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7화. 오룡해(五龍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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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립은 즉시 푸른 빛줄기로 변해 약재밭을 떠났고 산골짜기의 구석으로 날아갔다. 그가 둔광을 거두고 내려선 곳은 한 장 크기의 소형 전송진이 있는 곳이었다.
한립은 조용히 그곳에 서있었다.
잠시 후 전송진이 스스로 빛을 발하며 푸른 인영을 전송했다. 인영이 한 걸음에 전송진을 나서자 또 다른 한립이 앞으로 다가왔다.
“그간 수고 많았다. 네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영약들을 보내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화신 초기의 최고봉에 도달하지는 못했을 것이야.”
전송진에서 나타난 한립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자를 앞에 두고 빙그레 웃었다.
“내가 당신이고 당신이 바로 나입니다. 구분 지을 필요 없습니다.”
약재밭 ‘한립’이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히 말했다. 그는 바로 두 번째 원영이 조종하는 인간형 꼭두각시였다.
개자공간에서 폐관수련을 마치고 막 출관한 진짜 한립은 낙운종을 떠난 지 벌써 3백 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남궁완을 데리고 낙운종을 떠나 상고 전송진을 통해 그녀를 난성해로 데려갔다.
그리고 약간의 신통을 이용해 영맥이 있는 외진 곳을 점거한 다음, 남궁완 등을 그곳에 두고 홀로 천남 추마골로 돌아왔다.
개자공간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가 원자신광을 수련하기 위해서였다.
그 전에 한립은 천기부를 방출해 서금충 등 영충과 영수를 넣어 두고 약재밭을 만들어 모자봉에서 옮겨온 현천선등, 용린과 나무 등을 가져다 심었다.
그리고 그곳에 인간형 꼭두각시를 남겨두고 신비한 병을 주어 관리하도록 했다.
그러고도 혹시나 다른 수사들이 침입해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1년 여 동안 초대형의 기이한 상고진법을 펼쳐 수사들의 의식과 오감에 혼란을 일으키는 미무(迷霧)로 추마골 중심부를 뒤덮었다.
준비를 마친 그는 두 번째 원영에게 몇 가지 분부를 내린 후 전송진을 통해 개자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원자신광을 수련하기 전, 한립은 사내아이의 조언대로 금교왕의 내단을 특수한 방식으로 제련해 금속 속성의 단영근(丹靈根)으로 만들었다.
그와 사내아이는 까맣게 몰랐지만 그들이 편의를 위해 한 일이 원자신광의 치명적인 결점을 해결했던 것이다.
이것은 정말 한립이 운수가 대통한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백 년을 낭비하고 나서야 이상한 점을 발견했을 텐데 그때 가서 처음부터 다시 수련해야했다면 그 폐해가 얼마나 컸겠는가?
그러나 한립의 원자산 수련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앞의 몇 성까지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마지막 1성을 남겨두고 빈번하게 고비를 만나 수차례 주화입마에 들 뻔했던 것이다.
수중에 영약이 무수히 많고 또 신비 병으로 제때에 숙성시키지 않았다면 이 난관을 넘어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자신이 수련하는 오행지력과 원자산의 원자력(元磁力)을 하나로 융합했기에 수십 년 동안 원자산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의지가 대단한 수사가 아니고서는 이런 고통 속에서 수련을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개자공간에서 2백 년 넘게 수련한 끝에 드디어 공법을 대성했고, 원자산 역시 철저히 연화해 자유롭게 체내에 집어넣고 보물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에는 일이 술술 풀려갔다.
적당한 기회를 봐서 ‘마원단’ 등 다양한 영약을 복용했고 거기다 극품영석과 다섯 종류의 한염의 보조를 받으며 단번에 화신 초기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화신기 수사가 된 한립은 초보적인 단계이지만 천지원기를 움직여 비바람을 부르는 등 속세에서 신선이라 불리는 자들과 다들 바 없는 신통을 부리게 되었다.
한립은 몹시 기뻐하며 바로 추마골을 떠나 난성해에 다녀왔다.
그동안 남궁완과 문하의 제자들은 인근 수십 개의 섬을 통제하는 난성해의 꽤 큰 세력으로 발전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립이 화신기 수사가 된 것을 보고 기뻐하며 축하했다.
