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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712화 (469/2,000)

712화. 음라종

*

‘저것들이 내뿜는 화염이 대체 뭐란 말인가?’

오자동심마는 분명 건 노마가 제련한 것이었는데 그것의 신통이 떨어지기는커녕 더욱 괴이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음라종 종주는 뭔가 좋지 않은 예감에 두 개의 보물들을 동시에 방출했다.

노란 천은 허공을 돌며 순식간에 거대한 실그물로 변했고 수십 장 넘게 하늘을 뒤덮으며 당장이라도 한립과 오자동심마를 가둘 기세였다.

그리고 검은 구슬은 조용히 그물 뒤를 쫓았다.

한립이 미간을 좁히곤 바로 입을 벌려 작고 푸른 솥을 내뿜었다.

텅!

한 손으로 솥을 내리치자 영기의 빛이 번뜩이며 푸른 실들이 뻗어 나왔고 대량의 푸른 기운으로 변해 떨어져 내리는 실그물을 막아섰다.

동시에 그가 두 손을 움직여 삼염선과 팔령척을 들고는 먼저 팔령척을 앞으로 내밀었다.

검은 구슬 아래에서 은색 연꽃이 피어나며 보물이 위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꼼짝도 못하게 붙들어 둔 것이다.

비록 한립은 검은 구슬의 정체를 몰랐지만 그것이 날아드는 순간 소름이 끼치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먼저 팔령척으로 먼저 구슬을 봉쇄한 것이다.

그것을 본 음라종 종주는 서둘러 의식을 이용해 검은 구슬을 회수하려했지만 마치 허공에 못 박힌 것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늙은 마두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검은 구슬은 사실 꽤 대단한 보물이었고 한립이 방심한 틈에 암습해 중상을 입힐 계획이었다.

그런데 한립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며 구슬이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게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때 한립도 공격에 들어갔다.

꽈광!

천둥소리가 울리고 등 뒤로 푸른색과 하얀색의 날개가 펼쳐졌다. 한립은 가볍게 날개를 펄럭이며 삼염선을 굳게 쥐고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음라종 종주는 흠칫 놀라 다급히 수결을 맺어 전신에 검은 기운을 북돋았고 먹물처럼 농밀해진 기운이 갑옷처럼 그의 몸에 달라붙었다.

이어 그가 낮게 일갈하자 갑옷 표면에 무수히 많은 남색 뇌전이 일어나 몇 마리의 뇌전 뱀으로 응결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노마의 뒤로 공간에 파동이 일어나더니 누군가 귀신처럼 나타났다. 이미 예상했다는 듯 노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 손으로 등 뒤를 향해 검은 빛을 쏘아 보냈다.

노마 뒤쪽 인영의 머리를 향해 날아든 것은 뜻밖에도 한 척 길이의 새까만 비검이었다.

챙!

인영은 손을 들어 은색 장검 두 개를 교차로 날려 새까만 비검을 갈랐다. 그제야 음라종 종주가 태연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뒤쪽 인영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가 놀라 숨을 들이켰다. 상대는 한립과 똑같이 생겼지만 생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움찔하는 사이 머리 위에서 푸른 뇌전이 번뜩했고 또 다른 한립이 나타나 삼염선을 휘둘렀다.

음라종 종주는 처음 보는 보물이었지만 그 안에서 나온 화염의 엄청난 영력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의 신형이 흐릿해졌고 놀라운 속도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한 손을 허공을 향해 뻗었는데 노마의 몸을 휘감고 있던 남색 뇌전 뱀들이 천둥소리를 내며 한립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입을 벌려 푸른 옥처럼 매끄러운 무언가를 방출했는데 바람을 타고 거대해지며 금색 송곳으로 변해 음라종 종주의 손에 떨어졌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렸고 송곳은 몇 번 번뜩이더니 한립 가까이에 나타났다.

만일 다른 수사였다면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겠지만 질풍구변을 익힌 한립은 바로 괴이하게 신형을 틀어 뼈가 없는 사람처럼 변해 금색 송곳을 피했다.

스무 장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음라종 종주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한립은 제 모습을 회복하고 냉랭히 상대를 주시했고 한 손을 등 뒤로 가져가며 코웃음 쳤다.

음라종 종주는 한립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인지 의아해 했지만 상대의 코웃음 소리가 귀를 파고드는 순간 의식에 송곳이 박힌 것처럼 극통에 시달리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몸을 굽힌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바로 대연신군이 창안한 독문 비술 양신자(凉神刺)였다.

