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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99화 (456/2,000)
  • 699화. 성궁 전투 (6)

    *

    각 풍화주에서 진법을 북돋자 하늘에 떠있던 푸르고 붉은 기운이 극렬하게 움직이며 작은 빛구슬을 응결해 스스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쾅! 콰쾅! 쿠쾅!

    거대한 진법 속에서 영기의 빛이 번뜩일 때마다 폭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 대비 없이 진법 안에 들어갔더라면 축기기 수사들은 풍화지력의 폭발에 휩싸여 그대로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궁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기에, 수사들마다 다양한 색깔의 보호막을 뿜어내며 풍화지력을 막아 내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드디어 진법을 유지하는 기둥 주변에 대기하던 역성맹 수사들과의 살육전이 시작되었다.

    같은 시각 거대한 진법의 외곽, 몇 몇 수사들이 3백 장 높이에 풍화주 꼭대기에 서서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제일 앞에 서있는 보라색 장포를 입은 자는 각진 얼굴에 짙은 눈썹을 지닌 중년인으로 바로 한립이 허천전에서 본 적이 있는 만천명이었다.

    뒷짐을 지고 전황을 살피는 그의 표정은 예전보다 훨씬 신중해 보였다.

    그의 뒤쪽에는 안색이 푸르스름한 노인과 붉은 의복을 걸친 노부인이 서 있었다.

    둘은 만천명과 같은 곳을 바라보며 역시 심각한 얼굴을 했다.

    “보아하니 이번에 성궁이 전력을 다하는 것 같습니다. 한 번에 이렇게 많은 중계 부적을 이용하다니 웬만한 종문이었다면 재산이 거덜 났겠어요.”

    푸르스름한 안색의 노인이 중얼거렸다. 그는 한립이 진법을 뚫고 들어갈 때 황급히 도망쳐 목숨을 구한 융 수사였다.

    “남은 밑천을 다 걸고 승부수를 던진다……. 아마 그날 천성성으로 진입한 자와 연관이 있겠군요!”

    “쥐도 급하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지요. 그런데 융 수사, 화 수사를 죽인 자가 그렇게 대단합니까? 두 분이 협공을 했는데도 죽이지 못할 정도로요?”

    노부인은 눈에서 희미하게 초록빛을 번뜩이며 노인을 향해 물었다. 그녀는 뜻밖에도 원영 중기의 수사였다.

    한립을 언급하는 소리에도 융 노인의 안색이 나빠지며 비술로 붙인 팔뚝을 쓰다듬었다.

    그는 잠시 후에야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화 수사가 그 자의 손아귀에서 잠시도 버티지 못했습니다. 제가 먼저 기민하게 비술을 펼쳐 멀리 달아나지 않았다면 이곳에 서 있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 자는 아마 십중팔구는 후기의 대수사일 것입니다.”

    “대수사라니, 내 보기에는 융 수사가 너무 놀라 판단력이 흐려진 것 같은데요? 내성해에서 만 수사를 제외하면 후기 수사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성궁이 벌써 날뛰었지 본 맹이 야금야금 세력을 넓히게 두고 보았을 리도 없어요.”

    노부인은 비웃는 기색이 뚜렷했고 융 노인은 그저 난색을 표할 따름이었다.

    “그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융 수 사가 그 자의 인상착의를 그려준 그림을 확인했는데 눈에 익은 자더군요. 며칠 뒤에야 그 자의 정체를 떠 올릴 수 있었습니다. 아마 추 부인도 아는 자일 겝니다.”

    “그래요?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요.”

    “수백 년 전 허천정이 난성해에 나타났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본 맹이 추살령을 내려 한립이라는 수사를 쫓았던 것은 기억나십니까?”

    “허천정과 한립이요? 설마 진법을 뚫고 들어간 자가 그 자란 말입니까? 허, 확실히 닮기는 닮았지만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 자는 당시 겨우 결단기 수사였는걸요!”

    노부인이 빠르게 반응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여길 것 없습니다. 백여 년 전 천성 쌍성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을 때 수집한 정보가 있습니다. 한립이라는 자가 원영기 수사의 신분으로 황사문 인근에 나타났고 성궁의 전송진을 이용해 외성해에 다녀왔다더군요. 당시 성궁의 늙은이들이 그 자를 회유하려 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고요. 내가 의심하는 바로는 본 맹의 묘학 등 원영기 장로들이 그 시점에 기묘하게 실종된 것이 그 자와 연관되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만천명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진법 쪽을 주시하며 차분히 설명했다.

    “묘학 장로와 이룡도 황곤 장로 이야기십니까? 그들은 외성해의 벽령도 주변에서 요수의 기습을 받아 죽은 것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노부인이 놀라 멈칫했다.

