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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21화 (478/2,000)
  • 721화. 진법, 제단 그리고 거대한 솥

    *

    중상을 입었음에도 요수는 사납게 한립을 향해 돌진했다. 불 속성 요수들은 대부분 성질이 포악하고 성질이 조급했다.

    한숨을 내쉰 한립이 이번에는 다섯 손가락을 연달아 튕겼다.

    푸푸푹!

    파공음이 울리고 붉은 실 다섯 개가 조류형 요수의 몸 곳곳을 뚫고 휘감았다. 핏빛 실금이 가고 요수는 조각이 나 살점이 뿔뿔이 흩어졌다.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제련된 화령사는 수행이 낮은 요수를 상대하기에는 위력적인 무기였다. 한립이 손짓해 붉은 실들을 불러들였다.

    안개의 바다에 깊이 잠겨들수록 요수들은 빈번히 나타났고 한립은 지금까지 순식간에 열댓 마리를 참살했다.

    한 번은 대여섯 마리 불원숭이 요수들이 한 번에 달려들었는데 원영 초기 수사였다면 당황했겠지만 지금 그의 수행으로는 끄떡없었다.

    그는 입에서 작은 비검을 뿜어 강철 같은 몸을 지닌 불원숭이 요수들을 한 번에 처리했다. 그러나 더욱 깊이 들어가자 처음으로 문제에 봉착했다.

    수십 장 앞에 있는 붉은 색 불덩이가 원래 형태가 없는 것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한립이 냉랭히 그것을 보다 금빛 검기로 수차례 베었지만 붉은 빛덩이는 다시 응집해 원래대로 돌아가곤 했다.

    어쩔 수 없이 그가 수결을 맺으며 입에서 보라색 빛기둥을 뿜어내 붉은 빛덩이의 한 가운데를 꿰뚫었다.

    이것은 한립이 원영 후기에 이르러 깨달은 비술 중 하나로 자라극화를 압축해 강대한 영력을 분출해서 위력을 더하는 비법이었다.

    이번에도 붉은 빛덩이는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회복 속도가 이전보다 확연히 느려졌다.

    “듣던 대로 화살령(火煞靈)들이 조금 성가시구나. 상극에 속하는 극한의 한염도 큰 효과도 없고 말이야. 한려상인이 인상 깊게 기억할 만 하군.”

    그가 잠시 머뭇거리는 동안에도 붉은 빛덩이는 요귀로 변해 붉은 화염을 분출하며 덤벼들었다.

    이에 한립은 한 손으로 허공을 때렸고 푸른 거대 손이 나타나 번개처럼 붉은 요귀를 쥐어짰다.

    붉은빛이 반짝이며 요귀의 육신이 허물어졌지만 다시 융합해 원래대로 돌아갔다.

    한립이 다시 저물대를 스쳐 무언가를 불러내려는데 하필 그때 그의 몸에서 맑은 울음소리가 들리며 어깨에 붉은빛이 번뜩였다. 새빨간 불새가 작은 몸을 드러낸 것이다.

    ‘흠.’

    한립이 고개를 돌려 새를 보고는 일순 멍해졌다. 그것은 뜻밖에도 태음진화가 변한 진화지령(眞火之靈)이었다.

    어째서 그것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생각하기도 전에 불새는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붉은 빛덩이를 향해 쇄도했다.

    날아가는 동안 불새의 몸은 한 척으로 커졌고 날카로운 부리가 빛덩이를 쪼아댔다.

    불새가 쪼아대자 빛덩이는 이가 나간 그릇처럼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빛덩이는 여전히 모습을 바꿔가며 태음불새의 공격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불새가 발톱으로 꽉 주고 쪼아대니 마음대로 모습을 바꾸지도 못하고 벗어나지도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한립은 그것을 보고 가볍게 미소 지었다.

    불새가 화옥에서 가장 골치 아픈 존재인 화살령들의 천적이라면 앞으로 큰 수고를 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그가 편안히 구경하는 동안 화살령은 태음 불새에게 깨끗이 잡아 먹혔다.

    이후 불새는 맑게 지저귀며 한립의 어깨 위로 돌아왔지만 깃털을 정리하며 앉았을 뿐 바로 체내로 돌아갈 마음은 없어보였다.

    그는 불새를 회수하지 않고 다시 안개의 바다 속으로 날아갔다.

    *     *     *

    안개의 바다와 화산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해서 장장 사흘을 날아간 끝에야 겨우 목적지인 거대한 휴화산 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는 동안 죽인 요수만 해도 7, 80 마리는 되었고 심지어 7급 최고봉에 이른 요수들도 몇 마리나 되었다. 그런 것들은 8급 화형기를 코앞에 둔 요수들이었다.

