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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29화 (486/2,000)

729화. 공간접점

*

이제 거대한 빛덩이와 한립만이 허공에 떠있게 되었다. 고개를 들어 거대한 빛덩이를 보는 그의 표정이 어두웠다.

방금 세 수사들과 나눈 이야기에 마음이 심란해진 것이다. 그들 말대로라면 입구는 겨우 백 년 밖에 버티지 못하니 그 안에 공간접점에 진입해야 했다.

준비 기간이 부족할수록 저 안에서 죽을 위험이 컸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아무리 천 년이 넘는 수명이 남았다 해도 영계로 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향지례와 풍 노괴 등도 공간접점을 찾자마자 주저 없이 들어갔을 리 없었다.

물론 아직 향지례에게 넘겨주지 않은 자료가 있었지만 그 중 쓸 만한 것을 찾아낼 가능성은 희박했다.

이런 생각을 하자 한립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렇게 거대한 빛덩이 아래에서 멍하니 반나절을 보낸 그는 푸른 빛줄기로 변해 다시 섬으로 돌아갔다.

세 명의 남녀 수사들은 미리 그를 위해 제일 큰 누각을 비웠고 깨끗이 정리해 그가 쉴 수 있게 했다.

한립은 그들의 정성에 만족했고 그 간의 공로를 생각해 그 자리에서 세 개의 보물과 여러 단약들을 내려주었다. 결단기 수사들은 대단히 기뻐하며 감격해했다.

이후 한립은 만리부를 이용해 멀리 난성해에 있는 남궁완 등과 연락을 취했다.

새로 모집한 결단기 수사들을 몇 보내주고 특히 전금아를 함께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현재 전금아는 그가 준 단약을 복용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각종 진법을 연구하는데 쓰고 있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데다 많은 시간이 주어지자 수확도 커서 진법에 한해서라면 이제 한립을 훨씬 능가하는 실력자가 되었다.

이번 공간접점에 들어가는데 진법에 조예가 깊은 그녀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한립은 거의 매일 거대한 빛덩이 아래로 날아가 입구의 변화를 관찰했고 돌아와서는 열심히 무언가를 고민했다.

*     *     *

1년 후, 전금아가 네 명의 결단기 수사들을 데리고 드디어 작은 섬에 도착했다.

한립은 원래 이곳을 지키고 있던 세 결단기 수사들이 떠날 수 있게 허락했고 그들이 하던 일들을 전금아 등에게 인계할 것을 분부했다.

전금아는 여전히 결단 후기를 배회하고 있었지만 한립이 특별히 회양수를 베푼 후 수명이 크게 늘어난 상태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죽기 전에 원영을 응결할 수 있을 지는 그녀의 운에 맡겨야 할 터였다.

한립은 전금아가 도착하자마자 그녀를 데리고 공간접점을 보러갔다.

입구의 봉인을 강화해서 그에게 조금 더 시간을 벌어줄 방법이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아쉽게도 전금아조차 공간의 압력이라는 불가사의한 힘이 작용하는 공간접점에 대해서는 점차적으로 봉인을 강화하는 방안을 떠올렸을 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방법으로는 입구의 붕괴를 막을 수 있을 확률은 2에서 3할에 불과했다.

너무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였지만 한립은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그녀에게 그리 하라고 일렀고 필요한 재료들을 구해주었다.

이렇게 한립은 그곳에서 5, 60년의 세월을 보냈다.

*     *     *

그동안 그는 향지례 문하의 제자들이 말했던 것처럼 공간접점 입구가 매년 요동치며 날이 갈수록 더 자주 동요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금아가 아주 복잡한 진법을 설치하며 공간접점에 봉인을 한 겹 더 덧대는 동안 그는 인계 곳곳을 돌며 특수한 방어용 보물과 비술들을 모아 공간접점에 들어갈 준비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가 출발하기 며칠 전, 해무 밖에서 영기의 파동이 번뜩이더니 은빛이 날아들었다.

빛이 가시고 은색 장삼을 입은 절색의 미모를 지닌 여인이 해무 밖에서 나타났는데 짙은 눈썹과 오뚝한 코 그리고 반짝이는 눈을 지닌 젊은 여인이었다.

희미하게 은빛이 요동치는 눈빛으로 해무를 훑어본 그녀가 손바닥을 뒤집어 옥간을 꺼내들었고, 의식으로 내용을 훑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천마종 수사들의 공간접점이 있다던 곳이 이곳이로구나.”

