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715화 (472/2,000)
  • 715화. 마타산

    *

    “한 사제는 이미 곤오산에서부터 화신기 수사에 맞먹는 실력을 보여 주었네. 그럼 지금 풍 형과 싸운다면 결과를 어찌 점치는가?”

    향지례는 두 사람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목숨을 건다면 승리할 가능성이 1 할, 동귀어진할 가능성이 3할 그리고 중상을 입고서 달아날 가능성이 절반 이상입니다.”

    그 말에 향지례 마저 일순 멍해졌다 웃음을 터트렸다.

    “한 사제, 아무리 신통이 대단해도 너무 자신을 과신하는 것 아닌가? 다른 것은 그렇다 치고 풍 수사와 동귀어진할 가능성이 3할이나 되다니 말이야.”

    한립이 차분히 향지례를 응시하다가 손바닥을 뒤집어 적홍색 구슬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멸선주!”

    “멸선주!”

    역시 향지례와 풍 노괴가 동시에 그것을 알아보고 난색을 표했다. 한립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이번엔 새까만 구슬을 꺼냈다.

    그것을 보고 향지례가 수염을 쓸어내리던 손을 멈추고 눈을 번뜩였다.

    “제가 우연히 멸선주 몇 알을 손에 넣어서요. 정말 풍 수사께서 해보시겠다면 동귀어진으로 결론을 맺을 자신이 있습니다.”

    한립은 평온이 말하며 두 구슬의 모습을 바로 감추었다.

    이에 풍 노괴와 향지례는 놀라 시선을 마주쳤다. 인계에서 화신기 수사들이 겁내는 물건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멸선주였다.

    아무런 대비 없이 멸선주에 당하면 타격이 적지 않을 것이다. 눈앞의 한립이 멸선주를 네다섯 개 지니고 있다면 정말 그들과 같이 죽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한 사제가 이런 보물까지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군. 허나 노부까지 나섰으니 풍 수사께서도 더는 사소한 일로 따지지 않으실 걸세. 이번에 멸선주를 쓸 일은 없을 게야. 한 사제의 신통은 일반 수사들을 월등히 초월하니 우리와 동등하게 교류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풍 형 생각은 어떠십니까?”

    향지례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돌려 풍 노괴를 쳐다보았다.

    “그건 향 형의 뜻대로 하십시오. 허나 노부의 후인을 죽인 것은 넘어가도 공간접점에 대한 일은 확실히 해야겠습니다.”

    “사실 저도 그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한 사제도 아마 화신기에 든 이후에 공간접점을 이용해 영계로 승천할 생각이겠지? 기왕 그럴 것이라면 우리와 힘을 합쳐보는 것 이 어떻겠는가?”

    “무슨 뜻입니까?”

    “나도 사제의 손에 우리가 모르는 정보가 더 있을 거라고 믿네. 사제도 어차피 지금은 화신기의 고비를 뚫느라 바빠 일일이 그곳들을 찾아다니기 어렵지 않은가? 어차피 공간 접점을 찾으면 모두 다 같이 사용할 텐데 힘을 합치는 것이 모두에게 이득이라는 말이네.”

    풍 노괴는 한립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그가 어찌 나오는지 지켜보았다. 한립은 바로 답하지 않고 미간을 좁힌 채 고심했다.

    향지례는 그저 미소를 머금고 그에게 시간을 주었다.

    “향 사형이 힘을 합치자고 말씀하신 수사는 저와 풍 수사가 전부입니까?”

    “우리 외에 천마종 호 수사도 있네. 태일문의 백 수사는 따로 중요한 할 일이 있어 돕지 못하겠지만 말이야. 한 사제, 우리가 몇 안 된다고 우습게 보지 말게! 만요곡 차 노요를 제외하면 우리가 대진 화신기 수사의 전부이니 말이야.”

    “화신기 수사의 수가 그렇게 적단 말씀입니까? 인계에서 수도의 성지라 불리는 대진이라면 적어도 일고여덟 분은 있을 줄 알았는데요.”

    “3, 4백 년 전만 해도 두 명이 더 있었지. 그 둘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위험한 비술을 시도하다 육신이 터져나가 죽고 말았네.”

    그 말에 한립도 탄식하며 어두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령롱 선자가 수사에게 공간접점에 관한 자료를 주고 갔던 것을 기억합니다. 못해도 수십 곳은 될 텐데 쓸 만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습니까?”

    “물론 그렇지는 않네. 대부분은 이미 공간접점이 사라진 지 오래됐지만 그래도 세 곳은 찾아냈지. 그 중 두 개는 입구의 공간 폭풍이 너무 맹렬해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고, 남은 한 곳은 간신히 들어갈 수는 있으나 공간접점이 너무 불안정해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상황이네. 듣기로는 차 노요가 소극궁에서 또 다른 공간접점의 입구를 찾아냈는데 소극궁 궁주가 그것을 알아채고 허령전을 폭파해 버렸다는군! 그 일로 차 노요가 열 받아 피를 토했고 결국에는 만요곡으로 철수했다고 하네.”