    다만 화살령의 경우 고작 두 번 밖에 마주치지 않았는데 태음불새가 남김없이 쪼아 먹어 그가 걱정할 일은 없었다.

    그는 화산 입구에 내려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한 손을 저물대로 가져가 한 벌의 진법 법기들을 꺼내 등 뒤로 던지니 또 한 명의 한립이 나타났다.

    진법 법기를 받아든 것은 두 번째 원영이 조종하는 인간형 꼭두각시였다.

    꼭두각시는 신형이 흐릿해져서 은색 빛줄기로 변해 안개 속으로 사라졌고 한립은 가부좌를 한 채 그 자리에서 기운을 가다듬었다.

    한식경이 지나 인간형 꼭두각시가 빈손으로 돌아와 앞에 섰다.

    다시 눈을 뜬 한립이 꼭두각시를 보며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자 인간형 꼭두각시는 다시 신형이 흐릿해져 사라졌다.

    온 몸에 푸른 기운을 북돋은 한립이 푸른 빛줄기로 변해 날아갔고 화산 입구의 중심부에서 잠시 멈췄다.

    그는 주변 환경을 살피고 손에 쥐고 있던 하얀 무언가를 발동했다.

    회전하던 물건은 점점 불어나 결국에는 열댓 장 크기의 거대한 몸집으로 땅에 떨어졌다.

    쿵!

    주변이 떨릴 정도로 무거운 물건이었는데 놀랍게도 새하얀 옥으로 제련한 소형 제단이었다. 표면에 새겨진 주술로 보건데 법기와 비슷한 물체 같았다.

    한립이 한 손을 들어 작은 남색솥을 꺼냈고 주술을 외며 법결을 던져 넣었다. 그러자 솥이 빙글빙글 돌며 한 장 크기로 커졌다.

    텅!

    한립이 손끝으로 솥을 튕기자 솥뚜껑이 저절로 날아가며 남색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촤르륵.

    남색 기운은 땅을 얼음으로 뒤덮었는데 이것의 정체는 바로 건람빙염이었다. 그리고 남색 작은 솥은 한려상인이 들고 있던 건람정이었다.

    남색빛이 퍼져나가는 곳마다 붉은 안개가 물러났고 고리형 화산의 입구는 푸른빛으로 물들며 붉은 열기를 밀어냈다.

    그것을 본 한립은 거대해진 솥을 가리켜 앞쪽 제단 중간으로 이동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손바닥만 한 진법 원반을 꺼내 법결을 던져 넣자 제단 주변에 대형 진법이 나타났다.

    제단을 중심으로 진법이 발동되어 영기의 빛이 반짝였고 거대한 솥, 제단, 진법이 하나로 연결돼 건람빙염이 푸른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드디어 남색 얼음이 화산 입구를 뒤덮었다.

    이때 한립은 신중한 얼굴로 진법 원반을 가리켰고 화산 입구 주변으로 수십 개의 남색 빛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올라 주변 공간을 철저히 봉쇄했다.

    수십 장 높이로 찬란하게 빛나는 남색 빛기둥의 기세가 남달랐다.

    한립이 소매를 털어 또 다른 남색 솥을 방출했다.

    솥은 거대한 진법 위에 떠올라 스무 장 위에서 빙글빙글 돌며 회전했다. 그리고 은빛이 반짝이는 작은 솥 위로 인간형 꼭두각시가 우뚝 섰다.

    이에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고 영수대를 스쳐 하얀 한기 속에서 열두 마리의 육익상공들을 불러냈다.

    지네는 나타나자마자 머리부터 꼬리까지 몸을 털며 한기를 뿜어댔고 흩어져 구석구석에 포진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그는 진법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는 수결을 맺어 온몸에 보라색 화염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땅속으로 파고들어 모습을 감추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남색 보호막과 솥 위에 선 인간형 꼭두각시 그리고 하얀 기운만이 남아 있었다.

    지하 수십 장 아래, 한립은 벌써 적홍색 용암 속에 있었다.

    인간은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고온 속에서도 한립은 극한의 화염 덕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한기와 열기가 충돌하는 나지막한 폭음에 귀가 시끄러울 뿐이었다.

    불 속성 보호막을 쓰면 주변 용암과 동화되어 이런 충돌이 없겠지만 열기마저 차단하기에는 차가운 속성의 보호막이 나았다.

    태양정화를 만나기 전에 법력 소모를 최소화하려는 그만의 전략이었다.

    그런데 용암 속에 들어오니 의식으로 수색 가능한 범위가 백여 장이 되지 못했다.