그녀는 뜻밖에도 이곳에 공간접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인은 주저 없이 은빛 줄기로 변해 뛰어들었고 해무가 한참동안 출렁였다.

이제 해무 속 작은 섬은 한립이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달라져 있었다. 전금아가 공간접점 봉인을 강화하는 동시에 공을 들여 작은 섬 주변에 오묘한 진법들을 여러 개 설치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은빛 장삼의 여인은 원영기 수사라도 갇히면 한 동안은 꼼짝을 못할 진법을 발동시키고 말았다.

주변 공간에 무수히 많은 뇌화들이 생성되어 여인을 향해 호되게 날아들었고 그 뒤를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들이 빼곡하게 뒤따랐다.

여인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조금 놀란 듯 했으나 코웃음을 치며 한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하얀 삭풍이 그녀 주변으로 치솟아 별안간 도처를 휩쓸며 폭풍처럼 바람기둥을 형성했다.

콰르릉!

바람 소리만으로도 하늘이 쩌렁쩌렁 울렸고 모든 공격들이 바람기둥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 은색 장삼 여인에게는 도달하지도 못했다.

이렇게 소란스러운데 섬을 지키던 결단기 수사들이 모를 리 없었다.

놀란 그들이 분분히 빛줄기로 변해 날아올랐고 그것을 보는 은빛 장삼 여인의 눈에 흉흉한 빛이 떠올랐다.

돌풍 속에서 여인이 하얀 손을 들어 올려 무언가를 쏘아 보내려 했다. 그런데 그때 그녀의 귓가에 홀연히 한립의 목소리가 울렸다.

“봉 선자께서 너그럽게 봐주시지요! 저들은 제 수하들이고 그저 명에 따라 움직였을 뿐입니다.”

“당신은?”

은색 장삼 여인이 목소리를 듣자마자 안색이 변해 들어 올렸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 있는 거죠? 설마 한 수사도 화신기에 이른 건가요?”

은색 장삼 여인은 지난 날 빙해의 주인으로 불렸던 10급 빙봉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한립이 원영 중기에서 후기로 진입하는 것을 직접 보았었는데 이제는 몇 백 년 사이에 또 화신기 수사가 되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인계에 원영 후기 수사는 꽤 많겠지만 화신기 수사는 손에 꼽히지 않은가!

“봉 선자도 화신기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이곳을 어떻게 찾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공간접점 때문에 온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저와 이야기 하시지요. 이번 일은 둘이 힘을 합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립은 가볍게 웃으며 전음을 보냈다. 그 말이 끝나자 돌풍 주위로 몰아치던 뇌화며 바람의 칼날들이 스스로 사라졌다.

아래쪽에서 날아들던 네 명의 결단기 수사들도 한립의 전음으로 그녀가 화신기 요족 수사라는 것을 알았기에 양쪽으로 물러서 공손히 그녀를 맞이했다.

“…….”

빙봉은 어두운 얼굴로 생각하다가 눈썹을 끌어올리고는 네 명의 결단기 수사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은빛으로 변해 아래쪽 섬으로 날아갔다.

결단기 수사들은 내심 마음을 놓으며 바로 그 뒤를 쫓았고 눈치 있게 빙봉을 섬에서 가장 큰 누각으로 안내했다.

여인은 그곳에서 의복을 휘날리며 서 있는 청년을 볼 수 있었다.

“한 수사, 먼저 이곳을 차지하고 계시다니 동작도 빠르십니다. 그래서 공간접점은 어디 있습니까?”

빙봉은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로 한립과 열댓 장 떨어진 곳에 내려섰다. 한립이 미소 지으며 손을 내저어 결단기 수사들을 물렸다.

“이곳까지 오셨는데 그리 서두를 것 없지 않습니까? 공간접점은 머지않은 곳에 있으니 이야기가 끝나는 대로 직접 안내하지요.”

“우리 사이에 할 이야기가 있던가요? 똑같이 화신기에 진입했다고 유세라도 떨고 싶으신 겁니까.”

여인의 목소리는 서늘했지만 한립을 경계하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수사께서 공간접점을 찾는 이유는 영계로 승천하기 위해서겠지요. 저도 똑같습니다. 그러니 서로 협력하자는 것입니다.”

“협력? 인간 수사와요?”

