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703화 (460/2,000)

703화. 영근과 오행합일(五行合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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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합일이라니, 난감하군요. 청원검결은 오직 나무 속성의 공법인데 말입니다. 헌데 이렇게 많은 속성의 공법을 익히려면 다양한 영근을 타고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설마 영계에서는 단일 속성의 영근을 지닌 천영근(天靈根) 수사가 둔재 취급을 받는 것입니까? 그리고 소천겁이라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우리 인간 수사들도 영계에서는 요족 수사들처럼 뇌겁을 치러야 한다는 뜻입니까?”

“노부가 지나는 말로 한 이야기가 이렇게 많은 의문을 불러들일 줄은 몰랐군. 기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수사를 위해 몇 가지는 설명해 주겠네.”

한립이 질문을 쏟아내자 사내아이가 묘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천영근은 우리 영계에서도 귀한 인재네. 다양한 종문과 세력들이 문하에 들이려고 노력하지. 연허기에 이르지 못하면 사실 오행합일의 문제는 생각할 필요가 없네. 그 전까지는 천영근을 지닌 수사들의 수련 속도가 무척 빠른 편이니까 말이야.

우리 영계에서도 연허기에 이른 수사들은 어떤 세력의 종주이거나 한 지역을 군림하는 패자(覇者)뿐이네. 천영근을 지닌 자들은 연허기를 앞두고 대부분 다른 속성의 공법을 겸 하거나 다양한 공법으로 주 공법을 바꾸지. 이에 걸림돌이 되는 영근의 한계는 특수한 제련을 거친 요수의 내단으로 부족한 영근을 대체하는 비술을 쓰면 되네. 이런 것을 단영근(丹靈根)이라고 부르는데 타고난 영근보다는 조금 부족해도 공법을 수련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네. 물론 단영근은 범인들에게는 소용이 없지만 말일세.

사실 이전에는 기영근(器靈根)이라는 것도 있어서 모종의 법기나 보물을 이용해 영근의 효과를 내는 방법도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위험도 커서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지.

아예 처음부터 서너 가지 영근 혹은 다섯 가지 영근을 지니고 태어나 자연스럽게 연허기 경지를 돌파하는 수사가 없는 것은 아니네. 하지만 전부 유력가의 자손이거나 뒷배가 엄청난 경우라 일반적이진 않지. 또한 소천겁이란 것은 원영기 이상의 수사라면 영계에서는 필수적으로 거처야 하는 것일세.”

잠시 말을 멈춘 사내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경계(下境界)의 원영 또는 화신기 수사는 3백년 마다 한 번씩 천겁을 겪는데 이것을 ‘소천겁’이라 부르네. 중경계(中境界)의 연허, 합체, 대승기 수사의 천겁은 3천 년에 한 번 으로 ‘대천겁’이라 부르지. 마지막으로 진선계로 승천하며 겪는 것을 선겁(仙劫)이라 부르네!

물론 같은 유형의 천겁이어도 어느 단계 혹은 누구냐에 따라 그 차이가 크다네. 수련에 성과가 없더라도 천겁은 이 전보다 배는 강력해져 돌아오기 때문에, 아무리 영계의 영기가 자욱해도 일단 원영을 응결하는데 성공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는 죽음뿐이라는 소리지.

천겁 때문에 죽는 수사들의 수가 매년 얼마나 많은지 모르네. 그러나 연허기에 들면 아무 근심 걱정이 없지. 이론상으로는 연허기에 이르면 천지원기가 충분해 수명이 무한하니 말이야. 하지만 실제로 연허기에 이른 수사들도 선계에 이르지 못하면 각종 대천겁에 죽어나가기 일쑤네.”

여기까지 말한 사내아이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상대의 말에 따르면 영계는 인계에서 생각하는 낙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연허기 수사의 수명이 무한하다는 점은 한립을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경전에서 비슷한 내용을 얼핏 보기는 했지만 영계에서 건너온 상대의 말만큼 신뢰가 가지는 않았다.

역시 영원한 수명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계로 가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계에서 연허기에 이르더라도 천지원기가 부족해 수명에 제한이 따를 것이다.

‘어쩐지 화신기 노괴들이 다들 영계에 승천할 방법만 궁리한다 했더니…….’

물론 지금 그에게는 요원한 일이라 앞서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단영근과 기영근에 관해 더 묻고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한립이 손에 든 청록색 병을 만지작거리다 손끝으로 뚜껑을 튕겼다.

그러자 푸른빛이 반짝이며 병이 뒤집혔고 뚜껑이 열렸는데도 아무 것도 빠져 나오지 않았다.