    그는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한려상인이 태양정화가 이곳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몇 번이나 찾는 데 실패한 것이 이해가 가는군.’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 영성이 높은 태양정화를 포획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포획에 성공할 수 있을 지 없을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립은 문득 어깨에 앉아 몸단장에 열중하는 태음불새를 건드렸다. 그러자 불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보라색 보호막을 떠나 용암 속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태음진화는 인계의 극히 음한 성질을 지닌 물질이라 용암에서 돌아다녀도 큰 무리가 없었다.

    차가운 태음진화와 뜨거운 태양정화는 음양 조화의 원리에 따라 서로를 부르기 마련이었다.

    일단은 태양정화를 찾아내고 어떻게든 그것을 땅 위로 유인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는 불새가 날아가는 곳을 따라 화산 중심을 살살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며칠이 흘렀다.

    한려상인이 태양정화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곳을 포함해서 거의 인근 만 리를 이 잡듯이 뒤졌지만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더욱 실망스러운 점은 태양정화는커녕 그것이 이곳에 존재한다는 흔적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달 후, 화산 입구를 중심으로 수만 리 밖을 수색 중인 한립은 약간 피곤함을 느꼈다. 용암을 시냇물처럼 드나들고 의식으로는 계속 주변을 감시해야하니 아무리 법력이 많더라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이건!”

    한 번 더 지면으로 올라가 휴식을 취해야할까 고민하던 그가 갑자기 눈을 번뜩이며 기뻐했다.

    두말할 것 없이 저물대를 스치자 오자동심마를 담아둔 검은 병이 용암 속에서 엎어지며 회백색 기운 다섯 줄기를 뿜어냈다.

    오자동심마들은 용암 속에서 불편한 기색이었지만 회백색 기운으로 뒤덮여 있어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한립이 주술을 외자 다섯 마귀들이 허공을 굴러 해골 머리로 변했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다시 소매를 털자 열댓 개의 화룡주가 나왔고 새빨간 보호막이 다시 그를 보호해 주변 용암과 하나로 융합되어 사라졌다.

    일다경이 지나 붉은 빛이 반짝이더니 태음불새가 붉은 빛에 휩싸여 용암 속에서 튀어나왔다가 사라졌다.

    동시에 주변 용암이 요동치며 기온이 배로 올라갔고 은빛이 번뜩이며 그 뒤를 쫓았다. 은빛이 사라지자 용암도 안정을 찾았고 차츰 온도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붉은 보호막 안에 숨어있던 한립이 반가운 얼굴로 은빛이 사라진 곳을 응시했다. 그가 즉시 붉은 빛줄기를 남기며 그 뒤를 쫓자 태음불새, 은빛 그리고 한립 간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곧 문제가 발생했다.

    태음불새가 용암 속에서 문제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은빛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불새가 화산 입구를 십여 리 앞뒀는데 거의 은빛에 따라잡히기 직전이었다.

    은빛이 맹렬히 태음불새를 덮쳤고 은빛과 적홍색이 얽혀들었다.

    한립은 은빛이 달아날까 무턱대고 끼어드는 대신 의식이 연결되어 있는 태음불새를 통해 그것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것은 놀랍게도 수 촌 크기의 작은 말(馬)이 은빛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줄곧 태음불새를 추적하고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은빛 불똥을 튕기는 작은 말이 태양정화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태음불새는 막 탄생했을 때는 허약했지만 소극궁 현옥동에서 만년현옥의 한기를 마음껏 갉아먹고는 위력이 크게 늘어난 상태였다.

    위력으로만 보면 태음진화나 태양 정화나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용암 속이었고 은빛 말은 무궁무진한 용암의 열기를 받아 평소보다 훨씬 위력적이었다.

    그에 반해 태음불새는 영력을 소모해 용암을 막으면서 상대를 향해 새빨간 한염까지 쏘아대야 하니 시간을 끌수록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의식을 통해 이를 확인한 한립이 미간을 좁혔다.

    한려상인의 기억으로 보건데 태양정화는 영성을 깨친 지 오래 되어 바람소리나 풀잎 날아가는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 재빨리 도망가고는 했다.

    거기다 태양정화가 변한 날개 달린 은빛 말이라니 화둔술(火遁術)은 얼마나 빠르겠는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태양정화를 유인해 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한립이 수결을 맺으며 입에서 하얀 구슬을 뱉어냈다.

    자라극화 속에서 배양하던 설정주(雪晶珠)였다.

    그가 법결을 연달아 때려 넣자 구슬이 하얀 빛줄기를 남기며 날아갔다.

    설정주는 순식간에 작은 말과 태음 불새 사이로 번뜩이며 날아들었고 그와 동시에 작은 말은 화들짝 돌라 은빛을 번뜩이며 용암 속으로 사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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