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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44화 (501/2,000)

744화. 요수의 난 (2)

*

적망수 무리를 상대하는 성벽에서도 서로 죽고 죽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전해져왔다. 드디어 적망수 무리도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전투는 계속되었고 안원성은 농염한 피비린내로 자욱하게 뒤덮였다. 하늘에는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허공의 태양이 하나 둘 사라지고 등이 굽은 달들이 점점 많아져갔다.

하지만 늑대 괴수들은 단 일각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본능에 충실한 야수답게 더욱 광기에 젖어들었다.

그러자 한립이 호위하던 군관의 얼굴에도 점점 어둠이 드리웠고 겨우 반나절 만에 성벽을 지키던 병사들 중 3분의 1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또한 천동상호 수비병들도 스무 명이 넘게 전사했다.

바로 그때 청랑수 무리 후방에서 긴 울음 한 번, 짧은 울음 두 번으로 이뤄진 늑대의 신호소리가 들려오자 성벽 공격이 시작된 후 홀연히 사라졌던 변이괴수 늑대들이 드디어 성벽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거대 괴수들은 가볍게 대여섯 장 씩 뛰어올랐고, 일반 병사들의 활은 그것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변이괴수들은 바람처럼 성벽 위로 올라왔다.

크와앙!

괴수는 성벽 위의 병사들이 고민할 틈도 없이 괴이한 몸집으로 그들을 뛰어 넘어 날카로운 이빨을 번뜩이며 그들을 기습했다.

찰나의 순간 핏줄기가 마구 튀었고, 변이괴수의 공격을 받은 성벽 위는 사상자가 속출했다.

한립이 있는 성벽에서도 변이 괴수 몇 마리가 등장하자 삽시간에 열댓 명이 죽어나갔다.

그것을 본 군관은 즉시 천동상호 연체사들에게 싸울 것을 명하고 일반 병사들은 청랑수를 상대하며 전열을 유지할 것을 당부했다.

그 결과 장규를 포함한 열댓 명의 연체사들이 일시에 달려들어 상황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헛!”

“히익!”

그런데 돌연 인근 병사들의 놀란 비명과 함께 푸른 그림자 두 개가 번개처럼 성벽을 넘어 군관과 근접한 성벽 위로 뛰어들었다.

한 마리는 병사들을 향해 뛰어 들어 혼란을 야기했고, 다른 한 마리는 뜻밖에도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군관을 향해 뛰어 올랐다.

놀랍게도 그것들은 갑옷을 입은 사내가 지휘관이라는 알고 성동격서의 책략을 쓴 것이다.

“죽고 싶으냐!”

거한 두소가 고함을 지르고는 낭아봉을 휘둘렀다. 그러자 낭아봉에서 강한 바람 소리가 나며 거대 변이 괴수를 향해 날아들었다.

아무리 보통 청랑수에 비해 단단한 육체를 지녔다지만 이 거한의 공격에 당하면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변이늑대 괴수의 머리가 낭아봉에 으깨지려는 찰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늑대의 몸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번뜩이더니 돌연 몸을 틀면서 체구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

낭아봉은 늑대의 머리를 스쳐 허공을 갈랐고, 푸른 늑대는 비취색 눈을 번뜩이며 엄청난 속도로 거한을 지나쳐 지휘관을 향해 발톱을 드러냈다.

“늑대 요수였구나!”

군관은 청랑수의 괴이한 변화를 보고 소리를 높였고 어깨가 움찔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허리춤에 매달아 두었던 장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낀 반지 영구가 하얀 빛을 머금으며 그를 보호했다.

보통 청랑수 크기로 변한 늑대 요수가 저계 영구가 변한 검 그림자를 보며 비웃는 듯한 눈빛을 보내더니 허공에서 두 앞발을 휘둘러 발톱 모양의 푸른빛을 뿜어냈다.

쾅!

검 그림자는 늑대 발톱에서 뿜어져 나온 빛과 닿자마자 폭음을 내며 흩어졌고 푸른빛들로 이뤄진 늑대 발톱의 공격은 그대로 군관에게 향했다.

군관이 한 손으로 검을 높이 치켜들어 휘둘렀지만 이미 안색은 잿빛으로 변해있었다.

바로 그 순간, 군관 앞에 인영 하나가 흐릿하게 나타나 늑대 발톱에서 뿜어져 나온 빛의 그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어 누군가의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를 듣자마자 눈앞이 흐려지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 후, 인영의 한 팔이 움직이더니 금빛이 늑대 발톱 모양의 푸른빛과 충돌했다.

