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6화. 쉬골결(淬骨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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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수는 엄청난 힘에 온몸이 팽팽하게 당겨져 꼼짝 못 했고 법력도 굳어버린 듯했다.

겁에 질린 풍희는 그제야 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 한 척 크기의 은색 연꽃이 서서히 피어나며 일곱 빛깔 불광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식겁한 요수는 서둘러 법결을 발동해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이미 12마리의 지네들이 사방에서 한기를 뿜으며 달려드는 중이었다.

잠시 후, 새하얀 한기에 둘러싸인 풍희의 참혹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한립은 멀찍이 서서 팔령척을 살펴보며 그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의 예상대로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불바다 속의 금교왕이 비명을 멈추었다.

한립은 눈썹을 끌어올리고 고개를 돌렸는데 불바다 속에서 경천동지할 굉음이 들리며 화염을 해치고 무언가 슉! 하고 날아올랐다.

얼굴은 굳힌 한립이 등 뒤로 천둥소리를 남기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화염 속에서 달아난 무언가가 머물던 상공에 한립이 푸르고 하얀 뇌전을 번뜩이며 나타났다.

그의 아래에서 달아나고 있던 것은 놀랍게도 뼈만 남은 초소형 교룡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전신이 금빛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이 작은 교룡은 입에 손톱만 한 금색 구슬을 물고 있었고 눈에서 그윽한 녹색 불빛을 번뜩였다.

그 뒤로 후우우 하는 스산한 울음소리가 들리고, 다섯 악귀 머리들이 격분해 불바다를 뛰쳐나왔다. 다들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이 기운을 상한 듯했다.

금색 뼈 교룡이 다섯 악귀들의 출현에 몸을 떨더니 바로 금빛으로 변해 허공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한립이 콧방귀를 뀌곤 양 미간에 검은빛을 번뜩이며 세 번째 눈을 드러냈다.

검은빛이 세 번째 눈에서 쏘아져 나가 허공에서 사라졌다.

둔중한 폭음이 들려오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금빛과 검은빛이 교전하더니 교룡이 쿵하고 튕겨 나와 몸을 가누지 못하고 회전했다.

교룡은 자신의 상황이 불리한 것을 아는지 정신을 차리자마자 다시 달아나려 했다.

이때 지척에서 푸른빛이 번뜩이며 푸른 실뭉치가 날아들었다. 이제 교룡은 꽁꽁 묶여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한 장 크기의 검빛이 날아들어 교룡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한 줄기 녹색 불덩이가 그 잔해에서 피어올라 황급히 달아나려는데 이번에는 한립이 허공을 쥐어 거대 손으로 그것을 낚아챘다.

이어 한립이 둔광을 번뜩이며 다가 와 소매를 펄럭였고 녹색 작은 병을 던졌다.

그러자 법기가 공중에서 엎어져 검은 기운을 쏟아내고 푸른 거대 손 사이로 날아들어 녹색 불덩이를 휘감고 병 안으로 돌아갔다.

한립이 녹색 병을 회수하고 의식으로 내용물을 확인하더니 만족스런 기색을 보였다. 10급 요수의 정혼(精魂)은 무척 구하기 어려운 재료였다.

작은 병을 챙긴 한립이 이제 금빛 구슬과 뼈만 남은 교룡의 잔해를 불러들였다.

굳이 자세히 살피지 않아도 구슬은 금속 속성을 지닌 교룡의 요단이었다.

다만 뼈만 남은 남색 교룡의 잔해는 흥미로웠다. 불바다 속에서 금교왕은 화령사에 구속당해 오자동심마에게 뜯어 먹히면서도 피와 살을 폭파시켜 위기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요수는 순식간에 불 밧줄을 끊어내고 오자동심마를 튕겨낸 다음 혼백으로 뼈만 수축해 달아났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금교왕은 두 개의 육체를 지닌 것과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혼백과 뼈만 남아 있으면 피와 살점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10급 수행을 지녀 명성이 자자한 금교왕이 한립에게 당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한립은 영보를 두 개나 지니고 있었고 대수사에 맞먹는 오자동심마가 보조하니 그 격차가 어른과 어린 아이의 싸움과도 같았다.

