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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30화 (487/2,000)

730화. 천하를 약탈하다

*

해무로부터 백만 리 떨어진 고공에서 한립이 푸른 빛줄기로 변해 날아가고 있었다.

“한 수사, 정말 빙봉과 연합해 공간접점에 들어갈 셈인가?”

그의 소매 속에서 푸른빛이 날아올라 그 앞에서 멈추었다. 한립은 조금 의아하다는 듯 사내아이를 쳐다보았다.

요 몇 년간 필요한 재료나 단약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사내아이가 갑자기 요족 수사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할 듯합니다. 상대는 공간 신통을 타고 났으니 공간접점에 들어가면 도움이 되겠지요.”

“그건 그럴 걸세. 비록 빙봉이 진정한 천봉(天鳳)의 혈맥은 아니지만 공간 신통은 약간 전승한 듯 하구만. 허나 수사가 인계를 떠나기 전 노부의 구속을 풀어주겠다고 약조했던 것을 잊지는 않았겠지?”

“잊을 리 없지요. 그런데 천란 수사께서도 금궐옥서의 잔본을 연구하신지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 무언가 공유하실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한립은 태연한 기색으로 오히려 금궐옥서의 잔본을 언급했다.

“금궐옥서에 적혀 있는 부적을 일부 해석하기는 했네. 다만 정확한 해석인지는 노부도 장담할 수 없네! 또한 선가의 부적을 천지원기가 이렇게 희박한 인계에서 펼칠 수도 없을 테고 말이야. 억지로 술법을 펼치려한 수사는 기운이 고갈당해 말라 비틀어 질 테니까. 내가 이해한 일부라도 알고 싶은 것이 맞는가?”

사내아이는 미간을 좁혔다.

“당연히 원합니다. 금궐옥서도 돌려받아야 하고요. 만일 영계에 이를 수 있다면 스스로 천천히 연구해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받으시게!”

사내아이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한 발로 작은 솥을 밟았고 솥뚜껑이 스륵 밀리며 작은 틈을 만들어냈다.

팟!

노란색과 녹색 빛이 각각 솥을 빠져 나와 한립에게 붙들렸다. 바로 노란 목갑과 비취색 옥간이었다.

목갑을 열자 불완전한 옥패가 담겨 있었다.

비취색 옥간은 의식으로 훑어보니 옥패에 대한 해석이 담겨 있었는데 그 한 글자 한 글자가 현묘해서 바로 무언가를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가짜는 아닌 듯했다.

한립은 두 물건을 저물대에 넣은 후 빙그레 웃었다.

“저도 약조를 어기지 않겠습니다. 즉시 비술을 이용해 수사의 원신과 허천정 사이의 연계를 서서히 끊어내지요. 그래도 수십 년은 걸릴 터이니 조급해하지 마셔야 합니다.”

“조급해 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노부는 그저 수사가 영계로 승천하기 전에 자유를 되찾기만 하면 되네!”

사내아이는 한립의 말에 흡족해하더니 신형이 흐릿해져 사라졌다.

잠시 생각하던 한립이 입에서 푸른 기운을 뿜어 작은 솥을 감쌌고, 작은 솥은 푸른 기운 속에서 급속도로 축소되더니 그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그의 체내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있던 원영이 번뜩 눈을 떴다. 작은 손을 움직이자 한 촌 크기의 푸른 솥이 괴이하게 그 앞에 떠오른 것이다.

원영은 두 손으로 수결을 맺자 푸른 영기의 빛이 퍼져나가 몸과 솥을 휘감았다. 그러나 한립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속도를 높여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계 각지의 수도계에는 정체 모를 수사가 나타나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한 보물과 비술을 모으고 다녔다.

공간 신통에 관련된 것들이거나 강력한 방어 능력을 지닌 것들이었다.

신비한 수사는 눈이 높아 한 곳에서 여러 가지 보물이나 비술을 눈독 들이지는 않았고, 나타날 때마다 얼굴이나 체형, 복색 등이 달라 추적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어찌나 민첩하고 깔끔하게 움직이는지 아무리 강력한 금제가 쳐져 있어도 소리 없이 드나들고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사정을 아는 수사들이 유일하게 파악한 것은 상대의 수행이 헤아릴 수 없는 경지라 원영기 수사도 아이 다루듯 한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신비한 수사는 그저 보물만을 노려 다른 수사들을 부상은 입혀도 죽이지는 않았다.

이렇게 1년, 1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     *     *

70년이 흐른 어느 날, 천사대륙(天沙大陸)의 어느 높은 산 정상.

