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740화 (497/2,000)

740화. 요수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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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씀이가 저리 큰 데 빈곤한 연체사는 아니겠지요. 하지만 분명 지교의 힘줄을 사가지 않았습니까?”

“신 아우, 상대가 그것을 가져다 무기로 쓸지 아니면 특수한 영구를 만들지 어떻게 알 수 있지? 지금 안원성에는 외지에서 온 연체사들이 한 둘이 아니고 그 중에는 솜씨가 남다른 자들도 적지 않아! 우리가 약한 편은 아니지만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이 목숨을 부지하는 길일세.”

“형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저 지니고 있는 영석이 부족해 마음이 급하니 그랬지요. 요수의 난이 곧 시작 되는데 중계 영석이 부족하면 위험해지지 않겠습니까.”

마른 사내의 말에 신 씨 거한도 냉정을 되찾았는지 난색을 표했다.

“두려워할 게 뭐가 있더냐. 요수의 난이 일어나면 안원성 성주가 연체사들을 고용하며 영석을 풀 것인데! 아껴 쓰면 그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마른 사내는 미리 생각해 둔 바가 있는지 자신 있게 답했다.

“하긴 그렇습니다. 삼황(三皇)과 칠요왕(七妖王)의 협정에 따라 결단기 이상 수사들은 요수의 난을 도울 수 없지요. 성을 보전하려면 우리 연체사들에게 의지해야지 별 수가 있겠습니까?”

“알면 됐다. 사실 그 협정은 서로를 모두 구속하기 때문에 요수 무리 중에도 5급 이상의 고계 요수는 없지. 그 협정으로 어느 편이 이득을 얻었는지는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마른 사내가 탄식하듯 말하자 산발 거한도 고민이 많아진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다시 물건들을 싸서 거리로 나섰다.

*     *     *

한립은 골목을 나와서 다시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각종 경전을 판매하는 책방으로 들어갔다.

경전을 판매하는 가게들은 꽤 많았고 종류도 다양해서 천문, 질, 잡학 등을 다루고 있었다. 범인들을 위한 책방이라 옥간이나 수련에 관련된 서책은 없었다.

한립은 시선은 영계의 환경과 풍속을 설명한 책들로 향했다. 이런 식으로나마 영계에 대해 알아봐야지 아무 것도 모른 채로는 돌아다닐 수 없었다. 그는 두꺼운 책들을 몇 권 고르고 주변 지형이 담긴 지도도 함께 구입했다.

한립은 금이나 은은 없었지만 범인들에게도 영석은 귀한 것이라 저계 영석으로 대신 값을 치르자 책방 주인은 무척 기뻐하며 약간의 은냥(銀兩)을 거슬러 주었다.

그는 주루로 들어가 구석에 자리를 잡고 몇 가지 음식을 주문한 후 서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의식을 몸 밖으로 방출하지 못할 뿐, 한 번 보면 잊지 않는 뛰어난 기억력은 여전해서 두꺼운 책을 기이할 정도로 빨리 읽었다. 그는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머릿속으로는 서책의 내용을 죄다 암기하고 있었다.

그러자 다른 것은 몰라도 영계의 환경과 지리는 확실히 익힐 수 있었다. 그간 천동상호 사람들이 언급하던 천원경은 뜻밖에도 인족 삼황 중 천원성황(天元聖皇)이 통치하는 인족의 구역이었다.

그밖에 인간들은 현무패황(玄武覇皇)이 통치하는 현무경(玄武境), 천묘영황(天妙靈皇)이 통치하는 천령경(天靈境)을 기반으로 살아갔다.

이들은 통상적으로 패황 또는 영황으로 불렸는데 본래 인족 연체사 출신이었다가 나중에 유가 공법을 익힌 천원성황만 유황이라 불렸다.

유황이 통치하는 천원경이 그 중에서도 인계와 가장 비슷했다. 그로서는 매우 운이 좋았던 것이다.

세 인족이 사는 땅은 광활했고 많게는 수백 개에서 수천 개에 이르는 인간들의 성이 있었다. 책에 적힌 대로라면 안원성은 인구가 1억이 안 되는 도시로 영계에서는 작은 규모의 성에 속했다.

천원성황은 천원성(天元城)이라는 곳에 머물고 있는데 면적이 인계의 웬만한 국가와 맞먹을 정도였다.

