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6화. 마궁(魔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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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월산맥(霧月山脈)은 대진 서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산세가 험하고 수많은 산봉우리로 이뤄져 있었는데 그 중 가장 높은 봉우리는 수만 장에 이르고 연중 만년설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범인들은 그 꼭대기에 수십 리에 달하는 커다란 평지가 있으며 거대한 궁전들이 지어져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게다가 산정상은 이름 모를 대형 금제로 보호되고 있어 바깥은 찬바람이 몰아치고 눈발이 흩날리는데도 안쪽은 사계절 내내 봄과 같았고 기이한 꽃과 수목들로 가득했다.
또한 그곳의 누각과 정자는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었고 궁장 차림의 여인들이 웃고 떠드는 웃음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 마타산 위에는 누구나 듣기만 하면 움찔하는 마궁이 존재했다.
벌써 천년도 넘게 대진을 호령했고 천마종을 마도 제일의 종문으로 이끌었던 마수가 오늘도 마궁의 가장 커다란 전각에서 귀빈을 맞이하고 있었다.
귀빈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아 겨우 일고여덟 명 정도였고 그들은 양쪽으로 나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전각의 중앙에는 수십 명의 아름다운 여인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전각의 상석에 병색이 가득한 노인이 의자에 기대 흡족하게 풍류를 즐기고 있었다.
전각 양측에 앉은 손님들은 사내도 있었고 여인도 있었는데 모두 범상치 않았다.
잠시 후, 공연이 끝나자 궁장 여인들은 상석에 앉은 노인을 향해 예를 올리며 퇴장했다.
“호 선배님, 시녀들의 자색(姿色)이 무척 빼어납니다. 공들여서 모으신 아이들인가 봅니다.”
왼쪽에 앉은 남색 장포 유생이 웃음기를 머금고 말했다.
“노부 일생에 다른 취미는 없고 오직 여색에만 관심이 있네. 아마 이것에 연연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지도 모르겠지! 여러 사질 등도 더 정진할 마음이 있다면 오직 수련에만 매진해야 화신기 경지에 이를 수 있을 터인데……. 그래야 내가 세상을 뜨더라도 천마종이 다른 종문의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을 것 아닌가.”
목관 노인은 마른기침을 했다.
“호 선배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천마종 제 수사의 수행이 거의 화신기를 앞두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 아닙니까. 게다가 천마종의 기세에 누가 감히 건드릴 수 있겠습니까!”
남색 장포 유생이 미소를 머금고 답했다.
“그런가? 듣자하니 음라종이 마도 십종에서 제명될 거라 하더군. 수천 년 넘게 마도를 좌지우지했던 종문이 이렇게 될 거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지금이라면 살아남는다 해도 이류 종문에 그치겠지.”
“이번에 음라종 원영기 장로들이 일고여덟 명이나 실종되고 종주였던 방 수사마저 당했다고 합니다. 누가 그런 것인지 전혀 단서를 찾을 수 없다더군요. 설마 음라종이 화신기 선배 중 누군가의 눈 밖에 난 것은 아닐까요?”
비단 장포를 입은 거한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여러 수사들이 이렇게 모인 것은 아마 음라종 일에 대해 묻고 싶어서겠지. 하지만 다들 안심하게! 이번 일은 절대 대진 늙은이들의 소행이 아니니 말일세. 아마 대진 밖의 노괴가 저지른 일 일 텐데, 다시 이런 일을 벌이면 우리 쪽에서도 좌시하지는 않을 것이야.”
노인의 말을 들은 수사들은 크게 안심하며 이제 수도계의 기이한 일들과 소문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호 선배님께서 지난번 시첩을 들인지도 벌써 2백 년이 흐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번에 성대히 의식을 치르는 것은 어느 가문의 여인이 눈에 들어서입니까?”
서른 살 정도의 초록 장포를 입은 여인이 미소 지으며 물었다. 다른 수사들도 무척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천마종 태상 장로인 호경뢰가 여색을 탐하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정식으로 시첩을 들이는 것은 몇 되지 않았던 것이다.