그 신비한 수사는 암석 위에 서서 그를 노려보는 두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그는 턱수염과 콧수염을 길게 기른 중년 유생의 모습을 하고 새까만 장포를 입고 있었다.

노인들은 원영 초기와 중기의 수행을 지녔는데 천사대륙에서는 거의 최정상에 선 존재들이었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훔쳐간 금삭환(金爍環)을 당장 내놓으시지요! 본 종에 숨어들어 보물을 훔쳐내다니, 그것이 원영기 수사께서 할 만한 행동입니까.”

눈썹이 짙은 노인이 사납게 소리쳤다.

상대의 속도가 그다지 빠르지 않아 쫓고 쫓기다 이곳에 이르렀지만 상대의 수행을 도저히 파악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당장 공격하지 못하고 말로 상대를 떠본 것이다.

신비한 수사가 눈을 반짝이며 손을 들어 무언가를 노인에게 던져주었다. 놀란 노인이 허공에 손을 뻗어 끌어들여보니 뜻밖에도 저물대였다.

“금삭환이 꼭 필요해서 말입니다. 그 안에 든 영석이면 보물 값은 될 터이니 거래를 한 것으로 하지요.”

신비한 수사는 무표정하게 쉰 목소리로 말했다.

“거래는 무슨! 금삭환은 본 종의 지보라 아무리 많은 영석을 준다 해도 팔 생각이 없습니다.”

노인은 저물대 속 영석의 양에 깜짝 놀라다가 상대의 말을 듣고 화를 냈다.

“그렇다면 나도 방법이 없군요. 보물은 돌려 줄 수 없습니다.”

“그럼 수사의 목숨까지 내려놓고 가시지요!”

또 다른 매부리코 노인이 음산하게 중얼거리더니 입을 벌려 붉은 빛을 방출했다.

붉은빛이 번뜩이며 순식간에 신비한 수사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상대가 보물을 내놓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원영 중기 수사가 먼저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그러나 불가사의 한 일이 벌어졌다.

신비한 수사가 어떤 보물도 발동하지 않고 한 손으로 허공을 가르니 잿빛 기운이 갑자기 생겨나 뻗어 나갔다.

붉은 빛은 잿빛기운에 닿는 순간 영기의 빛을 잃고 원형으로 돌아갔는데 검붉은 색의 비검이었다. 작은 검은 잿빛 기운 속에서 빙글빙글 돌며 통제를 잃은 것처럼 보였다.

비검을 방출한 매부리코 노인이 그 것을 보고는 분노했는데 그때는 이미 비검과의 의식 연계가 끊긴 후였다.

곁에서 지켜보던 짙은 눈썹 노인이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기합 소리를 내지르며 소매를 털어 금빛이 감도는 네모난 물건을 발동했다.

각진 물건이 몸집을 불리며 거대 금색 벽돌로 변해 떨어져 내렸는데 마치 작은 산이 움직이는 듯했다.

그것을 보고 신비한 수사가 미세하게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다른 손을 들어 머리 위에 반원을 그렸다.

굵은 회색 기운이 위로 치솟아 금색 거대 벽돌과 충돌했다. 그러나 잿빛 기운에 휩싸인 벽돌도 영기의 빛을 잃고 줄어들었고 곧 통제를 잃고 나뒹굴었다.

신비한 수사의 손짓에 금빛 벽돌과 검붉은 비검이 그대로 떨어져내려 그의 수중에 들어가려 했다.

매부리코 노인이 급한 마음에 허공을 쥐었고 하얀 거대 손이 나타나 신비한 수사를 내리치려 했다. 그러나 아래쪽 수사도 한 손으로 허공을 튕겼다.

금빛이 번뜩이며 금색 검기가 허공을 갈랐고 하얀 거대 손은 반으로 갈라져 흩날렸다. 그제야 매부리코 노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두 개의 보물을 거머쥔 신비한 수사가 공중의 두 노인을 향해 냉랭히 말했다.

“이것까지 더하면 거래할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두 노인은 마음이 무거웠다. 상대는 순식간에 그들의 보물 두 개를 가로챘고 비술을 흩어버렸다.

회색 기운이 무엇인지 몰라도 역천의 신통을 지닌 것만은 분명했다. 이제 그들도 더는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신비한 수사가 그것을 보고 씨익 웃더니 들고 있던 보물들을 공중에 던져두고 푸른 빛줄기로 변해 사라졌다.

노인들이 놀라 수결을 맺으며 보물들을 회수한 후 멀어지는 둔광을 보고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사형, 쫓아야 할까요?”