    이번에는 풍 노괴가 설명했는데 마지막에 차 노요를 언급할 때는 안타까움과 더불어 고소해하는 느낌이 전해졌다.

    “그렇군요. 어쩐지 당시 소극궁을 공격한 고계 요수들이 너무 많다 했습니다. 그런데 소극궁 궁주가 그렇게 나오면 앞으로 차 노요가 두고두고 앙갚음을 하지 않을까요?”

    “차 노요도 감히 그러지 못할 걸세. 상고시대 때부터 살아남은 요족 수사라지만 지금의 인계는 어쨌든 우리 인간들의 천하가 아닌가! 어느 때든 화신기 인간 수사들의 수가 요족들을 압도했으니까 말이야. 이전에 다른 화신기 수사들이 그 요수를 어쩌지 않은 것은 득보다 실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눈치 있게 인계의 일에 간섭하지 않아서였네. 게다가 이전에 화신기 수사들과 맺은 약조 때문에 차 노요는 진짜 육신을 지니고 만요곡 밖을 나서기 어렵네. 만일 거대한 세력을 멸하거나 수도자들을 도륙하고 다닌다면 우리 화신기 수사들이 합심해 그 자를 죽이고 말았을 것이야.”

    향지례의 표정이 조금 서늘해졌다.

    “대진에 만요곡 같은 요족 수사들의 소굴이 있다는 것이 이상했는데 이제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최근에 듣기로는 차 노요가 또 다른 공간접점을 찾아냈다더군. 그 공간접점으로 진입할 수 있을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말이야.”

    풍 노괴가 갑자기 끼어들어 말했다.

    “그거라면 이미 나와 호 수사가 이미 확인했습니다. 차 노요나 되어야 이용할 수 있지, 우리들은 전혀 들어갈 방법이 없더군요. 입구의 공간 폭풍이 극심해 우리 같은 인간 수사들에게는 치명적이었습니다. 그래도 차 노요는 단단한 요수의 육체가 있으니 믿고 들어가 볼 생각인 것 같더군요.”

    “차 노요가 공간접점에 들어갈 작정이란 말입니까?”

    풍 요괴는 처음 듣는 소리인 듯 놀라 소리를 높였다.

    “그렇습니다. 아마 1, 2백 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겠지요. 공간접점에 들어가서 겪게 될 일은 하늘만이 알지 않겠습니까?”

    향지례가 숙연히 말했다.

    “그러고 보니 차 노요의 수명도 다 해 갑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조급히 그런 결정을 내릴 리 없겠지요.”

    한참 후, 풍 노괴가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

    “차 노요가 직접 그리 말한 것은 아니지만 십중팔구 그런 이유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그 치밀한 성격에 이렇게 급하게 일을 추진할 리 없겠지요. 사실 이게 차 노요 만의 문제는 아니지요. 우리의 수명 역시…….”

    향지례가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한 수사, 이 정도 말했으면 결정을 내렸겠지?”

    풍 노괴도 기분이 가라앉았는지 갑자기 한립을 향해 물었다.

    “향 사형의 말씀이 일리가 있군요. 확실히 공간접점을 찾아다닐 시간은 없습니다. 자료는 수사들에게 드릴 테니 조건이 있습니다. 만일 적당한 공간접점을 찾아내시면 제게도 바로 알려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저도 미리 살펴보고 그곳에 맞춰 준비할 테니까요.”

    “그게 무슨 조건이란 말인가.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우리가 함께 공간접점에 들어가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야.”

    향지례는 기뻐하며 속으로 한립이 큰 대가를 요구하지 않은 것에 흡족해 했다. 고개를 끄덕인 한립은 손을 들어 하얀빛을 향지례에게 던졌다.

    아주 평범해 보이는 옥간이었다.

    “……!”

    향지례가 눈이 밝아져 옥간을 받고 의식으로 훑었다.

    “맞구만 맞아! 공간접점에 대한 더욱 상세한 자료에다 역행통로(逆行通路)의 전송진법을 펼치는 방법까지 기록되어 있어. 이 진법을 익힌다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겠군. 한 사제가 이리 협조해주니 우리도 약조를 지키겠네. 이건 만리부 두 장인데 지니고 있으면 적당한 공간접점을 찾는 대로 연락함세.”

    향지례가 들뜬 얼굴로 소매 속에서 두 장의 옥부를 꺼내 던졌다. 그것을 받은 한립은 바로 손바닥을 뒤집어 저물대 속에 보관했다.

    풍 노괴는 한립이 옥간을 내주자 서늘하던 표정이 한결 온화해졌다.

    “그러고 보니 한 사제, 꼭 해둬야 할 말이 있네! 이미 수사의 신통이 원영 후기 수준을 넘어 섰으니 본래 화신기 수사들 간에 지켜야 할 금지 조항이 한 사제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걸세. 앞으로 음라종 같은 일은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뜻이네.”

    옥간을 챙긴 향지례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서둘러 당부했다.

