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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17화 (474/2,000)

717화. 구출

*

호 노마는 향지례, 풍 노괴와 한담을 이어갔고 다른 수사들도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렇게 한식경이 지났을 때 한립을 주시하던 남색 장포 유생이 일어나 그를 향해 포권을 했다.

“한 수사, 호 선배님의 말씀을 들으니 최근 음라종에서 발생한 일과 관련이 있으신 듯 한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어찌 수사께서 음라종에 관련된 분이신지요?”

“일개 산수에 불과한 제가 그럴 리가요. 다만 음라종 방 수사와는 몇 번 만나본 일이 있습니다. 방 수사의 죽음도 수사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

남색 장포 유생이 의심스럽다는 듯 다시 묻자 다른 원영기 수사들도 즉시 대화를 멈추고 한립을 지켜보았다.

“진상을 알고 싶으신 거라면 숨김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음라종 종주는 제가 죽인 것이 맞습니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유생을 잠시 바라보다 담담히 인정했다. 그 말에 수사들은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그러셨군요.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색 장포 유생도 가슴이 서늘해져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앉았다.

호경뢰가 그것을 보고 웃음을 흘리며 무어라 하려는데 전각 밖에서 궁장 시녀가 걸어 들어와 그에게 작게 속삭였다.

천마종 태상 장로가 눈을 빛내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향 형과 풍 수사께서 오시기 전에 여러 수사들이 시첩을 궁금해 하기에 불렀습니다. 전각 바깥에 도착했다니 수사들에게 술이나 대접하게 하지요. 괜찮으시면 준비해 오신 선물을 풀어 놓으시지요. 특히 풍 형과 향 형의 선물을 기대하겠습니다. 후배들보다 못한 물건을 준비하시지는 않으셨겠지요?”

호경뢰가 웃음을 터트렸다.

“노부가 수사를 알고 지낸 후로 시첩을 들인다는 구실로 가져다 바친 보물들이 어디 한두 갭니까?”

풍 노괴가 콧방귀를 뀌며 어이 없어하더니 한 손을 뒤집어 작은 나무 상자를 상 위에 올려놓았다. 향지례도 웃음기 어린 얼굴로 말없이 옥갑을 꺼냈다.

“허허, 그 보물들을 노부가 독차지 한 적은 없습니다. 미인들을 위한 선물인데 인색하실 게 무엇입니까. 어차피 수사들이 지닌 재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인 것을요. 아름다운 여인의 미소를 위한 것이라면 그 정도도 못하겠습니까?”

풍 노괴의 말에 호경뢰는 성을 내기보다는 크게 웃어 보였다.

다른 수사들도 분분히 미리 준비한 물건들을 꺼냈는데 진귀한 재료부터 휘황찬란한 고보들까지 각양각색이었다.

한립도 미리 생각해 둔 것이 있어 약병 두 개를 꺼냈다.

원영기 수사의 법력 증진에 큰 도움이 되는 단약들이니 어찌 봐도 소박한 선물은 아니었다.

잠시 후 전각 밖에서 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궁장을 입은 시녀들이 세 명의 미녀들을 둘러싸고 천천히 들어왔다.

그들이 들어오자 수사들의 감탄이 쏟아졌다.

한 명은 작은 체구에 하얀 살결이 지녔으며 영민해 보이는 얼굴이 퍽 앳되었고, 다른 한 명은 풍만한 몸매에 촉촉한 눈망울이 무척 요염해 보였다.

마지막 한 명은 마른 몸에 흑발의 머리카락을 지녔는데 고운 용모와는 다르게 표정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누구나 그녀들을 보면 너무 아름다워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

특히 마른 여인은 이목구비가 화사하고 행동거지 하나하나에서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이 풍겼는데 냉담한 표정마저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 더욱 시선을 끌었다.

그런데 미소를 유지하던 한립이 하얀 궁장 차림의 여인을 보고 표정이 급변했다.

“자자, 여기 수사들에게 한 잔씩 술을 올리거라! 너희들을 축하하기 위해 만리를 마다치 않고 달려와 주신 분들이니 말이야. 자령, 너는 이쪽으로 올라와 향 형 등에게 술 한 잔씩 대접하거라.”

세 여인을 본 호 노마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바로 마른 여인을 불렀다.

