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0화. 각 종족의 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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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성주 일행은 자신들이 발각된 것에 무척 놀란 듯했다.
“환염아! 낙일성에서 우리의 대화를 엿듣던 것은 바로 환 노괴였습니다.”
황량영군은 소년의 어깨에 있는 나방을 힐끗 보고 말했다.
“황량 형, 그걸 이제야 아셨습니까? 저는 진작 알고 계신 줄 알았는데요.”
“늙은 쥐새끼처럼 굴에 숨어 대천겁이나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곳까지 나타나다니 대천겁 준비는 다한 것입니까?”
“노부가 삼천 년에 한 번 있는 대천겁을 넘길 자신이 있었으면 여기 까지 왔겠습니까! 연허 초기를 배회한 지 어언 만 년이라 지난 대천겁은 겨우 버텼어도 다음 번은 가망이 없다고 봐야겠지요. 그럴 바에야 돌아다니며 기연이라도 찾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다니는 중입니다. 황량 수사야 막 연허기에 이르러 대천겁을 겨우 한 번 치렀을 뿐이니 이런 고민은 없겠지만요.”
연허 중기 요족 수사가 길게 탄식했다. 상대가 대천겁에 대해 언급하자 황량영군의 얼굴도 조금 달라졌다. 처음으로 맛 본 대천겁의 무시무시함에 이제는 그 기억만 떠올려도 몸이 덜덜 떨려왔다.
“기연을 찾을 생각이라면 만황의 땅으로 갈 일이지 여기서 뭐하는 것 입니까? 아무리 구실이라지만 믿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지…….”
황량영군이 입술을 달싹이며 뜻밖에도 전음으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정말 억울합니다. 이번에 낙일성에 간 것도 사실 수사에게 함께 만황으로 가자는 청을 드리려던 것입니다. 그저 우연히 영족의 일에 끼어들게 된 것이고요. 노부도 경서족 장로인데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소년이 배시시 웃으며 똑같이 전음으로 답했다.
“같이 만황으로 가자고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비록 인족과 요족이지만 사실 신통은 서로 통하는 바가 있어 연합하면 만황에서 생존 가능성이 클 것 아닙니까? 황량수사 정도는 되어야 노부도 안심이 되지요. 사실 동족의 다른 장로들 중에는 동행하고픈 이들이 없어서요.
수사의 두 번째 대천겁이 코앞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겁을 넘길 보물을 찾아야 살아남을 수 있을 테지요! 수행이 늘지 않아도 천겁은 나날이 강력해지니까요.”
“환 형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나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두 번째 대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절반이나 될지 모르겠군요. 지난 번 겁을 지나며 꽤 많은 보물을 잃어서…….”
황량영군이 옥으로 만든 배에 서서 침음하다 고개를 들었다.
“그 정도면 다행입니다. 노부는 이 번 대겁을 넘길 가능성이 4분의 1도 못 됩니다. 그럼 어쩌겠습니까? 같이 만황 세계에 한 번 다녀오시겠습니까?”
소년이 진중한 어조로 전음을 보냈다. 그러나 상대의 정식 요청에 황량영군은 고민스러웠다.
그가 한참이 지나서야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우리 둘이 연합해 만황 세계에 간다면 영족의 일은 어찌 처리하자는 것입니까?”
“간단하지요. 우리 둘이 힘을 합쳐 일단 영족들을 처리하고 그 영족의 배신자를 찾아냅시다. 그가 지닌 물건은 나눌 수 있으면 나누고, 아니라면 그때 우리가 실력을 겨뤄 승자가 가져가는 것으로 하지요.”
환 씨 소년은 미리 생각해둔 바가 있는지 술술 답했다.
“아니, 대놓고 수를 쓰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당신보다 수천 년은 뒤늦게 연허기에 이르렀는데 어찌 이긴단 말입니까.”
“그럼 황량 형은 어쩌고 싶으신 것입니까?”
“일단 물건을 확인하고 이야기 합시다. 가져가는 쪽이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기로 하고요.”
황량영군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럽시다. 인족과 요족이 함께 일단 영족부터 해결합시다.”
환 씨 소년의 얼굴에 사나운 기색이 어리자 황량영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황량영군은 남 성주 등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연허기 요족 수사에게 발각되었으니 다른 이들도 마지못해 동의했다. 이렇게 남 성주는 즉시 두 손을 마주쳤다 펼치며 남색의 거대한 불덩이를 하늘 위로 쏘아 보냈다.
펑!
남색 불덩이가 폭발하는 순간, 수풀 속에서 각양각색의 둔광이 날아들었고 인족 수사와 영구를 이용해 비행하는 연체사들이 분분히 모습을 드러냈다.
