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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53화 (510/2,000)

753화. 천원무구(天元武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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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음이 터져 나오고 잿빛 모래는 최상급 법기에 공격당한 것처럼 그를 중심으로 폭발했다.

모래 먼지가 버섯 모양으로 피어오른 후 깊이가 서너 장은 될 법한 원형의 구덩이가 나타났다.

그 구멍 한 가운데에 저물대 한 개와 영수대 세 개가 놓여 있었다. 한립은 일단 저물대 입구가 멀쩡한 것을 보고 안심했고 시선을 영수대로 돌렸다.

그런데 영수대 중 하나가 텅텅 비어 있었다. 바로 육익상공이 들어 있던 영수대였다. 나머지 두 개는 입구가 조금 벌어져 있었지만 연계된 의식으로 보아 서금충과 제혼이 아직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한립은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마지막 근심까지 털어버렸다. 그리고 주머니의 입구를 다시 꽉 조여 품에 넣었다. 주머니들은 하나 같이 작아서 겉으로는 크게 티가 나지 않았다.

다만 육익상공이 남겨 놓은 거대한 허물이 골칫거리였다.

미간을 좁힌 그는 연달아 주먹질을 해서 구멍을 넓힌 다음 구덩이 속으로 허물을 밀어 넣고 모래로 덮어버렸다. 그는 주위를 돌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고 만족해했다.

고개를 들어 검은 구름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한립의 얼굴에 매서운 눈빛이 스쳤다. 그러나 그는 곧 몸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번에 그의 목적지는 천만 리 밖의 꽤 유명한 요수들의 서식지였다. 그곳은 천원경과 어떤 요지(妖地)의 경계에 위치해서 인간들과 요수들이 그중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광활한 땅의 가장 큰 부분은 아무도 통제하지 않아 중립지대 같은 역할을 했다.

그곳에는 만황시대 상고 요수부터 수많은 기이한 존재들이 있어 중심부로 갈수록 더욱 위험해졌다. 듣기로는 체구가 작은 영족(靈族)부터 키가 수십 장에 달하는 상고거인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고 진룡(眞龍) 등 신화적 존재의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그저 소문이라 대다수 사람들이 웃어넘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곳에 화신기급 요족 수사나 인간 수사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인간과 요족 고위층은 중립지대의 상황을 걱정했고 불문율처럼 이곳에 드나들 수 있는 경지를 화신기급 이하로 정했다. 더 높은 경지의 수사들이 나타나 전투를 벌인다면 인족과 요족간의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신기급 이상의 수사들은 천지원기를 교란하고 강을 거꾸로 흐르게 만들며 거대한 산을 평지로 만들 능력이 있었다. 삼황이나 칠요왕 등의 존재는 연허기를 넘어서 합체기(合體期)를 대성한 자들이었다.

이렇게 위험한 곳에 드나드는 사람이 적어야 옳았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은 구역이라 영맥과 영약이 풍부했고, 이곳 특유의 영초 중에서는 삼황급의 존재도 관심을 가질만한 것들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대량의 수사와 연체사들이 이곳으로 몰려드는 것은 당연했다. 좋은 물건을 구해 영석벌이를 하려는 자들도 있었고, 아예 이곳에서 살육을 하며 수련의 경지를 넘어서려는 자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요수의 난과 비슷한 면이 있는 곳이었다. 물론 이곳에 올만한 수사나 연체사들은 연기기 수사나 저계 연체사가 아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립은 몇 년 간 떠돌며 걸은 끝에 겨우 이곳에 도착했다.

“낙일지묘(落日之墓)!”

이것이 인족과 요족이 이 변경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아주 먼 옛날에는 영계의 하늘에 일곱 개의 태양이 아니라 아홉 개가 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족과 요족이 막 영계에 도착했을 때 하필 진령들의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수백 명의 진선계 선인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영계에서 맞붙은 사건이었다.

그 결과 그 중 십중팔구는 변고를 당해 죽었고 수많은 산과 바다의 지형이 달라지고 심지어 하늘에 떠 있던 태양 두 개가 훼손되었다.

듣기로 이 변경 지대는 태양 중 하나가 떨어진 곳으로 움푹하게 파여 저지대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거대한 습지가 조성된 이곳은 고계 수사들이 법보를 이용해 전력으로 날아가도 끝에서 끝까지 1년 넘게 걸릴 만한 규모였다.