이에 마른 여인을 제외한 두 여인들은 즉시 빙그레 웃으며 옥쟁반을 든 시녀들을 따라 움직였다.

그들이 양편으로 갈라져 술잔을 채울 때마다 수사들은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인사를 했다.

그러나 자령이라고 불린 여인은 바로 움직이지 않고 눈썹을 찡그리며 향지례와 풍 노괴 등이 앉아 있는 곳을 훑었다. 그러다 한립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 시선을 떼지 못했다.

여인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져서는 처음에는 기뻐하다가 나중에는 어찌 할 바를 몰라 했다.

누구라도 그 표정을 보면 여인과 한립이 아는 사이이며 보통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 다.

그 모습에 호 노마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전각이 순간 싸늘해져 다들 한립과 여인을 쳐다보았다.

“자령은 한 수사를 알더냐?”

호경뢰의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자령의 귓가에는 벼락처럼 울렸다.

“예, 한 형과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입니다.”

자령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거둔 다음 간신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나 오르락내리락 하는 그녀의 가슴은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다.

“자령 소저, 이런 곳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한립이 코끝을 긁적이다 한참 만에 쓴웃음을 지었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니 더 잘 됐군. 한 수사께 한 잔 올리거라. 마궁에 들어오면 이전에 어떤 관계였든 끝이니 말이야.”

잠시 침묵하던 호경뢰가 담담히 말했다. 한립과 자신의 애첩이 될 여인이 무슨 사이였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그 말에 간신히 미소 짓던 자령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마궁 시녀 하나가 얼른 옥쟁반을 가지고 다가와 비취색 술잔과 술병을 내주었다. 자령은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술병을 들었다.

긴장감이 흐르던 전각의 분위기는 그녀가 고분고분 분부를 따르자 편안하게 바뀌었고 호 노마의 굳은 얼굴도 풀어졌다.

한립은 조용히 자령이 술병을 들고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제 그녀의 얼굴은 다시 냉담하게 돌아왔고 한립을 보는 시선도 무척 낯설었다.

한립은 입 꼬리를 꿈틀했다가 즉시 원래 표정으로 돌아갔다.

“한 수사, 한 잔 받으시지요.”

한립은 술잔을 내려다보다 바로 그 것을 받지 않고 그녀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전각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날카로워졌고 호 노마의 눈에도 한기가 스쳤다.

향지례는 무언가 안 좋은 조짐을 느꼈는지 힐끗 호 노마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고 풍 노괴는 무슨 생각인지 실실 웃고 있었다.

다른 수사들이야 그저 강 건너 불 구경하 듯 상황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한립은 갑작스레 손을 뻗어 자령이 들고 있던 술잔을 받더니 단번에 들이켰다.

그 모습에 호경뢰가 눈썹을 끌어 올렸지만 곧 원상태로 돌아왔다.

자령은 복잡한 심경이 깃든 눈빛으로 잠시 한립을 보다가 말없이 빈 술잔을 거둬 몸을 일으키려 했다.

“잠깐! 내 착각이 아니라면 자령 소저의 몸에 금제가 걸려 있는 것 아닙니까?”

다들 호경뢰의 위세에 쉬쉬하던 이야기를 한립이 담담히 꺼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돌아가려던 자령이 그대로 굳어 걸음을 멈추었다.

이제 전각 내부는 쥐 죽은 듯 고요해져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한 수사가 너무 취한 것 같군. 술에 취해야지 사람에 취해서야 쓰나!”

호경뢰가 무표정하게 중얼거리며 손에 들고 있는 술잔을 비워냈다. 무척 불만스럽다는 어조였다.

“호 형 안심하시지요. 겨우 두어 잔에 취할 리 있겠습니까? 저는 아주 멀쩡합니다.”

“그런가? 자령, 네가 한 번 말해 보거라. 한 수사가 취하고도 스스로 모르고 있는 듯하니.”

호경뢰는 끼고 있던 새빨간 반지를 슬쩍 보며 고개도 들지 않고 물었다.

자령이 수차례 표정이 달라지며 입술을 달싹였으나 차마 말이 나오지 않는 듯했다. 호경뢰는 자령이 주저하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다들 호 노마의 얼굴을 보고 가슴이 서늘해져 식은땀을 흘렸다.