황량영군이 큰 소리로 명을 내렸기에 인족은 요족과 연합해 일단 영족을 상대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놀라기는 했지만 이곳에 모인 이들도 평범한 이들은 아니었기에 큰 소란이 일지는 않았다.
요기가 꿈틀거리며 흉악한 요수들과 열댓 명의 화형기 요족 수사들이 나타나자 인족에서도 법보와 영구가 마구 발동되며 영기가 하늘을 갈랐다.
그들을 마주한 초록 치마 여인과 황석공은 환 씨 소년과 황량영군이 숙덕거릴 때부터 불길해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서늘한 시선을 주고받고 즉시 방향을 틀어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 뒤의 나무새와 석상들이 쿵쿵 소리를 내며 골짜기 안쪽으로 빠르게 철수했다. 영족이 놀랍게도 싸우지도 않고 퇴각한 것이다.
이번에는 인족과 요족이 당황해 멈칫했다.
‘영족이 당해내지 못할 것 같아 달아나는 것인가?’
우와와!
영족이 퇴각하자 인족과 요족의 사기가 삽시간에 높아졌고 그대로 밀고 들어가 뒤쪽으로 처진 백여 마리의 꼭두각시들을 부수었다.
순식간에 인족과 요족 중 일부가 혼돈곡 입구로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정말 아무런 반격도 없었다.
환 씨 소년과 황량영군은 오히려 이런 상황이 의심스러웠다. 직접 영족들과 대규모 전투를 벌여본 그들은 상대가 얼마나 용맹하고 사나운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합니다. 어서 멈추게 하십시오. 뭔가 있습니다.”
환 씨 소년이 굳은 얼굴로 황량영군에게 빠르게 경고했다.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 같군요!”
황량영군도 동의했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길게 휘파람을 불어 돌아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그때 골짜기 입구 위쪽에서 핏빛이 번뜩이더니 천둥소리가 들리며 수십 장 크기의 핏빛 연꽃이 응결됐다.
선홍색의 연꽃은 코를 찌를 듯한 피비린내를 풍겼고 허공에서 빙글빙글 회전했다.
“이런, 욱천 현령!”
환 씨 소년이 핏빛 연꽃을 보자마자 소리를 높였다. 황량영군은 핏빛 연꽃을 처음 보았지만 영기족의 8대 현령으로 이름 높은 욱천의 이름은 들어 보았다.
핏빛 연꽃은 그들이 손을 쓰기도 전에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며 핏물로 변해 떨어졌다.
그러자 핏물에 닿은 이들은 요족과 인족을 막론하고 그 자리에서 푸른 연기로 변해 죽어나갔다.
호신용 요기나 방어 법보 등 그 무엇도 핏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인족과 요족은 골짜기로 진입한 인원의 반을 잃었다.
다행히 살아남은 이들은 악독한 핏물에 하얗게 질려 황량영군이 부르기도 전에 죽어라 내빼고 있었다.
피바다를 이룬 물줄기는 수많은 사람과 요수를 죽이고도 만족을 못했는지 골짜기 입구를 나서 달아나는 이들을 빠르게 뒤쫓았다.
이에 환 씨 소년과 황량영군도 좌시하지 않고 빠르게 움직였다.
소년이 입을 벌려 회색 요기의 바람을 뿜자 바람이 날아가면서 회색 바람의 뱀으로 변해 피바다를 덮쳤다.
황량영군이 콧방귀를 뀌며 소매를 펄럭이자 황금색 팔괘경이 가슴 앞에 떠올랐다. 그가 수결을 맺으니 굵은 금색 빛기둥이 튀어나갔다.
콰콰쾅!
바람의 뱀과 빛기둥이 밀어 닥치는 핏물을 막자 굉음이 울렸다. 이렇게 핏물이 더 흘러나오는 것을 봉쇄한 것이다.
“허허, 이런 외진 곳에서 양쪽의 동급 존재를 마주칠 줄은 몰랐습니다.”
핏물이 거꾸로 흘러 다시 연꽃의 형상을 갖추었고 그 위로 빛이 번뜩이며 검푸른 장포를 입은 영족 사내가 서있었다. 예리한 눈빛의 기령족 현령 욱천이었다.
상대가 법술을 거두자 환 씨 소년과 황량영군도 시선을 교환하고 신통을 거두었다. 동시에 회색 바람과 금빛 빛줄기가 흩어졌다.
욱천을 보는 둘의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욱천! 현령이 나서 후배들을 도륙하다니 우리가 영족에게 똑같이 앙갚음할 것이 두렵지 않은가?”
황량영군이 백 명만 겨우 달아난 것을 보며 말했다. 그를 따라 이곳에 왔던 원영기 수사 둘도 보이지 않았다.
“원영 이하의 존재들이야 상관없지 않습니까? 설마 이런 사소한 일로 본족과 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것입니까? 그리고 두 분도 후배들을 데리고 윽박지르는 것 같아 보이는 데요.”