“향 수사 등이 어찌 되었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곳에 올 수 없었을 테니까요. 수사는 공간 신통을 타고나 주변 공간을 찢어낼 수 있으니 공간접점에 진입해 경계 간 압력을 이겨내는 데도 큰 도움이 되겠지요. 제 신통이야 지켜보셨으니 수사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게다가 저는 통천령보를 두 개나 지니고 있으니 선자의 발목을 잡을 일도 없습니다. 우리가 협력한다면 홀로 공간접점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듣자니 차 노요는 홀로 다른 공간 접점에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그가 원신등을 남겨 놓지 않아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보다 훨씬 불안정한 곳을 택해 들어갔으니 결과야 뻔하지 않겠습니까?”

한립이 서두르지 않고 그녀를 설득했다. 그 말을 들은 빙봉이 얼음장 같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난 화신기에 이른 후 수명이 배는 늘었습니다. 인계에서 몇 만 년 더 머물러도 아무 상관없단 뜻이지요. 굳이 당신과 조급히 영계로 올라갈 이유가 있습니까?”

“그렇습니까? 그럼 그 수명이 다해 갈 때는 어쩔 생각입니까. 봉 선자는 설마 공간접점이 곳곳에 널려 있고 영원히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게 무슨 소리죠?”

“이곳의 공간접점은 기껏해야 백 년 밖에 버티지 못하고 붕괴되어 사라질 겁니다. 봉 선자께서 인계에 남아 다른 공간접점을 찾을 자신이 있다면 제 제안은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저를 속이는 거 아닙니까?”

여인이 흠칫 놀라며 불신을 드러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봉 선자께서 직접 지켜보면 알게 될 겁니다. 저는 잠시 돌아다니며 경계 간 압력에 저항할 방법을 찾아 이곳을 떠나있을 예정입니다. 문하의 여 제자에게 이곳을 맡겨 놓을 생각이니 필요한 일이 있으면 편히 불러 분부하시고, 한가할 때면 수련 상에 지도나 조금 해주시면 제자를 대신해 감사드리겠습니다.”

한립이 시원스럽게 더는 강요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이곳을 떠나 있겠다고요? ……보아하니 정말 조만간 공간접점에 들어갈 생각이군요. 흥, 수사께서 이리 간절히 청하시니 잠시 이곳에 머무르지요. 허나 지금 한 말에 거짓이 있을 시엔 즉시 떠날 것입니다.”

빙봉은 의외라는 듯 잠시 고민을 하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협력하자는 한립의 말을 완전히 거절하지는 않은 것이었다.

한립이 기뻐하며 손을 펼쳤고 불덩이가 허공을 가르며 사라졌다. 전음부였다.

잠시 후 하얀 빛줄기가 공간접점 방향에서 날아들어 그들 곁에 떨어져 내렸다. 노란 장포를 입은 호리호리한 여인이 얼굴을 드러냈다.

“사부님을 뵙습니다.”

전금아가 한립을 향해 예를 올리고는 두 손을 모으고 한쪽에 섰다.

“당신의 직전 제자인가요. 음? 용음지체가 아닙니까.”

여인이 전금아의 몸을 훑더니 이상하다는 얼굴을 했다.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제자 아이가 여인의 몸으로 이런 체질을 타고났다는 것이 큰 불행이지요. 듣자니 빙봉 일족이 수련하는 본명한원(本命寒元)이 신묘해서 음양의 조화를 조절하는데 특효라지요. 혹시 제 제자 아이에게 몇 방울 나눠주실 수 있다면 앞으로는 이런 구속에서 벗어나 대도(大道)를 이룰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간 전금아의 용음지체에 대해 따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으나 그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각종 경전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용음지체를 해결할 해결책이 눈앞에 나타났으니 이 정도 부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몇 방울이요? 본명한원처럼 진귀한 것을 인간 수사에게 내줄 리 있습니까? 그래도 한 수사께서 기왕 말씀하셨으니 언제고 제 기분이 좋은 날 다시 이야기 하시지요.”

“그러시지요! 금아야, 너도 봉 선배님의 말씀을 들었겠지? 봉 수사께서 섬에 잠시 머물러 계실 터이니 그동안 잘 모셔야 한다.”

한립은 화내는 기색 없이 웃으며 전금아에게 의미심장하게 명했다.

자신의 용음지체를 극복할 방법이 있다는 사실에 눈을 반짝이던 전금아가 그의 말에 크게 기뻐하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빙봉은 그런 한립을 어이없다는 듯 봤지만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이후의 일은 아주 간단했다.

한립이 직접 빙봉을 데리고 공간접점을 보러 다녀왔고, 보름 간 섬에 머물다 봉 수사가 전금아를 배척하는 것 같지는 않자 안심하고 작은 섬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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