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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58화 (515/2,000)

758화. 다시 만난 작은 짐승

*

“골짜기 안에 거인이 있든 말든 황량 선배님께서 계신데 두려울 것이 무엇입니까!”

행각승이 황량영군을 보며 슬쩍 아첨했다.

“그건 모를 일일세. 상고거인 일족은 산을 뽑아내 태양까지 던질 정도로 막대한 힘을 지녔다고 하니, 겨우 나 같은 연허기 수사가 상대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혼돈곡 내부에 그런 거인들이 있을 가능성은 낮네. 그런 존재가 있었다면 진작 낙일지묘에 들어선 인간이며 요족들을 전부 도륙 냈겠지. 상고괴수들이라 해도 이곳에서 서식할 생각은 안했을 거야. 안 그랬다면 낙일지묘가 오늘날까지 이리 조용할 수 있었겠는가?”

황량신군이 담담히 미소 지으며 말했고 남 성주 등 화신기 수사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후 그들은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곧장 혼돈곡으로 날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검은 점으로 변해 초원 끝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일각 후 초원의 표면에서 하얀빛이 번뜩이더니 인영 하나가 서서히 솟아올랐다.

바로 요족의 소년이었다.

그는 황량영군 등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냉소했다. 그 옆에는 환염아가 얌전히 그의 어깨에 앉아 가볍게 두 날개를 팔락이고 있었다.

소년은 한참동안 앞을 주시하다 다시 몸이 흐릿해지며 신형이 지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     *     *

한립은 기합을 넣으며 장창으로 날개 달린 늑대의 심장을 꿰뚫었다.

휘휘휙!

그때 허공에서 파공음이 들리며 수십 개의 빽빽한 바람의 칼날들이 하늘을 뒤덮였고 그 위로는 일고여덟 마리의 날개 달린 늑대 요수들이 떠 있었다.

그러나 한립은 바람의 칼날들은 신경 쓰지 않고 영석이 반짝이는 장창을 내던졌다.

장창은 한립의 초인적인 힘과 영구의 위력이 더해져 검은 빛으로 변해 거침없이 날아갔다.

그리고 전광석화처럼 날개 달린 늑대의 몸에 구멍을 냈다.

동시에 그가 아래의 장창을 가리키자 영구가 방향을 틀어 또 다른 늑대에게로 쇄도했다.

그러자 늑대는 입에서 칼날들을 연이어 뿜어냈지만 장창의 움직임을 전혀 막지 못하고 참혹한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다.

그 순간, 떨어져 내리던 수많은 칼날들이 한립에게 닿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러나 그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몸을 금빛으로 반짝이며 바람의 칼날들과 맞부딪쳤다.

이에 푸른 장삼은 또 한 번 넝마가 되었으나 한립의 몸은 멀쩡했다. 한립은 다시 장창을 조종해 남은 늑대들을 깔끔하게 소탕했다.

우웅-

마지막으로 그가 손짓하자 장창이 길게 공명하며 한립의 손에 돌아왔다. 장창의 밑 부분을 살펴보자 푸른빛을 띠던 영석들은 이미 암담해져 있었다.

한립은 탄식하며 한 손으로 장창 끝을 내리쳤다.

투툭!

그러자 영석들이 떨어져 나와 바닥에 뒹굴었다. 한립은 곧바로 저물탁에서 새로운 푸른 영석을 꺼내 박아넣고 장창을 회수했다.

그는 너부러진 늑대에게로 향했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그 옆에 있는 거대한 나무 아래로 걸어갔다.

그러자 그 아래에는 기이한 영지(靈芝)가 반짝이며 우윳빛 기운에 쌓여 은은한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과연 영계는 다르군. 인계에서 전설로만 전해지던 태을은정지(太乙銀精芝)가 있다니. 이것을 복용하면 몸에 은색 비늘이 돋아나 도검불침의 몸이 될 수 있다던데. 이러니 요수들이 죽어라고 달려들었지. 허나 금강결에는 크게 못 미치니 내게는 필요 없지만, 중계 연체사들에게 팔면 사족을 못 쓰겠군.”

한립은 손바닥을 뒤집어 청록색 옥으로 만든 삽을 꺼내 땅속 깊숙이 파내 조심스럽게 옥함에 담아 넣었다.

한립은 낙일지묘에 들어온 후 인계에서는 진작 멸종되어 볼 수 없는 영약이며 재료들을 적잖이 얻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경지에는 대부분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도 그럴 것이 정말 화신기 수사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이 있었다면 아직까지 남아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낙일지묘의 몇몇 영약들은 그 수량이 극히 적고 아주 은밀한 곳에서 자라나 모래 속에서 바늘 찾기보다 더 어려웠다.