    “금지 조항이요?”

    “별 다른 것은 아니고……. 화신기 수사의 실력이 강대하니 마음대로 휘두르면 인계의 질서가 깨질 것 아닌가? 그래서 오래 전부터 화신기 수사들이 함께 정한 규칙일세. 일단 화신기에 이르면 서로 싸움을 벌이지 말아야 하고, 특히 수도계의 일에 끼어드는 것을 엄히 금한다는 내용이네. 대수사를 포함해 이번에 그렇게 많은 음라종 원영기 수사들을 죽인 것은 대진에 불필요한 혼란을 불러올 것이네. 이번에는 금지 조항을 몰랐고 또 아직 화신기 수사도 아니니 넘어 가겠지만 나와 풍 형이 자네의 실력을 인정했으니 다음에는 예외가 없을 것이야. 자네가 약속을 지키겠다면 다른 수사들에게도 이 소식을 전하겠네. 물론 금지 조항은 쌍방이 지키는 것이니 이후 화신기 수사들도 한 사제를 함부로 공격하는 일은 없을 걸세.”

    향지례가 미소 지었다. 한립은 그 말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를 따라 미소 지었다.

    “원래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종문의 일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음라종 일도 그들이 먼저 천남으로 찾아와 저를 건드렸기에 반격했을 뿐이고요.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것 입니다.”

    “음라종 일은 이미 지나갔으니 그렇게 정리함세! 그런데 어디 급히 갈 데라도 있는가? 없다면 나와 풍 형과 함께 마타산(魔陀山)이나 한 번 다녀오는 게 어떻겠나. 만난 김에 호 형에게 소개도 하고 말이야. 호 수사가 최근 원영기 여 수사 몇을 첩으로 들이겠다며 초청장을 보내왔네. 풍 수사도 받으셨겠지요?”

    향지례가 갑자기 화제를 돌려 의외의 제안을 했다.

    “당연히 받았습니다. 듣자하니 이 번에 들이는 세 명의 시첩들은 전부 원영 초기의 수행에 절세가인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호 노마가 첩을 들인다고 마타산으로 초대한 것이 벌써 다섯 번째입니까? 여섯 번째 입니까? 안 그래도 마궁(魔宮)에 자손들이 데려다 바친 미인들이 수두룩한데 또 무슨 첩까지 들이는지!”

    풍 노괴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풍 형도 아시지 않습니까. 호 노마는 수련한 공법 때문에 여색을 탐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여인이 있으면 항상 정중하게 대하며 첩으로 들이는 의식을 치르고 정식으로 지위를 인정해 주지 않습니까. 어차피 따로 반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녀들과 달리 시첩들은 남다른 대우를 받으며 총애 받으니 된 것이지요!”

    “그가 첩을 들이든 말든 상관한답니까? 매번 굳이 초청하니 이곳까지 오는 것이 고생스러워 그렇지요. 게다가 체면은 어찌나 따지는지 초청에 응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습니까. 거기다 안목만 높아서는 평범한 보물은 선물로 쳐 주지도 않고요.”

    “그것도 우리가 마타산의 몇몇 영약들을 탐해서 그렇지요. 풍 형도 백 수사처럼 호 수사에게 바라는 것이 없으면 안 가셔도 됩니다.”

    “두 분께서 말씀하시는 분은 천마종의 화신기 수사시겠군요. 저는 초대받지도 않았는데 무턱대고 찾아가는 것은 예가 아닐 듯합니다. 게다가 적당한 선물을 준비하지도 못했고요.”

    그들의 대화를 들은 한립은 따라가기를 주저했다.

    “걱정할 것 없네. 내가 손님을 데리고 마타산으로 가겠다는데 호 노마가 어쩌겠는가?

    게다가 이 옥간 속에서 적당한 공간접점을 찾을 수 있다면 호 노마도 감지덕지할 것일세. 축하 선물이야 대충 고보 한 두 개로 때우면 되겠지. 어차피 이전에 알던 사이도 아니니 너무 귀중한 것을 내주는 것도 도리는 아닐 테고 말이야! 마타산에 가는 것이 사제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걸세. 마타산 독문의 영약인 마련천원단(魔鍊天元丹)은 화신기 고비를 넘기는데 꽤 도움이 되니까. 이 영약은 오직 마타산에서 자라는 영초들로만 제련이 능해서 바깥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진귀한 것일세. 한 사제가 잘해 한 두알 얻어내면 나중에 천지원기를 감응하기가 훨씬 수월해 지겠지.”

    향지례가 의미심장하게 그를 설득했다.

    “마련천원단이라면 상고시대 때 실전된 마원단(魔元丹)을 이르는 것입니까?”

    영단의 이름을 듣고 한립이 놀라 소리쳤다.

    “그렇네! 한 사제도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 그럼 쓸데없이 길게 설명할 필요 없겠지. 어찌 우리와 함께 한 번 다녀올 텐가?”

    마원단에 대해 그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의외였지만 향지례는 여전히 배시시 웃으며 같이 갈 것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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