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713화 (470/2,000)
  • 713화. 뇌진자(雷震子)와 멸선주(滅仙珠)

    *

    “일리가 있는 말일세. 음라종은 마도 종파이니 원수지간인 자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음라종 종주가 오늘 이곳에 나타날 일도 없었을 테지.”

    사내아이도 웃으며 찬성했다.

    한립은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뒤집어 검은 구슬을 꺼냈다. 그리고 저물대에서 금제 부적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상자를 꺼냈는데 그 속에 새빨간 구슬이 들어 있었다.

    소극궁 현옥동에서 마구대사라 불리던 회색 장포 승려가 지니고 있던 물건이었다.

    한립은 검은 구슬을 상자 속에 넣고 두 개의 구슬을 자세히 관찰했다.

    검은 구슬은 겉보기에는 아주 평범해 보였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표면에 보일 듯 말 듯 오묘한 주술들이 보였고 그 안에 검은 기운이 쉼 없이 출렁거렸다.

    마치 정순한 마기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한참을 쳐다보던 한립은 새빨간 구슬 안에 있는 불속성 영력을 감지하고 턱을 쓸었다.

    “인계에 이런 물건이 아직 남아 있었군! 상고 시대에 누군가 뇌진자(雷震子)를 제련해 낸 것이겠지. 상고 수사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인지 영계의 인물이 몰래 전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만일 전자라면 상관없겠지만 후자라면 어떤 저의를 갖고 그런 건지…….”

    사내아이의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뇌진자라면 영계의 물건입니까? 하지만 방금 추혼술로 알아낸 바로는 이 구슬을 멸선주라고 부르던데요. 위력이 굉장해 화신기 수사라도 이 구슬에 당하면 멀쩡하기 어렵다는 데요.”

    “겉모습은 다르지만 뇌진자가 확실하네! 물론 자네가 갖고 있는 것은 조악한 불량품에 불과하지. 아마 멸선주라는 이름은 인계에서 붙인 것 같구만.”

    “그럼 이것은 본래 영계 수사들이 사용하는 법기입니까?”

    “수사들도 사용할 수 있지만 원래는 범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네. 법력이 없는 범인들을 위한 몇 안 되는 위력적인 보물이지! 나중에는 수사들의 손에 넘어갔지만 제련하기도 어렵고 제련법을 아는 자도 무척 드물지. 나도 그 제련법을 모르고 말이야.”

    “범인이 부릴 수 있는 법기! 영계 수사들은 어째서 이런 물건을 제련하는 것입니까?”

    “……자세히 말하기는 그렇고 영계에 가면 차차 알게 될 걸세.”

    사내아이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대충 얼버무렸다.

    한립은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어차피 영계의 일은 당장 알아도 별 소용이 없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다시 구슬들을 저물대 속으로 집어넣었다.

    위력이 큰 보물이 두 개나 생겼으니 나중에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다섯 해골 머리들은 달팽이처럼 느려진 세 연시들을 마구 뜯어먹으며 정순한 시기를 흡수하는 중이었다.

    한립은 연시들이 달아나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어떻게 음라종 일을 처리할까 고민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     *     *

    반 년 후, 대진이 요동쳤다.

    겨우 반 년 사이에 음라종이 종주를 포함해 일고여덟 명의 원영기 수사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연달아 실종되어 생사를 알 수 없었는데 음라종 깊숙이 보관되었던 본명 원신등이 차례로 꺼지며 그들의 죽음이 알려지게 되었다.

    더욱 기이한 것은 살해당한 음라종 수사들 중 대부분이 본 문의 산맥 내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마치 형체 없는 적이 침입해 장로급 거물들을 처리한 것처럼 말이다.

    음라종 고위층들은 첫 번째 장로가 살해당했을 때 종문 내부를 살살이 뒤지며 모든 금제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그럼에도 계속 장로들이 죽어나가자 나중에는 장로들이 밀실 하나에 모여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바깥으로 잠시 임무를 수행하러 나간 사이에 장로들은 또 괴이한 일을 당했고, 음라종 원영기 수사들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반 년 동안 음라종 원영기급 장로들의 절반이 죽어나갔다. 거의 한 달에 한 명 꼴로 사라진 셈이었다.

    대장로와 여러 장로들을 잃은 음라종은 남은 장로들을 전부 한 곳에 모아 지키게 하고는 드디어 사단을 막을 수 있었다.

