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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54화 (511/2,000)
  • 754화. 황량영군

    *

    가게를 돌며 영구 재료를 구경하던 한립은 일곱 번째 점포를 나와 탄식했다. 이곳의 재료들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품질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강결 대성을 앞두고 이런 재료들로 만든 영구를 쓰겠는가?

    ‘적어도 이전에 범 아우에게 주고온 금교검(金蛟劍) 수준은 되어야 하는데…….’

    “왜 그러십니까? 한 형, 물건들이 마음에 안 차십니까?”

    옆에서 전흥이 유심히 그의 표정을 살피다 물었다.

    “이런 재료는 쓸 수가 없습니다.”

    한립이 고개를 저으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 가볼 만한 곳이 있습니다. 거긴 특이한 물건들이 많거든요. 그래도 한 형께서 마음에 드는 물건이 꼭 있을 거라 장담은 못합니다.”

    전흥이 토박이 티를 내며 바로 상대를 데려갈 만한 곳을 떠올렸다.

    “그럼, 그곳으로 가봅시다.”

    한립이 흥미를 보이자 둘은 거리를 벗어나 길가에 길게 늘어선 마차에 오르려 했다. 그런데 그때 웅장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호랑이의 포효 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두 괴성이 하늘을 쩌렁쩌렁 울리는 통에 범인들과 수사들이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한립도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검은 점이 쾌속으로 그들이 있는 상공을 지나고 있었다.

    용머리와 호랑이 머리가 달린 괴수 세 마리가 푸른 마차를 끌며 멀어지고 있었다.

    “황량영군이 거처에서 나오셨나 봅니다. 무슨 일이지?”

    전흥은 지나가는 마차를 보며 놀라 소리쳤다.

    “황량영군이라니 그게 누구입니까?”

    한립의 물음에 전흥이 이상한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정말 먼 곳에서 오셨나봅니다.”

    “낙일성에서 유명한 분인가 보군요.”

    “본 성의 성주께서 화신 중기 수사인데도 낙일성 제일의 수사는 그분이 아닙니다. 인근 산에서 만 년 넘게 머물고 있는 황량영군의 수행이 가장 높거든요. 들리는 말로는 벌써 오행합일의 관문을 넘은 연허(煉虛) 초기의 수사라고 합니다.”

    ‘연허 초기!’

    한립은 깜짝 놀랐다. 화신 초기 수사인 그야말로 화신기와 연허기 수사의 차이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

    지난 십여 만년 동안 삼황 중 누구도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갔다는 이야기가 없다는 것으로 보아 아마 연허기가 인족을 대표하는 가장 높은 수행일 것이다.

    수사나 범인들에게 대승(大乘)이나 도겁(渡劫)에 이르렀다는 수사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는데 그들이 영계 하위층에 속한 자들이라 그럴 수도 있었다.

    마차에 오른 전흥은 신이 나서 황량영군에 대해 떠들어댔고 한립은 그저 미소를 머금고 조용히 듣고 있었다. 몇 시진을 미친 듯이 달려 그들은 낯선 골목 끝에서 멈추었다.

    한립이 마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펴보니 꽤 규모가 있는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대문은 크고 높았고 화려하게 금칠을 해놓은 데다 그 위에 ‘궁우각(穹宇閣)’이라고 적힌 편액이 걸려 있었다.

    대문 양쪽으로 두 장 가까이 되는 푸른 철기둥이 박혀 있었고 거기에 은색 사슬로 도마뱀처럼 생긴 새빨간 괴수들을 묶어 놓았다.

    괴수 두 마리가 한립이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 몸을 일으켜 그를 주시했다.

    “가시죠!”

    전흥이 한립을 따라 내리면서 두 마리 괴수를 두려워 않고 노란 팻말을 꺼내 보였다. 그러자 괴수들이 낮게 울며 다시 엎드리고는 그들을 적대시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괴수 사이로 걸어 들어갔고, 안으로 들어간 한립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일곱 장 너비의 방 안 곳곳에 진열장이 있었지만 전부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 한쪽에 계단이 있었고 그 옆 나무 의자에는 납작코의 노인이 잠들어 있었다. 누가 오건 말건 신경 쓰지 않은 듯했다.

    “서 씨 어르신! 그만 주무세요! 제가 손님을 데리고 왔어요.”

    전흥이 서슴지 않고 다가가 노인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 깨웠다.

    “손님? 어디!”

    노인이 눈을 번뜩 뜨더니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물었다.

    “이곳이 특수한 물건들을 취급 한다하여 들러보았습니다.”

