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2화. 공간접점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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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색 장막의 은빛은 미친 듯이 반짝였고 쿠르릉 거리는 소리는 커져만 갔다.
굉음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며 점점 커져 대청 전체를 울렸고 공기 중의 영기가 진동에 빨려 들어가듯 농밀하게 뭉치기 시작했다.
놀란 한립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대청에 가득한 오색찬란한 영기의 빛들은 모두 남궁완에게 몰려들어 그녀는 이미 은색 장막 뒤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은색 장막도 불규칙적으로 변화하며 층층이 남궁완을 뒤덮고 각양각색의 색으로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시간이 흐르자 여섯 층으로 경계가 나뉜 두꺼운 보호막이 완성되었다.
“육정천갑부(六丁天甲符)!”
“육정천갑부라 불린다고요? 부군께서 아는 부적인가요.”
남궁완이 의외라는 듯 물었지만 법결을 멈추지 않았다. 보호막은 멈추지 않고 변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여섯 가지 색을 가진 갑옷으로 변해 남궁완의 몸에 착 달라붙었다.
갑옷의 표면을 타고 흐르는 아름다운 영기의 빛이 눈길을 끌었다.
“아마 맞을 거요.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대진에서 관련 경전을 읽은 적이 있소. 육정천갑부는 수사의 법력에 의해 발동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천지영기를 끌어들여 방어하는 부적이라고 하였소.”
한립이 두 눈을 반짝였다. 이것은 천부문(天符門)의 3대 비밀 부적 중 하나로 진작부터 찾고 있던 것이었다. 그동안 아무런 실마리도 없어 아쉬워했는데 완성된 육정천갑부를 얻게 되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설마 완이가 발견한 유골이 천부문의 장로였던가. 향지례가 혈금시련에 참여했던 것도 설마 이것 때문에…….’
갑자기 이런 추측이 들었지만 오래 고민하지 않고 남궁완에게 다가가 부적이 변한 갑옷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갑옷은 팔, 다리 그리고 머리를 제외한 온몸을 완전히 둘러싸고 있었고 매끄러운 표면에 주술이 새겨진 것이 굉장히 신비로웠다.
갑옷에 포함된 영력을 감지한 한립이 슬쩍 눈썹을 끌어올렸다.
“확실히 천갑부가 맞소! 하지만 경전에 적힌 바에 따르면 이 정도 위력이 아닐 텐데……. 완이, 혹시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오?”
“당연하죠. 그저 10분의 1정도의 위력만 발휘한 거예요.”
“정말 공간접점 내에서도 큰 도움이 되겠소. 그런데 유골에서 부적의 제련법에 대해서는 얻지 못한 것이오?”
“없었어요. 부적도 이것 한 장 뿐이었고요.”
남궁완이 고개를 저었다.
“허허, 내가 너무 과욕을 부렸소. 이미 부적을 얻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 것을.”
한립의 말에 남궁완이 부드럽게 웃으며 한 손으로 갑옷을 두드리자 갑옷이 산산이 부서져 내리며 다시 은색 부적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가볍게 입김을 불자 붉은 기운이 부적을 감싸 한립에게 가져다주었다. 한립은 사양하지 않고 부적을 잘 챙겨 넣었다.
그 후, 그들은 섬에 자리를 잡고 금실 좋은 부부가 되어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두 사람 다 이것이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앞으로 두 사람이 다시 만날 확률 보다 영원히 이별할 가능성이 훨씬 컸다. 그랬기에 둘은 감정에 모든 것을 맡기고 남은 시간을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다.
3년 후 어느 날, 한립은 남궁완과 해무 인근의 경치 좋은 산에서 차를 즐기며 한담을 나누다 갑자기 표정이 달라졌다.
잠시 후, 반절짜리 옥으로 만든 부적이 튀어 나와 그의 수중에 떨어진 것이다. 바로 만리부였다.
그가 만리부에 적힌 글자를 살피고는 곧 희색을 드러냈다, 그것은 뜻 밖에도 추마골에 남겨둔 인간형 꼭두각시가 보내온 소식이었는데 현천선등이 드디어 꽃을 피웠고 곧 과실을 맺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 * *
1년 후, 천남 추마골 중심부.
푸른 빛줄기가 날아들어 작은 골짜기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몇 개월 후 푸른 빛줄기는 다시 골짜기를 떠나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 한립과 빙봉이 약속한 30년 후가 다가오자 해무 속 거대한 빛덩이 아래로 다양한 복색의 수사들이 모여 들었다.