    음라종은 이런 사실을 필사적으로 숨기려 했지만 워낙 사안이 중대했기에 바깥으로 새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호시탐탐 때를 기다리던 세력들이 분분히 대량의 수사들을 파견해 본래 음라종이 장악하고 있던 지역을 조금씩 잠식해 나갔다.

    남은 음라종 장로들이 사력을 다해 다시 반격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마도 십종으로 군림하며 영광을 누린 만큼 그동안 그들을 경계하는 중소세력도 많았던 것이다.

    음라종과 세력이 맞닿아 있는 종문은 정도와 마도를 막론하고 모두 바삐 움직였다.

    *     *     *

    황무지 위 상공에 열댓 명의 수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양쪽으로 나뉘어 중앙에서 소년 두 명이 푸른 비검과 붉은 비도를 휘두르며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이에 다른 수사들은 흥분한 기색으로 전투를 관전했다.

    그들은 모두 열댓 살 정도의 젊은 수사들로 전부 연기기 수행을 지녔고, 통일된 복색으로 보건데 어느 종문이나 수도 가문의 제자들 같았다.

    푸른 비검과 붉은 비도가 한참동안 힘을 겨루더니 푸른빛이 우세를 점하며 붉은 빛을 천천히 밀어냈다.

    “와, 청령검(靑靈劍)의 위력이 대단하네요. 이번 비무는 임 사형이 이기겠어요.”

    소녀가 그것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곁의 소년에게 말했다.

    “그게 뭐 대수라고. 좋은 가문 출신이 아니었다면 겨우 연기기에 중급 법기를 지닐 수 있었겠어? 나도 저런 걸 지녔으면 지난번 시험에서 떨어지지 않았을 텐데.”

    소녀의 말에 소년은 불편한 내색을 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아주 작아 혹여 남들이 들을까 조심하는 눈치였다.

    이에 소녀가 작게 키득거렸는데 아직 어렸지만 제법 자태가 고왔다.

    “저건 뭐지?”

    그녀가 무어라 답하기 전에 하늘을 쳐다보던 소년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가요?”

    소녀의 말에 고개를 든 소년도 화들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괴이한 그림자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것은 분명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등 뒤로 거대한 날개가 펄럭였고 또 푸른빛과 하얀빛의 뇌전을 번뜩였는데 전혀 소리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래쪽의 저계 수사들이 쳐다보기 전에는 아무도 발견하지 못 한 것이다.

    사내는 뒷짐을 지고 멀리 뒤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았는데 하늘에는 구름만 떠 있을 뿐 아무 것도 없었다.

    “설마 고계 요수일까요?”

    소녀도 수도 가문 출신이라 경전에서 화형기 요수의 존재에 대해 읽은 적이 있어 삽시간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럴 리가! 곽주(藿州)가 아무리 구석진 곳이라도 고계 요수가 백주 대낮에 돌아다닐 곳은 아니지. 아마 어느 선배님 아니겠어?”

    놀라 어안이 벙벙해진 와중에도 소년은 정확하게 추측했다.

    이상한 일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둘의 이야기 소리가 들릴 리 없건만 사내가 잠시 고개를 돌려 이쪽을 봤다는 것이다.

    시선이 마주친 소년과 소녀는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가슴이 쿵쿵 뛰었다.

    상대의 얼굴이 흉악하게 생겨서가 아니라 그의 미간에서 새까만 눈동자가 번뜩여 소년과 소녀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기 때문이다.

    ‘뭐야 정말 고계 요수란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사람의 눈이 세 개일 수 있지?’

    소년과 소녀는 놀란 나머지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둘이 입을 열어 동문들에게 알리기 전에 허공의 청년이 다시 고개를 돌렸고 세 번째 눈에서 검은빛을 발산하며 종적을 감추었다.

    쿠쾅!

    이어 그 근처에서 둔중한 굉음이 들리며 하얀빛이 번뜩이고 어떤 인영이 괴이하게 나타났는데 청년이 있는 곳과 겨우 수십 장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60대로 보이는 길쭉한 얼굴의 노인이 맨발로 서 있었다.

    노인은 나타나자마자 바로 한 손을 뻗어 허공을 갈랐고 청년의 머리 위로 노란 거대손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그러나 청년은 미리 예상한 듯 날개를 펄럭이며 푸른 뇌전 속으로 사라졌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시 어두운 얼굴로 나타났다.