한참 후, 짙은 눈썹 노인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쫓기는 누굴 쫓는단 말인가? 상대가 봐줄 때 눈치껏 빠져야지! 괜히 성미를 건드려 살심을 불러 일으켰다가는 사단이 날 것이야.”

“하지만 금삭환은 본 문의 보물 중의 보물입니다. 이렇게 잃어버리고 나면 문 내의 다른 이들에게 어찌 해명한단 말입니까?”

“해명 못할 것은 또 무엇인가? 전부 우리 사형제의 신통이 상대에 미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을! 수도계란 본디 약육강식의 세계이네. 금삭환도 처음부터 본 문의 보물이었던 것이 아니라 조사 중 한 분께서 다른 문파에서 빼앗아 온 물건이지! 이제 다른 강자가 나타나 가져갔으니 그저 운이 나빴다고 여기면 될 일이야. 일단 돌아가세. 우리는 살아남아 앞으로도 종문을 지킬 사명이 있지 않은가.”

매부리코 노인이 쓴웃음을 짓더니 먼저 붉은 빛줄기가 되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고 짙은 눈썹의 노인도 잠시 멍하니 있다 그 뒤를 따랐다.

그곳에서 멀리 떠나온 신비한 수사는 수만 리를 날아간 끝에 갑자기 공중에서 멈추었다.

뿌득! 퍼퍽!

푸른 빛 속에서 살과 뼈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리며 인영의 키가 한 촌 가량 커지며 평범한 얼굴의 청년으로 변해갔다. 바로 한립이었다.

소매를 펄럭이자 금빛 고리가 손바닥 위에 나타났는데 잡고 흔들어 보니 무수히 많은 환영이 어른거리는 것이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이 정도면 최근 얻은 보물 중 세 손가락 안에는 들겠구나!”

한립이 미소를 지으며 만족스럽게 중얼거렸다.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이제 한 수사도 그만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공간접점이 언제 붕괴할지 모르니 말이야.”

소매 속에서 사내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란 수사께서 말씀하시지 않아도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간 손에 넣은 보물과 비술들이 네다섯 개를 제외하면 만족스럽지 않군요. 명성만 자자하고 실제로는 별 것 아닌 경우가 많아 공간접점 내부에서는 그다지 쓸모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인계의 고보들이 팔령척 같은 영보의 능력을 발휘하기를 바라면 쓰겠는가? 어찌 되었든 없는 것 보다는 나을 걸세. 또 인계를 이리 저리 오가는 동안 금궐옥서의 내용도 어느 정도 익혔겠지. 이런 것들이 쌓여 자네의 목숨을 살릴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기를 바라야지요.”

한립은 그의 말에 답하며 무의식중에 소매 속의 한 손을 꽉 쥐었다 풀었다.

천란수가 변한 사내아이는 몰랐지만 요 몇 년간 그가 얻은 최고의 수확은 이 보물들이나 법결 또는 금궐옥서의 내용이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한립은 저물대에 챙겨온 용린과를 일정 기간 마다 복용해 엄청난 괴력을 지니게 되었다. 이제 인계 수사들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까지 힘을 기른 것이다.

당시 그는 용린과 나무를 추마골에 옮겨 심고 인간형 꼭두각시를 시켜 다른 영약들과 함께 그 과실을 개자 공간 내부로 공급하게 했다.

그러나 한립이 용린과를 매일 복용한 것은 아니었다.

약성이 미미하다고 하지만 복용할 때마다 철저히 연화시키지 않으면 몸에 무리가 갈 것이 틀림없었다. 금교왕이라면 인간을 초월하는 강인한 체질 덕에 매일 복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폐관 수련을 하는 동안 그는 화신기를 돌파하느라 영과를 연화할 시간이 부족해 십 년 정도 복용하다 중단하고 청원검결을 익히는 데만 전력을 다했다.

그래서 오룡해에 가기 전, 특별히 잘 익은 용린과들을 가득 저물대에 담아 온 것이다.

그간 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영과를 복용하는 동시에 금교왕의 저물대에서 얻은 쉬골결(淬骨決)을 수련하며 약효를 높였다.

놀랍게도 쉬골결이 용린과와 잘 맞아 수련하기 어렵다던 법결의 진도도 팍팍 나갔던 것이다.

그렇게 겨우 수십 년 만에 그는 쉬골결을 몇 성이나 익혀낼 수 있었다.

이제 그의 골격은 배는 두꺼워졌고 희미하게 금빛을 내서 명왕결을 펼쳤을 때와 피부의 색이 비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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