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704화 (461/2,000)
  • 704화. 원자산(元磁山)

    *

    한립은 몸속에서 법력이 거세게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낮게 일갈했다.

    거검이 부르르 몸을 떨며 영기의 빛을 흩뿌리고 한 마리 교룡처럼 길게 금빛 빛줄기를 늘어뜨리며 기둥을 내리쳤다.

    쿠콰쾅! 쿠르릉

    단 한 번의 굉음만으로도 금빛 빛줄기는 거대한 기둥을 그대로 잘라냈다. 그러자 붉은 기둥이 두 동강이 나며 양쪽으로 힘없이 쓰러져 내렸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아나는 것 같은 엄청난 광경이었다.

    엄청난 굉음에 주변 바다에 떠 있던 역성맹 수사들뿐만 아니라 성궁의 수사들까지 전부 그곳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들은 의복을 휘날리며 허공에 떠있는 한립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를 본 수사들은 안색이 급변해 얼어붙거나 미친 듯이 웃으며 환호하는 등 완전히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한가롭게 그것을 지켜본 것은 아니었다.

    한립이 바라보고 있는 남씨쌍마는 굉음이 울리든 말든 다섯 개의 거대한 해골 머리에 둘러싸여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공교롭게도 남씨쌍마가 방출한 마기와 분홍색 안개가 오자동심마가 분출한 회백색 마염과 상극이었던지 버티기에 급급해 보였다.

    조 노인과 보라색 장포 거한이 그 것을 보고 기뻐하며 보물들을 꺼내 마수들의 공격에 동참했다.

    또한 한립이 방출한 열댓 무리의 서금충 떼들도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그들은 한립의 분신의 지시에 따라 역성맹 수사들만을 노렸고 누구나 웽 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금빛 벌레 떼에 뒤덮여 법기고 보호막이고 할 것 없이 전부 갉아 먹히고 말았다.

    그리하여 순식간에 수십 명의 수사들이 서금충의 먹이가 되었다. 이에 역성맹 수사들은 난리가 났고 벌레 떼가 있는 곳으로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려 애를 썼다.

    거기다 한립이 풍화천절진의 진법의 눈까지 훼손해 역성맹 수사들의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역성맹 수사들은 기회를 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몇에 불과했던 인원이 별안간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으로 늘어나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 갔다.

    이제는 한립이 나서지 않아도 역성맹의 패배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심지어 융 노인과 노부인마저 상황이 불리해지자 적을 두고 달아나 종적을 감추었다.

    또한 남씨쌍마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연달아 위력적인 보물들을 폭파해 오자동심마의 포위를 뚫고 달아나려 했다.

    그것을 본 한립이 미간을 좁히며 등 뒤의 날개를 펄럭여 바람 속으로 스며들었다.

    다음 순간, 다섯 마귀의 포위에서 막 빠져나온 남씨쌍마 앞에 푸른 뇌전이 번뜩이며 한립이 나타나 그들의 퇴로를 막았다.

    남씨쌍마는 한립의 서늘한 시선을 마주하고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들도 위명을 떨친 마수들이니 손 놓고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들은 시선을 교환하고는 동시에 각종 보물들을 방출해 한립에게 맹렬히 달려들었다.

    *     *     *

    며칠 후, 엄청난 소식이 난성해 전역을 뒤흔들었다.

    성궁과 역성맹의 존폐를 건 대규모 전투가 알려진 것보다 빨리 벌어졌으며 한쪽의 압도적인 승리로 막을 내렸다는 이야기였다.

    또한 만법문 문주 만천명은 전투 중 사망했고 역성맹의 고계 수사들은 다수가 목숨을 잃었으며, 수백 년 전에 악명을 날리던 남씨쌍마가 다시 나타났지만 성궁에 의해 제거 당했다는 것이다.

    한립의 이름은 이제 난성해 수사라면 모르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그가 원영을 응결하기 전 허천전에 들어갔던 일과 허천정을 얻어 역성맹의 추살령이 내려졌던 사건까지 퍼지며 수많은 수사들을 놀라게 했다.

    이제 아무리 담이 큰 원영기 노괴라도 감히 그의 손에서 허천정을 빼앗을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몇 개월이 흐른 후에 성궁은 연달아 수사들을 파견해 잃어버렸던 영토를 되찾고, 퇴각하는 역성맹 고계 수사들을 추살해 단번에 그들의 본거지까지 쳐들어갔다.