그래서 낙일지묘에는 화신기 수사들이 잘 나타나지 않았고 기껏해야 8급 화형기 요수나 인족 원영기 수사들이 드나들었다.

삼경(三境)과 칠요지(七妖地)를 벗어나 끝없는 만황세계로 진입하면 그곳에야 말로 진정한 천지영약과 보물들이 산재해 있을 것이다.

그곳에는 종류가 워낙 많아 만 분의 1도 알아보기 힘들고, 심지어 범인에게 영근을 생기게 해주거나 저계 수사가 하루아침에 역천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영약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탐이 나도 원영기 이상이 아니라면 찾아 나설 엄두도 내지 못했다.

만황세계에는 화신기나 연허기에 가까운 존재들과 불가사의한 자연재해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영기는 되어야 만황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자격이 되었다.

또한 정말 그곳에서 만족할 만한 영약을 찾아낼 수 있을 지는 각자의 운과 역량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원영기에 접어들면 정상적인 수련 방법으로는 수련 속도가 엄청나게 느려진다는 점이었다.

만일 바깥으로 나가 쓸 만한 영약이나 보물을 찾지 못하면 늙어 죽을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경지에서 머물거나 아니면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천겁에 당해 참혹하게 죽어나가야 했다.

이런 연유로 매년 수많은 인족과 요족 고계 존재들이 삼경칠지를 떠나 만황세계로 진입하고는 했던 것이다.

그들이 필요한 물건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아서 돌아오는 이는 채 3분의 1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족이나 요족 모두 최상급 존재를 늘리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만황세계에 큰 흥미를 느꼈는데 수행만 온전했어도 이미 한 번 나가 보았을 것이다.

한립은 기지개를 켜며 그곳을 떠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옆 관목에서 인기척이 들리고 노란 그림자가 번뜩였다.

열댓 장 밖에서 작고 깜찍하게 생긴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저건!”

잠시 놀라던 한립은 노란 그림자를 확인하고는 놀람과 기쁨이 교차했다. 뜻밖에도 그에게 깨달음을 선사했던 작은 짐승이 나타난 것이다.

어째서 갑자기 이곳에 나타났는지는 몰라도 다급한 기색과 헝클어진 털을 보니 난감한 상황에 처한 듯했다.

작은 짐승도 한립을 보고는 이내 누군지 알아본 듯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지만 곧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며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한립이 어렵게 다시 만난 짐승을 그냥 보내줄 리 없었다. 그는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소매를 펄럭여 은색 밧줄을 날렸고 밧줄이 뱀처럼 움직이며 작은 짐승을 옭아매려 들었다.

짐승은 그것을 보고 분노했지만 어쩔 수 없이 허공에서 몸을 떨며 허상으로 변했다.

그리하여 은색 밧줄은 피했지만 작은 짐승이 지체하는 사이 돌연 인근의 허공에서 하얀 빛이 번뜩이며 작은 검이 날아들었다.

날아든 검은 곧 하얀 빛줄기로 변해 작은 짐승의 앞길을 막고는 빛을 크게 내뿜었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하얀 장포를 입은 몇 촌 크기의 소인으로 변했다.

더 이상한 것은 작은 짐승이 소인을 보더니 펄쩍 뛰며 몸을 비틀어 바닥에 착지하고는 온 몸의 털을 곤두세웠다.

“영족!”

한립도 소인을 보고 놀라 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즉시 몸을 틀어 뒤로 물러났다.

이미 영계에서 수십 년을 보낸 한립이 인족과 근접한 곳에 그들과 적대적인 종족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인간의 형상을 할 수 있는 영족은 이미 영족 내에서 영장이라 부르는 존재이며 인족 화신기 수사와 비등한 지위를 지닌 자들이었다.

법력을 지니고 있었다면 상황을 보아 침착하게 결정을 내렸겠지만 지금은 물러날 수 있는 만큼 물러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한립의 행동에 하얀 소인의 시선이 날아들며 의식 하나가 그를 스쳤다. 상대가 인족 연체사라는 것을 안 소인은 냉소하더니 한립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푸푹! 푸푸푹!

가느다란 다섯 줄기의 하얀 실들이 쏘아져 나와 번뜩이며 사라졌다.

‘검사(劍絲)!’

한립은 가느다란 실의 정체를 깨닫고 등 뒤의 새까만 장창을 꺼내 전력을 다해 창을 휘둘렀다.

후웅.

검은 빛이 폭발하며 그의 앞을 막더니 다섯 줄기의 검사가 괴이하게 나타나 검은 빛과 충돌했다.

검은 빛은 맹렬하게 검사와 부딪혔고 하얀빛이 번뜩이자 검은 빛이 갈기갈기 찢겨 흩어졌다. 장창은 진흙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맥없이 잘려 나갔다.

