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743화 (500/2,000)
  • 743화. 요수의 난 ⑴

    *

    얼마 지나지 않아 한립은 흉터 거한과 또 다른 성벽으로 옮겨가 구렁이 괴수의 붉은 물결을 보았다.

    그것은 푸른 늑대들의 무리보다 보는 사람을 더욱 질리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유일하게 좋은 소식은 이번에 몰려온 구렁이 괴수들은 독을 지니고 있지 않아 상대하기 낫다는 것이었다.

    멀리 구렁이의 물결을 바라보던 한립은 곳곳에 동족의 몇 배나 되는 거대한 몸집을 지닌 구렁이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한숨을 쉬었다.

    변이 구렁이의 몸집은 거의 열장에 달해서 붉은 교룡과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았다.

    범인들이 이런 거대 괴수와 싸우다 삼켜지면 그 결과가 어떨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만했다.

    게다가 적망수 중 변이 괴수의 수는 청랑수 떼보다 더욱 많아 보였다. 두 무리의 괴수들을 보고난 한립은 장규가 말하던 표금수를 살피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

    흉터 거한의 말에 따르면 표금수는 은밀한 곳에서 휴식하며 공격이 개시되기 전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괴수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요? 어째서 바로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적망수 무리를 내려다보던 한립이 문득 물었다.

    “괴수 무리를 지능이 발달한 요수들이 이끌다 보니 아무래도 그냥 짐승 떼처럼 막무가내로 달려들지는 않습니다. 다른 괴수 떼들과 연락을 취해 공격 시점을 결정한 후 동시에 진격해오지요. 일반적으로 괴수들이 몰려들고 하루 내외로 공격이 시작 됩니다. 그럼, 우리도 갑시다. 천동상호도 준비 명령을 받았을 테니까요. 이런 대규모 전투에서 공을 세우기는 어렵겠지만 최선을 다해 봐야지요. 만일 교전 중에 정말 깨달음을 얻어 더 높은 경지로 나갈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요.”

    장규가 냉소하며 한립을 데리고 성 안의 객잔으로 돌아갔다.

    객잔에는 당장 집결지로 모이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었고, 금포 사내와 금옥종 수사들은 이미 먼저 어딘가로 떠난 후였다.

    장규는 곧바로 천동상호 200명의 수비병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객잔을 나섰다.

    객잔 밖에는 어디에나 천동상호처럼 모인 개인 사병들과 연체사 무리가 넘쳐났다.

    천동상호 수비병들처럼 수가 많고 용맹스럽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적게는 대여섯 명부터 많게는 열댓 명의 사람들이 뭉쳐 있었다. 그러니 한립과 천동상호 무리가 주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그 중 50명은 뿔이 달린 거대 늑대를 탄 기병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 산랑수(狻狼獸)들은 인간들이 길들여 쓰는 몇 안 되는 전투 괴수 중 하나였다.

    어릴 때부터 정성들여 길러 야성을 없애야지만 기병과 한 몸처럼 전장을 누빌 수 있었기에 그 가격이 상당했다.

    천동상호처럼 재력이 풍부한 곳이나 수비병들에게 산랑수를 내줄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그들은 성벽 인근의 거대한 광장에 이르렀는데 마침 청랑수 떼가 결집한 성벽 쪽이었다.

    이곳에는 이미 수만 명의 청장년층과 다양한 복색을 갖춘 사병들 그리고 연체사들이 운집해 있었다.

    그 중에는 산랑수를 타고 있는 이들도 많았지만 천동상호의 기병들을 합쳐도 300명을 넘지 않았다.

    광장 곳곳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안원성 사병들은 전부 완전 무장을 한 상태였다.

    은색 갑옷과 투구를 쓴 중년인이 광장 끝에서 나타나 곁에 있던 유생과 승려에게 무어라 하는 것이 아무래도 이곳의 책임자 같았다.

    한립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는 뜻밖에도 안원성에 들어올 때 성문에서 만났던 통령이었고, 그 곁의 유생과 승려는 천동상호 운송 행렬을 점검했던 수도자들이었다.

    그때 은색 갑옷 중년인이 사병들이 다 모였는지 확인하고 즉시 뒤쪽으로 팔을 저었다.

    그러자 괄괄한 목소리를 지닌 병사 하나가 벌떡 일어나 전투 준비를 하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기마병들은 따로 모여 기병 대오를 이루게 했고, 거대 거북이 이끄는 육구차들은 광장 중앙으로 밀려와 대량의 무기와 소량의 갑옷 등을 청장년들에게 지급해 주었다.