    한립이 주인장으로 보이는 노인을 훑은 후 담담히 말했다.

    “손님께서 특수한 물건을 원하신다면 잘 찾아오신 겁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물건을 전문으로 매매하니까요. 그래서 어떤 물건을 찾으십니까?”

    노인이 잠시 한립을 살피고는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

    “영구 재료를 보고 있습니다.”

    “오, 특수한 영구 재료를 찾는 분들은 드문 편인데요. 그래도 저희 가게에는 두 가지 물건이 있습니다. 바로 가서 가져오겠습니다.”

    노인은 바로 계단을 따라 쿵쿵 뛰어 올라갔다. 그의 뒷모습을 지긋이 살피다 한립이 입을 열었다.

    “연체사 같아 보이는데요. 그것도 실력이 상당한!”

    “저도 알죠! 저 어르신이 왕년에는 낙일성에서 이름을 날리던 고계 연체사 중 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 전 낙일지묘에서 사고를 당하면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지 뭡니까! 그 뒤로는 성 안에 가게를 열어 먹고 살고 계시지요.”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한립이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흥이 웃으며 어떻게 서 씨 노인의 수행을 알아차렸는지 물어보려는데 밖에서 갑자기 요수들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짐승 따위가!”

    펑! 펑!

    둔중한 폭음과 함께 무언가 호되게 떨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한립과 전흥이 놀라 뒤를 돌아보자 문가에 사내와 여인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뒤로 문을 지키던 괴수들은 등을 바닥에 댄 채 자빠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식겁한 전흥은 괴수가 끙끙거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마음을 놓았다.

    한립의 시선이 남녀에게로 향했다.

    둘 다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았고 사내는 말끔한 생김새에 기품이 있었고 여인도 고운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느껴지는 영기의 압력으로 보아 결단기 수사들 같았다.

    게다가 그는 한눈에 그들이 겉모습과 실제 나이가 일치하는 젊은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계의 영기가 농염하고 중, 고계 영석이며 천지보물의 수량이 많아 축기기나 결단기 수사가 인계보다 훨씬 많았지만 이렇게 어린 나이에 높은 수행을 지닌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너희는 이곳에서 일하는 점원이더냐?”

    사내는 한립과 전흥을 보고 의식으로 훑더니 연기기 수사와 범인인 것을 알고 소리쳤다.

    한립이 손에 영구 반지를 끼고 있었기에 연체사라는 것을 알았지만 고작 연기기 수사와 어울리는 자라면 그 수준이 뻔하다고 여긴 것이다.

    “아닙니다. 저는 손님을 모시고 이곳에 물건을 구매하러 온 참입니다.”

    전흥이 들어온 남녀가 결단기 수사라는 것을 알고 서둘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손님? 그럼 궁우각 주인장은 어딜 갔지?”

    “서 씨 어르신은 위층에 물건을 가지러 가셨지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곧 내려오실 겁니다.”

    “려 사매, 잠시 이곳에서 기다려도 되겠습니까?”

    청년은 전흥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젊은 여인에게 온화하게 물었다.

    “조부께서 사형의 사부님과 담소를 나누는 중이시니 괜찮아요. 그런데 이런 곳에 정말 제가 원하는 물건이 있을까요?”

    여인은 텅 빈 진열장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

    “저도 듣기만 했고 직접 이곳을 찾아온 것은 처음입니다. 친우의 이야기로는 희귀한 물건이 많은 곳이라 합니다. 사매가 원하는 물건은 없더라도 견문을 넓혀 두면 좋지 않겠습니까?”

    젊은 사내는 여인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 분명했다.

    “전 사형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구경이나 해봐야겠네요.”

    곧 위층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노인이 비단으로 싼 작은 함 두 개를 들고 유유히 내려왔다.

    “또 손님이 왔나봅니다. 잉, 문 앞의 요수들을 저리 만든 것이 손님들입니까?”

    노인은 손님이 늘어난 것에 좋아하다 문밖의 요수를 보고는 미세하게 안색을 굳혔다.

    “걱정 마시지요! 겁 없이 날뛰기에 훈계하였을 뿐 큰 부상을 입힌 것은 아닙니다. 이쪽의 려 사매는 황량 선배님의 후인이신데, 짐승들이 날뛰다 놀라기라도 한다면 주인장이 책임지시겠습니까?”

    청년도 주인장의 내력을 아는지 겉으로는 사람 좋게 웃으며 설명했다.

    “……황량영군의 후인이라니 더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음번에는 가만있지 않을 것이니 주의해 주시지요!”

