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5화. 요수의 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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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성 안에 늑대의 포효 소리와 함께 병사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괴수 무리가 두 번째 공성전을 시작한 것이다.
이번 일전은 어제보다 더욱 격렬했는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며 대기하고 있던 예비 병사들까지 수시로 불려나갔다.
겨우 하루 만에 한립이 위치한 광장 쪽 병사들 서너 무리가 성벽으로 지원나간 것이다. 밤이 찾아오자 역시 괴수 무리는 후퇴했다.
한립이 건물 밖으로 나섰을 때 광장으로 병사들이 돌아오고 있었는데 그 많던 병사 중에 살아 돌아온 것은 겨우 2, 3할 뿐이었다. 그나마도 대부분이 피범벅에 자질구레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흠.’
한립이 출전했던 어제에 비하면 참혹한 결과였다. 한립 뿐만 아니라 광장 인근에 있던 다른 이들도 몰려나와 오늘의 전황을 물어봤다.
알고 보니 오늘 공성전에는 무리 중에 살쾡이처럼 작은 늑대들이 나타나 제비처럼 날렵한 몸놀림으로 전신의 털을 고슴도치처럼 세워 뿌려댔다는 것이다.
그 딱딱한 털들에 극독이 묻어 있어 맞는 순간 전투력을 상실하고 바로 응급 처치를 받지 못하면 독이 퍼져 죽어 나갔다.
이런 작은 늑대들은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어 새로운 종류의 변이 늑대 괴수로 추정되었는데 이런 일이 드물기는 해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 했다.
다행인 점은 이런 신종 변이 요수들은 빠른 기간 내에 도태되어 사라졌기에 늑대 무리 중에서 변이 요수들은 한두 종류에 그쳤다.
오늘 예상치 못한 작은 늑대의 출현에 성을 지키던 병사들 태반이 죽어나갔고, 영대가 수차례 출격해 지원하지 않았다면 위험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교대한 병사들의 이야기를 들은 광장의 사람들은 기분이 가라앉았다. 이번 요수의 난이 이전에 듣던 것과 달리 심상치 않다고 느끼고 동요하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한립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성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묵고 있는 건물로 돌아갔다.
안원성이 이번 요수의 난에 함락당한다고 해도 그의 실력과 멸선주 두 알이면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성안의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도 지금은 그럴 힘이 없었다.
‘괴수들의 기세가 대단하니 첫날 싸웠던 병사들이 이틀을 쉬지는 못 하겠구나.’
한립의 예상은 맞아떨어졌고 사흘 째 아침 태양이 하나 떠오르자마자 누군가 문밖에서 큰소리로 천동상호 수비병들을 부르며 집합하라 외쳤다.
광장에는 천동상호 수비병 외에도 수백 명에 달하는 용맹스런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절반 이상이 연체사로 손에 영계나 영탁 등 영구를 구비하고 있었고 산랑수와 같은 것을 탄 기병들도 한쪽에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아무래도 최정예들을 모아놓은 듯했다.
한립은 일순 미간을 좁혔으나 차분히 무리 속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광장에 거의 천여 명이 모였고 그제야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바로 은색 갑옷을 걸친 중년인이었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몇 마디를 하고는 뜻밖에도 성벽 다른 쪽 방어선에 문제가 생겨 그들이 급히 가서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그 소식에 광장에 모인 이들은 화들짝 놀랐다.
이틀간 청랑수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다른 쪽의 상황은 더욱 나쁘단 소리 아닌가!
그나마 이곳에 모인 이들은 다들 전투 경험이 있는 자들이라 잠시 웅성거리다 짐승이 끄는 마차에 몸을 싣고 안원성 어딘가로 이동했다.
길가에는 순찰을 도는 기병을 제외하고는 행인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괴수 마차들이 내달린 지 몇 시진 만에 그들은 안원성의 또 다른 성벽에 내려섰다.
그곳에는 이미 열댓 명의 군관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한립 등이 오자마자 즉시 달려들어 그들을 나눠 바로 각자가 맡은 성루로 데리고 올라갔다.
천동상호 사람들도 일고여덟 명이 부대장인 한립을 따라가고, 장규와 두소 등 나머지 인원들은 다른 성루 쪽으로 사라졌다.
한립을 데려간 이는 수염이 잔뜩 난 털보 군관으로 초 군관 등 이전까지 보았던 저계 군관과 지위가 같아 보였다.