그러나 이에 멈추지 않고 다섯 가닥의 검사는 그 기세를 몰아 한립에게 날아들었다.

‘이런!’

한립이 한 손을 털어내자 반절 밖에 남지 않은 창이 검은 빛으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그가 고함을 치자 잿빛 갑옷이 반짝이며 회색 안개로 흩어져 검사를 맞이했다.

그는 금빛을 뿜어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7성의 금강결을 극성으로 펼쳤다.

휙! 휙!

한립의 주먹이 모호해지더니 불가사의한 속도로 금빛 권풍(拳風)을 날렸다. 그러나 절반뿐인 장창은 가느다란 실들과 닿자마자 하얀 빛을 번뜩이며 열댓 조각으로 흩어졌다.

곧바로 가느다란 실이 안개를 베자 두 줄기의 금빛 권풍도 동시에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째쨍! 쩡!

금속성의 마찰음이 잿빛 안개 속에서 터져 나왔다. 회색 안개가 흩어지는 듯하다가 다시 불어나 다섯 줄기의 검사를 붙들어 두었다.

기회를 틈타 한립은 조용히 움직여 스물 댓 장 밖으로 물러났고 허공으로 박차고 올라 과목 수풀 사이로 종적을 감추었다.

바로 그때 비로소 잿빛 안개가 터져나갔다. 그리고 손톱 크기의 알 수 없는 껍질 조각들로 변해 사방팔방으로 튀어 올랐다.

허공에 떠있던 소인은 잠시 당황하더니 곧 얼굴이 흉악해졌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작은 짐승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 신형이 모호해지며 수십 개의 허상으로 변해 여기저기로 튀어나갔다.

“어딜 가려고!”

소인은 한립을 신경 쓸 틈도 없이 대노해 휙 몸을 돌렸다. 그러자 무수히 많은 하얀 검기들이 튀어나가 여러 방향으로 달아난 짐승의 허상을 쫓기 시작했다.

소름 끼칠 정도로 서늘한 기운이 낮게 퍼져나갔다.

그 결과 작은 짐승의 허상 중 하나만이 괴이하게 몸을 틀어 검기들을 피했고 나머지는 전부 잘려나갔다.

소인은 아무래도 작은 짐승을 생포하고 싶은지 손짓을 해 남은 검기들을 흩어버리고는 직접 은색 빛줄기로 변해 튀어나갔다.

작은 짐승은 이 영족에게 크게 당했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노란 그림자로 변해 미친 듯이 달아났다.

그 속도가 한립이 달아나던 것보다 배는 빨랐다.

그러나 하얀 소인도 만만치 않아 작은 검으로 변해 빛줄기를 흩날리며 비슷한 속도로 그 뒤를 쫓았다.

짐승과 검의 추격전이 벌어지며 한립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의 거목 뒤에서 인영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바로 한립이었다.

그의 라연보가 아무리 대단하다해도 그의 속도로 영족의 추격을 피하기는 어렵다고 여겨 인계에서 배워온 속임수로 인근에 조용히 숨어 있었다. 작은 짐승이 달아나면 영족이 그쪽을 쫓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역시 그의 추측대로 영족은 인족 연체사에 연연하지 않고 작은 짐승을 쫓아갔다.

한립은 작은 검이 날아간 방향을 보며 얼굴이 어두워졌다.

‘갑자기 영족이 나타나다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불안한 마음이 스며들었다.

한립은 신형을 움직여 상대와 손속을 겨루던 자리로 돌아왔다. 땅에 떨어진 영구 파편들을 보니 속이 쓰렸다. 두 영구 모두 공들여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영장급 영족만 만나지 않았어도 이렇게 쉽게 부서질 것들이 아니었는데.’

하지만 겨우 영구 두 개로 목숨을 부지했으니 다행스런 일이기도 했다. 한립은 다시 그가 나타나기 전에 작은 짐승과 검이 사라진 반대 방향으로 사라지려 했다.

그런데 돌연 그의 머리 위에서 낯선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호오, 화광 녀석의 코앞에서 살아남다니. 보통 연체사가 아니구나?”

“……!”

그 소리를 듣자마자 한립은 안색이 창백해져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자 허공에 영기의 빛이 반짝이며 소인 세 명이 나타났다.

그 중 검푸른 장포를 걸친 소인의 눈빛이 가장 날카로웠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얼굴과 시선은 서늘했다.

그는 발아래 핏빛 운무를 밟고 서 있었고 그 곁에는 각각 새빨간 빛을 반짝이는 건장한 청년과 우윳빛 안개로 몸을 휘감고 있는 소녀가 함께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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