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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19화 (476/2,000)
  • 719화. 비취색 산봉우리

    *

    향지례와 풍 노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백여 장 떨어진 곳에서 한립과 호 노마는 대치중이었다.

    한 명은 태연했고 다른 한 명은 무표정했다.

    지면에는 주변 궁전에서 쏟아져 나온 수백 명의 아름다운 마궁 시녀들이 몰려들어 재잘거리며 구경하고 있었다. 마궁 궁주가 친히 나서는 모습을 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향 형이 볼 때 호 노마가 전력을 다한다면 한 가 녀석이 받아낼 수 있겠습니까?”

    풍 노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허공을 응시하다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지요. 만일 그냥 일격을 날리면 막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영보라도 사용 한다면 무사하지는 못하겠지요. 그러나 호 노마가 서로에게 득 될 것 없는 짓을 하겠습니까.”

    향지례가 미간을 좁히며 천천히 대답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허나 향 형은 호 노마가 최근에 영보 못지않은 위력을 내는 이보를 얻은 것을 모르시지요? 특수한 비술로 제련해야 사용할 수 있다지만 호 노마의 법력이 더해지면 그 위력이 어떠할지. 내가 볼 때는 십중팔구 그것을 사용할 듯 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향지례의 표정이 미미하게 달라졌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허공에 떠 있던 한립과 호 노마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 노마가 소매를 털자 청록색 빛이 튀어나와 그의 머리를 선회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고풍스러운 족자였는데 신비로운 비취색 빛을 반짝이는 것이 묘했다. 노마는 냉랭히 한립을 보고 두 손으로 수결을 맺으며 주술을 읊었다.

    족자는 주술소리에 천천히 펼쳐졌고 희미하게 열댓 봉우리가 우뚝 솟은 비취색 산이 그려진 아름다운 산수화가 나타났다.

    다른 수사들이 족자의 그림을 자세히 살피기도 전에 별안간 녹색 안개가 그 속에서 뿜어져 나왔고 안개 속에서 다시 8개의 청록색 빛기둥이 하늘 위로 치솟았다.

    그러자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다.

    빛기둥들이 가시고 그 안에서 한 장은 될 법한 초소형 산봉우리들이 나타났는데 하나같이 녹음이 푸르고 짙은 영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맑은 울음소리가 작은 산 속에서 울려 퍼졌다.

    “저건…….”

    한립도 기이한 보물의 모습에 놀라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가 두 손을 펼치자 쥐고 있던 녹색 나무 자와 푸른 솥이 등장했다.

    나무 자를 던지니 은색 연꽃 환영이 나타나 몸을 키워 그의 앞을 막았다.

    텅!

    동시에 푸른 솥을 가볍게 두드리니 뚜껑이 날아가고 푸른 실 뭉치가 솟아올랐다. 푸른 실들이 거대한 그물이 되어 한립을 보호한 것이다. 그리고 허천정 또한 수 척 크기로 불어나 그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이어 그가 수결을 맺자 온 몸이 금빛으로 번뜩였고 금색 옷을 한 겹 덧대 입은 것처럼 불문의 사리로 만든 금강조가 나타났다.

    단숨에 강력한 보호막이 세 겹이나 쳐진 것이다. 한립이 조금 안심하는데 호 노마가 지켜보다 말했다.

    “준비가 된 것 같으니 노부도 시작하겠네.”

    낮게 일갈한 노마는 수결을 맺었고 새까만 빛기둥이 입에서 나와 녹색 안개 속으로 흡수되었다. 그는 뜻밖에도 족자 속으로 영력을 퍼부었다.

    작은 산에 비취색 빛이 요란하게 번지며 한 호흡 만에 5, 60장은 되는 산봉우리로 바뀌었고 여덟 개가 모이니 진정한 산이라고 하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산에서 울리던 울음소리는 한 척 크기의 푸른 원숭이들이 산 속을 넘나드는 소리였는데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밑에서 이를 지켜보던 수사들이 깜짝 놀라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자령은 근심이 가득해졌다.

    “가라!”

    노마가 검은 빛을 번뜩이며 천만근은 되는 무언가를 치자 작은 산 하나가 묵직한 진동을 하며 한립을 향해 일렬로 날아들었다.

    그것이 여러 개가 아니라 단 하나라 해도 원영기 수사는 막지 못할 엄청난 규모였다. 10개가 넘는 산봉우리를 전부 밀어 붙이고 호 노마는 길게 숨을 들이쉬며 피곤한 얼굴로 손을 거두었다.