그는 연체사들에게 특별히 더 상냥했고 특히 한립이 이끄는 무리에는 영구를 지닌 이가 셋이나 되어 더욱 예의를 갖췄다.
그리고 한립의 실력은 함께 온 천동상호 사람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몰랐기에 특별히 털보 군관의 이목을 끌지는 않았다.
한립이 자화자찬하는 인물도 아니었기에 그저 말없이 무리를 따라 그들이 맡은 성벽 위로 올라갔는데 눈앞의 광경을 보고는 모두 안색이 급변했다.
성벽 위에서 몸을 숨길 수 있는 낮은 담이며 곳곳에 세워진 다락집 모양의 성루(城樓) 등이 부서져 멀쩡한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더욱 이상한 일은 본래 회백색이었던 바닥이 거무죽죽하게 변해 시체 썩는 냄새로 가득했다.
“뱀 독입니다.”
영구 팔찌를 찬 거한 하나가 검은 땅을 자세히 살피더니 낮게 중얼거렸다.
“맞습니다. 이것 때문에 제 수하들이 4, 5백 명은 죽어 나갔지요.”
그 말을 들은 털보 거한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적망수는 독이 없을 텐데요?”
역시 비슷한 영구를 지닌 노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이 형의 말씀대로 일반적인 적망수는 확실히 독이 없습니다. 그런데 변이 뱀 괴수들은 날개가 달려 짧게나마 날아오르는데다 검은 독 안개를 뿜어내더군요. 독 안개가 병사들의 피부에 닿으면 바로 살이 문드러졌고 성벽에 닿자 돌에 스며들어 독무를 뿜었습니다. 맑은 물을 몇 번이나 부어 지워내지 않았다면 독 안개가 가득해 이 위에 오래 서 있을 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거 참 일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변이괴수들은 본래 상대하기도 어려운데 독무라니요.”
지원을 나온 이들 중 하나가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적망수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니 상부에서 여러분을 이곳으로 보낸 것 아니겠습니까. 듣기로 청랑수 쪽도 새로운 변이괴수가 나타났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상황이 심각한데 어째서 아직까지 수도자들이 나서지 않는 것입니까? 대량 살상용 법술을 사용하면 괴수들이 난리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텐데요.”
“다들 아직까지 표금수가 나서지 않았다는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분들은 반드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조류형 요수를 위해 힘을 비축해야 합니다. 만일 법력이 고갈된 순간 표금수들이 나타나면 안원성은 정말 끝입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털보 군관이 탄식하듯 해명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침묵했다. 다들 이번에 안원성이 요수의 난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다들 너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독을 뿜고 날아다니는 변이 괴수들은 일단 독을 뿜으면 한동안 휴식을 취해야하거든요. 그러니 신종 변이 괴수들은 이제 거의 공격력을 상실했다는 뜻이지요. 상부에서 여러분을 이곳으로 보낸 것도 거대 변이 괴수의 처리를 부탁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몸집이 거대한 변이 적망수들은 일반 병사들이 상처 입히기 어려우니까요.
성벽이 이렇게까지 망가진 것도 전부 거대 적망수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것들만 막아 주시면 다른 적망수들은 저와 병사들이 책임지고 막겠습니다.”
털보 군관은 모인 이들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힘차게 소리쳤다.
“그야 대인께서 분부하지 않으셔도 저희도 맡은 바 책임은 다할 것입니다. 허나…….”
영구 팔찌를 찬 거한이 무어라 이야기 하려는데 갑자기 성벽 위 하늘에서 날짐승의 기이한 괴성이 들려와 모두의 기혈을 들끓게 했다. 거한도 말을 멈추고 안색이 급변해 난색을 표했다.
“표금수! 표금수가 나타났다.”
연체사 중 하나가 허공을 가리키며 손에 들고 있는 병기에 힘을 주었다.
그때 한립은 홀로 성벽 한 곳에 서서 저계 영석 하나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유유자적한 얼굴이 날카로운 표금수의 괴성을 듣지 못한 사람 같았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수백 개의 검은 점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성벽 위의 사람들은 바로 호각을 불어 표금수가 나타났음을 알리고 지휘관들은 전투태세를 갖추고 때를 기다렸다.
그와 동시에 성 중심부의 높은 건물에서 백 개가 넘는 각양각색의 빛이 떠올라 검은 점이 나타난 성벽 쪽으로 날아올랐다. 바로 안원성 내부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도자들이었다.