남궁완 역시 그가 준 대량의 단약을 복용해 후기의 수행에 올랐는데 하루라도 빨리 원영 후기를 대성해 화신기 진입에 도전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송여인이 찾아낸 이종 영근자 석견도 자질이 워낙 뛰어나 수백 년 만에 이미 원영을 응결하는데 성공했다.
기쁘고 안심되는 소식들이었지만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모패령이 수명이 다해가자 조급하게 원영기 고비를 넘기려다 폐관 수련 중 주화입마에 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법력에 반서를 당해 그대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한립은 마음이 무거웠다. 명의상이었지만 시첩이었던 그녀를 위해 한립은 직접 묘지를 찾아 제를 올려주었다.
이후 그는 섬에 남아 남궁완과 함께 십여 년을 보낸 후 수련하기 위해 천남으로 돌아왔다.
한립은 석견을 천남으로 데려와 그로 하여금 극서 지역의 천죽교(千竹敎) 교주의 자리를 빼앗고 대연신군의 계보를 이을 것을 명했다.
예전부터 한립에게 대연신군의 일을 들어왔기에 석견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는 천남으로 오자마자 한립에게 예를 올리고 홀로 극서 지역으로 떠났다.
이미 원영기에 이르렀으니 천죽교를 손에 넣는 일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석견이 떠난 후 다시 추마골로 돌아온 한립은 즉시 화신기 수련을 계속해나갔다.
풍희에게 알아낸 영목을 옮겨 심는 비술을 통해 그는 개자공간 내의 영약을 밖으로 옮겨 심어 그동안 제련해내지 못했던 강운단(絳雲丹)을 원하는 만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강운단이 원영기 수사를 위한 단약이라지만 약성이 워낙 강력해서 화신기 수사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풍부한 영단으로 인해 지지부진했던 화신 초기 수련도 빠른 진척을 보였다.
백 년의 고된 수련 끝에 그는 단숨에 초기의 최고봉 수준에 이르렀고 청원검결의 마지막 1성까지 원만히 익혀냈다.
그러나 이제 강운단도 아무 효과가 없었고 인계의 천지원기도 너무 희박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화신 중기에 이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는 폐관 수련을 하며 원자신광을 익히고 화신기 고비를 넘기는 동안 만리부를 통해 향지례 등 대진의 화신기 노괴들과 연락을 이어갔다.
그들에게 은월이 남겨주고 간 자료의 나머지 부분을 조금씩 알려준 것이다.
그 덕분에 향지례 등은 수색을 계속 해나갔고 결국 사용이 가능한 공간접점을 알아냈다.
노괴들은 고대하던 일에 크게 기뻐했고 한립에게도 소식을 전해 기쁨을 나눴다.
이후 백 년 동안 준비를 마친 향지례, 풍 노괴 그리고 호 노마는 차 노요를 따라 공간접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인계에 남겨두고 갔던 본명원신등(本命元神燈)에 문제가 생겼다.
한 순간 원신이 깃든 등불들이 꺼져 버린 것이다. 호 노마의 등불만이 암담한 상태로 살아남았다가 며칠 후에 그것마저 힘없이 사그라졌다.
호 노마가 이미 영계로 승천해 원신을 감응할 수 없게 된 것인지 아니면 공간접점 속에서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만리부를 통해 세 수사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해들은 한립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공간접점이 예상보다 더욱 위험한 곳이구나!’
향지례까지 세 명의 화신기 노괴들이 힘을 합쳐 진입했는데도 전멸을 당한 듯했다.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소식이었다.
은월이 그에게 경고했던 공간접점의 위험성은 조금도 과장되지 않았고 말 그대로 열에 아홉은 죽어나가는 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향지례가 약속을 지켜 공간접점의 구체적인 위치를 알려주어 그가 따로 다른 곳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는 점이었다.
이제 그도 수련을 통해서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게 되었으니 직접 공간접점의 입구를 살피고 미리 미리 준비해야 할 때였다.
그런데 공간접점은 대진이나 천남 등이 아니라 오룡해(五龍海)라고 불리는 아주 낯선 해역에 있었다.
아는 사람이 드문 곳이었지만 향지례 등 화신기 노괴들은 예전부터 그 곳으로 통하는 전송진을 장악하고 있었다.
대진으로 가 전송진을 이용해야 했는데 오고가는 시간이 상당해 일단은 그곳으로 떠나기 전에 난성해에 다녀오기로 했다.
마음을 정한 한립이 인간형 꼭두각시에게 개자공간을 지키게 하고 조용히 추마골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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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풍경을 지닌 작은 섬.