한립이 빛덩이 아래에 서서 진중한 얼굴로 그것을 응시하고 있었고 남궁완과 제자들도 무엇을 기다리는지 한 마디 말없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전금아와 이미 천죽교 교주가 된 석견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부님, 봉 선배님께서 오늘 오실까요? 오시(午時)가 지나 다시 봉인을 해제해야 하면 시간이 걸릴 텐데요.”
한립과 남궁완 뒤에 서 있던 전금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걱정 말거라. 한 달 전 이미 기별을 받았으니 오늘은 반드시 올 것이다.”
한립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답했다. 그 말을 들은 전금아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다시 조용히 기다리기 시작했다.
“…….”
다시 시간이 흐르고 한립이 눈썹을 꿈틀하며 고개를 돌려 해무의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그의 행동에 다른 이들도 같은 곳을 바라보았고 잠시 후 맑은 목소리가 울리며 해무를 헤치고 눈처럼 새하얀 빙봉이 나타났다.
빙봉의 속도는 극히 빨라 날개를 몇 번 펄럭였을 뿐인데 벌써 수사들이 모여 있던 곳에 도착했고 한기가 서린 빛을 방출하며 은색 장삼을 걸친 여인으로 변해 유유히 하강했다.
“늦은 건 아니죠?”
담담히 기다리고 있는 수사들을 훑어본 그녀가 한립을 향해 말했다.
“물론 아닙니다. 금아는 봉인 해제를 마무리 하고 있거라. 봉 수사, 저쪽으로 가서 서로에게 금제를 거시죠!”
한립이 고개를 돌려 분부를 하고는 빙봉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리고 먼저 몸을 날려 푸른 빛줄기로 변해 쏘아져나갔다.
그 말에 빙봉은 눈썹을 끌어올리며 은색 빛줄기로 변해 그 뒤를 쫓았다.
남궁완은 그저 그곳에 남아 둘이 사라진 방향을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그때 전금아의 지휘 아래 열댓 명의 수사들이 날아올라 거대한 빛덩이 아래에서 괴상한 진형을 이루었고, 각자 진법 깃발이며 원반 등을 꺼내들었다.
전금아의 명이 떨어지자 수사들이 동시에 진법 법기들을 들어 올렸고 대량의 광채가 치솟아 각각 빛기둥을 이루며 빛덩이 안으로 흡수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봉인이 점점 느슨해졌고 모호하게 보이던 빛덩이가 점점 또렷하고 선명해져 작렬하는 하얀 태양처럼 변해갔다.
그 날카로운 빛에 남궁완과 다른 수사들은 눈을 찌푸렸고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봉인 해제임무를 맡은 수사들은 전금아를 포함해 전부 미리 눈을 감고 있었고 의식으로 감응하며 법기를 조종하는 중이었다.
그때 남궁완의 어깨에 한립이 손을 올리며 정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그리 걱정되시오?”
남궁완이 고개를 돌리자 한립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에 그녀도 밝게 웃으려 노력했다.
“당연히 걱정 되죠! 하지만 수도의 길에서 대도를 추구한다는 것은 본래 천명을 거스르는 일이니까요.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인데 후회하거나 아쉬울 일이 있나요. 그보다 봉 수사와 서로 금제는 잘 걸은 거예요?”
“잘 되었소. 금제를 건 수사가 풀어주지 않으면 어찌할 방도가 없는 것으로 홀로 공간접점을 벗어나기 어렵게 되어 있소. 그러니 상대가 다른 마음을 품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오.”
“당신만 쓸데없는 수작을 부리지 않는다면 본 궁은 그럴 일 없습니다.”
그의 등 뒤로 하얀빛이 번뜩이며 빙봉이 공간을 찢고 튀어 나왔다.
“봉 수사, 공간 신통을 함부로 쓸 데가 아닌 것 같습니다. 공간접점에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법력을 아끼시지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할 것이니 걱정 마시죠.”
빙봉은 서로 금제를 맺어서 그런지 이전보다 훨씬 따뜻한 얼굴로 그를 대했다. 그러나 한립은 미소 지으며 더는 뭐라 하지 않고 남궁완과 나란히 서서 봉인이 풀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펑!
일각이 지나 허공의 빛덩이가 밝은 빛을 뿜어내더니 둔중한 폭음을 내며 삽시간에 빛이 사라졌다.
이제 그 자리에는 얼마나 깊은지 헤아릴 수 없는 칠흑 같은 구멍이 나타나 괴수의 아가리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한립은 내심 긴장이 되었으나 빙봉은 그저 눈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한 수사, 가십시다.”
이어 그녀가 은빛을 반짝이며 검은 구멍을 향해 천천히 날아올랐다.
한립이 입 꼬리를 꿈틀하더니 한 손으로 저물대를 쳤고 동시에 눈앞에 은빛이 번뜩이며 또 다른 ‘한립’ 이 나타났다.