대부분 축기기 수행으로 법기를 타고 나는 속도가 빨랐고 조류형 괴수들보다 먼저 성벽에 도착해 있었다.
가장 앞에 선 두 사람은 원반을 탄 대머리 거한과 며칠 전 보았던 금옥종 금포 사내였다.
그들은 둘 다 결단을 코앞에 둔 축기 후기의 경지로 수도자들 중 가장 수행이 높았다.
검은 점들은 성벽을 몇 리 앞두고 멈춰서 허공을 선회했다. 성벽에 선 사람들도 검은 점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전부 표범의 머리에 매의 몸뚱이를 한 요수들이었다.
요수들은 노란색과 하얀색이 섞인 날개를 펼치고 붉은 눈을 반짝이며 온 몸에 알록달록한 기운을 발산했기에 퍽 아름다워 보였다.
몇 척 크기에 우아한 체형을 지닌 표금수들은 그다지 두려워 보이지 않았지만 성벽 위의 수도자들은 하나같이 신중한 얼굴로 긴장감을 드러냈다.
멀리서 표금수들이 날카로운 괴성을 내지르자 아래쪽 땅이 진동하며 멀리서 먼지 구름이 몰려들었다.
그것은 새빨간 구렁이들로 땅에서 솟아올라 혀를 날름거리며 끝없이 밀려들었다. 방금 도착해 성벽 위에 선 연체사들은 식겁해 마른 침을 삼켰다.
‘오자마자 표금수와 적망수의 연합 공격이라니!’
그나마 가장 성가신 조류형 요수들을 수도자들이 막아주어 다행이지 안 그랬다면 그들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멀리 멈춰선 조류들 중 표금수 두 마리가 떨어져 나왔다.
하나는 몸집이 작아 온몸에 푸른 보호막을 둘러싸고 날갯짓을 할 때 마다 희미하게 천둥소리가 들렸다.
또 다른 하나는 몸집이 보통 표금수의 몇 배로 보라색 날개를 펄럭이는 순간 알 수 없는 음산한 기운을 풍겼다.
두 마리 표금수가 튀어나오자 아래쪽에 있던 적망수 무리가 요동치더니 세 마리의 구렁이들이 앞으로 나섰다.
한 마리는 열댓 장 길이로 사발만한 비늘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는데 머리에 한 쌍의 핏빛 산호 같은 괴이한 뿔이 달려 있어 붉은 교룡과 무척 닮아 보였다.
그리고 다른 한 마리는 일고여덟 장 길이에 온 몸이 새까맣고 삼각형 머리가 세 개나 달려 있어 한 눈에 보기에도 독사처럼 보였다.
가장 작은 것은 인간의 머리에 뱀의 몸을 하고 뻗어 나온 두 팔에는 뼈로 만든 창을 쥐고 있었다. 청라사막에서 한립을 공격했던 바로 그 뱀 요수였다.
이 세 마리의 뱀 괴수들은 가장 급이 높은 요수들인지 그들끼리 무어라 쉭쉭거리더니 다시 동족들 틈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이후 하늘 위의 표금수나 땅 위의 적망수 대군은 명령을 받은 것처럼 동시에 성벽을 향해 쇄도해 왔다.
표금수는 구렁이들보다 먼저 안원성 부근에 도착했고 괴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녹색 요기를 만들어 그 안으로 숨어들었다.
한 묘 정도의 공간에 요기의 안개가 가득 찼고, 성벽으로 달려드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요망한 것들, 죽어라!”
허공에 떠있는 수사들 중 대머리 거한이 소리치며 먼저 튀어나가자 나머지 수사들도 법기를 부리며 뒤따랐다. 그들은 녹색 안개와 접촉하기 전, 두 손을 펼쳐 부적을 날렸다.
퍼퍼펑! 펑!
폭음이 연달아 터지고 다양한 색의 뇌화가 허공을 뒤덮으며 녹색 안개에 작렬했다. 폭발이 계속될수록 녹색 안개가 적잖이 흩어졌다.
인간 수사들은 이 틈을 노려 각자 영기(靈器)들을 꺼내 들었다. 비도, 비검, 구슬, 지팡이, 손도끼 등 다양한 물건들이 빼곡하게 나타나 녹색 안개를 노리고 날아갔다.
이와 동시에 녹색 안개가 꿈틀거리더니 무수히 많은 요수의 깃털을 쏘아 보냈다.
녹색 빛줄기로 변한 깃털들이 하늘을 뒤덮었고 영기들과 교전하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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