‘흠?’

그런데 갑자기 녹색 불빛이 빠르게 튀어나와 당장이라도 도망가려 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대로 놔둘 한립이 아니었다.

그가 콧방귀를 뀌며 허공을 쥐자 푸른 거대 손이 나타나 초록색 빛을 잡아챘다. 초록색 빛은 워낙 힘이 없고 흐릿해서 피하거나 달아나고 싶어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 안에는 예상 밖에 여인의 형상을 한 원영이 들어 있었다. 한립은 턱을 쓰다듬으며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누구시기에 육도에게 잡혀 구속되어 있었던 것입니까?”

“수사야 말로 누구십니까? 육도 그 노마는요?”

원영이 거대 손에 잡혀서도 거침없이 소리쳤다.

“육도 수사를 만나고 싶다면 실망하실 겁니다. 제가 이미 저승으로 보냈으니까요.”

“그 놈을 죽였다고요? 어찌 그런 일이? 허, 당신은…….”

원영은 몸을 떨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립을 쳐다보았다.

“저를 아십니까?”

한립의 표정이 묘해졌다. 난성해에도 아는 여수사가 몇 있었지만 원영기 이상은 릉옥령뿐이었다.

“허천전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허천정을 얻었다고 들었는데 노괴들의 추적까지 피하고 이런 경지에 이르다니 생각지도 못했군요.”

“당신은……. 설마 온 부인?”

상대가 허천전을 언급하자 한립은 그제야 문득 한 여인을 떠올렸다.

“이 늙은이를 다 기억해 주시다니 놀랐습니다.”

여인은 길게 탄식했다. 원영은 뜻 밖에도 허천전에 들어갔을 때 딱 한 번 마주친 적이 있는 온 부인이었다.

그때는 허천전에서 몇 가지 영약을 구해 도중에 빠져나갔다고 들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부인은 육도 수사의 반려가 아니었습니까?”

“반려요? 자기 반려의 원영을 법보에 가둬놓고 다니는 자도 있습니까? 그런데 한 수사, 정말 육도 그 놈을 죽인 것입니까?”

그녀의 물음에 한립은 조용히 허공 어딘가를 가리켰다.

허공에는 보라색의 얼음 속에 절반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육도극성의 시체가 들어 있었다.

그는 그녀의 원영을 쥐고 있던 거대 손을 반짝이며 그녀를 놓아주었다. 온 부인의 원영이 다시 자유를 찾은 것이다.

“과연 그 놈이 맞습니다. ……죽일 놈, 그렇게 간계를 꾸며대더니 결국 나보다 먼저 죽는구나!”

원영이 서둘러 날아가 보라색 얼음덩이를 몇 바퀴 돌더니 고개를 쳐들고 처량하게 웃어댔다.

한립은 미간을 좁혔다. 육도와 온 부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 됐던 것이다.

원영의 웃음소리가 잦아들더니 그 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 수사, 고민할 것 없습니다. 어차피 나는 법보 속에 너무 오래 갇혀 있어 원영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고 다른 수사의 몸을 빼앗을 힘마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즉시 원영을 흩어 세상을 뜨는 것만이 윤회의 길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요.

한 수사가 내 대신 이 원한을 갚아 주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현재 수사의 신통에 이 늙은이가 보답할 길이 없으니 그저 내생(來生)에서라도 은혜를 갚을 날이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말을 마친 원영이 한 손을 들어 자신의 두개골을 내리쳤다.

그러자 눈부신 붉은 빛이 폭발하며 원영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덮었고, 그 자리에서 여인의 원영은 갈가리 찢겨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것을 본 한립이 넋을 잃었다.

‘성격이 이렇게 대쪽 같을 수가 있나!’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눌 생각도 없이 급히 자결하다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굳이 낯선 이에게 언급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육도와 온 부인 사이에 말 못할 비사가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마음이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에게는 잘 된 일이었다. 만일 그녀를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해야 했다면 꽤나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한립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하고는 허공의 녹색 병을 불러들여 저물대 속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그가 한 손을 뻗어 금빛 뇌전을 보내자 보라색 얼음덩어리가 산산조각 나며 빛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물론 노마가 남긴 저물대는 곧바로 회수했다.

의식으로 훑어보니 몇몇 보물들이 눈에 띄었으나 마음에 차는 것은 없었다.

물론 몇몇 마도 공법 관련 서적에는 관심이 갔지만 아쉽게도 육극진마공에 대한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았다.

