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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50화 (507/2,000)

750화. 전승주(傳承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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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장포 거한은 산랑수를 타고 주둔지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수하들은 이상하게 여겼지만 따지지 않고 그 뒤를 따랐다.

산랑수가 거의 백여 리를 내달린 끝에 작은 둔덕이 나타났고 보라색 장포 거한이 눈을 빛내며 그 위로 올라갔다. 알 수 없는 행동에 수사들은 그 뒤를 따르다 둔덕 위에서 우뚝 멈추었다.

그런데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갑자기 산랑수 발밑의 흙더미가 갈라지며 탈 것들과 그 위의 연체사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삼켜 버린 것이다.

다른 이들이 깜짝 놀라 다가가 구해주려는데 푸푹! 하며 뼈로 만든 창이 땅 속에서 솟아올라 다른 두 명을 꿰뚫어 죽였다.

마지막 남은 한 명은 대경실색해 신랑수의 방향을 틀어 달아나려는데 갑자기 구렁이 세 마리가 나타나 그의 몸을 갈가리 물어뜯었다.

이어 땅이 흔들거리며 뱀 요수 두 마리와 거대 사충수가 튀어나왔다. 보라색 장포 거한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것을 확인하더니 분부를 내렸다.

“깔끔히 처리해 흔적을 남기지 말거라.”

그는 발을 굴러 여자아이를 안은 채 거대 늑대에서 내리더니 서늘하게 산랑수를 보며 검을 휘둘렀다. 늑대는 반항조차 못하고 절명했고 머리가 수박처럼 쪼개져 땅에 쓰러 졌다.

“멍청한 놈! 너 때문에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뻔 했다.”

거한이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산랑수가 죽어 나가고 피가 튀는데도 거한의 품에 안긴 아이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한 듯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요수들이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며 기병들의 시체와 남은 산랑수까지 깨끗하게 먹어치우니 정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깨끗하게 정리 되었다.

이에 조 성주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다 한 손을 들어 검은 기운을 뭉쳐 서너 척 길이의 짧은 칼날을 허공에 던졌다.

그러자 검은 단창은 어딘가를 향해 번뜩이며 날아갔다.

쾅!

금빛 찬란한 주먹 하나가 허공에 나타나 검은 단창 공격을 흩어버렸고 금빛이 사라지자 청년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바로 한립이었다.

어떤 수법을 쓴 것인지 질주하는 산랑수들을 백 리 밖에서 조용히 쫓으며 거한에게 들키지 않고 따라온 것이다.

“죽여라!”

보라색 장포 거한이 눈을 가늘게 뜨고 싸늘하게 명하자, 뱀 요수들과 거대 사충수가 동시에 그를 덮치려 덤벼들었다.

그 중 한 뱀 요수는 한립이 성벽에서 자신을 공격했던 자임을 알아보고는 더 사납게 울부짖으며 뼈창 두 개를 힘껏 던졌다.

또한 머리가 셋 달린 뱀 요수는 머리를 교차하며 몸통 박치기에 들어갔다.

이에 멈추지 않고 거대 사충수는 입을 벌려 괴이한 녹색 액체를 분출하려 했다.

“안 돼요!”

여자아이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 이전까지 무덤덤하던 표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곁에 선 보라색 장포 거한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한꺼번에 쏟아진 공격에도 한립은 냉소하며 두 주먹으로 차례로 뼈창들을 쳐냈다.

퍽! 퍽!

뼈창들이 금빛 주먹에 맞아 뼛가루로 변해 흩어졌다. 그리고 녹색 액체가 쏟아지기 전 그의 어깨가 흐릿해지며 잔영을 남기고 몇 장 뒤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그때 녹색 액체가 한립이 있던 자리에 힘없이 쏟아져 내렸다.

대량의 거품이 부글거리며 악취를 발산했는데 강력한 부식작용을 하는 듯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머리 셋 달린 검은 뱀이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콰직.

한립은 마치 피하지 못한 것처럼 두 어깨와 목을 물리고 말았다. 이에 또 다른 뱀 요수와 거대 사충수도 그것을 보고 기뻐하며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한립은 코웃음을 치더니 두 손으로 목을 물은 뱀 머리를 붙들었다. 그러자 피가 튀기며 뱀 머리 하나가 그대로 비틀려 뜯겨 나갔다.

