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0화. 금강(金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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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역사의 환영이 나타나자 원지 대사도 사기가 충만해 거대한 빙검을 가리키며 두 주먹을 뻗었다.
쿠콰광!
굉음이 울리고 금강역사의 허상은 원지 대사와 똑같은 움직임으로 눈앞의 거검을 공격했다.
금빛 두 주먹과 빙검이 만나 충돌했고 놀랍게도 거대한 검이 옆으로 튕겨나가 몇 바퀴를 돈 후에야 간신히 안정을 되찾았다.
한립은 서둘러 빙검의 표면을 자세히 살폈다.
‘…….’
빙검의 표면이 조각조각 갈라져 안쪽의 금빛 찬란한 검의 본체가 드러나 있었다.
‘이게 무슨 공법이지? 명왕결과는 다른 것 같지만 비슷한 느낌이 들어.’
그러나 그의 비검은 지난번 다시 제련하며 현옥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주입한 상태였다. 청죽봉운검이 함유한 한기가 겨우 이 정도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한립이 의식을 움직이자 너덜너덜해졌던 빙검이 하얀 한기를 번뜩이며 원 상태로 돌아갔고 다시 한 번 원지 대사를 향해 내리 꽂혔다.
빙검의 위력은 이전에 비해 전혀 줄어들지 않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이에 원지 대사도 골치가 아파졌다.
어두워진 안색으로 승려는 신형을 키웠고 두 주먹과 팔이 금세 두 배로 불어나 날아드는 빙검을 향해 번개처럼 내질렀다.
쾅!
금강역사의 환영이 똑같이 움직이며 두 주먹으로 빙검을 막아냈다.
한립도 동공을 수축하며 내심 놀라고 있었다.
빙검이 품고 있는 물리적인 힘을 제외해도 만년현옥이 뿜어내는 극한의 한기는 법보나 법기마저 꽁꽁 얼려버릴 수 있는데 금강역사의 환영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대단한 비술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시선을 아래쪽에 있는 원지대사로 돌리자 그는 금강역사의 환영처럼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한쪽 다리가 굽어 있었고 얼굴에 금빛이 번뜩이는 것이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듯 했다. 한립이 슬쩍 미간을 좁혔다.
원지 대사의 비술은 겉보기에는 육극진마공과 비슷해 보였지만 본질적으로 완전히 달랐다. 육극진마공도 똑같이 여섯 마귀의 그림자를 불러 낼 수 있었지만 그것들은 외부의 힘을 빌려 고마의 진마기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승려가 소환한 금강역사의 환영은 자신의 법력으로 만들어 낸 것이었고 아무래도 비술의 위력이 명왕결과 상부상조하는 느낌이었다.
원지 대사가 명왕결을 4성까지 익히지 못했다면 거검의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붕괴했을 것이다.
한립은 신기하다고 생각했지만 청죽봉운검의 위력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가 수결을 맺으며 의식으로 검의 또 다른 신통을 촉발했다.
이에 천둥소리가 울리고 빙검 표면에 굵직한 금빛 뇌전들이 튀어 나와 몇 마리의 구렁이로 변해 튀어 날아갔다.
“헛!”
원지 대사는 한립의 비검이 이렇게 많은 신통을 지니고 있는지 모르고 깜짝 놀라 구렁이들을 향해 무언가를 분출했다.
승려의 입에선 아무 것도 나가지 않았지만 금강역사의 환영이 대신 금빛 기운을 뿜어냈다.
영기의 빛이 반짝이며 뇌전 구렁이들을 휘감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원지 대사가 소리치자 금강역사의 힘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빙검이 쩍 갈라지며 금빛 주먹에 조금씩 부서져 내렸다. 원지 대사는 금강역사의 엄청난 힘을 이용해 빙검을 똑 부러뜨리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고승을 지켜보던 한립은 그저 냉소하며 수결 모양을 바꾸었다. 그러자 빙검이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맑게 울었고 금색 실로 흩어져 내렸다.
금강역사의 환영이 큰 손을 허우적거리며 잡아채려 했지만 어찌나 기민하게 움직이는지 전혀 잡히지 않았다.
“화검위사(化劍爲絲)! 한 수사께서 검결에 정통한 검수(劍修)셨구려!”
거검이 실처럼 갈라지는 것을 본 승려가 중얼거렸다.
“이런 어쭙잖은 기교로 검수라 불리기는 무리지요! 그보다 원지 대사의 비술 덕에 제 견문이 넓어졌습니다. 어떤 비술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한립이 담담히 웃으며 비검을 회수 한 후 물었다. 어차피 생사를 걸고 혈투를 벌이는 것도 아니니 굳이 상대를 몰아칠 필요는 없었다.