    연체사들은 그런 병기에 눈독을 들일 리 없기에 제자리에서 서서 그것을 지켜보았다.

    안원성 병사들이 범인들에게 병장기를 나눠주는 동안 한립과 같은 사병 무리나 개인 연체사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때 밖에서 늑대 울음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고 그 스산함 속에서 피를 갈구하는 광기가 묻어났다.

    아우우!

    “……!”

    시간이 갈수록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고, 나중에는 수백만 마리의 늑대들이 동시에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는데 하늘 위에서 ‘쉬쉬쉿’거리는 기괴한 요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늑대 울음소리 같이 거친 파도처럼 밀려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듣는 이의 모골을 송연하게 하는 느낌 이었다.

    쨍쨍쨍쨍!

    동시에 성벽 위에서 징치는 소리가 들려오며 사내의 목소리가 그윽하게 울려 퍼졌다. 분명 크지는 않았는데 광장에 모인 이들의 귓가에 분명히 들려왔다.

    “모두 조심하라! 요수 떼가 성벽 쪽으로 이동한다.”

    뜻밖에도 회색 장포를 입은 축기기 수사가 기다란 검을 딛고 허공에 서서 외치고 있었다. 이 같은 일은 안원성 곳곳에서 일어났고 동시다발적으로 경고음이 퍼지고 있었다.

    동시에 안원성 전역이 요동쳤고 기다리고 있던 병사들은 열을 맞춰 이동하고, 성벽 위의 거대한 노의 화살도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광장의 병사들도 은색 갑옷을 입은 중년인의 고함 소리에 무기를 나눠 주는 손길이 빨라졌다.

    그리고 누군가 다가와 한립 등 사병 무장 세력과 연체사들 편을 나눴는데 전투가 임박해서 인지 교만한 얼굴을 하고 있던 일부 연체사들도 순종적으로 지시를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200명을 한 부대로 열댓 개의 부대가 생겨났다. 천동상호는 자체 수비병들이 본래 200명이었기에 독립적으로 한 부대로 인정받았다.

    또한 이미 각종 공법을 수련한 연체사들과 훈련을 받은 사병 무장 세력들은 먼저 성벽 위로 올라가 안원성 병사들과 합류했다.

    그러나 범인들로 이뤄진 청장년 사내들은 예비부대로 편성되어 바로 전투에 나서진 못했다.

    천동상호의 수비병들은 너무 눈에 띄어서인지 바로 선발대인 첫 번째 무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렇게 한립은 나머지 200명의 천동상호 수비병들과 성벽 한쪽을 맡아 그곳에서 대기 중인 병사들과 함께 방어를 맡게 되었다.

    한립이 성벽에 서서 바라보니 푸른 늑대들은 이미 울부짖음을 그치고 천천히 성을 포위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움직이는 거대한 푸른 초원 같구나…….’

    푸른 늑대 무리의 이동에 괴수의 발소리가 들려오니 그것만으로도 병사들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병사들은 이미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아무도 그들을 독려하지 않았다.

    범인들에게 성이 함락된다는 것은 그 자신과 일가가 전부 도륙 당한다는 의미였다.

    아무리 두려워도 일단 괴수들이 몰려오면 안원성 병사들은 절대 물러나지 않고 끝까지 항전할 것이다.

    그랬기에 각 성벽을 맡은 대장급 저계 군관들도 전투 준비를 명해 놓고 따로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연설 따위는 하지 않았다.

    늑대들의 이동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점점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평범한 청랑수의 두 배에 달하는 몸집을 지닌 변이 괴수들도 이제는 분명히 눈에 들어왔다.

    늑대 무리 곳곳에 위치한 변이 괴수들은 전신이 열은 푸른색 털로 뒤덮여 있었지만 두 눈만은 검은 색이 아닌 비취색 요기를 반짝이는 것이 지능을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본 한립은 눈살을 찌푸렸다.

    ‘한 눈에 보기에도 상대하기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수가 저리 많다니!’

    그는 몸집이 크고 키가 두 장은 될법한 거한과 함께 성벽의 지휘를 맡은 안원성 군관 뒤에 서 있었다.

