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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23화 (480/2,000)

723화. 현천선등(玄天仙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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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푸른 빛줄기가 붉은 안개를 떠나 종적을 감추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립이 나타난 것을 알고 주시하던 대진의 몇몇 세력들은 그가 소리 없이 떠났음을 발견했다. 이에 적잖은 이들이 안심했지만 몇몇 거대 종문의 고위층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화신기 경지도 이르지 못한 자가 화신기 수사들과 대등하게 교류하고 심지어 동급 원영 후기 수사를 손쉽게 죽이고도 천지원기로 인해 수명의 유실도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가 떠난 지금 현지 거대 세력들은 한립이 대진에서 종문을 창립하고 세력을 넓힐 의지가 없다는 것에 크게 안도했다.

*      *     *

어느덧 한립이 사라진지 3, 40년이 되었다. 그동안 대진 수도계는 간혹 충돌이 있기는 했지만 경천동지할 큰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곳과 멀리 떨어진 천남의 어느 산봉우리 정상.

동굴 안에서 유쾌하기 이를 데 없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인 시간과 정성이 헛되지 않았어. 드디어 태양정화를 제련해냈구나! 이제 회양수를 제련할 수 있겠어!’’

동굴을 울리던 웃음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한 인영이 조용히 산 정상을 날아올라 푸른 빛줄기가 되어 하늘을 갈랐고, 세 달 후에는 추마골 중심부에 나타나 깊숙한 곳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며칠 후 추마골 중심부의 이름 모를 작은 산 아래에서 끝없는 어두운 귀기(鬼氣)가 퍼져나갔다.

먹처럼 새까만 안개는 주변 백 리를 뒤덮었고 그 안에서 음산한 삭풍이 불어대며 악귀들이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이 같은 상황은 반 년 간 이어지다가 음산한 기운이 차츰 흩어졌다. 그렇게 한 달이 흘러 젊은 사내는 추마골 안에서 괴이하게 나타나 푸른빛으로 변해 그곳을 떠났다.

둔술과 은닉술이 너무 고명한 탓에 아무도 그가 추마골을 드나드는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 자는 방금 적혼번과 개자공간의 제련을 마친 한립이었다.

수십 년 전, 대진에서 낙운종으로 돌아와 태양정화의 연화를 마쳐 복속시켰고 몇 개월 전에는 회양수도 몇 병이나 제련해냈다.

남궁완은 아직도 폐관 수련 중이었기에 한립이 먼저 한 병을 들이키고, 그녀를 위한 회양수는 비검전서를 이용해 그녀의 거처에 보내놓았다. 그리곤 다시 추마골로 와서 적혼번 제련을 시작한 것이다.

열댓 개의 귀라번은 혼백으로 가득 차있었고 천란성수의 분신이 곁에서 도와주니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순조롭게 제련을 마칠 수 있었다.

절반짜리 흑풍기가 드디어 적혼번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제 다시 낙운종으로 돌아온 한립은 원자신광의 가장 기본적인 1, 2 성 공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아무리 공간 보물인 적혼번이 있어도 원자산을 보물 안에 넣으려면 약간이라도 원자신광을 익혀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폐관수련에 들어가기 전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한립은 회양수 한 병을 들고 약재 밭에 들렀다가 밀실로 들어갔다.

그동안 인간형 꼭두각시는 신비한 병을 가지고 동굴 내부에서 영충과 영약들을 기르는 일을 전담하고 있었다.

*     *     *

십 년 후, 밀실에서 기운을 고른 한립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눈을 떴다.

원자신광은 역시 수련하기가 극히 어려워 원자산의 도움이 없이는 계속 해나가기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겨우 1성을 수련했을 뿐이지만 성궁으로 가서 맡겨 놓은 물건을 찾아와야 할 때였다.

“내가 자네라면 일단 금속의 속성을 지닌 요단을 찾아 오행영근(五行靈根)을 보충하겠네. 노부도 원자신광이라는 공법은 처음 들어보지만, 다섯 가지 속성을 지닌 공법에 적절한 영근을 갖추지 않고 수련한다면 몸에 큰 무리가 올 게야. 게다가 다중 속성을 지닌 공법은 뒤로 갈수록 수련하기가 더 어려워지지.”

“그건 말씀해 주셔서 압니다만, 금속 속성을 지닌 요수가 워낙 드물고 최소한 화형기 이상의 요단이 필요할 텐데요. 어디 가서 그런 요단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한숨을 쉰 한립이 한 손을 뒤집자 오색의 밝은 빛이 그의 손바닥 위에서 아름답게 반짝였다.

“금속 속성의 요단이라면 이전에 난성해에서 마주쳤던 금교왕은 어떤가? 10 급 요수이니 그 요단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사내아이가 눈을 굴리다 이렇게 말했다.

