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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37화 (494/2,000)

737화. 거대 요수의 습격

*

푸푸푹!

벌레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열댓 개의 화살들이 한기를 번뜩이며 사충수의 몸에 박혀 들어갔다.

그러나 입을 관통당한 한 마리가 쓰러진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피를 흘리면서도 더욱 포악하게 굴며 거대 거북에게로 달려들었다.

이에 거대 거북에 타고 있던 수비병은 당황하지 않고 도검을 휘둘렀고, 그들이 익힌 특수한 공법 때문인지 거대 벌레 몇 마리가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나 누런 모래 먼지 속에서 거대 벌레가 끊임없이 튀어 나왔고 순식간에 운송 행렬을 포위했다. 이제 전투는 대규모 전투로 바뀌었고, 괴성과 병장기들이 부딪히는 소리 등이 들려오며 사방에서 피가 튀었다.

한립이 탄 거북 마차는 방어선에서 가장 중심에 위치했기에 그는 사방을 주시하며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폈다.

그러나 잠시 후 그가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마부 노인의 말대로 사충수는 체구가 컸지만 높이 뛰어 오르지 못해 거대 거북을 한 번에 올라탈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수비병들의 칼을 맞기에 딱 좋은 위치에 있었다.

이렇게 처음에는 수비병들이 우세했다.

하지만 사충수들의 수가 워낙 많았고 누런 모래 먼지도 아직 흩어지지 않아 얼마나 더 남았는지 알 수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300마리는 넘어 보였는데 벌레 괴수들은 행동이 조금 굼뜬 대신 가죽이 두꺼워 평범한 도검으로는 치명상을 입히기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수비가 뚫리는 곳이 생겼고 결국 사충수가 거대 거북 위로 뛰어들어 수비병을 물어뜯는 일도 생겨났다. 거북 마차 위에서 싸우던 수비병 쪽에서 사상자가 나온 것이다.

어떤 이는 피하지 못하고 거대 벌레에게 팔 하나를 뜯어 먹혔고, 또 어떤 이는 뒤에서 달려드는 사충수를 못보고 그대로 목이 뜯겨나가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전황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평온한 곳이 한립이 있는 중심의 거북 마차들이었다. 그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돌려 주변의 또 다른 거북 마차를 쳐다보았다.

그 안에는 남기자를 비롯한 몇몇의 수사들이 있었는데 축기기 수사의 수행이면 이런 괴수들 정도는 쉽게 처리할 수 있을 텐데도 그는 객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한립은 미간을 좁히고 다시 고개를 돌려 조용히 사태를 관망했다.

이때 중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은 수비병의 수가 스무 명을 넘어섰고 남은 이들도 계속 무기를 휘두르느라 많이 지쳐 있었다. 이대로 두면 더더욱 사상자가 늘어날 것이다.

보아하니 흉터가 있는 사내와 기병 무리가 괴수들의 우두머리인 저계 요수를 처리하지 못하면 운송 행렬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물론 한립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법술을 펼치지 못하고 아직 경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명왕결 4 성을 익혀 벌레들에 잡아 뜯겨도 무사할 만한 단단한 몸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몸에 지니고 있는 멸선주 두 알은 불시에 공격하면 화신기 수사도 중상을 입힐 수 있는 물건이었다.

“향아 언니, 안 되겠어요! 우리도 어서 도와요.”

그때 소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한립이 천천히 몸을 돌리자 거북 마차 뒤편에 어느새 세 명의 소녀가 나타나 각자 작은 깃발을 들고 서 있었다.

그 중에서도 방금 말을 꺼낸 붉은 장삼 소녀가 가장 초초해했다.

“아직 괜찮아. 류아 언니가 없긴 하지만 빨리 소회춘진(小回春陣)을 펼치면 한 동안은 버틸 수 있을 거야!”

비취색 장삼 소녀가 말했다. 이어 세 소녀는 서둘러 자리를 잡고 각자 비단 손수건을 꺼내 바닥에 펼쳐 몇 척 크기의 진법도를 이어 붙였다.

멀리서 지켜보던 한립은 이채를 띠었다.

세 소녀들은 남색 장삼 소녀와 똑 같이 영석이 박힌 팔찌를 차고 있었는데 그녀들이 주술을 외기 시작하자 팔찌와 수중의 깃발이 희미하게 영기의 빛을 내뿜었다.

깃발을 펄럭이자 세 깃발이 바닥의 진법도로 가서 박혔고 미약한 영기의 파동이 일어나 하얀빛이 사방으로 급격히 퍼져나갔다. 그러자 하얀 빛은 도처를 돌며 수비병들의 몸 안으로 흡수되었다.

