베어라!”
음산한 남 성주의 목소리가 울렸다.
검들이 길게 꼬리를 남기며 빛줄기로 변해 다섯 개의 기둥으로 날아가 기둥 아래쪽을 몇 번이고 휘감았다.
콰쾅!
연달아 굉음이 울렸지만 기둥은 잘려나가지 않고 옅게 칼자국만 남았다. 이에 남 성주의 눈동자가 수축했고 그는 서둘러 검들을 소환했다.
바로 그때, 기둥 표면의 옅게 파인 자국에서 녹색 액체가 흘러나오며 비린내를 풍겼다.
돌아온 검들은 그의 머리 위를 맴돌았고 남 성주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의 검은 기둥은 물론이고 작은 산도 일격에 베어날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겨우 상처뿐이라니…….
‘정말 이상한 기둥 아닌가. 표면에 탄성이 있는 것이 마치 생명체 같은…….’
남 성주가 공격에 실패하자 궁장 여인의 얼굴에도 의혹이 떠올랐다. 그러나 연못 아래에서는 낮은 울림이 계속되고 있었다.
“크하아아-”
누군가의 신음소리 같기도 하고, 또 누군가 막 잠에서 깨어난 것 같기도 했다. 괴이한 소리가 들리자 다섯 개의 노란 기둥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지만 연못 아래에서 직경이 열 장에 이르는 거대한 빛덩이가 튀어나왔다. 빛덩이는 하얀 빛으로 반짝이면서 커다란 금빛 구슬을 품고 있었다.
“낙양정(洛陽晶)!”
빛덩이를 보자마자 남 성주 뒤의 행각승이 소리를 높였다. 그 소리에 궁장 여인과 세 청년들은 움찔하다 곧 희색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행각승은 하얀 빛줄기를 남기며 보물을 향해 몸을 날렸고 여인도 허공을 빙글 돌아 검은 불 봉황으로 변해 튀어나갔다.
검고 마른 청년들은 중간에서 모여 굵은 은색 빛을 형성하고는 그 뒤를 바짝 쫓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남 성주만이 제자리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허공에 숨어 있던 한립도 눈을 반짝이며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오직 신혈이었다.
괜히 다른 보물들을 취하려다 그의 행적만 드러날 뿐이다,
행각승이 변한 하얀 빛줄기가 빛 속으로 파고들어 낙양정을 차지하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갑자기 빛덩이 주변에 알 수 없는 힘이 생겨나 행각승을 거세게 빨아들인 것이다.
“히익!”
기겁한 그가 법력을 이용해 저항하려는데 기이한 은색 주술이 나타나 그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행각승은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부글거리는 연못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빛덩이는 여전히 허공에 떠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뒤따르던 여인과 세 명의 청년들이 행각승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 서둘러 방향을 틀어 연못 가장자리로 되돌아 왔다.
그들은 이제 새로운 시선으로 연못을 쳐다보았다. 남 성주는 무언가 알고 있는지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구겨진 얼굴이 좀처럼 펴질 줄을 몰랐다.
쿠르릉!
이때 연못 한쪽에서 땅이 흔들리고 다섯 개의 노란 기둥이 또 솟아올랐다. 그리고 무언가의 포효 소리가 연못을 중심으로 울리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크고 분명해졌다.
그러자 남 성주가 갑자기 몸을 틀어 남색 빛줄기로 변해 골짜기 입구 쪽으로 몸을 날렸다. 남색 빛이 몇 번 번뜩이더니 농무 속으로 아주 달아나 버린 것이다.
남 성주의 행동을 본 청년과 궁장 여인은 황당해했지만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립도 미간을 좁히며 신형을 하늘 높이 띄우고 연못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그가 떠나고 잠시 후 연못의 물이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별안간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열 개의 기둥들이 스스로 접혔다 펴지며 열댓 장까지 솟아올랐다.
쿠콰쾅! 콰콰쾅!
땅이 갈라지고 흙과 돌덩이가 튀어 오르며 두 개의 거대한 물체가 연못 양쪽에서 올라왔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던 한립은 그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연못 양쪽에서 튀어나온 것은 열은 노란색의 거대한 손바닥이었는데 한 쌍의 손이 천천히 흙더미를 헤치고 나오는 중이었다.
3, 40장은 되던 자광담은 어느새 물이 빠지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의 구덩이로 변해 있었다.
그 중심부에 기이한 빛이 반짝이고 두 장 크기의 거대한 눈알이 천천히 움직이며 음산한 빛을 내뿜었다.
그것을 본 한립의 머리에 영계의 전설적인 존재가 떠올랐다.
‘설마!’
그의 안색이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그는 속도를 높여 치솟았지만 태일 화청부 때문에 극히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궁장 여인과 세 명의 청년은 낮게 날고 있어 이런 것을 전혀 몰랐지만 그래도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느낀 것 같았다.
여인은 냉소하며 입에서 검붉은 손수건을 분출했다. 그러자 한 장 크기의 푸른빛의 뱀이 튀어 나왔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푸른 비도였다.