“노부도 다시 시첩을 들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 세 여인 모두 대단한 자질을 지녔고 얼굴도 빼어나지. 특히 그 중 한 명이 월등한데 이번에 의식을 치르는 것도 바로 그녀 때문일세.”
호경뢰는 세 여인을 언급하게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호 선배님께서 그리 극찬하시니 더욱 궁금해집니다.”
머리를 산발한 행각승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대체 어떤 여인들이기에 마궁 주인의 마음을 이리도 흔들어 놓았단 말인가!’
“우리 같이 수도를 하는 이들은 속세의 규율에 크게 얽매이지 않지. 수사들께서 정 궁금하다면 미리 얼굴을 보이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네. 그들을 불러 자네들에게 변변찮은 술이라도 대접하라 하지.”
호경뢰가 미소 지으며 뜻밖에도 호탕하게 승낙했다.
그 말에 행각승의 표정이 달라지며 아니라고 사양했으나 호경뢰가 손을 젓자 뒤편에 선 소녀가 다가와 허리를 굽혔다.
“가서 선자 분들을 청해 오거라.”
“예, 바로 그리 아뢰겠…….”
궁장 소녀가 공손히 답하는데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전각 밖에서 붉은 빛이 번쩍이며 호 노인 앞에 날아들었다.
전음부였다. 호경뢰는 이채를 띠며 그것을 잡아챘고 불빛은 그의 손바닥 위에서 활활 타올랐다.
“오, 풍 노괴와 향 수사가 왔구만. 거기다 귀한 손님을 데리고 온다고? 누구기에 두 늙은이들이 이리 대우를 하는 것이지?”
“천외도(天外島) 풍 선배님과 서령산(西靈山) 향 선배님이 오셨습니까?”
남색 장포 유생은 호경뢰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 물었다. 다른 수사들의 안색도 달라졌다.
“그 두 녀석들이 아니면 누구겠느냐? 보아하니 외부인을 데리고 온 모양인데 누구일지 궁금하구나. 거의 도착했다니 노부가 직접 나가 맞이해야겠다.”
“그럼 저희도 다 같이 선배님께 인사 올리겠습니다.”
남색 장포거한이 서둘러 몸을 일으켰고 다른 수사들도 이에 동의했다. 호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전각 밖으로 나가자 나머지는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마타산은 맹렬한 눈보라와 거대한 노란 보호막에 감싸여 있어 내부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보호막 위로 세 수사의 모습이 나타났다.
노인 둘에 청년 하나였는데 바로 향지례, 풍 노괴 그리고 한립이었다.
“마궁이 이전보다 더 커진 것 같습니다. 시녀들이 늘어 건물을 늘린 것인지. 쯧쯧, 마도 제일종의 태상장로로 사는 것이 아주 편한 가 봅니다.”
풍 노괴가 보호막 아래 궁전들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풍 형도 부러우시면 호 노마에게 말씀하세요. 그럼 바로 천마종에 태상 장로직을 하나 더 만들고 이곳과 맞먹는 거대한 마궁을 건설해 줄 것 아닙니까?”
“됐습니다. 노부의 공법은 안정된 환경이 필수인데 이런 현란한 곳에 머물다가는 나아가기는커녕 퇴보하고 말 것입니다.”
풍 노괴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때 아래쪽에서 한 무리의 수사들이 날아올랐다.
오는 내내 말을 아끼던 한립도 그들을 자세히 바라보다 뒤쪽에 날아오는 수사를 보고 아연해졌다.
“‘…?”
“한 사제, 아는 수사라도 있는가?”
향지례가 고개를 돌려 그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안면이 있는 수사가 있어서요.”
“그렇구만.”
한립이 놀란 기색을 거두고 담담히 대답하자 향지례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 노마는 벌써 보호막에 도착해 수결을 맺으며 주술을 읊고 있었다. 그러자 곧 보호막이 번뜩이며 스스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향지례와 풍 노괴는 서슴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갔고 한립도 푸른 빛 줄기로 변해 뒤따랐다. 세 수사가 들어가자 노란 보호막은 바로 원래대로 돌아왔다.