하얀빛이 흡수된 수비병들은 정신이 들며 피곤한 기색이 싹 사라졌고 이전보다 훨씬 위력적으로 무거운 병기들을 휘둘렀다. 그것을 본 한립은 보일 듯 말 듯 냉소했다.

‘소회춘진은 무슨, 그저 인계 마종의 정원진(精元陣)을 간소화해 놓은 것 아닌가.’

소회춘진은 겉보기에는 자기편의 힘을 끌어올려 괴력을 발휘하게 하는 진법 같지만 사실은 수명을 깎아 체내의 원기를 격발하는 것에 불과했다.

단기간의 무력강화를 위해 수비병들의 수명이 2, 3년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다행히 진법의 영향을 받아 상황은 역전되었고 한동안은 괴수들의 공격을 버텨볼 만해졌다. 그런데 또 다시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쾅!

굉음이 터져 나오며 세 소녀들이 서 있는 곳, 바로 옆에서 모래를 뚫고 사람 머리에 뱀의 몸을 한 요수가 나타난 것이다.

뱀 요수는 머리카락을 산발한 흉측한 여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몸 양옆에 작고 하얀 팔이 자라나 뼈로 만든 창을 쥐고 있었다. 뼈로 만든 창은 검은 기운이 감도는 것이 저계 법기로 보였다.

뱀 요수의 출현에 한립은 물론이고 진법을 지탱하던 향아 등 세 소녀도 대경실색했다.

뱀 요수는 고개를 돌려 소녀들을 보더니 교활한 미소를 지었고 그대로 한 손을 세 번 휘둘러 창끝에서 검은 빛 세 줄기를 뿜어냈다.

소녀들은 상당히 영민해서 바로 평정을 회복하고 진법도에 꽂힌 깃발을 뽑아 몸을 피했다.

파팟!

세 소녀 주위로 안개가 퍼지며 그 녀들을 보호했고 검은 빛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펑! 퍼펑!

폭음이 연달아 터졌지만 향아와 하얀 의복을 입은 소녀는 그들을 둘러싼 기운이 약해지는 정도에서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붉은 장삼 소녀가 불러낸 안개는 기운이 약했던지 검은 빛과 충돌하자마자 보호막 밖으로 튕겨나가고 말았다.

붉은 장삼 소녀는 얼굴에 핏기가 가셨지만 도저히 몸을 가눌 수 없었다.

뱀 요수가 그것을 보더니 꼬리로 세차게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붉은 장삼 소녀를 향해 뼈로 만든 창을 던졌다.

그 모습에 다른 두 소녀가 놀라 비명을 질렀지만 구해낼 수가 없었다. 어린 소녀는 당장이라도 창의 검은 빛에 구멍이 뚫릴 찰나였다.

그 순간, 귀청을 때리는 파공음이 들리고 희끄무레한 물건이 날아들어 정확히 뼈창의 검은 빛을 가격했다.

텅!

이에 뼈창이 반 척 정도 밀려 날아가며 붉은 장삼 소녀를 비켜 날아갔다. 그 틈에 소녀도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두 발로 바닥에 섰다.

희끄무레한 물체의 정체는 놀랍게도 보잘 것 없는 돌멩이였다.

공격에 실패한 뱀 요수는 잠시 멈칫하더니 더욱 흉흉한 눈빛으로 다른 팔을 휘둘러 공격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또 다시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뼈창이 아니라 뱀 요수의 머리를 노린 공격이었다.

조금 전 위력으로 보건데 이것에 맞으면 머리가 박살나지는 않아도 정신을 잃을 것이 분명했다. 분노한 뱀 요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피하며 뼈창을 돌려 돌멩이를 막았다.

텅!

다시 묵직한 충돌 소리가 들리고 뱀 요수는 괴력이 담긴 돌멩이 때문에 몇 걸음 물러나고 말았다. 요수는 분통을 터트리며 돌멩이가 날아 온 방향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한 청년이 요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한 손으로 돌멩이를 쥐고 왔다 갔다 하며 놀고 있었다. 그는 바로 한립이었다.

그 사이 붉은 장삼 소녀는 뒤로 물러나 또 다른 소녀가 불러낸 기운 속으로 숨어들었다.

뱀 요괴는 연달아 두 번이나 공격이 막히자 분노가 극에 달했는지 입을 벌려 검은 독 기운을 분출하며 세 소녀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바로 그때 또 다른 거북 마차 안에서 남기자가 콧방귀를 뀌며 소리쳤다.