한립은 이미 대연결의 마지막 1성을 수련하고 있었고 원영 후기의 최고봉에 이르렀으니 대연신군이 원기 왕성할 때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위력이었다.

그러나 비술이 아무리 대단해도 상대의 허를 찔러야만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만일 동급 수사가 이런 비술에 익숙해 강대한 의식으로 머리를 보호하면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원영 후기의 대수사에게 극통을 가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짧은 순간뿐이었다.

그러나 한립은 양신자를 방출하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고 이미 죽은 사람을 보는 것처럼 음라종 종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라종 종주는 한립의 예상보다도 더 빨리 양신자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리고 분노한 기색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는 문뜩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하고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목 부분이 서늘해지며 검은 실금이 가더니 목이 그대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검은 빛은 한립의 마수비도였다.

마수찬으로 제련된 비도는 종적을 드러내지 않는데 탁월해서 암습에 좋았지만 사실 지척에서 대수사의 기감을 피하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한립이 먼저 양신자를 이용해 상대의 머리를 갈겨놓고 그 틈에 목을 노리니 손쉽게 틈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승부는 순식간에 나버렸다.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한립도 상대를 죽이는데 한참 걸렸을 것이고 요란한 광경을 연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상대가 몸을 두르고 있는 새까만 갑옷을 너무 믿은 것이 문제였다.

마기를 응결한 갑옷이 한립의 마기로 똘똘 뭉친 마수비도를 전혀 막아 내지 못했던 것이다.

음라종 종주의 몸과 목이 분리된 순간 꼼짝 않던 한립이 날개를 펄럭여 푸른 뇌전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시체 위에 나타났다.

펑!

그때 시체가 기이하게 부풀어 오르더니 굉음을 내며 폭발했고 핏빛 구름이 만개하여 한립을 향해 날아들었다.

“헛!”

한립도 화들짝 놀라 바로 두 손을 펼쳤다.

쿠르릉, 콰광!

천둥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굵직한 금빛 뇌전 두 줄기가 뿜어져 나와 그물처럼 펼쳐져 핏빛 구름을 덮쳤다.

핏빛 구름은 수사가 자신의 육신을 제물로 펼치는 악독한 비술이었지만 벽사신뢰와는 상극이었다.

그 결과 흉흉한 기세를 떨치던 핏빛 구름은 벽사신뢰의 금빛뇌전에 의해 사그라졌다.

바로 그 틈을 타 새까만 무언가가 핏빛 기운에 휩싸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음라종 종주의 원영은 순식간에 서른 장 밖에서 나타났고 바로 순간이동 신통을 연달아 발휘해 다시 백 여 장 가까이 멀어졌다.

한립은 그것을 보고 냉소했고 푸른색과 하얀색 뇌전을 번뜩여 풍뢰시에 주입했다. 그는 뇌전들이 폭발하는 굉장한 소음 속에서 한 줄기 뇌전으로 변해 사라졌다.

한 호흡 만에 서른 장 밖으로 튕겨 나온 뇌전은 다시 천둥소리를 울리며 다시 사라졌다.

이번에도 뇌전은 수십 장을 이동했고 검은 원영을 뒤쫓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음라종 종주가 핏빛 기운 속에서 고개를 돌려보고는 한립의 추적에 겁에 질려 원기를 아낌없이 불어넣어 순간이동을 강행했다.

벌써 사십 장 거리로 따라붙은 한립이 그것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그의 미간 사이로 가느다란 핏빛 금이 가더니 검은 빛을 번뜩이며 새까만 눈동자가 나타났다. 한립이 몸 안에서 배양 중이던 파멸법목이었다.

이 눈은 나타난 순간 검은 빛을 번뜩이며 쏘아져 나가 전방의 허공으로 사라졌다.

곧 이어 희미하게 폭발음이 들려왔고 원영이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허공에서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너무 놀란 원영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이를 악물고 다시 한 번 종적을 감추었다.

그러나 한립은 다시 인상을 찡그리며 미간 사이에서 검은 빛을 방출해 등 뒤의 날개를 펄럭여 뇌전 속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원영은 파멸법목에 의해 다시 내동댕이쳐졌고 한립은 바로 열 댓 장 뒤에서 나타났다.

화들짝 놀란 원영이 손을 들어 녹색 실들을 쏘아 보냈는데 그것을 본 한립도 손을 들어 빨간 실들을 날렸다.