    청년의 말에 노인도 안색이 조금 달라졌지만 바로 원래대로 돌아와 경고했다. 그는 더 이상 젊은 청년과 말씨름하기 싫은지 바로 한립에게로 걸어왔다.

    한립은 눈을 빛냈을 뿐 바로 그것을 받아들지 않고 물었다.

    “어떤 신기한 물건이 담겨 있는지 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하나는 은심석(銀芯石)이란 재료인데 저도 어떤 것인지 잘은 모르니 직접 살펴보시지요.”

    노인이 덤덤히 비단함 중 하나를 열어 옅은 은색의 주먹만한 돌멩이를 보이고는 뜻밖에도 두 개의 함을 한립에게 건네주었다.

    “은심석? 잠시만요! 그건 저희가 사겠습니다.”

    가만히 서있던 여인이 은심석이란 이야기에 반색했고 이에 청년이 바로 반응하며 비단함을 낚아채려했다. 푸른 기운이 돌멩이가 담긴 비단함으로 몰려들었다.

    한립도 은심석이란 이름을 듣고 눈썹을 꿈틀했지만 청년이 비단함을 가로채려 하자 일순 얼굴이 굳었다.

    투툭!

    그가 한 팔을 들어 올리자 어깨가 폭발적으로 부풀었고 두 개의 비단함을 힘껏 쥐었다. 그런데도 푸른 기운은 물러나지 않고 한립에게 달려들어 물건을 빼앗으려 했다.

    한립이 냉소하며 팔을 움직인 순간 몸이 뒤로 물러나며 금빛의 손바닥이 푸른 기운을 가격했다.

    부북!

    푸른 기운은 금빛 손바닥에 종잇장처럼 찢겨나가 흩어졌다.

    “고계 연체사!”

    청년은 수결을 맺으려다 한립의 움직임을 보고 머뭇거렸다.

    “진 사형 그러지 마세요! 좋게 이야기로 풀어요. 주인장, 아직 은심석을 판매하지 않은 것 같은데 원래 가격의 두 배를 낼 테니 제게 주시지요.”

    려 씨 여인이 청년을 불러세우고 영악하게 노인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그건 안 됩니다. 려 선자께서 황량 선배의 후인인 것은 알지만 궁우각에도 규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곳은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물건을 파는 경매장이 아니라 먼저 온 분이 제 가격에 물건을 사가는 곳입니다. 이쪽 손님이 양보하겠다고 하셔야 은심석을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그런 규칙이 정말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노인은 뜻밖에도 제안을 거절했다.

    머뭇거리던 여인이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한립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한립은 고개를 숙이고 또 다른 비단함을 열어보며 먼지투성이인 네모난 광석을 보고 있었다.

    분명 표면은 옥처럼 매끄러운데 색깔이 암담해서 기묘한 느낌을 주는 재료였다.

    “제 사부님이 규룡존자 되십니다. 이 은심석은 려 사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니 제가 대신해서 두 배를 지불하죠! 물건을 양보하세요.”

    전 씨 청년이 한립을 지켜보다 나섰다. 예의바른 듯 보였지만 어투가 거만하기 그지없었다.

    “싫습니다.”

    회색 돌덩이를 살펴보던 한립은 손가락으로 그것을 만져보다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답했다.

    “뭐라고요?”

    “이 물건이 당신 일행에게 중요하다면 내게도 꼭 필요한 물건일지 모르지 않습니까?”

    한립은 그제야 청년을 보며 평온히 말했다.

    “그래서 두 배로 가격을 쳐준다지 않소!”

    청년이 서늘해진 시선으로 은근히 한립을 위협했다. 이에 려 씨 여인이 미간을 좁혔지만 더는 그를 말리지 않았다.

    “영석이 그다지 부족하지 않아서요. 그쪽이 이대로 물러난다면 그 대가로 내가 영석을 얼마간 줄 수도 있습니다.”

    한립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그들이 든든한 배경을 지니고 있다 해도 한립은 어차피 딸린 가솔도 없었고 이대로 낙일지묘에 들어가면 고비를 넘기기 전까지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겨우 결단기 수사들이 법력을 회복한 후 그에게 무슨 위협이 되겠는가? 그들의 든든한 배경을 이기지 못하겠으면 달아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상대의 체면을 봐주지 않는 한립의 언사에 전흥의 안색은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의 노인조차 속으로는 놀라는 중이었다.

    ‘어떤 신분이기에 규룡존자와 황량영군의 직전제자들 앞에서 이리 당당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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