    역성맹의 원영기 장로들은 영원히 추격당할 것이 두려워 이를 악물고 항전했고, 역성맹 총단에서 성궁과의 대규모 전투를 벌였지만 힘없이 지고 말았다.

    세 명의 원영 중기 수사가 연합해 한립을 상대했지만 순식간에 두 명이 죽고 한 명은 비술을 이용해 목숨만 겨우 건졌지만 육체는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이후 다른 수사의 몸을 빼앗는 탈사(奪舍)에 성공한다고 해도 원래의 수행을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겨우 반년 만에 성궁은 내성해의 지배권을 되찾았고 여타 다른 세력들도 다시 복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릉옥령은 기회를 틈타 역성맹 출신의 중, 저계 수사들에게는 투항을 권유했고 몇몇 원영기 급 장로들은 끝까지 쫓아가 죽였다.

    이제 역성맹은 지는 해처럼 영원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반 년 후, 천성성 성산 지하.

    사내와 여인이 기다란 통로를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옥을 깎아 만든 통로에는 먼지 하나 없었다. 여인과 청년은 바로 성궁 궁주 릉옥령과 한립이었다.

    “원자산을 이런 곳에 둘 줄은 몰랐습니다. 이렇게 두려워할 만한 물건입니까?”

    뒤에서 따라 걷던 한립은 대량의 옥으로 만들어진 통로를 보며 담담히 물었다.

    “두렵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결단 기 이하의 수사들이 다가가면 영력의 반서를 당해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어서요. 물론 원영기 장로들도 이 곳에서 오래 머물면 몸에 무리가 가거나 수행에 영향을 미치고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원자산에 대해 더욱 궁금해지는 군요. 어떻게 이런 물건을 찾아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에 아버지께 들은 바로는 외성해에 나가셨다가 폭발하는 해저 화산 속에서 찾으셨다고 하셨어요. 원자산을 이곳으로 옮겨오느라 고생 꽤나 하셨다죠. 심지어 결단기 제자들 몇은 이 일로 수행이 크게 줄었고요. 부모님께서는 원자신광 수련을 시작해 원자산을 조금씩 연화해 가셨는데 그 과정이 너무 지지부진해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절반 밖에는 연화시키지 못하셨어요.”

    “연화에 완전히 성공했다면 쌍성께서 원자산의 한계에서 벗어나셨을 텐데요.”

    한립의 말에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곧 통로의 모퉁이를 돌아 멈춰 섰다. 그곳에는 금제 부적이 잔뜩 붙어 있는 오색찬란한 거대한 옥문이 있었다.

    “이곳이 생전에 부모님께서 수련하시던 곳이에요. 각종 특수한 금제를 여러 개나 설치해 겨우 원자산의 오행지력(五行之力)을 차단할 수 있었죠.”

    릉옥령은 이야기를 하며 새하얀 옥패를 쥔 손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하얀 기운의 실 뭉치가 옥패에서 뻗어나가 청록색 옥문의 금제 부적을 휘감았다.

    고요하던 문이 불현듯 크게 진동하며 울어댔고 번쩍번쩍 빛을 내기 시작했다. 여인은 진지한 얼굴로 입을 벌려 옥으로 만든 남색 갈고리를 분출했다.

    갈고리는 남색 빛줄기로 변해 릉옥령 주위를 맴돌며 그녀를 보호했다. 여인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한립을 바라보았다.

    “원자산은 오행 속성을 지니지 않은 법보만이 영향을 가장 적게 받아요. 한 형의 신통이 대단한 것은 알지만 안으로 들어가시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조심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립이 미소로 화답하고는 온몸에 금빛 보호막을 불러냈다. 바로 금강조였다.

    옥으로 제련한 물건은 아니지만 오행의 속성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금빛 보호막을 보고 멈칫하던 릉옥령은 다시 빙긋 웃으며 옥패를 허공에 날리고 주술을 읊기 시작했다.

    그러자 옥패가 부르르 몸을 떨며 표면에서 다양한 색의 주술이 날아가 청록색 옥문으로 흡수되었다. 옥문의 진동이 뚝 끊기더니 바깥쪽을 향해 천천히 열리며 우윳빛 빛을 쏟아냈다.

    ‘헛!’

    옥문이 열리는 순간 한립은 모골이 송연해졌고 체내의 정순한 나무 속성 영력이 불쑥 일어나 초원을 달리는 야생마처럼 경맥을 타고 미친 듯이 질주하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는 서둘러 청원검결의 공법을 수차례 운용해 영력을 억눌러 정상으로 돌아갔다.