쿠콰쾅!

하늘을 울릴 법한 굉음이 터지고 늑대 발톱 모양의 푸른빛이 산산이 찢겨 무(無)로 돌아갔다.

군관은 대단히 기뻐하며 그제야 뚜렷해진 눈앞의 인영을 살피니, 자신의 호위를 맡은 한립이 서있었다.

한립은 금빛으로 빛나는 주먹을 천천히 소매 속으로 감추며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에 뜬 푸른 늑대 요수를 보았다.

늑대 요수는 놀란 눈빛으로 한립을 살피더니 등 뒤의 푸른 털들을 바짝 세우고 그를 두려워했다.

요수는 한립의 진정한 수행을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예민한 감각이 그를 위험한 인물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거한 두소도 낭아봉으로 허공을 가격하고 늑대 요수가 변신하자 화들짝 놀랐지만 서둘러 몸을 돌려 요수를 경계했다.

이렇게 되자 거한과 한립이 앞뒤에서 요수를 막은 꼴이 되었고 인근에 있던 다른 천동상호 연체사들이 서둘러 달려와 늑대 요수를 포위했다.

늑대 요수는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의미심장한 눈길로 한립을 한 번 보고는 그대로 푸른빛으로 변해 거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소가 놀라 낭아봉을 휘둘렀지만 늑대 요수는 거한을 넘어 성벽을 내려가 버렸다.

함께 공격을 가하던 변이 늑대 괴수들은 죽은 단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전부 그 늑대를 따라 퇴각했다. 그러나 한립은 제자리에 서있을 뿐 늑대를 쫓지 않았다.

비록 지금은 법력을 잃었지만 이전이라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저계 요수나 쫓고 있을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죽다 살아난 군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한립을 향해 감사를 표했다.

“대형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한립은 그 말을 듣고 그저 헛웃음을 지으며 손을 저었다.

“당연한 것을요. 그런데 다른 곳에도 늑대 요수가 나타나 상황이 나빠 보입니다.”

“그럴 리가요? 어찌 그렇게 많은 요수들이…….”

군관은 멈칫하며 서둘러 다른 성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 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갔다.

인근 성벽에는 이미 천 마리 이상의 청랑수들이 넘어와 살육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성벽 위에는 몸에서 빛을 반짝이는 늑대 요수들이 떠 있었다.

군관에게 뛰어들었던 늑대 요수와 똑같이 생긴 존재들이었다.

한립과 군관뿐만 아니라 주변의 천동상호 사람들과 일반 병사들까지 그것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방어 전선이 뚫리고 성벽으로 늑대 괴수들이 미친 듯이 넘어오고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은 마음이 무거워졌고 다들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다.

‘설마 안원성이 함락되는 것인가!’

나머지 성벽을 지키던 병사들이 다들 망연자실해 의지를 잃어가는 중에 돌연 호각 소리가 들리며 성벽 위로 수백 명의 건장한 연체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각양각색의 뼈로 만든 갑옷을 입고 형형색색의 도검류에서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전부 저계 영구를 지닌 이들이었다.

연체사들이 성벽 위로 뛰어들자 푸른 늑대들은 호랑이 떼를 만난 양들처럼 일격에 두 동강이 나곤 했다.

변이괴수들은 그나마 잠시 버티기는 했지만 연체사들의 협공에 결국 조각나 버렸다.

공중의 늑대 요수들이 대노해 공격하려는 찰나 연체사들 중 열댓 명이 먼저 날아올라 요수들을 포위하려 했다.

아우우우!

그때 요수 무리 뒤에서 기다란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들은 늑대 요수들은 잠시 주저하다 방향을 틀어 날아갔고 연체사들과 어떤 교전도 벌이지 않았다.

물론 성벽 위에 남아 있던 청랑수들도 포효 소리를 듣고 뒤질세라 앞을 다투며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이렇게 되니 청랑수 절반 이상이 달아나는데 성공했다.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방향의 성벽에서도 늑대 요수들은 공격을 중지하고 천천히 후퇴했고 이렇게 첫째 날의 탐색전은 마무리 되었다.

전투 중 괴수들과 인간들 모두 사상자가 나왔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십여 만 마리가 죽어나간 괴수들이 밀렸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사상자의 수가 적은 대신 대량의 화살과 방어구를 소모했기에 어느 쪽이 우세하다고 판단내리기가 어려웠다.

