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2화. 태양정화 포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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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스무 장 밖에서 나타난 말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심스럽다는 듯 구슬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태음불새는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구슬을 단숨에 삼켜 전신의 붉은 기운을 북돋았고 그 상태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달아났다.
뒤쪽으로 물러났던 은색 말이 움찔 하더니 눈을 굴려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자 다시 날개를 펄럭이며 불새를 뒤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설정주 속에 함유된 자라극화를 머금어 태음불새도 만만치 않게 빨라 은색 말도 이번엔 쉽게 따라잡지 못했다.
태음불새가 홱 방향을 틀어 한립이 있는 쪽으로 쇄도했다.
태양정화가 변한 은색 말은 두 날개를 펼치며 급히 태음불새를 뒤쫓았고 두 영체(靈體)의 움직임을 땅 덩이가 막을 수는 없었다.
푹! 푹!
잠시 후 불의 영체들이 연이어 땅 위로 솟구쳐 자욱한 안개로 뒤덮인 허공에 나타났다.
태양정화는 솟아오르자마자 이상을 감지했지만 인간형 꼭두각시가 이미 한 발 앞서 건람정을 건드렸다.
그리고 동시에 남색 화염이 바람을 가르며 솥 안에서 튀어 나와 남색 한기로 변해 달려들었다. 달아나던 태음불새 역시 방향을 바꿔 아래쪽의 날개 달린 은색 말을 향해 입을 벌려 설정주를 날렸다.
그때 진법 역시 인간형 꼭두각시의 손짓에 곧바로 발동되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것을 본 태양정화는 고민하지도 않고 다시 땅 속으로 파고들어 용암 속으로 달아나려했다.
작은 말과 불새가 튀어 나온 곳은 화산에서 유일하게 남색 얼음으로 뒤덮이지 않은 곳이었는데 진법이 발동되자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러나 태양정화의 속도도 만만치 않았다.
은빛이 번뜩이며 머리부터 땅 속으로 파고들다 갑자기 날개를 펼쳐 그 자리에서 사라져 스무 장 밖의 허공에서 나타났다.
그 순간 다섯 색깔의 빛기둥이 땅 속에서 뿜어져 방금 전까지 작은 말이 있던 곳을 갈랐다.
이어 회백색 마기가 줄줄이 튀어 나와 빙글 돌더니 한 척 크기의 악귀 머리 다섯 개로 변했다. 바로 오자동심마였다.
한립도 천천히 땅 속에서 날아올랐다. 그러자 남색빛이 번뜩이며 진법은 땅을 얼음으로 만들어 막아 버렸다. 파란 얼음 위에 두 발을 디딘 한립은 신중하게 고개를 들었다.
건람빙염이 변한 한기의 교룡과, 태음불새, 다섯 개의 악귀 머리가 은색 날개 달린 말을 포위하고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태양정화가 변한 불의 영체는 한려상인이 기억하던 대로 굉장히 영리했고 은색 빛으로 변해 하늘 높이 솟구치며 잠시도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태음불새를 제외하고는 오자동심마나 교룡은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였다.
그러나 태음불새는 한립이 던져준 설정주와 이곳을 감싼 건람빙염의 한기 때문에 용암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태양정화보다 한층 빨라졌다.
은색 말의 간교한 움직임과 민첩함이 아니었다면 진작 따라 잡았을 것이다.
은색 말은 불새가 내뿜는 새빨간 화염을 피하면서 혹시나 악귀 머리들과 교룡에게 따라잡힐까 반격하지 못하고 당하고만 있었다.
한립은 아래에 서서 뒷짐을 지고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인간형 꼭두각시가 무표정한 얼굴로 한쪽에서 진법을 조종하면서 교룡을 부리고 있었다.
그 순간, 작은 말이 틈을 포착해 태음불새의 일격을 버틴 후 두 날개를 모으고 은빛으로 변해 땅으로 하강했다.
이대로 둔술을 펼쳐 달아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땅의 남색 얼음과 닿는 순간 은빛과 남색빛이 뒤엉켜 작은 말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은빛이 멈칫하는 순간 새빨간 빛과 남색 한기가 위쪽에서 날아들며 괴상한 울음소리도 가까워졌다.
뒤늦게 은빛 말은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겁에 질려 더 빠른 속도로 날개를 펄럭여 은색 꽃잎들을 허공에 띄웠다. 은빛으로 몸을 휘감고 공격을 버텨내려는 것이었다.
쿠쾅! 쿵!
작은 진동이 두 번 울리고 새빨간 빛과 남색 한기가 연달아 은색 꽃잎 위로 떨어져 폭발했다.