퍼퍼퍽!

두 실들이 허공에서 만나 폭발했고 녹색 실들이 조각조각 나 녹색 바늘 모양의 원형을 드러냈다. 원영은 다시 달아나려 했으나 미리 대비하고 있던 한립이 먼저 소매를 털어 금빛을 방출했다.

다음 순간, 희미하게 천둥소리가 울리고 음라종 종주가 비명을 지르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몇 촌 크기의 금색 비검이 깊숙이 박힌 것이다.

비검은 원영을 꿰뚫지 않고 그대로 박혀 금빛 뇌전을 방출했고 상고마공을 주로 익힌 음라종 종주의 원영은 새까만 빛을 깜빡이며 고통스럽게 허물어져갔다.

한립이 눈을 번뜩이며 원영의 머리 위에 나타났고 두 손바닥 위로 굵은 금빛 뇌전이 튀어 올랐다.

“수사 잠시만! 잠시만, 할 말이 있소!”

원영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저는 들을 말이 없어서 말입니다.”

한립은 고민하지 않고 그대로 금빛 뇌전을 합쳐 거대한 뇌전 구렁이를 쏘아 보냈다. 음라종 종주는 공포에 질렸지만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그는 죽기 살기로 영기의 빛을 번뜩이며 알 수 없는 비술을 펼치려는 데 몇 장 밖에서 푸른 실 뭉치가 날아들어 그를 꽁꽁 묶었다.

푸른 실 뭉치의 끝은 작은 솥에 연결되어 있었다.

방 씨 성의 음라종 대수사는 푸른 실에 묶인 동시에 체내의 법력을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그대로 거대한 뇌전 구렁이에게 삼켜지기 직전이었다.

원영이 얼굴에 핏기가 가셔 죽기만을 기다리는데 시간이 흘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폭음에 어안이 벙벙해 다시 눈을 뜬 원영은 한립이 어느새 지척으로 다가온 것을 보았다.

“너…….”

음라종 종주가 놀라 무어라 하려는 데 한립이 무표정하게 손가락을 튕겨 은색 빛들을 원영의 몸에 쏘아 보냈다.

‘뭐지?’

음라종 종주는 무슨 일인지 파악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한립은 한 손을 뒤집어 인사불성이 된 원영에 금제 부적들을 꺼내 다닥다닥 붙이고는 허공의 작은 솥을 가리켰다.

그러자 허천정이 맑은 울음소리를 내며 날아들어 푸른 실에 묶인 원영을 회수했다.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진 한립은 다섯 마귀를 바라보았다.

후우우우.

마침 다섯 마귀들은 극한의 한염의 위력을 이용해 세 구의 연시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이에 한립이 허공의 보물들을 전부 회수하고는 인간형 꼭두각시에게 손짓한 다음, 작은 솥을 들고 근처의 이름 모를 산에 내려섰다.

다섯 해골 머리들이 상대를 거의 먹어 치울 때쯤 다시 허공에 나타난 한립의 손에는 허천정이 들려있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서서 다섯 마귀들을 지켜보았다.

“정말 홀로 음라종에 쳐들어갈 셈인가?”

사내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쳐들어간다고 하기는 그렇지요. 방 종주의 혼백을 검사해 보니 몇몇 강력한 금제만 피하면 제게 음라종은 위험한 곳이 못됩니다. 게다가 음라종 내에는 대여섯 명의 장로들뿐이고 나머지는 다른 세력들을 견제하느라 출타중이라 하고요. 일단 본 문에 남은 장로들을 죽이고 나머지 녀석들을 하나씩 처리하면 될 것입니다. 추혼술을 통해 구체적인 위치는 아니어도 나머지 장로들이 어디 있는지 대략 파악했으니까요.”

“자신이 있다면 그렇게 하게. 그런데 수사는 충분한 깃발을 모으면 그 대로 떠날 셈인가 아니면 음라종을 완전히 무너트릴 작정인가?”

그 말에 한참 생각하던 한립이 냉소하며 입을 열었다.

“제가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중요 하지 않습니다. 음라종은 이미 대수사를 잃었고 앞으로 적어도 예닐곱 명의 원영기 장로가 사라지겠지요. 천란 수사께서는 음라종이 앞으로 십대 마종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 보십니까? 아마 이전에 다른 세력과의 원한으로 그냥 놔둬도 자연히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제가 나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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