욱천은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거침없이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뒤로 철인, 광화 등 다른 소인들이 나타났다.
이렇게 많은 영족이 나타난 것에 환 씨 소년과 황량영군은 둘 다 가슴이 서늘해졌고 승산이 있을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후 한시름을 놓을 만한 결론이 났다. 조금 전 많은 수사들을 잃었지만 아직 전체 세력으로는 두 종족 연합이 우위였다.
황량영군이 냉소하며 무어라 말하려는데 눈을 굴리던 소년이 무언가를 알아차리곤 소리쳤다.
“오행영족 중에 수족(水族)이 보이지 않아요! 지금 저들은 시간을 끌고 있는 겁니다.”
환 씨 소년의 말에 황량영군도 번뜩 눈치를 챘다. 황량영군이 파랗게 질린 낯으로 손을 저었고 가슴 앞에 떠있던 거울에서 금빛 빛줄기가 뿜어져 나갔다.
환 씨 소년도 술법을 펼쳐 다시 요기가 깃든 바람을 분출했다. 이어 그들 뒤쪽의 요족과 인족들도 궁장여인과 남 성주 등의 명을 받으며 공격하기 위해 돌진했다.
그럼에도 영족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불빛과 검기가 난무하며 석상과 비취색 나무새들이 다시 골짜기에서 쏟아져 나왔다. 나무새가 날개를 펄럭이자 녹색 화살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그리고 석상들이 두 손을 펼치자 굵은 노란 빛덩이들이 떨어졌다. 쌍방이 격렬하게 맞붙자 핏빛 연꽃이 핏물로 변해 위로 솟아올랐다.
황량영군과 환 씨 소년도 위로 솟구치며 그 뒤를 쫓았다.
셋은 수행으로 보면 엇비슷한 존재들이었지만 욱천의 경우 영족의 현령으로 영계에서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전투 경험이나 알고 있는 신통의 위력이 당연히 황량영군과 환 씨 소년을 앞섰다.
만일 일대일로 싸웠다면 반드시 인족이나 요족 중 하나가 패했을 것이다. 하지만 둘이 암암리에 힘을 합치기로 약속하고 협공을 하니 욱천에게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늘 높이 치솟은 피의 강물, 회색 바람, 금빛 빛기둥이 얽힌 폭음과 불빛이 끝없이 쏟아졌다.
남색 빛줄기가 번뜩이며 커다란 검이 나타나 앞을 막는 열댓 개의 석상 거인들을 단 번에 베어냈다.
그러나 영족도 가만히 있지 않고 검붉은 거대 손으로 인족과 요족을 사정없이 할퀴어댔다.
수사 몇이 피하지 못하고 날카로운 손톱에 당해 재로 흩어졌다.
“저런!”
그것을 본 인족 한 명이 대노했다.
그는 두 손으로 수결을 맺더니 몸을 크게 부풀려 거인으로 변해 새까만 주먹을 휘두르며 돌진했다. 최상급 연체사인 근 씨 거한이 비전되는 연체술을 발동해 공격을 가한 것이다.
검은 구렁이 같은 권풍들은 날아드는 소리도 스산해 영족이나 꼭두각시들은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영족에서도 은색 인영이 기합을 넣으며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검은 거인보다 한 장은 더 컸는데 철인이라고 불리는 금영족(金靈族)이었다.
쿵! 쿵!
땅이 울리고 은색 인영이 성큼성큼 걸어 나와 검은 거인에게 은빛의 주먹을 날렸다. 이에 검은 거인도 물러나지 않고 상대에게 주먹질을 퍼부었다.
퍼벅! 퍽!
주먹이 부딪칠 때마다 경천동지할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귀가 터질 지경이라 주위에서 싸우고 있는 인족과 요족들은 피할 정도였다.
다른 쪽에서는 나머지 영족과 고계 인족, 요족 수사들이 각각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돌연 검은색의 불 봉황이 요수 무리에서 튀어 나왔다.
불 봉황이 불길에 휩싸인 채 하늘을 날아다니자 백 마리의 나무새들이 재로 변해 흩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검은 봉황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허공에서 사라졌다가 혼돈곡 입구에서 나타나 궁장 차림의 여인으로 변했다.
이 흑풍족 요족 수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혼돈곡 내부로 날아들었다.
‘막아야 해!’
남 성주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 앞을 막던 석상 무리에 백여 개가 넘는 검기를 흩날렸다.
석상들이 베어져 나가 통로가 생기자 남색 빛줄기가 쏜살같이 비집고 들어가 혼돈곡으로 진입했다.
그것을 본 주변의 인족과 요족 수사들도 그 뒤를 쫓아 둔광을 휘날리며 골짜기로 따라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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