나머지 머리 두 개가 사정없이 그의 어깨를 씹어댔지만 한립이 두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금빛이 번뜩이며 머리 두 개가 데구루루 떨어져 내렸다.

금강결 4성을 극성으로 발현하자 손날이 마치 날카로운 무기처럼 변한 것이다.

이어서 한립은 신형이 괴이하게 꺾여 여러 개의 환영을 방출해 날아드는 두 요수를 맞이했다. 요수의 괴성이 괴이하게 울려 퍼지며 핏물이 빗방울처럼 쏟아져 내렸다.

“주제도 모르고 어딜.”

한립의 차분한 목소리가 핏방울 속에서 들리더니 그의 신형이 열댓 장 밖에서 나타났다. 그때 조각난 요수의 시체들이 후드득 떨어져 땅을 피로 물들였다.

4성의 금강결로 괴력을 발휘해 요수 세 마리를 참살한 것이다.

“너는 누구냐? 겨우 시체의 몸을 빌려 사람들을 속이다니 담도 크구나!”

한립이 천천히 둔덕 위에 선 거한을 보며 서늘하게 외치자 전신에서 살기(煞氣)가 들끓어 회백색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명왕결로 연화시켰던 살기를 무의식중에 방출한 것이다.

평범한 상대였다면 자욱한 살기에 눌려 본래의 신통을 다 발휘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보라색 장포 거한은 세 요수들이 참살 당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다가 농염한 살기를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금강결을 4성까지 익혔다면 이곳까지 달려온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빛과 주위 환경을 이용해 법력 없이 은신하는 것도 범인치고 대단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네 몸의 살기다. 평범한 연체사가 어떻게 이렇게 진한 살기를 지니고 있을 수 있지. 너야 말로 누구냐?”

거한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한립은 상대의 물음에 답하기는커녕 자신의 신분을 캐내려 들자 얼굴이 가라앉았다.

“꼭두각시 따위와 떠들고 있을 생각이 없다. 스스로 물러나든 내 손에 죽든 결정해라.”

한립이 온몸을 금빛으로 번뜩이며 성큼성큼 거한을 향해 걸어갔다.

“꼭두각시와 이야기를 나누기 싫다면 본 궁은 어떠한가?”

둔덕 꼭대기 상공에 공간 파동이 일어나며 검은 화염이 괴이하게 나타나 응결하더니 싸늘한 얼굴의 궁장 여인으로 변했다.

그녀는 곱지 않은 눈길로 한립을 훑으며 그가 평범한 범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손을 들어 천천히 그를 조준하려 했다.

한립은 의식으로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했지만 이미 천지원기와 교류하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위기를 느꼈다.

그래서 궁장 여인이 나타난 순간 표정이 미미하게 변해 우뚝 멈춰선 것이다.

특히 여인이 손을 들어올리기 시작 할 때는 온몸의 털이 다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수도계에 들어온 이후 이렇게 위기감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한립은 얼른 소매를 털어 둥근 물체 두 개를 손에 쥐고 여인을 노려보며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검은색과 붉은색 구슬이 신비한 기운을 뿜고 있었다.

“멸선주! 그걸 두 개씩이나 지니고 있다니, 정녕 정체가 무엇이냐!”

궁장 여인이 구슬을 보고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안색이 달라져 팔찌에서 불러일으키던 검은 화염을 순간 멈추었다. 상대가 멸선주를 꺼리는 것을 보자 한립은 내심 한시름 놓았다.

“수사께서 이 물건을 알아보시다니 다행입니다.”

한립은 차분히 미소 지었지만 사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렇게 수행이 높은 자가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고 사실 멸선주도 상대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체나 조종해 사람들을 속이는 요수의 분혼이라 여겼건만! 화신기급 요족 수사라니.’

인간들이 거주하는 삼경에 고계 요족 수사가 나타난 것은 기함할 일이었다. 아무리 멸선주를 이용해 상대를 위협한다지만 조금만 틈을 보이면 순식간에 죽어나갈 수 있었다.

화신기 수사의 무서움은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궁장 여인은 시시각각 표정이 달라졌지만 서늘한 시선으로 한립을 노려보며 살의를 숨기지 않았다.

“겨우 멸선주로 본 궁을 죽일 수 있을 듯 싶으냐?”

“불가능하겠지요. 허나 멸선주 두 알로 수사에게 중상을 입히는 것은 어느 정도 자신 있습니다.”