산맥이 수없이 많았고 천만 리 이상의 거대한 호수도 수십 개가 넘었다.

물론 숲지대와 평원 등 다른 지역도 있었다. 그래서 천만 명이 넘는 수사나 연체사들이 낙일지묘 안에 들어가 활동해도 북적이지 않았다.

이렇게 넓다 보니 주변에 위치한 성도 한두 곳이 아니었는데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바로 초대형 성인 낙일성(落曰城)이었다.

이 성은 낙일지묘와 아주 가까이 있어 드나드는 중, 고계 수사의 수가 천원경 내에서 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다.

게다가 수사들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중, 고계 연체사들이 드나들기도 했다.

연체사들은 축기기 혹은 결단기 수사에 뒤지지 않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 수도 많아 수사들의 10배 이상은 되었다.

최정상급 연체사의 수가 드물고 이곳을 화신기 수사가 통제하지 않았다면 이곳을 수사들의 성으로 부르지 못했을 것이다.

우스운 일은 낙일지묘 끝의 요족 지역 내에도 똑같이 요족 수사들이 관리하는 낙일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소문으로는 요족의 낙일성은 인간들의 낙일성보다 훨씬 대단하다고 했다.

중, 고계 요족 수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신통이 대단한 인족 수사들도 멀리서 살펴보고는 돌아와 자랑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한립은 무슨 인족이나 요족들의 성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지금 낙일성의 거리를 걸으며 옆으로 늘어선 점포들을 보고 의아해했다.

가게에 앉아 있는 이들은 연기기 수사들 아니면 저계 연체사들이었다. 늘어놓은 물건은 요수의 재료부터 영구까지 다양했지만 한 곳도 범인이 주인인 곳은 없었다.

막 낙일성 성문을 지나 연달아 몇 개의 거리를 돌아보았지만 전부 비슷했다. 이런 대규모 성이라면 어찌 되었든 수사와 연체사 뿐만 아니라 범인들도 많기 마련이다.

그런데 길을 오가는 범인들은 대다수가 청년이나 장년층이었고 다들 아주 바빠 보였는데 대부분 점포의 수도자나 연체사들의 일을 거드는 듯했다.

한립이 막 어느 골목으로 접어들었을 때 침을 튀기며 말을 늘어놓고 있는 마른 사내를 발견했다.

그는 연기기 수사로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이들은 범인들이었다. 그들은 다들 우거지상을 하고는 수도자의 수다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다들 잘 모르는 모양인데! 그놈 그 요아수(獠牙獸)가 막 내 머리 위로 날아드는데, 선사인 내가 그냥 한 손으로 흑운검을 팍! 꺼내서 그 놈의 발톱을 좌악 잘라낸 거야. 저계 법기라도 위력이 그냥……! 누, 누구시오?”

한립이 한 손을 마른 사내의 어깨에 올리자 그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나이가 어려보이는 청년이 미소 띤 눈길로 마른 사내를 보고 있었다.

마른 사내는 상대를 훈계하려다가 무심코 한립의 손에서 노란빛으로 반짝이는 반지를 보고는 안색이 달라져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이고, 저는 전흥이라 합니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영구 반지를 끼고 있는 연체사라면 중계 이상의 실력자일 가능성이 높았고, 연기기 수사가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그건 아니고.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낙일성에 대해 자세히 알 것 같아서 말입니다. 가능하다면 며칠간 성 안내를 맡기고 싶군요.”

한립은 차분히 설명했다.

“알고 보니 이곳에 처음 오신 분이군요. 저를 찾아오신 것은 아주 잘 하신 일입니다. 제가 다른 것은 몰라도 낙일성에 관한 것이라면 제 손바닥 보듯 훤하거든요. 그래서 얼마에 저를 고용할 생각이신지요?”

“하루에 영석 10개로 하지요.”

“에이, 그건 너무 적은데 조금 더 쓰시지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수도자인데……. 그 정도 영석은 밖에 나가 영초 몇 개만 뽑아 와도 벌 수 있습니다.”

마른 사내가 눈을 굴리며 한립의 복색을 살피더니 웃음을 흘렸다.

“영석 10개도 많습니다. 영초를 찾는다고 성을 나섰다가 요수라도 만나면 그 날로 끝일 텐데요? 하루에 영석 12개, 더는 안 됩니다.”

한립은 고용 대가 가지고 실랑이 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상대가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하지 않게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다들 이야기 하고 있게. 그럼 난 바빠서 먼저 가보겠네.”