호 노마의 얼굴에 검은 기운이 드리워지며 두 눈이 새빨갛게 변해 인간 수사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호 수사, 이건…….”

향지례가 옆에서 나서려는데 호 노마가 차갑게 말을 끊었다.

“아무리 향 형이 데려온 자라지만 이렇게 노부를 능욕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저 자가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다면 이곳을 살아서 떠날 수 없을 겁니다.”

향지례가 그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한립을 돌아보았다.

“한 사제,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인가? 이번 일은 내가 대신 나서기도 뭐하다네. 직접 해명하시게.”

말을 마친 향지례는 더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두 눈을 감아버렸다.

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립은 그가 자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일부러 자신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호 노마가 먼저 손을 쓰는 것을 막은 것일 것이다.

미소를 지은 한립이 자령을 향해 물었다.

“자령 소저와 나는 오래 알고 지냈고, 몇 안 되는 벗 중 하나입니다. 만일 금제에 걸려 억지로 강요당하는 것이라면 호 수사와 척을 지더라도 두고 볼 수는 없군요. 그러니 이 자리에서 솔직히 답해 주시지요. 진심으로 원해서 호 형의 첩이 되는 것이라면 이런 흉흉한 광경이 벌어지지 않아도 될 것 아닙니까? 물론 원치 않아 이리된 것이라면…….”

한립은 말을 끝맺지 않았지만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할 이는 없었다.

“저는…….”

자령이 기쁨과 불안 초조함 등을 드러내며 급히 대답하려다 입을 다 물었다.

“그녀에게 물을 것 없다. 마궁에 들어 본 존의 시첩이 되는 일은 그녀가 거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원치 않는다면 어쩔 것인가? 설마 그녀를 데리고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 거라 믿는 것은 아니겠지?”

호경뢰는 냉소하며 한립의 태도를 비꼬았다.

“저 말대로 입니까?”

가볍게 탄식한 한립은 여전히 자령에게 확인했다.

“……몇 년 전 실수로 얼굴을 드러냈고 천마종 장로 몇 명의 협공에 잡혀 이곳으로 납치되어 왔습니다. 원해서 여기에 있다고는 볼 수 없지요.”

자령은 자신이 두려워하던 마궁 주인과 맞서는 한립을 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 말에 호경뢰는 냉소하며 말이 없었고 다른 수사들도 침묵했다.

여인을 강제로 납치하는 일을 태일문 같은 정도 문파가 했다면 손가락질 받겠지만 마도나 산수들은 흔히들 저지르는 일이라 이상한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저의 그 말이면 됐습니다. 호 형도 화를 거두시지요. 제가 아무렴 수사와 대적하려는 것이겠습니까? 이 세상에 거래할 수 없는 것은 없지요. 어떤 조건이면 자령 수사를 풀어주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한립은 예상 외로 호 노마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상대의 흉악한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처럼 말이다.

“거래? 너와 말인가?”

“호 형께서는 제가 거래상대로 가당치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네가 원영 후기 수사라지만 내 눈에는 별것도 아니다. 향 형이 데려왔기에 대우를 해주었더니 맞먹으려 들어? 영보를 지니고 있다던데 그것은 내가 너를 죽이면 내 것이 될 것 아니더냐.”

호경뢰는 음산히 중얼거리며 전신에서 검은 빛을 발산했다. 당장이라도 한립을 죽일 기세였다.

“향 형께서 영보에 대해서 이미 말씀하셨나 봅니다. 그럼 멸선주에 대해서도 들으셨겠지요? 그리고 제가 내놓은 공간접점 자료가 전부일 거라 여기십니까? 아니면 멸신주를 갖고 있는 저를 잡아 추혼술을 펼치실 작정이십니까?”

괴이하게 눈을 번뜩인 한립이 돌연 입술을 달싹여 호 노마의 귓가로 전음을 날렸다.

그 말에 흉악하던 호 노마의 얼굴이 조금 달라졌고 서늘하게 한립을 노려보며 입을 다물었다.

“풍 수사, 저 녀석이 멸선주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잠시 후 풍 노괴의 귓가에 가느다란 음성이 들렸다. 무슨 비술을 사용했는지 입술도 달싹이지 않고 전음을 보낸 것이다.

강대한 의식을 지닌 한립도 전혀 수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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