정리를 마친 한립은 인간형 꼭두각시를 향해 손짓하고는 멀리 있는 거대 깃발로 날아갔다.

오자동심마의 해골들은 깃발 해골 3개를 깔끔히 해치우고 이제는 깃발마저 갉아먹고 있었다.

한립은 그것을 보고 고개를 저으며 할 말을 잃었다.

거대 깃발은 위력적으로 보였지만 살기(煞氣)가 너무 짙어 그가 쓰기에는 부적합했다.

그래서 오자동심마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둔 것이다.

후우우!

…….

잠시 후, 다섯 해골들이 드디어 깃대까지 완전히 먹어 치우고는 마기가 한층 짙어져 괴상한 울음소리를 냈다.

한립은 조용히 그것을 지켜보다 다섯 마귀들의 울음소리가 그치자 한 손으로 법결을 날렸다.

그들은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지만 몇 차례 금제의 고통을 맛보았기에 반항하지 않고 한립 곁으로 다가와 엎드렸다.

한립은 그들을 바로 거둬들이지 않고 차분히 푸른 빛줄기로 변해 천성성 방향으로 날아갔고 그 뒤를 오자동심마가 뒤따랐다.

그와 육도 노마의 일전은 겨우 한 식경 만에 승부가 났는데 만일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하고 천성성 방어가 뚫렸다면 한립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생각이었다.

이는 곧 그가 도울 가치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가 오자동심마를 데리고 풍화천 절진의 진법의 눈으로 돌아왔을 때 성궁과 역성맹의 수사들이 수십 리를 둘러싸고 서로 격렬히 싸우고 있었다.

어느 쪽이 승기를 잡았는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려웠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역성맹이 조금 우세했다.

‘남씨쌍마라는 자들이 실로 사납고 포악하기가 이를 데 없구나.’

그들이 만들어낸 남색 기운과 분홍색 안개로 인해 성궁 수사들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들과 대치하던 조 노인과 보라색 장포 거한도 남씨쌍마에 비하면 실력이 크게 모자라 곁에서 협공을 가하며 견제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저계 수사들은 남색 기운과 분홍색 안개가 닿는 순간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거나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우선 풍화주를 힐끗 보고는 시선을 남씨쌍마에게로 옮겼다.

그가 즉시 두 마수들을 향해 손짓하자 뒤따르던 오자동심마가 낮게 포효하며 회백색 기운으로 변해 그 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주저 없이 허리춤의 영수대를 스쳐 금빛의 벌레 떼를 불러 그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그가 한 팔을 펼쳐 법결을 던져 넣자 벌레 떼의 웽웽 거리는 소리가 급격히 커지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무리로 흩어져 사방으로 날아갔다.

술법을 마친 한립은 풍뢰시를 불러 내 바람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역성맹은 원영기 수사들이 모두 출격했지만 구리로 만든 거대 기둥 하단에는 몇 명의 결단기 수사들을 남겨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혹시 성궁에서 불의의 습격을 해 진법의 눈을 허물어트릴까 대비한 것이다.

결단기 수사 몇몇이 사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역성맹이 점차 우위를 점하자 기뻐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

유생 차림의 중년 수사가 고개를 돌려 다른 수사에게 무어라 하려는 찰나 무언가를 보고는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주변 수사들도 새하얗게 질린 그를 보더니 고개를 돌리고는 역시 깜짝 놀랐다.

그들 뒤쪽으로 열댓 장 높이에 팔짱을 낀 청년이 기척도 없이 떠 있었던 것이다.

청년은 그들 맹주와 같이 이곳을 떠났던 성궁 쪽 대수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찌 저 자가 홀로!’

결단기 수사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러나 그들이 달아나기도 전에 한립은 소매 속에 가려져 있던 손가락을 튕겼고, 금빛 검기가 줄줄이 튀어나가 금빛이 번뜩이는 순간 그들을 관통해 버렸다.

법보를 이용해 막으려던 이들은 법보와 함께 몸에 구멍이 뚫려버리고 말았다.

청죽봉운검으로 뿜어내는 검기는 최상급 법보와 맞먹어 원영기 수사도 상대하기 어려운데 하물면 결단기 수사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단숨에 결단기 수사들을 참살한 그는 얼굴 표정 하나 달라지지 않고 거대한 기둥을 바라보며 소매를 털었다.

맑은 울음소리가 들리고 수십 개의 작은 금색 검들이 소매 속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와 수척 크기로 커지더니 허공에서 하나로 뭉쳐졌다.

그리고 금빛이 크게 번지며 금빛 거검이 기둥 위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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