잠시 후 둔광이 가시고 세 수사들이 호 노마 일행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향 형, 풍 수사! 이번엔 조금 늦으셨습니다. 일찍 출발했다고 들었는데 어찌 이제야 오셨습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요?”
“호 형의 말씀 대로입니다. 오는 길이 잠시 지체할 만한 일이 있었지요. 그러나 그 일은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하고, 일단 호 수사에게 소개할 수사가 한 분 있습니다. 이쪽은 한립 수사로 우리 일을 돕겠다고 해서 앞으로 대등하게 교류하기로 하였습니다.”
향지례가 웃으며 한립을 가리켰다. 그러자 호 노마 뒤쪽의 수사 하나가 한립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대등하게 교류한다고요?”
호 노마도 눈을 크게 뜨고 다시 한립을 살폈다.
“저는 한립이라 합니다, 호 형!”
한립은 태연하게 포권을 했는데 그 태도가 거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았다.
“두 분이 무언가 착각한 것 아닙니까? 겨우 원영 후기 수사에게 이럴 자격이 있단 말입니까?”
호경뢰는 안색이 굳어 따져 물었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요.”
향지례는 표정 변화 없이 웃음을 흘리고는 입술을 달싹여 전음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호경뢰의 굳은 얼굴이 점차 놀람과 흥분으로 바뀌어 갔다.
“한 수사와 령롱 요비가 아는 사이였고 곤오산에서 고마를 멸하는 전투에 큰 도움이 되었다니! 게다가 최근 음라종 일도 수사의 소행이었구려. 난 또 어느 화신기 수사가 이런 짓을 벌이나 했지. 확실히 한 수사의 신통이라면 우리와 대등하게 교류할 자격이 있겠군.”
향지례의 전음이 끝난 후 호경뢰의 눈빛은 한층 온화하게 바뀌었다.
“저도 호 형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불쑥 찾아온 무례는 너그럽게 이해해 주십시오.”
“한 수사와 같은 기재라면 언제든 환영일세. 그렇지 두 분은 이번에 축하를 해주러 온 수사들과는 익숙하겠지요?”
호경뢰는 한립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향지례 등을 향해 물었다.
호 노마 뒤에 서 있던 원영기 수사들은 한립이 음라종 일과 연관되어 있다는 말에 놀랐고, 호 노마가 한립과 동급 수사처럼 지내려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놀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호경뢰의 말에 정신을 차린 이들은 급히 향지례와 풍 노괴를 향해 인사를 올렸다.
두 화신기 수사들은 대충 손을 저었는데 그 중 한 명만이 노괴들에게 인사를 하고 한립을 향해 포권을 했다.
“한 형, 축하드립니다. 못 본 사이에 벌써 원영 후기에 이르셨군요.”
초록색 장포를 입은 백발 소년은 놀랍게도 한립이 오봉(烏鳳)의 깃털을 얻기 위해 인간형 꼭두각시와 찾아갔던 고죽 노인이었다.
그는 여전히 원영 중기에 머물러 있어 조금도 수행이 늘지 않았다.
“저도 이곳에서 고죽 수사를 만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수행에 이른 것은 전부 운이 따라줘서일 뿐이지요.”
한립은 상대가 오봉의 깃털을 내주어 삼염선을 제련하는데 도움을 줬기에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고죽 노인이 헛기침을 하며 무어라 말하려는데 호경뢰가 끼어들었다.
“됐으니 일단 모두 들어가세.”
호 노마의 말에 고죽 노인은 하려던 말을 삼켰고 그저 한립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렇게 그들은 다시 아래로 내려가 거대한 전각으로 돌아갔다.
대전에 들어간 이들은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나 한립과 향지례, 풍 노괴는 상석과 가까운 자리에 앉아 다른 수사와는 신분이 다르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려주었다.
다른 수사들은 화신기 수사인 향지례와 풍 노괴를 그렇게 대하는 것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으나 원영기 수사인 한립이 그들과 동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가슴이 철렁했다.
한립의 정체에 의심스런 마음이 든 것이다. 고죽 노인이 한립과 안면이 있는 것 같아 물어봤지만 아는 바가 없어 모두를 실망시켰다.
한립은 그에 대해 속닥이는 수사들을 모른 척하며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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