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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39화 (496/2,000)
  • 739화. 지교(地蛟)의 힘줄

    *

    장 대장의 당부에 한립은 미소 지으며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그대로 골목을 돌아 시야에서 멀어졌다.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장규가 큼지막한 손으로 턱을 긁적였다.

    “장 시주께서는 한 형제가 돌아오지 않을까 그러십니까?”

    흉터 거한 옆의 남기자가 미소 지으며 물었다.

    “이미 혈주문서도 작성했는데 그럴 리가요. 그저 한 형제가 심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합니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어린 나이에 저 정도 연체술을 익혔으니 배경이 남다를 지도 모르지요. 확실히 천원경 사람도 아닌 듯 하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천원경 내의 거대 세력들과 관련된 자만 아니라면 출신에 문제가 있어도 천동상호가 피해를 볼 일은 없을 겁니다! 잘 육성하다 보면 언제고 금강결을 5성까지 익힐 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부인께 큰 힘이 되겠지요.”

    “금강결 5성이요? 장 시주, 너무 기대가 큰 것 아닙니까. 그런 연체사라면 결단기 수사와도 대등하게 겨룰만한 실력자입니다.”

    “저도 큰 기대를 품고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허나 저렇게 어린 나이에 지금의 수행이라면 100년 내로 금강결 5성을 익히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런 기대가 아니었다면 청라사막에서 혈주문서를 통해 저자와 계약을 맺지 않았을 겁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럼 그건 되었고, 저희들은 방 부인에게 운송 행렬을 돌봐달란 부탁을 받았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런, 부인도 만나 뵙지 않으시고요……. 먼 길을 가셔야 할 텐데 조심히 가십시오!”

    곧 남기자 등 수사들이 무리를 떠나 멀어졌다.

    “정말 아쉽습니다. 저희 상호도 수사를 보유하고 있다면 더없이 좋을 텐데요.”

    그들이 멀어지기를 기다려 기병 하나가 다가오더니 안타까움을 표했다.

    “우리만의 수사라! 그저 헛된 꿈이겠지. 천동상호가 천원경의 3대 상호 중 하나라지만 실질적으로 거둬들이는 영석의 양이 상시로 수사를 고용하기에 충분한 양이더냐? 연기기의 저계 수도자들은 우리 같은 연체사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 고용해도 큰 쓸모가 없고 축기기 수사들은 영석이 너무 많이 들어. 이번처럼 큰 거래가 있을 때에나 가끔 고용할 수 있지. 결단기 이상의 수사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들이 대충 아무 곳에서나 찾을 수 있는 진귀한 재료나 법기, 영구들이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영석보다 훨씬 비싸지 않더냐. 우리가 공 들여 중계 수사들을 키워낸다 해도 결국에는 전부 떠날 것이다.”

    거한도 한탄했다.

    “하긴 연체사들 중 걸출한 인재들은 어느 정도 성취가 쌓이면 영근이 생기는 영약을 찾기 위해 천원경 외부의 위험지대로 나가기 급급하지 않았습니까. 일단 수사만 되면 선술을 수련할 수도 있고 수명도 크게 늘어나니까요! 그러니 그간 죽어나간 연체사들이 수없이 많은데도 삼경(三境) 바깥으로 나가 위험을 무릅쓰는 이들이 여전히 허다합니다.”

    기병이 혀를 찼다.

    “됐다. 어차피 이런 일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어서 돌아가 부인을 뵙는 일이 급하다.”

    장규가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지 손을 흔들자 기병이 입을 다물었다. 일행은 그곳을 떠나 인산인해를 이루는 거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때 한립이 인근 거리로 나가 하늘에 뜬 7개의 작렬하는 태양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청라사막을 나와 대초원에 들어섰을 때부터 한립은 도처에서 밀려드는 짙은 영기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농밀함은 인계의 몇 배에 달해서 이곳에서 수도에 적합한 장소를 찾는다면 아마 그 수련 속도가 열댓 배는 차이가 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원영을 흩어버렸고 빙봉이 걸어둔 금제가 있어 영기를 조금도 흡수할 수 없었다. 그는 길을 따라 걸으며 주위의 행인들을 살폈고 양쪽으로 늘어선 다양한 점포들을 구경했다.