바로 인간형 꼭두각시였다.
그가 두말 할 것 없이 손을 합장하고 인간형 꼭두각시의 머리를 번개처럼 내리쳤다.
팟!
그러자 새까만 원영이 꼭두각시 머리 위에서 나타나 검은빛을 반짝이며 한립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꼭두각시는 줄어들어 몇 촌 가량의 목각 인형으로 변했다.
그리고 한쪽 소매를 펄럭여 두 개의 남색 솥과 삼색 화염을 동시에 꺼냈다.
“완이, 이것들은 공간접점을 통과하는데 별 소용이 없을 것이요. 인계에서 어떤 위기를 만나든 이것들이 도움이 되어 줄 것이요.”
한립이 소매를 펄럭여 푸른 기운으로 네 가지 보물을 밀어내 남궁완에게 보냈다.
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푸른 빛줄기로 변해 빙봉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궁완은 이를 악물고 손을 뻗어 인간형 꼭두각시와 보물들을 잡고 한립의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창백해 핏기라고는 전혀 없어 보였다.
그때 빙봉이 검은 구멍 앞에 서서 한립이 나타난 것을 보고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남궁 수사와 할 말이 더 있을 줄 알았는데요. 본 궁은 급하지 않으니 좀 더 시간을 보내시지요.”
화신기 요족 수사는 인간적인 정을 베풀었다.
“아닙니다. 완이와 해야 할 이야기는 이곳에 오기 전에 모두 마쳤습니다. 이제 힘을 합쳐 공간접점을 통과하는 데만 집중해야지요.”
깊게 숨을 들이마신 한립이 차분히 말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뒤통수를 내리쳐 푸른빛을 번뜩이는 작은 솥을 불러냈고 그 발밑에는 비취색 빛이 반짝이며 녹색 자가 괴이하게 떠올라 은색 연꽃을 피워냈다.
그의 소매가 펄럭이고 은색 부적이 날아올라 갑옷으로 변해 몸에 달라붙었고, 72개의 금빛 비검이 솟아올라 금빛을 반짝이며 주위를 맴돌았다.
동시에 한립이 손바닥을 뒤집자 금빛 찬란한 원형 고리와 수 촌 가량의 옥 우산이 손에 들렸다.
그 모습에 빙봉이 조금 놀란 눈빛을 보내다가 차분히 어깨를 털어 열댓 개의 하얀 빛을 분출했다. 그것은 각각이 수정처럼 투명한 깃털이었다.
기다란 깃털이 허공을 선회해 하얀 보호막으로 빙봉을 보호했을 때 그녀의 은색 장삼에 기이한 영기의 빛이 흐르며 뜻밖에도 천 마리의 새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올랐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그녀가 뱉어난 반투명한 얼음 배였다. 입에서 나올 때만해도 몇 촌 밖에 하지 않던 배가 별안간 열댓 장 크기로 커져 둘 앞에 떠오른 것이다.
“제 동천주(洞天舟)는 만 년 넘게 한원을 응결해 만들어낸 최상급 방어용 법보입니다. 한동안은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니 공간접점 초입에서의 어려움을 줄여줄 테죠.”
빙봉의 신형이 흐릿해져서는 얼음 선박 위에 올라탔다. 한립도 주저 않고 그 위에 올라섰고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보물을 꺼내 놓으시다니 저도 힘을 보태야겠군요.”
말을 마친 그의 등 뒤로 대량의 잿빛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검은 그림자가 번뜩이며 초소형 산이 떠올랐다.
빙봉은 자세히 봐도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없었는데 검은 산이 잿빛 기운 속에서 천천히 날아올라 얼음 배 위에 내려앉았다.
이어서 한립이 수결을 맺자 검은 산이 대량의 잿빛 광채를 뿜어내 얼음 배를 통째로 감쌌다.
빙봉은 잿빛 기운이 기이하다는 것을 감지하고는 별 다른 말없이 얼음 배를 움직였다.
그러자 얼음배가 잿빛 기운 안에서 은색 보호막을 만들어 내더니 슉! 하고 검은 구멍 안으로 들어가 종적을 감추었다.
아래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수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눈을 부릅뜨고 검은 구멍을 바라봤지만 시간이 지나자 대다수가 실망하고 말았다.
검은 구멍은 얼음배가 들어간 뒤에도 파문이 일지 않고 그대로였던 것이다.
“금아야, 이곳은 제자 둘을 남겨 지키게 하거라. 나머지는 돌아가자꾸나.”
드디어 남궁완이 시선을 떼고 전금아를 향해 차분히 명했다.
“존명!”
전금아는 공손히 답한 후 결단기 수사 둘을 불러 이곳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는 남궁완을 따라 작은 섬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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