원영기 수사들이 산 위의 정자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벽 선자, 이번에 형향단(馨香丹)을 제련해 내셨다면서요. 경맥을 씻어내는데 그렇게 좋다던데 이 늙은이도 몇 알 얻어갈 수 있을까요?”
회색 장포를 걸친 노인이 마주 앉은 벽 선자를 향해 웃으며 물었다.
“함 형께서 연단술에 정통하다는 것을 누가 모른답니까. 굳이 벽 선자의 형향단을 얻어 무엇 하시려고요? 저야 말로 문하의 제자들을 위해 그 단약을 꼭 교환하고 싶습니다.”
여인이 대답하기도 전에 남색 장포를 입은 중년 수사가 미소를 머금고 끼어들었다.
“조 수사,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요! 노부가 단약을 만드는데 정통하다 해도 향단은 제련하기 어렵단 말이외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지요.”
노인도 화를 내기 보다는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 지었다.
“다들 그러실 것 없습니다. 이번에 교역회에 참여하기 위해 제련한 형향단을 대부분 가지고 나왔으니 두 분 모두에게 나눠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저 거래를 원하시는 물건이 너무 실망스럽지 않기만을 바랄 따름입니다.”
그 말은 들은 노인과 중년 유생은 동시에 한시름을 놓았다. 그들은 뜻밖에도 소형 교역회를 열고 있었다.
그때 정자 안에서 아직 대화에 끼어들지 않은 두 수사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생긋 웃었고, 그 중 안색이 누런 거한이 갑자기 한 손을 들어 금색 목함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저와 손 수사가 힘을 합쳐 구한 물건입니다. 함 형의 화교환(化蛟丸) 두 알과 교환하고 싶습니다. 그 것이 있어야 제 질풍망(疾風蟒)이 교룡으로 진화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질풍망? 범 수사, 지난번에 노부가 이미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내 벽령사(碧靈蛇)에게도 필요한 단약이라 교환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노인이 불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 조급히 결정하지 마시고, 이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확인하고 다시 이야기 하시지요.”
“청령지(靑靈芝) 같은 재료가 아니고서는 이 안에 든 게 아무리 귀중해도 안 될 겁니다.”
노인은 흥미가 일었지만 티 내지 않고 목함을 끌어와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그 속에는 남색으로 찬란하게 반짝이는 구슬이 들어 있었다.
“뇌경수(雷鯨獸)의 요단!”
노인이 그것을 보고 소리를 높였고 다른 수사들도 놀라기는 매 한가지였다.
“역시 함 형의 박학다식은 알아줘야 합니다. 이게 바로 7급 뇌경수의 요단이지요. 비록 겨우 7급 요수지만 이 요수가 얼마나 희귀한 지는 다들 아시지요? 저와 손 형이 장장 3일 밤낮을 추적한 끝에 겨우 잡은 것들입니다. 이것으로 교환한다면 어떠합니까?”
범 수사가 다시 제안했지만 물끄러미 목함을 내려다보는 노인은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누가 봐도 요단이 탐났지만 화교환을 내주기에는 아쉬운 얼굴이었다.
“뇌경수의 요단이라면 확실히 보기 어려운 것이지요. 제가 한 번 봐도 되겠습니까?”
그때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정자 밖에서 들려왔다.
“누구냐?”
모여 있던 원영기 수사들은 일제히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았다. 언제 부턴가 푸른 장포를 입은 청년이 정자 밖에 서있었는데 평범한 용모였지만 눈이 아주 맑아 보였다.
정자 안의 수사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아무도 상대를 모르는 눈치였다. 이곳은 겉보기에는 평범한 정자처럼 보였지만 금제로 가려져 있어 위치를 모르는 자는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들이 얼굴을 붉히고 상대에게 따지지 못한 것은 상대가 법력이 하나도 없는 범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허나 만일 정말 범인이라면 어떻게 이곳에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저, 수사께서는…….”
범 수사가 이곳의 주인인지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냥 이곳을 지나던 길입니다만 제가 놀라게 해드렸다면 양해 부탁드립니다.”
청년이 포권을 하며 담담히 말했다. 그는 대진에서 전송진을 이용해 오룡해에 도착한 한립이었다.
이곳에 펼쳐진 환술 금제가 비범하기는 했지만 명청령안을 지닌 그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해역을 지나다 고계 수사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내려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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