    점포들은 기본적으로 인계와 비슷했고 유달리 신기해 보이는 물건도 없었다. 그러던 중 그가 걸음을 멈춰서 한 점포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박달나무로 만들어진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창칼 도끼 등의 잡다한 병장기들이 놓여 있었다. 전문적으로 무기를 취급하는 상점이었던 것이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물건을 고르고 있는 손님이 꽤 많았고 주인이나 점원으로 보이는 사내 둘이 서 있었다.

    “손님, 찾으시는 물건이 따로 있으십니까? 이 금배구환도(金背九環刀)는 어떠십니까. 오철(烏鐵)을 제련해 만든 도라서 강철을 진흙 베어내듯 자르고 무게감도 있어 늑대 괴수를 상대하기에 제격이지요!”

    점원 하나가 막 어떤 물건을 설명하다 한립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그는 한립이 바라보고 있는 9개의 고리가 있는 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근력이 약해 이렇게 무거운 무기는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한립이 슬쩍 시선을 거두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 월호검(月弧劍)은 어떠십니까? 자동(紫銅)으로 만든 물건이라 깃털처럼 가볍고 예리한 상등품 연검(軟劍)입니다.”

    “너무 짧아 다루기 어렵겠군요.”

    한립이 대충 살피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너무 짧다고요?”

    미소를 머금던 점원이 순간 무어라 말해야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이건 무엇입니까?”

    돌연 한립이 몇 걸음 걸어가 탁자 위에 놓인 새까만 밧줄을 가리켰다.

    “규룡색(叫龍索)입니다. 금실로 제련한 것이라 무언가를 묶는데 쓰이지요. 아무리 힘이 좋은 저계 요수라도 이것에 묶이면 쉽게 벗어나지 못한답니다.”

    “규룡색이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쉐액!

    한립은 거침없이 밧줄을 들고 휘둘렀는데 밧줄이 뻣뻣하게 변해 가느다란 방망이처럼 움직였다.

    곁에서 지켜보던 점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부드러운 밧줄을 몽둥이처럼 휘두르자 보통 실력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점원은 상대가 연체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에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괜찮군요. 다만 조금 굵어서 그런데 비슷한 종류에 다른 것은 없습니까?”

    한립이 대충 두어 번 휘두르다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더 가느다란 것이라면 그게……. 본 점에는 아마 없는 것 같습니다.”

    “더 가느다란 것을 찾습니까? 제게 좋은 물건이 있는데 보시겠습니까? 물론 가격은 꽤 나갑니다 그려.”

    갑자기 한립 뒤에서 굵은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한립이 천천히 몸을 돌리자 건장한 사내 둘이 서 있었는데 한 명은 체구가 크고 머리를 어깨까지 기르고 있어서 야성적인 기운이 느껴졌고, 다른 한 명은 누르스름한 얼굴에 약간 마른 편이었다.

    둘 다 가죽으로 만든 두루마기를 걸쳤고 산발한 사내는 등 뒤에 기다란 금빛 창과 커다란 보따리를 매고 있었다. 그러나 마른 사내는 한 손에 목갑을 들고 있을 뿐이었다.

    한립은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다 두 사람 다 손가락에 영석이 박힌 반지를 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장규가 지닌 것보다 더 조잡했고 영석의 크기도 훨씬 작았다.

    ‘영구 그리고 연체사.’

    한립은 머리에 두 단어를 떠올렸고 두 사람의 신분을 알아채고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물건만 적당하면 가격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 여기서 거래하기는 그렇고 저희 형제와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 하시죠.”

    마른 사내가 한립을 훑으며 빙긋 웃었다.

    “그러시죠!”

    한립은 조금도 주저 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는 두 사람을 따라 무기 상점을 나왔다. 두 사람은 이곳 지리가 익숙한지 이리저리 들어가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골목에 이르렀다. 다니는 사람도 없고 무척 조용한 곳이었다.

    “여깁니다. 신 아우, 물건을 형씨에게 보여 드리지!”

    마른 사내가 거한을 향해 말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키 큰 거한이 어깨에서 보따리를 풀어냈다.

    그러자 쨍그랑 거리는 소리가 울리며 잡다한 물건들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고 약병이며 짐승의 가죽과 뿔 등 별의별 물건이 다 있었다. 마른 사내가 허리를 숙여 그 중에서 손바닥만 한 목함을 들어올렸다.