마른 사내는 한립이 조금 불쾌한 기색을 보이자 서둘러 제안을 수락하고 주변의 범인들에게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범인들은 이제 살았다는 듯 재빨리 흩어졌다.

“우리 대형께서는 어디를 먼저 가 보시렵니까?”

마른 사내가 의욕적으로 물으며 속으로 한립의 실력을 가늠했다. 연체사들은 수사와 달리 몸이 단단해지는 것이라 의식으로는 한 번에 수행을 알아내기 어려웠다.

“일단 영구 재료를 파는 가게들을 둘러보면서 낙일성 상황을 설명해 주면 됩니다.”

한립이 먼저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러죠! 낙일성은 대략 여덟 구역으로 나뉘는데, 그 중 세 곳이 보통 사람들이 거주하는 구역입니다. 나머지 다섯 구역은 우리 같은 수도자나 연체사들이 머물며 장사를 하죠. 하지만 이 다섯 구역도 차이는 있습니다. 그 중 네 곳은 한 형이 지금 있는 이곳처럼 법기나 단약 등을 자유롭게 살 수 있지만 한 곳은 반드시 1 인당 영석 1개를 내야 들어갈 수 있거든요. 이 지역은 낙일성 중심부에 위치해서 품질 좋은 영구나 최상급 보물 등을 살 수 있고 천원경의 거상들이 전부 몰려들어 심지어 영보도 판매한답니다.”

“영보요? 그건 그다지 관심이 없으니 다른 곳에 대해 이야기 해보시죠.”

“하긴 한 형은 연체사이니 영보가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거상들은 최상급 영구들도 적잖이 취급을 하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한 형께서 흥미를 가질 만한 소식을 들었는데……. 경매상 중 하나가 예전에 성황께서 친히 사용했던 천원무구(天元武具) 한 벌을 경매에 내놓는답니다. 다섯 개의 영구로 이뤄진 천원무구는 각각이 최상급 중에서도 최상급이라 수사들의 법보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그 다섯 개를 딱 합쳐 놓으면 얼마나 어마어마하겠습니까? 듣자니 연체사의 실력에 따라 완전히 다른 위력을 내 천원성황께서 지니고 계실 때는 그것으로 유명한 강적들을 여럿 죽이셨죠. 이 소식이 퍼지니 상당수의 고계 연체사들이 경매를 대비해 성을 나서 영석을 모은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마른 사내가 번뜩 떠오른 이야기를 쏟아내자 한립이 걸음을 멈추었다.

“천원무구가 그렇게 신묘합니까?”

“당연하지요! 경매상에서 공개적으로 알린 정보니까요.”

마른 사내가 가슴을 두드리며 호언장담했다.

“경매는 언제 열립니까?”

“아직 정확한 일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길어야 서너 달 내로 열리지 않겠습니까? 경매상들도 고계 연체사들을 무작정 기다리게 하지는 않을 테고요.”

마른 사내는 한립의 물음에 흠칫 놀라면서 답했다. 눈앞의 청년이 정말 고계 연체사라면 오늘 운수대통이었다. 어려보이기는 했지만 젊은 용모를 유지하는 단약을 먹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이후 한립은 천원무구에 대해 몇 마디 더 묻고는 더는 경매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낙일성의 다른 일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했다.

마른 사내는 상세히 답을 했고 한립을 데리고 몇 개의 거리를 지나 전문적으로 영구 재료를 매매하는 거리에 도착했다.

낙일성 중심부에서 최상급 보물을 판다고 했지만 한립은 당장 가볼 마음은 없었다. 영구 재료가 귀해도 법보나 고보 재료에 비하면 평범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히려 고급 물품을 취급하는 곳에서는 영구 재료를 구하기 어려웠다.

‘물론 완성된 최상급 영구라면 예외겠지만.’

한립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번 여정의 목적은 낙일지묘에서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전투를 벌이며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목숨을 걸 생각은 없었다. 낙일지묘에 들어가기 전에 만족스런 최상급 영구를 두 개 정도 만들어 대비할 생각이었다.

천원무구가 괜찮을 듯도 싶었지만 낙찰을 받기 쉽지 않을 것이다. 지닌 영석이 많아 가능성은 있겠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너무 많이 끌 것이다.

잠시 이해득실을 따져본 그는 그냥 직접 쓸 만한 영구를 제련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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