패황의 현무성은 참령이라 불리는 오래된 거대 거북의 등 위에 건설되어 해류를 타고 천천히 이동하는 성이었고, 영황의 천령성은 두께가 백 리는 되는 전설 속의 신계로 이어져 있다는 거대한 나무 위에 건설되어 있었다.

이 같은 내용을 보며 한립은 경악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이야기는 책 뒤쪽에 있었다. 서책에 따르면 인류가 거주하는 삼형 구역 외에 인근에 7대 요왕들이 통치하는 요족들의 땅이 있었다.

요족과 인족은 뜻밖에도 적 같기도 하고 친우 같기도 한 애매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 이유는 요족과 인족이 차지하는 영토가 영계의 일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두 종족이 통치하는 구역 외에는 다른 이종족 생명체들의 천하였다.

그들 중에는 인계의 원주민과 만황 시대 상고 요수들, 상고 거인도 있었다. 또 인족과 마찬가지로 경계를 뚫고 들어온 이종족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인족과 요족에 맞먹는 강대한 종족들로 독특한 신통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라 이 외에도 영계에는 진선계(眞仙界) 선인들과 맞먹는 강력한 육체를 지닌 생명체들도 있었는데 한립이 아는 것만 해도 경계 간 압력 따위는 무시해 버리는 라후, 곤붕, 진룡 등이 있었다.

수많은 위협이 있지만 인족과 요족은 능력 있는 수사들을 배출하면서 근근이 영계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다.

평소 서로 적대시하며 싸우기도 하지만 외부의 강적이 나타나면 어쩔 수 없이 연합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족과 요족의 운명이었다. 이런 상황은 삼황의 구역과 칠요의 땅이 확정된 이후 그나마 훨씬 나아졌다.

초대 삼황과 칠요왕이 당시 신통이 뛰어난 인족과 요족수사들을 모아 초대형 진법을 펼쳐 삼경(三境)과 칠지(七地)를 보호했기 때문이다.

듣기로는 진선계에서 내려온 선인들의 진법으로 강력한 이종족 생명체를 겨냥해 만들어져 강인한 육체를 지닐수록 금제의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반대로 실력이 중급이나 저급인 이종족들은 영향을 덜 받았다. 초대형 진법은 열 개의 진법의 눈을 지니고 있었고 각각 삼황들의 삼경과 칠요왕들의 칠지에 나눠져 있었다.

요수들의 땅에 있는 것은 자세히 언급되지 않았지만 삼경에 있는 진법의 눈은 천원성이 있는 천원성산(天元星山), 현무성에 위치한 참령 그리고 천령성에 있는 거대한 영목에 있다고 했다.

성산과, 고대 거북 그리고 영목을 훼손하지 않는 한 인간들이 장악한 금제는 무사하다고 볼 수 있었다. 삼경에 있는 진법의 눈이 이렇게 보호되고 있으니 요족 칠지에 위치한 것들도 이에 못지않은 곳에 위치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영계가 얼마나 큰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저 영원히 그 끝을 찾을 길이 없다는 말로 영계의 광활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읽은 한립은 의문이 생겼다.

‘인족이 장악한 영토가 영계의 일부에 불과하다면 하계에서 올라오는 수사들이 어떻게 이곳으로 떨어지도록 통제하는 걸까? 초대형 진법 밖으로 떨어지면 살아남지 못할 텐데.’

궁금했지만 서책에 적혀 있지 않으니 일단은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서책에는 영계에서 요족 전체의 세력은 인족을 넘어섰고 고계 수사들로만 따지면 인족 수사들이 요족 수사들보다 위라고 했다. 이렇게 기이한 평형이 유지되었고, 초대 삼황과 칠요왕이 자리 잡은 후 서로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협정이 체결되었다.

인족 구역 내에서 고계 수도자들은 마음대로 외지에 서식하는 저계나 중계 요수들을 학살할 수 없다는 것과 기한이 되어 몰아치는 요수의 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 요족 구역 내에서 인족을 마음대로 도륙할 수 없고 반드시 그들이 모여살 공간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것 등등이었다.

이런 협정이 맺어진 이유는 두 종족이 삼경과 칠지를 나눠 가질 때 엄청난 혼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고계 인족이나 요족 수사들은 그냥 거주지를 옮기면 그만이었지만 지능이 낮은 요수 무리나 평범한 사람들은 터전을 떠나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없었기에 살던 곳에 남아 다른 종족의 통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대규모 숙청이 곳곳에서 벌어지며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몇 번의 대규모 전투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그들은 이런 협정을 맺기로 한 것이다. 물론 한립이 읽고 있는 범인들의 서책에는 몇 가지 중요한 사항만 기재되어 있었다.