금교왕도 육체가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요수지만 단단한 팔령척과 영계에서도 알아주는 보물인 화령사 그리고 사람이고 요물이고 할 것 없이 마구 뜯어 먹는 오자동심마 앞에 서는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호기심에 잠시 금색 뼈다귀를 살피던 한립이 주저하다 그것을 요단과 함께 저물대에 넣었다.

이때 풍희는 팔령척에 붙들린 후 12마리 육익상공들이 뿜어내는 한기에 얼음 덩어리로 봉인된 지 오래였다.

한립은 그 옛날 자신을 벌벌 떨게 했던 강적을 바라보다 즉시 비검들을 보내 베어버렸다. 풍희는 얼음덩어리 채로 조각조각 났고 녹색 요수의 혼백이 황급히 날아올랐다.

그러나 혼백은 급한 나머지 육익상공 앞으로 달려들었고 새하얀 지네는 거침없이 입을 벌려 그것을 뱃속으로 삼켜버리고 말았다.

두 요수를 해치우고 한립은 남아있는 저물대를 주워 내용물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저물대 속에는 그가 만족할 만한 것들이 들어 있었다.

풍희의 저물대 속에서 상고 시대 옥간을 찾아냈는데 요족 수사들의 공법 외에도 용린과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영과의 진정한 용도와 용린과 나무를 옮겨 심는 방법 외에도 다른 영목들에도 이 비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한립은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금교왕의 저물대에서는 쉬골결(淬骨決)이라는 흥미로운 공법을 찾아냈다.

인간이든 요수든 자신의 골격을 법보처럼 담금질해 몸을 더욱 강인하게 만들어 주는 기이한 공법이었다.

아쉽게도 수련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 당장은 익힐 틈이 없었지만 한립은 옥간을 저물대 속에 잘 넣어 두었다.

그는 곧바로 오자동심마와 영충들을 회수한 후 푸른 빛줄기로 변해 해수면 아래로 뛰어들었다.

용린과의 기이한 효과에 대해 알았으니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었다.

한립은 섬 주변 해저 동굴에서 여러 금제를 파훼하고 과실이 열리는 나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어차피 풍희가 이곳에 온 것도 나무를 옮겨 가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그의 저물대에 필요한 재료들은 전부 준비되어 있었다.

한립은 요수 문자로 적혀진 방법에 따라 재료들을 사용해 나무를 축소시킨 다음 저물대에 잘 챙겨 넣었다.

한식경이 지나 푸른 빛줄기가 바다 위로 올라왔고 몇 번 번뜩이다 하늘 끝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한립이 전송진을 통해 천남으로 돌아온 것은 그러고도 반년이 지난 후였다.

객지를 떠돌다 돌아온 그는 갑작스레 폐관 수련 중이던 남궁완과 문하의 제자들 그리고 려락 및 장로들을 모아놓고 비밀회의에 들어갔다.

비밀회의는 거의 반나절이 지나서야 끝이 났고 모든 이들은 엄청난 소식을 들은 것처럼 진중한 얼굴이 되어 돌아갔다.

얼마 후, 낙운종의 일부 제자들은 낙운종이 값을 따지지 않고 생소한 영약과 영초를 사들이고 고위층 수사들이 빈번히 모여 무언가를 상의한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그리고 얼마 후, 천남 수도계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낙운종 대장로 한립이 유람을 떠났다가 화신의 경지에 도달하는데 도움이 될 비술을 얻어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 비술은 특수한 곳에서만 수련이 가능해 그가 낙운종을 수백 년간 떠나 폐관 수련에 들어가며 낙운종의 존폐가 걸린 일이 아니고서는 공법을 대성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각 종문의 고위층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들은 기뻐했고 어떤 이들은 천남 수도계가 또 격동할까 근심과 걱정이 가득했다.

1년 후, 한립은 정말 낙운종에서 사라졌고 그와 함께 남궁완, 모패령 및 몇몇 직전 제자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로는 낙운종도 외부로 세력을 넓히는 것을 그만두고 기반을 다지는데 주력했다.

다른 종문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기는 했으나 한립의 위명에 함부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1년, 10년, 100년의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한립은 천남 수도계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후 낙운종과 운몽산맥 심지어 천남에서 한립이라는 이름은 점점 잊혀 갔고 언제부터인가 낙운종 대장로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졌다.

대장로직은 천 년 간 공석으로 이어지다가 겨우 새로운 낙운종 대장로가 선출되었다.