“금교왕의 요단이라면 당연히 쓸만하겠지요! 하지만 그 요수는 외성해 교룡 일족의 족장이니 쉽게 건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일단 금속 속성 법기를 준비해 보고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수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법기나 보물을 이용해서 영근을 연화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한립이 미간을 좁히고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법기 같은 것을 요단 대신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네. 대신 연화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감수해야할 위험이 커질 뿐.”

“회양수로 충분한 시간을 벌었으니 이 일은 난성해에 갔다 온 다음에 다시 고려해보도록 하지요.”

한립이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더니 밀실의 문을 열고 나서려했다. 그런데 은빛이 반짝이며 또 다른 ‘한립’이 우두커니 나타났다.

의식으로 인간형 꼭두각시 안에 있는 두 번째 원영과 이야기를 나누던 한립은 표정이 급변해 소리쳤다.

“뭐라? 현천선등(玄天仙藤)이 살아났단 말인가!”

한립은 인간형 꼭두각시가 전해온 소식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록 폐관에 들어가기 전 귀신에 홀린 듯 현천선등에 회양수 몇 방울을 떨구어 주기는 했지만 희망이 없는 줄 알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현천선등이 부활했다니 오히려 믿기지가 않았다.

한립은 바로 약재 밭으로 향했다. 현천선등은 구곡영삼 등 진귀한 영약들 곁에 심어져 있었다. 그곳에 다다른 한립은 현천선등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신비한 녹색 액체를 부어주어 겨우 초록빛이 살짝 감돌던 말라비틀어진 가지가 놀랍게도 풍성하게 덩굴을 퍼트려 주변의 백옥 기둥을 감싸 올라가며 자라고 있었다.

등나무가 발산하는 초목의 기운은 약재 밭에서 자라나는 다른 영약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심지어 구곡영삼이 변한 하얀 토끼도 그 아래에서 쿨쿨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한립이 다가가자 하얀 토끼가 기다란 귀를 움찔하며 새빨간 눈을 뜨려다가 그를 확인하고는 다시 잠을 청했다.

구곡영삼이 변한 영물도 한립의 비호 아래 수백 년간 함께 지내다 보니 그의 약재 밭을 자신의 터전으로 삼고 그에 대한 경계심도 사라져 버렸다.

한립은 어이가 없었으나 자고 있는 토끼를 방해하지 않고 현천선등 옆으로 다가가 꼼꼼히 살펴보았다.

부활한 현천선등은 놀라울 정도로 대량의 영기를 발산하는 것을 제외하면 일반 등나무 영목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특이한 점은 등나무의 색깔이 너무 선명한 비취색이라 나무라기보다는 오히려 금속의 광택을 지닌 것 같았다. 또한 이파리의 문양도 볼수록 오묘해서 하나하나가 전부 달랐고 왠지 눈에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신중히 이파리를 살피던 한립이 무언가를 깨닫고 눈을 크게 떴다. 이파리의 문양이 금궐옥서에 적힌 은과문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미간을 좁히고 이파리 열댓 개를 연달아 연구한 끝에야 그 비밀을 조금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파리들은 뜻밖에도 은과문 글자를 쓰다만 것들이라 몇 획이 부족해 보였다.

어안이 벙벙해 하던 그는 두 손가락으로 이파리를 잡고 문질러보았다. 표면이 마치 옥으로 제련해 낸 것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현천선등에 대해서는 한립도 한동안 연구한 적이 있었는데 듣기로는 한 세계가 생겨나 천지가 개벽하고 혼돈이 생겨날 때 이런 영목이 출현 한다고 했다.

현천선등이든 다른 현천선수(玄天仙樹)든 꽃이나 과실을 피워내면 그 세계의 천지법칙을 거스르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녀 말 그대로 역천의 지보라고 불릴 만 하다는 것이다.

이런 역천의 지보는 상고 시대부터 이야기로만 전해 내려왔고 실제로 보았다는 이는 없었다.

상고경전에도 역천의 지보는 한 세계에 네다섯 개 정도만 탄생한다고 했고 그 성장기간이 유달리 길어 거의 10만 년을 단위로 셀 정도였다.

또한 다 자란 과실이 떨어지는 데 걸리는 시일은 겨우 며칠 혹은 몇 시진뿐이라 꽃이나 과실을 얻기는 하늘에서 별 따기였다.

게다가 꽃이나 과실이 천지법칙을 거스르는 역천의 신통을 지닌 것이지 나무 자체는 일반적인 제련 재료로 쓰일 뿐 큰 가치가 없었다.