    “한 번 보시죠! 우리 형제가 다른 연체사들과 지교(地蛟)를 죽이고 얻은 요수의 힘줄입니다. 아주 가늘고 질긴데다 탄성도 좋아서 몇 배로 늘릴 수도 있죠.”

    “지교요?”

    한립은 그들이 말하는 지교가 어떤 요수인지 몰랐다. 하지만 저계 요수의 일종일 거라 예상했기에 표정 변화 없이 목함을 열어보았다.

    목함 속에는 가느다란 담황색 물건이 붉은 줄로 묶여 말려 있었다. 한립이 주저하지 않고 붉은 줄을 뜯어내니 말려 있던 요수 힘줄이 퍽! 하고 튕겨 나왔다.

    그가 한 손을 들어 천천히 움직이자 어느 샌가 다섯 손가락으로 힘줄의 한쪽 끝을 잡고 있었고, 꼿꼿이 선 힘줄이 부드럽게 흘러내리며 탄성이 넘쳤다.

    그리고 두 장 가까이 되는 밧줄이 펼쳐졌다.

    마른 사내는 한립의 민첩한 동작을 보고 산발한 거한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때 한립은 이미 지교의 힘줄을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수많은 저계 요수들을 죽여 보았기에 한눈에 속성과 특징 그리고 어떻게 개량해야 쓰기 편할지 단번에 파악되었다.

    그는 잠시 밧줄을 가지고 놀다 한 손을 털었다. 그러자 힘줄이 허공에서 춤을 추듯 움직여 그의 손목을 휘감더니 팔찌처럼 말렸다.

    다시 손을 내리니 요수의 힘줄은 완벽하게 소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좋습니다! 확실히 저계 요수의 힘줄치고는 보기 드문 재료군요. 다만 수사들에게는 쓰임이 많지 않아 활시위로나 쓰이겠습니다. 두 분이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면 제가 구입하지요.”

    한립이 두 사내를 바라보며 차분히 말했다.

    “연체사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영석으로 거래하시죠. 지교 힘줄 대신 영석 서른 개만 주시면 됩니다!”

    마른 사내는 한립의 말에 음산한 미소를 드리우며 가격을 제시했다.

    “서른 개요? 가격이 조금 높긴 하지만 거래하겠습니다.”

    그는 류아 등 소녀들과 교류하며 영계의 범인들이 황금이나 백은 같은 것들을 화폐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연체사들은 영구를 쓰기 위해 대량의 영석이 필요해서 수사와 마찬가지로 영석으로 거래했다. 물론 영계의 저계 영석은 인계에 비해 큰 가치는 없었다.

    영구를 쓰는 연체사나 수사들은 대부분인 중계나 고계 영석을 위주로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영계의 농염한 영기로 보아 최상급 영석 광산도 인계보다 많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해도 저계 영석 서른 개면 저계 요수의 별 쓸모없는 재료를 사기에는 높은 가격이었다.

    한립은 저물대와 보물들을 사막 깊숙이 숨기며 영계에서 영석이 쓰일 거라 생각해 만일을 대비해 중계 영석 열댓 개를 챙겨두었었다.

    그가 품에서 노란 영석을 꺼내 던져주자 산발 거한이 성큼 나아가 그 것을 잡아채 확인하더니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마른 사내는 품에서 꺼낸 주머니에서 저계 영석 70개를 세 바닥에 놓인 요수 가죽으로 싸서 한립에게 던져주었다.

    “잘 세어 보시지요. 형씨 씀씀이가 시원시원한 게 마음에 드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거래합시다!”

    “기회가 되면 그러지요. 그럼 저는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습니다.”

    한립이 미소 지으며 두 사람을 향해 포권을 했고 평온히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났다.

    그가 골목 끝에서 사라지자 중계 영석을 쥔 거한의 눈빛이 달라졌다.

    “포 형님, 낯선 얼굴에 영석도 꽤 많이 가진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우리…….”

    “쓸데없는 생각일랑 접거라! 영구가 없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 연체사 중 영구를 들고 다니지 않는 자들은 두 종류이지. 너무 가난해서 혹은 자신의 수행에 자신이 있어서! 네 생각에 저 자는 어느 부류 같더냐?”

    마른 사내가 얼굴을 굳히며 질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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