한립의 예상과 달리 은색 말은 거대한 힘에 의해 튕겨나가듯 획! 하고 은빛 꽃잎 속에서 튕겨나가 순식간에 열댓 장 밖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은빛으로 변해 곧장 한 방향을 택해 달아났다. 여전히 속도는 더없이 빨랐지만 한립이 남색의 눈으로 보니 한쪽 날개가 이전보다 짧아 보였고 다리 하나도 모호해져 은색 화염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한립은 피식 웃고는 드디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등 뒤의 날개를 펼쳐 바람을 타고 사라진 것이다.
태양정화가 달아난 것을 보고 태음 불새와 교룡도 즉시 그 뒤를 쫓았지만 은색 말이 둔술을 극성으로 발휘해 은빛을 몇 번 번뜩이자 벌써 빛 무리가 있는 가장자리에 도착해 있었다.
남색 빛기둥이 앞을 막고 있자 불의 영체는 그곳을 피해가려 했다. 그러나 허공에 떠 있던 꼭두각시가 그것을 보고 수결을 맺어 빛기둥의 빛을 증폭시켰고, 무수히 많은 실들이 그 안에서 튀어 나와 그물처럼 태양정화의 길을 막았다.
놀란 말이 두 날개를 움직여 수십 개의 은색 꽃잎을 피워 그물을 향해 쏘아 보내고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뛰어들었다.
이대로 빛의 그물을 뚫고 달아나려는 것이다.
그러나 불의 영체는 몰랐지만 그의 머리 위로 어느 샌가 하얀 안개 두 덩이가 나타나 동시에 희끄무레한 한풍(寒風)을 불어댔고 이어서 두 마리의 새하얀 지네들이 번개처럼 쇄도했다.
바로 한립이 미리 곳곳에 보내 놓은 육익상공들이었다. 이렇게 되니 은색 말도 더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옆으로 틀어 두 줄기의 한풍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은색 말이 방향을 튼 순간 검은 빛이 번뜩이며 순식간에 비도가 은색 말을 베었다. 그러자 미간에 은색 실선이 나타나 몸이 그대로 두 쪽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팟! 팟!
두 몸이 각각 화염으로 변해 은빛을 내뿜으며 타오르다 중간에서 응결되어 다시 작은 말의 형상을 되찾았다. 그러나 훨씬 흐릿한 모습이라 이전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마수 비도로 베인 탓에 원기가 크게 상한 것이 틀림없었다.
바로 그때, 머리 위에서 희미하게 천둥소리가 올렸고 푸른 뇌전을 번뜩이며 한립이 나타나 주저 없이 열 손가락을 튕겼다.
스산한 파공음이 들려오더니 열 개의 불실들이 튀어나와 은색 말의 몸을 꿰뚫었다. 동시에 한립이 주술을 외자 불실들은 그대로 작은 말을 여러 번 휘감아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이제 태양정화의 영체는 반항할 기력도 없어보였다. 그것을 본 한립은 크게 기뻐했다. 곧바로 미리 준비해 둔 금제 부적들을 불러내자 부적은 다양한 빛을 뿜으며 태양정화를 향해 날아갔다.
금제 부적만 붙이면 아무리 대단한 불 속성 영체라도 달아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꼼짝 못하던 작은 말이 갑자기 울부짖더니 온몸에서 은빛을 뿜어내 불실들의 결박을 풀고 부적들을 향해 뻗어 나간 것이다.
폭음이 들리고 부적들을 재로 만든 불실 열 개가 이내 한립을 향해 날아들었다. 시종일관 태연한 한립이었지만 이 순간에는 미미하게 안색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한 손을 들어 불실들을 향해 손짓하자 붉은 실들의 움직임이 느려지며 그의 손바닥으로 흡수되었다. 작은 말은 이것을 기회 삼아 멀리 달아날 요량이었다.
그러나 안색이 어두워진 한립이 코웃음을 치며 비술을 펼치자 작은 말은 즉시 몸을 떨며 그대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한립이 양신자 비술을 사용한 것이다.
등 뒤의 날개를 펄럭인 한립은 그 자리에서 사라져 추락하는 작은 말 아래에서 나타났다. 그는 어떤 보물도 이용하지 않고 허공을 쥐어 보라색 거대 손으로 작은 말을 낚아챘다.
보라색 한염이 크게 일었고 거대한 얼음덩이가 불 속성 영체를 감쌌다.
그리고 때마침 도착한 태음불새와 한기의 교룡이 단번에 뛰어들어 보라색 얼음 속에서 영기의 빛을 반짝이며 융합되었다.
양신자에 당한 어지럼증에서 벗어난 말이 은색 화염을 크게 키우며 얼음덩이를 뚫고 빠져나가려 했지만 동급의 태음진화가 융합된 얼음덩이를 무슨 수로 뚫을 수 있겠는가!