    “풍 노괴! 이미 한 달을 쫓았으면 되었지 어차피 잡을 재간도 없으면서 이리 끈질기게 나오는 이유가 뭡니까?”

    청년은 인상을 쓰며 크게 소리쳤고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하늘을 쩌렁 쩌렁 울리며 퍼져나갔다.

    이제 전투를 관전하던 저계 수사들이 전부 놀라 고개를 쳐들었지만 귀를 강타하는 굉음에 버티지 못했고 몇몇 수행이 떨어진 자들은 기절해 버렸다.

    몇몇 수사들은 법기 등으로 몸을 보호했지만 온몸이 나른해져 힘을 쓰지 못했고 간신히 창백한 얼굴로 선배 고인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를 처음 발견했던 소년, 소녀도 다른 동문들과 마찬가지로 속으로는 울상을 지었다.

    평소에 고계 수사를 우연히 마주친다면 다시없을 기연이었겠지만 고계 수사들 간의 전투에 휘말리는 것은 엄청난 재난이었다.

    의식이 있는 저게 수사들은 저도 모르게 두려운 기색을 드러냈다.

    고계 수사들 간의 싸움을 직접 본 일은 없었지만 종문 어른들의 입에서 한두 번 쯤은 들어보았던 것이다.

    누구든 그런 상황이면 반드시 달아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멀리 달아나라고 신신당부를 하곤 했다.

    고계 수사들의 싸움은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해서 그대로 지켜보다가는 죽은 목숨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고계 수사들의 눈에 연기기 수사들은 개미나 다름없는 하잘 것 없는 존재라 배려를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흥! 다른 녀석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노부의 후예를 내 면전에서 죽여 놓고 놔두길 바라는 것이냐? 겨우 원영기 수사가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지만 노부가 수십 년의 수명을 허비하더라도 꼭 잡아 죄를 묻고 말겠다.”

    노인은 상대를 향해 험악하게 쏘아 붙이고는 손끝을 가리키자 노란 거대 손이 다시 청년을 덮치려 했다.

    청년은 날개를 펄럭이며 다시 사라졌다가 스무 장 밖에서 나타났다.

    청년은 바로 음라종을 시끌벅적하게 만든 한립이었다.

    그리고 길쭉한 얼굴의 노인은 풍 노괴였다. 한립은 이 일을 생각하면 후회가 되었다.

    ‘다른 장로들도 많았는데 어쩌다 하필 그 자를 골랐는지!’

    다른 장로들을 마지막 목표로 삼아 귀라번을 빼앗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풍 노괴는 자신의 후예인 음라종 장로와 같이 있었는데 원영 초기 수행으로 수행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나 한립이 미처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음라종 장로를 따로 꾀어내 죽였는데 풍 노괴가 갑자기 들이닥쳐 그 모습을 보고 말았다.

    노인은 즉시 폭발해 화신기 수행을 드러내 그에게 달려들었다.

    만일 풍뢰시와 질풍구변이 없었다면 한립이라도 크게 당했을 것이다.

    그는 주저 없이 바람과 천둥의 속성을 지닌 풍뢰둔(風雷遁)을 이용해 그곳을 떠났다.

    이 일만 아니었다면 몇 달 더 잠복해 음라종 장로들을 더 노렸을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화신기 수사와 마주쳐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그대로 달아난 것이다. 화신기 수사는 인계에서 그가 유일하게 꺼리는 존재였다.

    덕분에 음라종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지만 한립은 무척 울적해졌다.

    그런데 더욱 우울한 것은 마지막에 죽인 음라종 장로와 노인이 꽤나 관계가 돈독했던지 수명이 깎이는 것도 개의치 않고 지금까지도 추적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풍 노괴의 둔술은 풍뢰둔보다는 조금 떨어졌지만 화신기 수사의 수행이 더해져 큰 차이가 없었고 한립이 간신히 상대를 떨구고 어딘가로 숨어들려고 하면 귀신같이 알고 쫓아왔다.

    한립은 서둘러 자신의 몸을 여러 번 확인했지만 이상한 낌새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이에 풍 노괴에 대한 경계심에 높아진 그는 전면전을 치르지 않고 지지부진한 소모전으로 접어들었다.

    그는 만년영액을 지니고 있어 법력 소모를 걱정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보름이 지나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노인도 수중에 만년영액이 있는지 그와 몇 개의 지역을 횡단하고도 전혀 지치는 기색 없이 쫓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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