“보잘 것 없는 재주에 불과합니다. 명왕결과 함께 펼칠 수 있는 잔재주랄까요.”
원지 대사도 허허 웃으며 비술에 대해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그 말에 한립은 쓴웃음을 지었다.
“불문의 신통들이 워낙 고명하여 짧게 승부를 보기는 어렵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몇 가지 위력적인 보물을 꺼내려 하니 다치지 않게 조심 하시지요.”
한립은 평정을 회복하고 의미심장하게 경고했다.
그는 승려를 향해 열 손가락을 연달아 튕겨 가느다란 붉은 실들을 쏘아 보냈고, 실들은 날아가는 도중에 사라졌다.
이어 소매를 터니 삼색의 화염이 데구루루 굴러 나와 깃털 부채로 변했는데 그 즉시 영력을 불어넣어 앞을 향해 펄럭였다.
그러자 봉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몇 촌 가량의 삼색 불새가 깃털 부채에서 날아올라 승려를 향해 날아갔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립은 입을 벌려 하얀 구슬을 방출했고 순식간에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 구슬이 한 척 크기로 커졌다. 그리고 보라색 한기가 감도는 화염이 구슬의 표면을 기괴하게 흘러내렸다.
한립이 구슬을 향해 가볍게 소매를 털자 보라색 불바다가 나타나 몇 장 높이의 파도처럼 흉흉하게 뻗어나가는데 그 기세가 실로 대단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승려는 한립의 맹렬한 공격에 한 손을 뒤집어 은빛이 찬란한 작은 병을 꺼내들었다.
그가 보물을 발동하기도 전에 허공의 금강역사 환영 앞에 붉은 빛이 번뜩였고 열댓 개의 가느다란 붉은 실이 환영으로 쇄도했다.
채챙!
그 결과 쌍방이 충돌하며 금속성의 충돌음이 울렸지만 붉은 실들은 환영을 꿰뚫지 못했다. 그러나 승려는 눈앞의 몰려드는 삼색 불새에만 집중했다.
삼염선을 처음 보았지만 삼색 불새에서 뻗어 나오는 놀라운 영기의 압력에 긴장되었던 것이다.
잠시 후, 승려가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열댓 개의 붉은 실들이 금강역사의 환영을 뚫지는 못했지만 갑자기 빛을 내뿜으며 굵은 불 사슬로 변해 전광석화처럼 적을 꼼짝 못하게 꽁꽁 속박하고 말았다.
승려가 그것을 보고 놀라 허공을 향해 손짓했다. 하얀 검기가 그의 손끝에서 튀어나가 불 사슬을 갈랐다.
텅!
맑은 소리가 울리고 붉은빛과 하얀 빛이 얽혔으나 결국 검기가 튕겨나가고 굵은 불 사슬엔 콩알만 한 홈이 파였을 뿐이다. 이제 원지 대사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그는 정면에서 날아드는 삼색 불새와 보라색 불바다를 보고 발밑의 하얀 연꽃을 박차며 두 팔을 바깥으로 펼쳤다.
승려의 다급함을 느꼈는지 거대한 금강역사의 환영이 맹렬히 빛을 뿜으며 몸을 키웠고 7, 8장까지 커져 단숨에 불 사슬을 벗어나려했다.
그러나 승려의 마음을 무겁게 할 일이 연달아 벌어졌다. 불 사슬이 힘 들이지 않고 금강역사의 몸집에 따라 커진 것이다.
이제 원지 대사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드러났다. 삼색 불새가 코앞에 이르자 그는 어쩔 수 없이 손에 들고 있던 옥병을 먼저 허공에 던졌다.
은색 옥병이 허공을 선회해 삼색 불새를 향해 날아갔는데 그 안에서 불경 소리가 흘러나왔고 일곱 빛깔의 불광이 입구에서 분출되었다.
불새도 입에서 삼색 화염을 뿜었고 불광을 뚫고 지나가겠다는 듯 날개를 펄럭이며 승려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둘이 충돌하기 전, 일곱 빛깔 불광이 넓게 퍼지며 불새를 휘감았고 그 대로 병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옥병이 삼색 불새와 상극이라는 듯 가볍게 상대를 처리한 것이다.
원지 대사가 그제야 한시름을 놓으며 허공의 옥병을 가리켰다. 그런데 옥병이 진동하며 다시 대량의 불광을 내뿜었고 이번에는 보라색 불바다를 목표로 퍼져나갔다.
보아하니 자라극화 역시 옥병에 담아 버리려는 속셈 같았다. 그러나 그때 어디선가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터져라.”
본래 아무렇지 않게 떠 있던 은색 옥병이 급격히 몸을 떨더니 병의 표면이 울룩불룩해지며 그 안에서 천둥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안 돼!”