“요수가 감히 어딜!”

이어 하얀빛이 날아들어 뱀 요수를 가르려 했는데 그것은 영롱한 빛을 내는 몇 촌 길이의 작은 검이었다.

검은 기운을 토해내던 뱀 요수가 그것을 보고는 안색이 급변해 한 손에 들고 있던 뼈창을 힘껏 내던지고 그대로 몸을 돌려 모래바닥 틈으로 사라졌다.

수사의 공격에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달아난 것이다. 그리고 뼈창은 남기자가 아니라 한립을 향해 날아들었다. 달아나기 전에 자신의 공격을 방해한 한립에게 화풀이를 한 것 이다.

한립은 검은 빛으로 날아드는 뼈창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지만 그것을 격추시키지 않고 그냥 우두커니 서 있었다.

결국 쾅! 하며 뼈창이 그의 몸을 때렸고 그는 그대로 열댓 장은 날아올라 또 다른 거북 마차 위에 실린 짐짝에 커다란 구멍을 내며 처박혔다.

퍽! 와장창!

날카로운 칼날들이 화물 속에서 우르르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

한립의 모습을 본 세 소녀는 작게 비명을 질렀고 객실 안에서도 남기자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작은 검이 다시 객실로 돌아갔을 때 소녀들은 서둘러 깃발을 거두고 한립을 향해 달려갔다.

“한 형! 괘, 괜찮으세요!”

그가 구해준 붉은 장삼 소녀가 거대 거북 아래서 초조하게 소리쳤다. 향아와 하얀 의복 소녀도 걱정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괜찮습니다! 이 정도로 죽지는 않지요. 헌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군요.”

화물 더미 속에서 한립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세 소녀는 그제야 안심했고, 곧바로 거대 거북 위로 뛰어 올라 화물 더미 안을 살폈다.

한립은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병장기들 위에 누워있었는데 확실히 큰 부상을 당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소녀들이 반색하며 힘을 합쳐 한립을 끌어냈고 거대 거북 위에 내려놓았다.

“한 형,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별 것도 아니었는데요. 저는 한동안 누워서 쉬면 곧 괜찮아질 겁니다.”

한립이 미소 지으며 개의치 않는다는 듯 답했다. 또 다른 거대 거북 위 객실이 열리고 남기자가 걸어 나왔다. 그는 신형을 띄워 한립을 향해 날아들더니 그의 손목을 잡고 정순한 영기를 불어넣었다.

“……금강결이 괜히 5대 연체 비술이 아니군요! 3성을 익혔을 뿐인데 이만한 위력이라니 대단합니다. 사악한 요수의 법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무리해서 돌덩이를 던지다 경맥이 터져나가 부상이 덧난 것입니다. 아마 한동안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

도사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스쳤으나 곧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요?”

그 말에 붉은 장삼 소녀가 더욱 기뻐했다.

“빈도가 거짓을 말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나저나 소회춘진이 멈춰서 앞으로 전투가 불리하게 돌아갈 듯합니다.”

남기자가 웃다가 영기의 빛을 잃은 진법도를 흘끗 보고는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렸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소녀 세 명의 안색이 급변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회춘진의 보조가 없자 수비병들은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다시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큰일입니다! 소회춘진의 진법도는 한 장 뿐인데다 방금 뱀 요수를 막다가 진법 깃발의 위력도 전부 소모해 버렸어요. 이제 어떻게 하죠?”

하얀 장삼 소녀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그거 문제로군요.”

도사가 미간을 좁히며 대책을 마련하려는데 사방에서 밀려들던 교전 소리가 뚝 끊기며 수비병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소녀들이 고개를 돌리니 수비병들과 혼전을 벌이던 사충수들이 흉흉한 기세를 지우고 흩어져 달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성공이에요! 류아 언니 무리가 요수를 처리했나 봐요.”

비취색 장삼을 걸친 소녀가 활짝 웃으며 외쳤다. 과연 멀리서 먼지바람을 뚫고 수십 명의 기병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격렬한 전투를 치렀는지 거대 늑대를 타고 달려 나갔던 이들은 이제 서른 명밖에는 남지 않았고 다들 자잘한 부상을 당해 온 몸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기병들이 거대 늑대를 몰아 서둘러 운송행렬로 돌아왔다. 흉터 거한은 무언가를 바닥에 내팽겨 쳤는데 황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벌레 요수의 머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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