한립이 이파리를 놓아주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당장이라도 천란수가 변한 사내아이를 불러다 현천선등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마 사내아이는 허천정 속에서 수련하며 지금 상황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는 밀실에 들어가 수련하기 전, 허천정의 힘을 빌려 요수가 바깥의 상황을 알 수 없게 차단해 두었다.

자신의 여러 가지 비밀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신비한 병에 관한 것도 요수에게는 절대 알릴 생각이 없었다.

한립은 심지어 현천선등 줄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사내아이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회양수를 주어 현천선등이 부활했다는 것은 더더욱 발설할 수 없었다.

다른 이들에게 현천선등이 계륵일지 몰라도 누군가 탐을 내기 시작하면 성가신 일이 벌어질 것이다.

게다가 그는 신비한 병을 지니고 있으니 앞으로 신비한 액체의 대부분을 현천선등의 성장을 촉진하는데 쓰면 2, 3백 년 후면 꽃이나 과실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만일 사내아이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주었다가 언제고 영계의 본체가 알게 되면 화를 부를 수도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한숨을 토해낸 한립은 현천선등 근처에 강력한 금제를 여러 개 설치하고 차분히 약재밭을 빠져나왔다.

사흘 후, 한립은 인간형 꼭두각시를 거처에 남겨두고 종 내의 장로들에게 알린 후 운몽산맥을 떠났다.

그리고 운몽산맥의 이름 모를 봉우리 위로 한립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푸른 빛줄기로 변해 하늘 저 편으로 사라졌다.

*     *     *

몇 개월 후, 천성성.

성산 꼭대기에 위치한 성궁의 궁전에는 한 여인이 하얀 기운을 뿜어내며 비술을 수련하고 있었다.

영기의 빛은 쉬지 않고 반짝였고 여인의 얼굴은 고통으로 찡그려졌다.

몸에서 발산하던 하얀빛이 갑자기 깜빡거리기 시작하며 통제를 잃어가자 여인이 공법을 거두고 수련을 마무리했다.

여인은 한숨을 쉬며 감았던 두 눈을 뜨고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다 깜짝 놀랐다. 밀실 한쪽에 희미한 인영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형이셨군요.”

여인이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자 표정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두 눈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성궁에서 가장 깊숙한 곳, 크고 작은 금제들이 2, 30개나 되는 성궁 주인의 밀실에 아무런 제약 없이 드나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릉 수사,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런데 공법 수련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군요.”

“안 그래도 사소한 문제가 있어 어찌할까 했는데, 한 형이 오셨으니 지도를 부탁드려야겠습니다.”

“지도랄 것은 없고 무엇이 문제인지 말씀해주시면 좋은 방안이 있나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물론 그 전에 원자산을 가져갈 수 있을지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원자산 때문에 본 궁에 오셨군요. 본래 수사의 것이니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그런데 옮겨갈 방법은 찾으신 겁니까?”

“방법이 있기는 하나 될지 안 될지는 시도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직접 안내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릉옥령이 눈을 빛내며 대답하자 한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진 후, 한립과 여인은 다시 산 속 깊은 지하 통로를 지나 예전에 왔던 옥문 앞에 도착했다.

릉옥령이 영패를 꺼내 옥문에 걸린 금제를 풀자 옥문이 서서히 열렸다. 가볍게 숨을 들이마신 한립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뒤를 릉옥령이 뒤따랐다.

예전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오행지력이 달려들었고 체내의 영력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려 세차게 요동쳤다.

그러나 이미 원영 후기의 최고봉에 이른 한립은 이전보다 훨씬 정순한 법력을 지니고 있으니 그대로 두고 볼 리 없었다. 그는 공법을 운용해 체내의 영력을 억누르고 수결을 맺어 가슴 앞에서 합장했다.

파츳.

그러자 달걀 크기의 오색 빛덩이가 떠올랐고 그를 성가시게 하던 오행지력도 훨씬 약해졌다.

“축하드립니다, 한 형! 원자신광의 1성을 수련하셨군요.”

릉옥령은 그의 뒤에 서서 오행지력의 변화를 감지하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1성도 수련하지 못했다면 어찌 원자산을 옮기러 왔겠습니까.”

“1, 2성이라도 원자신광을 익혔다면 원자산을 이동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수사께서 멀리 가시려 한다면 쉽지 않을 텐데요. 정 안되면 본 궁에 남으셔도 됩니다. 될 수 있는 한 필요한 모든 자원을 지원해 드리고, 절대 한 형의 수련도 방해 하지 않겠습니다.”

릉옥령이 참지 못하고 속에 담아왔던 말을 했다.

“귀 궁에 들어갈 마음이 있었다면 예전에 수락했을 겁니다. 이 방법이 통할지 우선 지켜보시지요.”

한립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분히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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