그 후로도 낙운종에서는 원영기 수사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명실상부한 초거대 종파가 되어 만 년 넘게 그 세력이 유지되었다.

추마골은 고마와의 일전 후 외곽 금제가 점점 사라져갔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은 외곽의 경우에는 일반 수사들도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보물을 찾으러 이곳으로 향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진귀한 광물이나 재료, 영초 등은 점점 고갈되어가 은밀하게 숨겨진 곳에서나 가끔 쓸 만한 물건이 나왔다.

이렇게 보물을 찾아 추마골 외곽으로 들어가는 수사들의 수가 날이 갈수록 줄어들자 이제 이곳은 평범한 영산과 큰 차이가 없는 곳으로 취급 되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추마골 중심부는 날이 갈수록 악명을 날렸다.

중심부의 금제는 세월이 흘러도 전혀 약해지지 않았고 내부의 공간균열도 여전히 빽빽했다. 게다가 최근 2, 3백년 사이에는 갑자기 기괴한 우윳빛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기까지 했다.

이 안개는 수사들을 직접 해치지는 않았지만 일단 들어가면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흐릿해져 의식이 크게 제한되었고 더 깊이 들어가면 완전히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이런 기이한 현상에 천남이 잠시 시끄럽기도 했지만 적잖은 수사들이 추마골에 이보가 나타나 불러일으킨 현상이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감히 그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원영기 산수들이 탐욕에 눈이 멀어 의식을 미혹하는 안개를 해결할 보물을 들고 중심부로 진입했다.

원영기 산수들은 안개 속으로 호기롭게 들어갔으나 들어간 지 몇 년 만에 지니고 있던 보물을 전부 잃고 헤매다 낙담한 얼굴로 그곳을 탈출했다.

그 후에도 실력이 있다고 자신하는 수사들이 중심부로 들어갔지만 결과는 더욱 참담했다.

안개 속의 공간균열에 당해 죽거나 더 오랜 시간 그곳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가장 오래 갇혀 있었던 이는 안개 속에서 5, 60년의 세월을 허비하기도 했다. 다행히 영기가 충분해 수시로 법력을 보충할 수 있어서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다들 죽어 나왔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있은 후에는 원영기 수사들도 더는 추마골 중심부에는 함부로 들어가지 않았다.

추마골 중심부는 다시 천남 수도계의 금지로 알려져 그 주변을 맴도는 이들이 거의 없어졌다.

세월이 흘러 천남 수사들은 그곳의 안개에 대해 관심을 잃었고, 새롭게 수사가 된 이들은 추마골 중심부의 안개를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추마골 중심부의 외진 산골짜기에 작은 거처가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거처 주변에는 평범해 보이는 약재 밭이 백여 장 정도 펼쳐져 있었는데 그곳에 심어 놓은 수많은 약재가 외부에서는 진귀하기 짝이 없는 영약들이었다.

게다가 약재들이 적게는 수백 년 많게는 천년 이상 된 것들로 그 주변에는 그윽한 향기가 진하게 풍겼다.

이 작은 골짜기 주변에는 현묘한 금제가 첩첩이 펼쳐져 있어서 원영기급 수사들이 실수로 들어선다고 해도 절대 멀쩡히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약재밭 중앙에 푸른 돌로 지어진 집이 한 채 있었는데 방석 하나를 제외하면 다른 것들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방석 위에 앉은 가느다란 인영은 목석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인영이 음직이며 몸을 일으키더니 천천히 집 밖으로 걸어 나갔다.

석문을 나선 그에게 햇빛이 희미하게 드리웠는데 그는 멍하고 표정이 없는 한립이었다.

한립이 약재밭으로 걸어가 손을 뻗자 땅속 깊은 곳에서 녹색 작은 병이 나타났고, 그것을 가지고 비취색 등나무 아래로 가 녹색 액체 한 방울을 등나무 뿌리에 떨어뜨렸다.

녹색 액체는 등나무 뿌리로 빠르게 흡수되었고 그것을 확인한 한립은 주저 없이 몸을 돌려 작은 병을 원래 자리에 묻어두고 유유히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한립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소매를 털자 하얀빛이 반짝이며 진법 원반이 저절로 날아올랐다. 그가 원반을 잡아들고 고개를 숙이니 푸른 문자가 떠올랐다.

누군가 그에게 소식을 전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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