원지 대사는 의식으로 옥병의 상태를 확인하고 소리를 높였다. 이어 원지 대사가 발아래 하얀 연꽃을 박차고 사라졌다.
이제 허공에는 서서히 회전하는 수 척 가량의 연꽃과 불 사슬에 묶여 꼼짝하지 못하는 금강역사만이 남아 있었다.
고승이 자리를 벗어남과 동시에 은색 작은 병이 경천동지할 폭음을 내며 터져나갔다.
삼색 기운이 그 안에서 뿜어져 나왔고 세 가지 색깔의 주술들이 날아올라 뜻밖에도 하얀 연꽃과 금강역사의 환영까지 뒤덮어 버렸다.
금강역사의 환영은 불 사슬에 묶여 있던 터라 전혀 피하지 못하고 잠시 버티다 푹! 하고 거품처럼 사라졌다. 물론 하얀 연꽃도 삼색 화염을 이기지 못하고 그 뒤를 따랐다.
삼십 여 장 밖에서 하얀 빛이 반짝이며 원지 대사가 나타났다.
그는 금강역사의 환영이 허물어지는 순간 안색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피를 토했고 금빛으로 빛나던 피부도 한층 어두워져서 원기를 꽤 상한 모습이었다.
금강역사의 환영은 마치 본명법보처럼 그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듯 했다.
한립이 무표정하게 법결로 재촉하자 보라색 불바다가 열댓 장 길이의 보라색 불 구렁이로 변해 하얀 구슬을 입에 물고 달려들었다.
아직 가까워지기도 전에 한기의 돌풍이 몰아쳤고 온도가 급강하해 사방팔방이 얼어붙었다.
그러자 승려의 발밑에 이전과 똑같이 생긴 하얀 연꽃이 다시 나타났고 빛을 번뜩이며 열댓 장 뒤로 물러났다.
“잠깐, 더 겨뤄볼 것 없습니다. 한 수사의 실력은 충분히 알았으니 노승이 승복하지요!”
원지 대사는 드디어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터져나간 은색 병을 보며 아깝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은색병은 그가 어렵게 얻은 불문의 최상급 보물로 겨우 대련을 하다 부서지기에는 너무 아까운 물건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전력을 다하는 기색도 아니었고 원기도 상한 마당에 계속할 이유가 없었다.
한립이 그 말을 듣고 미소 짓더니 먼 곳을 향해 손짓했다.
보라색 불 구렁이가 우뚝 멈춰 보라색 화염으로 흩어지고 불 사슬도 원래대로 붉은 실로 돌아갔다.
두 가지 보물들은 한립의 몸 안으로 흡수되어 종적을 감췄다.
그 후 한립은 승려를 향해 포권을 하고는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전각 입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사들의 경외감 어린 눈빛이었다.
그가 대수사라는 것은 알았지만 원지 대사를 가볍게 물리치는 실력이라니 찬고 각주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크게 놀랐다.
이제는 염죽 승려도 한립을 보는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두 분의 대결을 보고 있자니 제 안목이 더 높아진 느낌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런 경지에 다다를 날이 와야 할 텐데요! 어찌 되었든 한 수사께서 승리하셨으니 본 각을 대표해 약조를 지키겠습니다. 바로 제자를 보내 개자공간의 제련 비술을 가지고 오라 이르지요.”
천기각 각주는 전혀 실망한 기색 없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 개자공간 제련법을 내주겠다고 확실히 말했다.
“찬고 각주께서 수고를 좀 해주시지요.”
한립이 미소 어린 얼굴로 답했다. 찬고는 품에서 영패를 꺼내 곁에 선 결단기 수사에게 내주고는 분부를 내렸다.
두 손으로 영패를 받아든 결단기 수사는 서둘러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이 공간에는 허공에 뜬 거대한 천기각을 제외하고도 다양한 누각들이 있었지만 미리 명이 있었던 것인지 아무도 내다보는 이들이 없었다.
영패를 가지고 날아간 이는 그 누 각들 중 하나를 향해 갔을 것이다. 그때 원지 대사가 허공에서 잠시 기운을 고르더니 내려와 새빨간 환약을 복용했다.
“원지 대사, 괜찮으십니까?”
한립이 안부를 물었다.
“괜찮습니다. 단약을 복용하며 몇 개월만 요양하면 되겠지요. 그런데 한 수사의 수중에 있던 깃털 부채는 평범한 보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나한금신(羅漢金身)은 최상급 보물의 공격에도 버티곤 했는데 그 부채를 살짝 펄럭이자마자 당하다니요. 진정한 령보는 아닌 듯 하고 아마 령보의 모조품 정도 되겠지요? 그 부채만 있으면 인계에서 수사를 당할 자가 거의 없겠어요.”
뇌음종 대수사가 한립을 향해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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