어느 덧 하늘에는 일곱 개의 만월이 떠올랐고 달빛은 그윽하게 성벽 아래 푸른 털의 늑대 시체들을 비추었다. 그러자 저 멀리 괴수 무리에서 달을 향해 울부짖는 늑대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밤에 울려 퍼지는 늑대 울음 소리는 피맺힌 광기 대신 애처롭고 처량한 기운이 가득했다. 엄청난 규모의 늑대들은 밝은 달빛 아래 점점 멀어져 결국에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제야 성벽 위에서 하루 종일 전투를 벌인 병사들은 긴장을 풀고 피가 낭자한 바닥에 그대로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전문적으로 육체를 단련한 연체사들도 계속 병기를 휘두르다 보니 피곤해 휴식을 취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은 아직 쉴 곳이 못되니 다들 일어나라. 곧 우리를 대신할 병사들이 올 것이다. 첫 전투를 이겨냈으니 별 다른 일이 없는 한 이틀은 쉴 수 있을 것이야. 지금은 기운을 내서 일어나 모두 집으로 돌아가 제대로 쉬어라. 만일 늑대 무리가 갑자기 들이닥친다면 이런 상태로 싸울 수 있겠나!”

초 군관은 긴장을 풀지 않고 병사들을 독려했다. 곧 돌아가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말에 병사들과 천동상호 사람들은 기뻐하며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한립은 멀리 검은 점으로 철수하는 늑대 무리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 형제 덕에 늑대 요수를 물러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도 다른 성벽과 비슷한 꼴을 면치 못했겠죠.”

장규가 그를 향해 걸어오며 미소를 띠고 말했다. 그는 한 손에 금빛 단검을 들고 피범벅이 된 갑옷을 입고 있었다.

“아닙니다. 운이 좋아 마침 늑대 무리가 퇴각할 때였습니다.”

“한 형이 나서주지 않았다면 제 아무리 안원성 ‘영대(靈隊)’가 지원을 나섰더라도 우리 중 태반은 죽었을 겁니다. 한 형제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 홀로 늑대 요수와 맞섰다면 어쩔 뻔 했는지……. 제가 금옥검을 써서 상대했다 해도 늑대 요수를 상대로는 승산이 3할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장규가 쓴웃음을 지으며 정교하게 세공된 칼집을 꺼내 단검을 조심스레 넣고는 품속에 챙겼다. 한립은 무의식중에 영구를 쳐다보았다.

이미 ‘영구’란 것이 수도자들이 연체사들을 위해 설계한 일종의 법기로 반지 형태의 영계(靈戒), 팔찌 형태의 영탁(靈鐲 등 격발 장치를 이용해 체내의 법력 없이도 영석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구의 위력은 쓸 만했지만 오직 영석의 힘을 빌려 쓰는 것이라 장기전에서는 영석의 소모가 많아 일반적인 연체사들은 사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영구의 위력은 기껏해야 최상급 법기 정도에 그쳤기에 진정한 보물을 사용하는 고계 수도자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진정한 고계 연체사들은 영구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수련을 통해 얻은 강력한 육체의 힘을 활용해 요족 수사들과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한립은 영구에 관련된 자료를 검토하다 장규가 머뭇거리다 한 말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한 형제께서 금강결을 겨우 3성까지 익힌 것이 아니었군요.”

“장 형 무슨 말이십니까?”

흉터 거한의 말에 한립이 눈을 빛내며 반문했다.

“아닙니다. 그저 금강결 3성으로 늑대 요수를 물러나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아하니 원대한 잔망을 지닌 분이셨습니다.”

장규는 의미심장하게 한 마디 하고는 바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더는 추궁할 의도가 없어 보였다. 한립이 흉터 거한의 뒷모습을 보다가 입 꼬리를 끌어 올렸다.

‘말 속에 뼈가 있지 않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안원성 병사들과 청장년 사내들이 또 다른 하급 군관을 따라 성벽 위로 올라왔다. 드디어 천동상호 수비병 등 첫 번째 전투를 치렀던 이들은 물러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다시 객잔으로 돌아가지 않고 전투를 시작하기 전 모였던 광장 인근의 석조 건물을 배정받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뻗어 잠들어 버렸다.

한립은 전혀 피곤하지 않았지만 이런 혼란스런 상황에 밖에 돌아다닐 마음이 없었기에 침상에 앉아 참선을 하며 금강결 공법을 묵묵히 수련했다.

그렇게 하룻밤이 무사히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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