    몇 차례 요수의 난을 겪은 장규의 제안으로 두 사람은 지휘관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지휘관이 무슨 일을 당하면 방어전선 자체가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거한은 천동상호의 ‘두소’라는 연체사로 몸을 키워 괴력을 발휘하는 공법을 익힌 자였다. 듣기로 이미 공법을 극성으로 익혀 한립이 오기 전에는 천동상호에서 가장 힘이 센 장사로 통했다고 한다.

    그는 한립이 수비병 부대장을 맡게 되면서 승복하지 못하고 도전했던 몇몇 사람들 중 하나였다.

    한립이 수천 근이나 되는 돌덩이를 가볍게 들어 던진 후에 그가 지은 놀란 표정은 볼만 했었다.

    현재 한립은 한 손에는 얇은 도를, 거한은 두 장 길이의 특제 낭아봉을 들고 군관의 좌우에 서 있었다. 30 대 군관은 한 눈에 보기에도 허약해 보이는 몸에 은색 갑옷을 걸치고 허리에는 장검을 맨 평범한 인상의 사내였다.

    하지만 그의 형형한 눈빛에서는 지휘관의 위엄이 느껴졌다. 보아하니 그도 수행이 낮지 않은 연체사인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계의 범인 중 어느 정도 수준이 오른 연체사들은 각 성의 군대에 입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중 수준이 높은 이들은 심지어 고계 수도자들도 우습게 보지 않았다.

    한립이 무표정하게 밀려드는 푸른 늑대들의 물결을 보는데 갑자기 뒤에서 펑! 펑! 하며 폭음이 터지고 백여 개의 불덩이들이 성 밖으로 쏘아져 나가 늑대 무리로 떨어져 내렸다.

    쿠콰쾅! 쾅쾅!

    굉음이 울리고 수많은 불길이 솟아오를 때마다 순식간에 주변 백여 마리의 푸른 늑대들은 피범벅이 되었다.

    평범한 화염이었지만 늑대 괴수들도 보통의 짐승들과 다를 바 없었기에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확인한 한립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성벽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공터에 인계에서는 투석기(投石器)라 불렸던 물건들이 줄줄이 놓여 있었다.

    대량의 병사들이 누군가의 명에 따라 새빨간 구슬같이 생긴 것을 그 위에 놓고 투척했고 조금 전과 똑같은 거대한 불덩이가 호선을 그리며 성벽을 넘어 요수 무리로 날아갔다.

    그러자 수많은 청랑수가 타죽었다. 단 두 번의 공격에 벌써 이만 마리가 넘는 청랑수를 죽였으니 투석기의 위력이 대단했다.

    그러나 늑대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불덩이 공격에 분노한 늑대들은 웅장한 괴성을 지르며 변이 괴수 늑대의 명에 따라 열댓 마리씩 무리를 이뤄 마구 내달리기 시작했다.

    땅이 쿵쿵 울리며 얼마 안 되는 거리를 순식간에 좁힌 괴수들은 높이가 십여 리나 되는 성벽을 맹렬히 타고 올랐다.

    청랑수 한 마리, 한 마리가 땅을 박차고 올라 날카로운 발톱으로 매끄러운 성벽을 내리쳐 한 척 길이의 홈을 파고 물러나면 다른 괴수들이 다시 뛰어올라 잽싸게 성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푸푹! 푸푸푹!

    성벽 위에서는 병사들이 비처럼 화살을 쏘아대 청랑수들을 떨어트렸다. 영계의 범인들은 인계의 범인들 보다 힘이 훨씬 세서 살상력 또한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청랑수의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아 이 정도로는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동족의 죽음을 무릅쓰고 줄기차게 밀려드는 늑대 괴수들은 순식간에 성벽 위로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성벽 위 수비병들도 진작 대비를 하고 있었기에 청랑수가 뛰어 올라온 즉시 서너 명이 기다란 병장기로 일시에 찔러 바닥으로 쓰러트린 다음 도검을 휘둘러 괴수가 난동을 부리기 전에 베어버렸다.

    성벽 아래는 화살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고 성벽 위는 도광이 번뜩이며 함성과 괴수의 괴성이 얽혀 들었다.

    그러나 한립은 나서지 않고 거한과 군관 뒤에 서서 그가 병사들을 어떻게 지휘하는지 들으며 이곳의 방어력을 파악했다.

    그가 볼 때 청랑수가 사납기는 하지만 인간들도 오래 요수의 난을 준비해 왔기에 당장 어떻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최악의 전투는 마지막 며칠 동안 벌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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