    호 노마가 이것들이 한립을 혼내주기에 충분하다고 여긴 것인지 아니면 소모한 법력이 커서 그만 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립은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호 노마가 일격을 조건으로 내걸었을 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이렇게 엄청난 산봉우리들을 마구 던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미리 약조한 바가 없었다면 당장 피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그런데 한립이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한 손으로 허리춤을 스쳤다. 그리고 그 순간 검은 빛이 빠져 나와 허공을 선회했는데 원숭이 제혼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소매 속에서 새까만 병이 날아들며 다섯 구의 인간형 백골들이 회백색 마기 속에서 나타났다.

    한립은 두 손으로 수결을 맺으며 서둘러 의식을 움직였다.

    크와앙!

    작은 원숭이는 온몸에서 검은 빛이 흐르더니 삼십 여 장은 될 법한 거대한 모습으로 변했고 두 주먹을 쥐고 가슴을 두드리며 길게 포효했다.

    제혼이 코를 흥! 풀자 대량의 노란 기운이 빠져나가 응결하더니 거대 갈퀴로 변했다.

    거대 원숭이가 삼지창 같은 병기까지 손에 쥐니 하늘에서 요마라도 강림한 것 같았다.

    그 옆의 오자동심마들은 벌써 하나로 합쳐져 마기 속을 뒹굴었고 거대 원숭이에 맞먹는 크기로 커져 하얀 뼈 칼날을 들었다.

    이제 방대한 육체를 지닌 마수와 요수가 한립의 좌우에 버티고 서 있었다. 이때 작은 산 하나가 흉흉한 기세를 뿜으며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거대 백골과 거대 원숭이가 한립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손에 든 뼈 칼날을 교차해 뻗었고 거대한 갈퀴를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콰콰쾅! 쿠쾅!

    두 번의 굉음이 울리고 거대 원숭이와 백골의 몸이 묵직해진 순간 3개의 병기가 작은 산을 막아냈다.

    막 삼염선을 꺼내려던 한립이 그것을 보고 희색을 보였다. 그런데 연달아 충돌음이 울리고 몇 개의 산봉우리가 더 떨어지며 같은 곳에 하중을 가했다.

    그러다보니 거대한 제혼과 오자동심마가 아무리 위력적이라도 버티기 힘들어 했다.

    쿠콰콰쾅!

    세 번째 굉음이 울리자 이제 거대 원숭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고 등 뒤로 악귀 문양이 암담해지며 노란 갈퀴가 산산이 깨져나갔다.

    결국 거대 원숭이의 몸이 새까만 빛에 휩싸여 작아지더니 한 장 크기로 줄어들고 말았다.

    거대 원숭이가 돕지 못하자 거대 해골도 네 번째 굉음에서 버티지 못하고 양손에 들고 있던 뼈 칼날이 두 동강이 났다. 그러나 산덩이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백골을 억눌렀다.

    거대 백골은 사납게 눈을 번뜩였지만 눈빛에 두려운 기색이 스쳤다.

    한립이 놀라 삼염선을 움직이려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푸학!

    거대 백골이 분노하며 오색 화염을 분출해 비취색 산봉우리 아래를 공격하자 백골을 으깨버리려던 산봉우리의 기세가 약해지고 속도도 느려져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산봉우리들은 오색 화염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에 여전히 그 위로 호되게 떨어져 내렸다.

    쿠쿵!

    경천동지할 굉음이 터지고 네 번째 산봉우리가 허공에서 스스로 폭발해 비취색 태양처럼 빛을 발산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오색 화염이 비취색 빛을 가볍게 막았다.

    이에 한립이 눈을 부릅떴다.

    다섯 한염이 합쳐지면 이상한 신통을 발휘하는 것은 알았지만 거대한 산봉우리에도 통할 줄은 몰랐다.

    이를 지켜보던 호 노마는 얼굴을 굳히며 의식을 이용해 다른 두 개의 봉우리를 동시에 추락시켰다. 그러나 한립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의 조종을 받은 거대 해골은 회백색 기운으로 흩어져 피했고 봉황 울음소리를 내며 삼색 불새가 삼염선 속에서 용솟음쳐 날아올랐다.

    그러나 수십 장 가까이 폭발적인 빛을 터트리며 삼색빛이 산봉우리를 막았지만 곧 다시 밀리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립은 이번엔 푸른 솥을 가리켰다.

    그를 보호하고 있던 푸른 실들이 번뜩이며 푸른 기운으로 솟구쳐 삼색 기운과 합류해 비취색 산봉우리를 버텨냈다.