손수건이 그녀의 머리 위에서 펄럭이자 즉시 붉은 보호막으로 변해 여인을 감쌌다. 그리고 세 명의 청년들도 동시에 수결을 맺어 희미한 은색 빛을 방출했다.
셋이 하나로 은색 빛으로 융합되어 숨은 것이다.
쿠콰콰쾅!
네 명의 요족 수사들이 다른 술법을 펼치기 전에 연못을 중심으로 천여 장 가까이 되는 땅이 갈라지며 무너져 내렸다.
연못 하부의 거대한 눈알이 깜빡이자 연못 위에 떠있던 낙일정이 빠르게 추락해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대한 무언가가 천천히 땅 속에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한립은 아주 높은 곳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키가 수백 장은 되는 거대한 물체는 황토색 진흙이 온몸에 묻어 있었고, 두 팔은 하늘 높이 뻗어 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체구의 생명체였다.
한립도 인계에서 라후와 유천곤붕 같은 역천의 생명체들을 보지 못했다면 이런 것이 존재하리라고 믿지 못했을 것이다.
거인은 허리춤에 요수 가죽을 두르고 있었고 산봉우리만 한 머리에 이마가 움푹 들어가 있었다. 그 가장 움푹한 곳에 거대 눈이 자리했다.
놀랍게도 사람들이 연못이라고 믿었던 공간은 움푹 파인 거인의 눈이었다.
그밖에도 거인은 납작한 코와 뺨까지 이어진 기다란 입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운 이빨들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거인은 완전히 일어선 것이 아니라 겨우 상반신만 일으킨 것이었고 아직도 하반신은 땅속 깊은 곳에 묻혀 있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상고 거인이라니……. 어서 달아나라. 우리는 상대할 수 없는 존재야.”
궁장 여인도 외눈박이 거인의 실체를 확인하고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제야 그들은 남 성주가 왜 그대로 달아나 버렸는지 알았다. 한 발 앞서 이런 일을 예상했던 것이다.
여인이 주저 없이 수결을 맺자 붉은 보호막이 빙글빙글 주변을 돌았다.
펑!
폭음이 울리고 붉은 기운이 산산이 부서진 후 그녀가 사라졌다가 5, 60 장 밖의 허공에서 다시 나타났다. 세 청년은 여인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수결을 맺었다.
독문 둔술을 이용해 지척에 있는 재난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크학.
그러나 외눈박이 거인이 갑자기 입을 벌려 괴이한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마셨다. 광풍이 밀려들며 엄청난 힘에 청년들을 둘러싼 은색 보호막이 요동쳤다.
세 청년은 식겁해 전력을 다해 저항했다. 하지만 궁장 여인과 남 성주 등 화신기 수사마저 내뺀 상황에서 원영기 수사 셋이 그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들은 광풍에 이끌려 거인의 시뻘건 입속으로 천천히 끌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세 요족 수사들은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던 중 그중 하나가 허공에서 빙글 돌아 몇 장 크기의 은색 늑대로 변신했다.
아우!
거대 늑대가 울부짖자 나머지 두 청년도 주저하지 않고 은빛으로 변해 그 안으로 스며들었다. 동시에 은색 늑대의 머리 양쪽에 푸르고 붉은 빛이 번뜩이더니 푸른 머리와 붉은 머리가 생겨났다.
아우우!
세 개의 머리가 동시에 길게 울부짖었고 은색, 붉은색, 푸른색의 빛무리가 입안에서 분출되어 그들을 보호하는 은색 보호막 속으로 흡수됐다. 이에 광풍을 멈추지는 못했지만 빨려 들어가는 속도가 크게 줄어들었다.
다시 머리가 셋 달린 늑대의 본체로 돌아간 덕분이었다.
은닉술을 펼쳐 숨어있던 한립은 그 모습을 보고 우아한 자태의 누군가를 떠올렸다. 하지만 짧게 한숨을 쉬며 다시 아래쪽 상황을 주시했다.
‘자광담이 거인의 눈이 환영으로 만들어낸 허상이라면 영족 배신자는 이미 거인의 뱃속에 있다는 뜻인가?’
그가 알기로 상고거인의 일족은 지능이 낮고 산채로 다른 종족들을 잡아먹는 것을 좋아해서 아마 신혈이고 뭐고 알아보지 못하고 삼켜버렸을 것이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상고거인은 지능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성년이 되면 연허 초기에 이르는 신통을 부렸고 몇몇 자질이 뛰어난 거인들은 합체 이상의 존재가 되기도 했다.
심지어 전설 속의 천목거인(千目巨人)은 진룡이나 천봉 등 천지진령들과도 맞먹는다고 들었다.
한립은 가슴이 서늘해졌지만 이대로 달아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동안 머리 셋 달린 은색 늑대는 입에서 연달아 여러 개의 보물을 분출해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보물들은 은색 문자에 휘감겨 거인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늑대는 그저 법력을 이용해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거인은 이마저도 더 이상 기다리기 싫은지 갑자기 커다란 손이 은색 늑대 요수를 향해 날아들었다.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자 아직 손이 닿지도 않았는데 손바닥의 풍압이 늑대 요수를 내리눌렀다. 잡히는 순간 곤죽이 될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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