“멸선주가 발동되면 겨우 연체사 따위는 달아날 수도 없을 텐데?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쓸데없는 걱정이십니다. 이래저래 죽은 목숨이라면 못할 이유도 없지요.”

“그렇다고 해도, 본 궁이 가벼운 부상이 두려워 너를 살려둘 것 같으냐?”

유유자적한 한립의 태도에 여인이 열이 받아 도리어 헛웃음을 지었다.

“그럴 리가요! 수사께서는 인간 구역에 들어와 계시니 부상을 당하면 요기를 숨기기 어려울 것 아닙니까. 잠시 동안은 숨어 다닐 수 있겠지만 그 몸으로 고계 수사들의 추살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제 기억대로라면 화형기 이상의 요족 수사가 인간들의 구역에 함부로 침범하면 협정을 어긴 것으로 보아 아무나 죽여도 된다고 하던데요?”

한립이 마른 웃음을 흘리며 상대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범인 주제에 본 궁을 협박하다니 담이 제법 크구나.”

여인의 목소리가 순간 괴이하게 변하며 동공이 보랏빛으로 번뜩이고 몽롱해졌다. 사람의 마음을 끄는 괴이한 마력이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한립은 상대를 주시하고 있었기에 눈길을 피하지 못하고 눈이 풀리며 멍한 표정을 드러냈다.

이에 궁장 여인이 기뻐하며 막 어깨를 움직이려는데 한립의 목석같던 얼굴에 비웃음이 어리며 눈동자가 남색으로 밝게 빛났다,

여인은 눈앞이 어지럽고 의식에 타격을 받아 비틀거리다 하마타면 허공에서 추락할 뻔했다.

“미혼대법! 네가 미혼대법을 쓸 줄 안다고?”

여인도 의식이 강대한지 한립의 명청령안에 미혼술이 반서를 당하고도 바로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이제 한립을 보는 그녀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여인의 놀란 얼굴을 보며 한립은 의미심장하게 웃었지만 이 틈을 노려 공격하지는 않았다.

궁장 여인은 한립을 보며 어찌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아무리 오만한 성격의 여인이라지만 상대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평범한 연체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이야? 본 궁과 여기서 계속 대치하겠다는 것이냐?”

다시 멸선주에 눈이 간 여인이 이 쪽을 지켜보는 여자 아이를 힐끗 보고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이를 두고 수사께서는 떠나시면 됩니다.”

“그건 안 된다. 대아는 우리 흑풍족의 직계혈통이니 당연히 본족이 머무는 곳으로 돌아가야 해.”

확실한 거절이었다. 상대의 결연한 태도에 한립의 안색이 어두워졌고 입을 열지 않았다. 여인도 협상의 여지가 없었기에 말이 없었고 이렇게 둘의 대치가 이어졌다.

바람이 불어 둔덕의 모래가 날리자 사사삭 하는 소리가 적막하게 울려 퍼졌다.

“아저씨, 저 때문에 소 고모와 싸우지 마세요. 저는 고모를 따라 가겠어요.”

보라색 장포 거한의 품에 안겨 있던 여자아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그 말을 들은 한립은 미간을 좁혔으나 궁장 여인은 놀라지 않은 듯 무표정했다.

“대아야, 잘 생각해야 한다. 그녀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더냐?”

조금 놀란 한립은 냉담히 물었다.

“알아요. 소 고모가 술법을 펼쳐 모든 것을 알려주었어요.”

“술법? 네게 무슨 짓을 한 것이야?”

그간 경험한 바가 많았기에 한립은 바로 의심을 품었다.

“무슨 짓이라니. 본 궁은 우리 흑풍족의 전승주(傳承珠)를 아이의 몸에 주입해 관련된 일들을 알게 했을 뿐이다. 당장 전승주를 전부 연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 반요의 신분이라는 것은 받아 들였지.”

여인이 어깨에 드리운 검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에 한립도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정확히 전승주라는 것의 효과는 모르겠지만 아마 집안 어른의 경험, 비술 심지어 혼백의 일부까지 전승하게 해주는 일종의 보물일 것이다. 이런 물건이 인계에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전승 조건이 너무 까다롭고 사소한 실수로도 전승자가 죽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제련한 내용의 10분의 1이 나 2정도만 무사히 전해질 뿐 나머지는 유실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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