    그러나 다른 두 개의 산봉우리가 연달아 떨이지자 비취색 빛이 다시 한 번 힘을 발휘하며 아래로 밀려 내려왔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한립이 몸 앞의 은색 연꽃을 향해 소매를 털었다.

    거대한 연꽃이 번쩍이며 그 자리에서 사라져 한립의 머리 위에 일곱 빛깔의 불광으로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그 중심에 녹색 나무 자가 빙글빙글 돌자 연꽃이 다시 한 번 몸집을 키웠다.

    한립은 이에 그치지 않고 두 손을 합장한 후 허공을 향해 펼쳤다.

    천둥소리가 울리고 팔뚝만한 금빛 뇌전이 소매를 빠져나가 응집하더니 금빛의 거대한 구렁이로 합쳐져 머리부터 꼬리까지 몸부림쳤다.

    동시에 그가 입을 벌려 수정 구슬을 내뿜었고 그것이 단숨에 십여 장 길이의 보라색 뱀으로 변해 사납게 튀어나갔다.

    이에 허공의 비취색 빛이 반짝거리며 8개의 비취색 봉우리를 드러냈는데 그 중 4개는 암담했고 나머지는 온전했다. 그런데 산봉우리들 사이로 빛이 흐르더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8개의 산봉우리가 중간에서 하나로 합쳐져 천여 장에 이르는 거대한 산으로 변해 힘을 뿜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아래쪽에서 보라색 뱀과 뇌전 구렁이, 은색 거대 연꽃이 치고 올라갔다.

    동시에 영기의 빛이 폭발하며 뇌전과 한기, 은빛이 비취색 빛과 섞여 일순 대치 상태를 이루었다.

    아래에 있던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남색 눈동자를 일렁였고 낮게 일갈하며 입에서 정혈을 뿜어냈다. 그러자 핏줄기가 은색 연꽃으로 날아가 초록색 나무 자에 흡수되었다.

    그는 연달아 손가락을 놀리며 기이한 주술을 외쳤다. 그 소리에 향지례와 풍 노괴가 눈을 부릅뜨며 놀라워했다.

    천 장 높이의 거대 산이 은색 연꽃을 압도하려는데 갑자기 8가지 각기 다른 울음소리가 나무 자에서 울려 퍼지며 8마리 요수의 환영이 나타났다.

    한립이 법결로 북돋자 환영들은 몸을 키우며 진짜 살아 있는 요수처럼 변해 마치 전설 속의 천지 영수들이 나타난 것 같았다.

    8마리 영수는 곧장 불을 뿜으며 달려들었고 한 번에 거대한 산을 밀어 붙여 더는 내려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를 보던 호 노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한립을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최소한 중상은 입히려 했는데 이렇게 쉽게 공격이 막힐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호 노마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의식을 움직였다.

    그러자 돌연 비취색 산봉우리에서 요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무수히 많은 잿빛 그림자들이 튀어나와 한 장 크기의 푸른 원숭이들로 변해 뛰어 내렸다.

    그것들은 살아 있는 요수가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제련 과정을 거쳐 요수의 혼백을 이용해 만든 불사체들이었다.

    아무리 베어내도 잠시 후면 비취색 산봉우리에서 살아났고 위력도 상당했다.

    푸른 원숭이들이 날뛰기 시작할 때 한립 옆에서 되돌아와 있던 제혼이 두 눈을 반짝이며 즐겁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 즉시 검은 빛이 온몸을 감돌며 다시 몸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열댓 장 정도에서 변형을 마치고 콧김을 세게 불었다. 노란 기운이 콧속을 빠져나와 수백 줄기로 갈라지더니 허공을 파고들었다.

    푸른 원숭이들은 요기가 농염했고 5급에서 7급에 달하는 수행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노란 빛이 스치면 힘없이 떨어져 내리며 녹색 기운으로 변해 휩쓸려갔다.

    물론 이런 녹색 기운들은 제혼에 의해 남김없이 흡수되고 말았다. 결국 수백 마리의 푸른 원숭이들은 단 한 마리도 남지 않고 제혼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포식을 마친 제혼은 다시 몸이 줄어들더니 검은 빛으로 변해 스스로 한립의 허리춤으로 사라졌다.

    “…….”

    한립은 의식으로 제혼이 다시 한 번 진화하려한다는 것을 감지하고 기뻐했다.

    제혼이 이렇게 많은 푸른 원숭이 요혼을 잡아먹는 것을 본 다른 수사들은 그저 얼떨떨했지만 푸른 원숭이의 위력을 알고 있는 호 노마는 멍하니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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