요수의 난에 대한 것은 그가 따로 골라온 서책에서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었는데 요수의 난은 평범한 짐승들의 뛰어난 번식력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삼황과 칠요왕들의 협정으로 고계 요수들이 짐승을 토벌할 수 없자 수가 늘어난 짐승들이 서식지 문제로 서로 살육전을 벌여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인근에 인간들이 사는 성이 있으면 저계 요수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족을 이끌고 와 자살에 가까운 공격을 개시했다.

그래서 특별히 규모가 큰 성을 제외하면 대다수 성들이 요수의 난을 겪었고, 외진 곳에 있는 중소 규모의 성들은 더욱 빈번하게 이런 일을 당했다.

지금까지 요수의 난으로 무너진 성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때마다 많은 인족의 저계 수사 혹은 범인들이 다치고 죽어나갔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생사가 걸린 순간에 연체사나 수도자들이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 고비를 넘기고 수행이 느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평범한 사람들이 대규모로 죽어나가도 연체사와 수도자들의 성장이 가져오는 이익이 컸기에 오히려 인족의 실력은 날로 강해져갔다.

때문에 삼경의 인족 고계 수사들은 요수의 난을 묵인했고 협정 사항을 개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각 성마다 요수들이 난동을 부리는 시기와 종류는 달랐지만 가장 빈번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초원의 늑대들이 일으키는 늑대의 난과 뱀의 난이었다.

두 짐승 무리는 번식력도 강해서 거의 백 년을 주기로 꼭 폭발했다.

만약 짐승들의 난이 우연히 겹쳐 짐승 떼가 몰려들면 ‘요수 대란’으로 불렸고, 성의 사람들도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전에 몇몇 성이 무너진 것도 전부 요수 대란 때문이었다.

성 주변의 요수 무리가 폭동을 일으킬 조짐이 보이면 고위층들은 벌벌 떨며 사력을 다해 인근의 연체사들과 저계 수사들을 불러 모았고 방어에 총력을 기울였다. 한립은 여기까지 읽고 작게 한숨을 쉰 다음 드디어 마지막 책을 덮었다.

안원성도 곧 요수의 난을 겪게 될 참인데 대초원과 가까우니 가장 사나운 늑대들이 덮쳐올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성에 감도는 분위기로 보아 요수 대란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묵묵히 술을 한 잔 마시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지금 요수의 난 보다는 오직 법력을 회복하고 빙봉의 금제를 풀어 원래 신통을 되찾는 것이 더 시급했다.

천란수 분신의 말에 따르면 영계에서는 원영 또는 화신기 수사들이 3백 년에 한 번 소천겁을 겪는다고 했다. 그는 법력은 없었지만 수행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이대로 천겁이 닥치면 끝이었다.

‘화신기 천겁이 밀려드는데 겨우 금강결 4성으로 어떻게 이겨낸단 말인가.’

그 생각만 하면 절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빙봉을 찾아 서로의 금제를 푸는 것이었다.

빙봉은 공간접점에서 먼저 공간 신통을 발휘해 한립보다 먼저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러니 그녀도 분명 금제가 발작해 법력을 쓸 수 없을 것이다.

한립은 자신이 걸어놓은 금제의 무서움을 잘 알았고 아마 요족 여인의 상황이 그보다 못하면 못했지 결코 더 좋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영계에서 법력을 쓸 수 있다고 해도 상대를 찾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었다. 삼경 칠지를 통틀어 수행이 화신기에 이른 존재가 얼마나 많을 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스스로 보호할 능력도 안 되면서 그녀를 찾아다니는 것은 불가능했고, 법력을 흡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시 수련을 한다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

또한 다른 고계 수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의자에 앉은 한립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보아하니 가던 길로 쭉 가야겠구나.”

어느 순간 그가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안원성까지 오는 동안 그는 줄곧 어떻게 신통을 회복할지 고심했다. 반복해서 이런저런 방안을 떠올려 보았지만 쓸 만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다만 영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확실히 어떻게 밀고 나갈지 머뭇거렸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대략적인 사항을 알아보니 여전히 그 길 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금강결을 완전히 익혀 대성해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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