교룡과 적홍색 불새는 물 만난 고기처럼 작은 말을 향해 한기를 뿜어댔다.
잠시 후, 오자동심마도 도착했다. 그것들도 기괴하게 큰 입을 벌려 다섯 종류의 한염을 뿜어냈고 하나로 합쳐진 오색 한염은 곧바로 보라색 얼음 속의 말을 향해 날아갔다.
대량의 차가운 기운들이 밀려들자 태양정화가 변한 작은 말도 점점 기운이 쇠약해져갔다. 한립이 그 모습을 보고 소매를 털어 다시 열댓 장의 부적을 날려 보냈다.
이번에는 부적들이 보라색 얼음을 통과해 작은 말의 몸에 달라붙자 작은 말도 절망스런 얼굴로 저항을 멈추었고, 은빛이 암담해져 더는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은빛 화염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러자 말의 몸에 붙은 부적들이 다채로운 색깔의 빛의 장막으로 변해 은색 화염을 구속했고, 얼음 속의 태음불새가 적홍색 화염으로 변해 태양정화를 감쌌다.
이에 한립은 수결을 맺어 보라색 얼음에 법결을 던져 넣었고 얼음은 보랏빛으로 반짝이며 줄어들었다. 한립은 눈 깜짝 할 사이에 주먹 크기로 작아진 얼음덩이를 손바닥 위에 놓았다.
“태양정화를 포획하다니 운이 제법일세. 그것이 태음진화와 함께 음양의 조화를 이뤄낸다면 상상 이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야. 아마 영계의 선령지염(仙靈之焰)이라 불리는 것들도 그보다는 못할 테지!”
그의 귓가에 질투어린 사내아이의 탄식과 같은 말소리가 들려왔다.
‘선령지염?’
한립은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에 눈을 반짝였으나 더는 캐묻지 않고 두 손을 비볐다.
세밀한 금빛 뇌전이 튀어 나와 보라색 얼음 구슬을 감쌌고 어느덧 금색 구슬로 변해 나타났다. 그가 소매를 털자 푸른색 작은 솥이 나와 그의 가슴 앞에서 빙글 돌며 멈추었다.
바로 허천정이었다.
텅!
손끝으로 작은 솥을 튕기자 맑은 울림이 퍼지며 솥뚜껑이 날아갔고 푸른실 뭉치들이 금색 구슬을 휘감아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두 손으로 수결을 맺으며 통보결을 운용하자 솥뚜껑이 다시 떨어져내려 솥이 닫혔다. 그제야 안심한 한립의 눈빛에서 들뜬 기색이 느껴졌다.
‘이것만 있으면 회양수를 제련할 수 있다.’
수백 년의 수명을 더 얻게 된다면 원자신광이 아무리 어려워도 분명 대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연이어 오자동심마와 인간형 꼭두각시를 회수하고는 이곳에 펼쳐둔 거대한 진법을 해체해 흔적을 깨끗이 지웠다.
그리고 나서야 겨우 태양정화를 가지고 화산 입구를 벗어났다. 이제 대진에 온 목적을 이루었으니 바로 천남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이번에 돌아가면 일단 회양수를 제련해 자신과 남궁완의 수명을 늘리고 다시 추마골의 공간균열을 찾아 개자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아 놓은 귀라번 속의 혼백의 힘을 빌려 공간 보물인 적혼번을 만들면 된다.
그것으로 원자산을 천남으로 가지고 와 개자공간 속으로 숨어들면 원자신광을 대성해 화신기 경지에 진입할 때까지의 모든 준비를 마치게 되는 셈이었다.
그는 이번 시도를 위해 지난번 고비에도 나무 속성의 극품영석을 아껴두었었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때에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마타산에서 자령을 구한 후 향지례가 말했던 마원단(魔元丹)을 잊지 않고 챙겼다.
수중의 만년현옥을 이용해 호 노마에게 세 개나 얻어냈지만 지금도 그 때의 거래를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쓰려왔다.
그 늙은 마수가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한립이 소극궁에서 대량의 만년현옥을 가지고 떠났다는 것을 알고 절반이나 요구했기 때문이다.
마원단의 효과에 자신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시첩을 빼앗긴 일로 보복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만년현옥은 진귀하기 이를 데 없는 보물이었지만 지금의 한립에게는 화신기에 이를 가능성을 높여줄 마원단보다 중요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 효과가 미미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는 향지례가 보는 앞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거래에 응했다.
아직도 거래를 마친 호 노마의 득의양양한 얼굴을 떠올리면 조금 울적해질 정도였지만, 한립은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데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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