    금강조로 미리 대비하고 있었는데도 이 정도였으니 아무것도 모르고 이런 일을 당하면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그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곁에 있는 릉옥령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 역시 옥으로 만든 고리로 온 몸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기혈이 요동치는지 뽀얀 얼굴에 붉은 기운이 드러났다.

    릉옥령이 평정을 되찾고 사뿐히 옥문 안으로 들어가자 한립도 그 뒤를 따랐다.

    안쪽에는 천 장에 이르는 넓은 동굴이 펼쳐져 있었는데 높이만 해도 백여 장은 될 듯 보였다.

    벽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푸른 돌로 이뤄져 있었고 위쪽에는 우윳빛의 반짝이는 월광석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한립의 시선을 끈 것은 동굴 중앙에 놓인 ‘작은 산’이었다.

    말이 산이지 정확히 말하자면 방대한 부피의 거대 암석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암석은 5, 60장의 높이로 위로 갈 수록 가름해져 산봉우리를 축소해 놓은 것 같았다.

    거무튀튀한 산은 원자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평범해 보였고 오히려 철석 덩어리처럼 보였다.

    “이것이 원자산입니까?”

    한립은 문 앞에 멈춰 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그것을 훑어보았다.

    “예, 본래는 회백색인데 연화를 하며 점차 이렇게 됐지요.”

    릉옥령은 더 이상 다가가지 않고 멈춰 서서 차분히 말했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던 한립이 서서히 그녀를 지나 작은 산으로 다가섰다.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 질 때마 다 작은 산이 발산하는 오행지력이 훨씬 강해지며 체내의 영력이 다시 한 번 요동치려 했다.

    계속해서 공법을 운용하던 한립은 순식간에 거무튀튀한 산 앞에 이르렀다.

    뒷짐을 선 그는 남색빛으로 일렁이는 눈을 늘게 뜨고 원자산을 세밀하게 살폈다.

    그러나 명청령안으로 자세히 살폈지만 여전히 거무튀튀할 뿐 다른 것은 찾을 수 없었다.

    또한 의식은 다가가기만 해도 오행지력에 의해 왜곡되었다.

    성큼성큼 산을 둘러보던 한립은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가 한 손을 뻗어 작은 산의 표면을 매만졌다. 그러자 겉의 투박한 모습과는 달리 손가락 끝에서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한립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어찌 가짜일까 봐 그러십니까?”

    릉옥령이 뒤에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원영기 수사의 영력 흐름을 방해 할만한 물건이라면 원자산에 못지않은 보물일 텐데 그럴 리가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안심입니다. 그런데 원자신광을 수련하실 예정이라면 원자산을 어찌해야 할까요? 원자신광을 익히지 않은 상태라면 아무리 수사의 법력이 심후해도 이것을 멀리 가져가지 못할 것입니다. 당시 아버지도 원자신광을 수련하고 성궁 제자들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난성해에서 이곳으로 옮겨 오실 수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십 년이나 걸렸고요. 저희 성궁에서 몇 년 수련하시고 원자 신광을 2성 정도 익힌 후에 원자산을 옮기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릉옥령이 눈을 반짝이며 갑작스런 제안을 했다.

    “원자신광을 수련하지 않고는 이것을 가져갈 수 없단 말입니까?”

    “저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한 형의 신통이 이미 아버지보다 위시니 특별한 비술이 있어 원자산을 옮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럼 일단 시도는 해봐야겠습니다.”

    골똘히 생각하던 한립은 차분히 두 손을 들어 수결을 맺어 산을 향해 푸른 법결을 날렸다.

    푸른빛이 반짝이며 작은 산으로 흡수되려는 순간 폭발해 버렸다.

    ‘흠.’

    립은 미간을 좁히며 열손가락을 튕겨 연달아 다른 법결들을 날려 보냈다.

    하지만 어떤 법결을 사용하든 결과는 마찬가지였는데 원자산 가까이에서 스스로 폭발해 흩날렸다.

    그가 굳은 얼굴로 다시 한 손을 작은 산의 표면으로 가져갔다.

    이번에는 손을 거두지 않고 주술을 읊어댔는데 손바닥을 통해 강제로 법결을 원자산에 주입하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의 법결을 따라 무형의 기운이 흐르며 억눌러 놨던 체내의 영력을 빨아들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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