    “그건 대외적으로 그리 공표한 것이고 사실 요수들의 침입이 있던 날 두 장로는 벽령도로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본 맹의 누군가가 묘학이 머물던 뇌공도에서 한립과 비슷한 용모를 지닌 자를 보았다고 전했고요. 그 자가 나타나고 묘학과 황곤 수사가 실종된 후, 본 맹에 남아 있던 그들의 원신명등(元神命燈)마저 꺼 져버렸습니다. 요수들의 침입은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이고요.”

    “그렇다고 해도 그 자가 장로들을 둘이나 죽였다는 것은 너무 과한 추측 같은데요?”

    멍하니 있던 노부인이 의문을 제기했다.

    “확실히 그 자가 그런 짓을 벌였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어요. 만일 며칠 전 진법을 뚫고 들어간 수사가 정말 한립이고 대수사에 맞먹는 신통을 지녔다면 내 추측이 맞겠지요.”

    만천명의 눈길에 섬뜩해지며 목소리도 가라앉았다.

    “그 자가 정말 원영 후기에 이르렀고 수중에 허천정도 지니고 있다면, 막 대수사가 된 만 형이 어쩌면…….”

    융 노인이 이야기를 듣고 있다 걱정을 드러냈다.

    “그 자의 정체를 알고 있는데 대책이 없겠습니까. 걱정 붙들어 매세요. 그 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이번 일에 나선다면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반드시 상대를 죽일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는 없어도 격퇴시킬 자신은 있습니다.”

    놀랍게도 만천명이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만천명의 성격을 알고 있는 노 부인과 융 노인은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됐다.

    “수사의 말을 들으니 이 늙은이도 안심이 됩니다. 다른 수사들은 저와 융 수사에게 맡겨주세요.”

    노부인이 음산하게 웃음을 흘렸다.

    “보통 때라면 진법의 눈을 두 분에게만 맡겨도 충분하겠지만 이번엔 상대가 배수진을 치고 달려드니 이곳을 노리는 고계 수사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두 분을 도와 진법의 눈을 지킬 분들을 모셨습니다.”

    만천명이 드디어 몸을 돌려 두 수사를 바라보았다.

    “다른 수사라면…….”

    만천명은 노인의 질문에 대답 대신 손을 털어 큰 불덩이를 방출했다.

    허공에서 불덩이가 폭발하며 아름다운 화염을 내뿜었다.

    퍼펑!

    눈길을 끄는 신호에 기둥을 지키던 선박 위의 수사들이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오라버니! 만 수사가 우리를 부릅니다. 보아하니 우리 오누이가 나설 때인가 본데요? 여기서 조용히 지내느라 답답해 죽을 뻔했습니다.”

    “이 정도 시간이 수련을 하는 우리에게 대수로운 일이더냐. 허나 만 형이 우리를 부르는 것을 보면 대규모 전투가 막을 올리려나 보구나. 이번에는 마음껏 살육을 할 수 있겠어.”

    이후 눈부신 하얀 빛줄기 두 개가 나룻배에서 솟아올라 거대한 기둥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만천명 등 세 수사 앞에 오누이가 등장했다.

    동그란 눈의 사내는 우람한 체격에 머리를 산발했고, 새하얀 피부의 여인은 자그마한 체구에 깜찍한 얼굴을 해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남씨쌍마(藍氏雙魔)?”

    융 노인은 잠시 멈칫하다가 무언가를 떠올리고 소리를 높였고 노부인도 안색이 창백해졌다.

    “와, 난성해에 아직도 우리 오누이를 알아보는 자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 마얼도(魔孼島)에서 은거하며 지낸 지 오랜데 말이에요.”

    작고 귀여운 여인이 융 노인을 향해 화사하게 웃자 마치 활짝 핀 꽃처럼 아름다웠다.

    “두 분은 예전에 천성 쌍성에 의해 죽은 것 아니었습니까?”

    노부인이 머뭇거리다 경계심을 드러냈다.

    “거의 그럴 뻔했으나 다행히도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우리에게 악감정이라도 있으십니까?”

    산발한 사내의 서늘한 시선이 노인과 노부인을 훑었다.

    살짝 벌어진 입 사이로 번뜩이는 치아를 보니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뜯어 먹을 기세였다.

    노부인이 흠칫 놀라 무의식중에 한 걸음 물러났으나 잠시 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머리를 산발한 거한이 교활한 미소를 보이더니 얼굴에 희미한 핏빛의 기운을 어리며 온 몸에서 살기(煞氣)를 발산했다.

    “적들이 이미 도착한 것 같습니다. 두 분이 지금까지 정체를 숨기고 있었던 것은 바로 오늘을 위해서지요. 흥, 설마 성궁이 우리 역성맹 고위층에 심어 놓은 간자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겠습니까? 이제 스스로 화를 자초한다는 것이 무언인지 알게 해줘야지요.”

    만천명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냉소했다.

    노부인 등이 놀라 고개를 돌리니 머지않은 곳에 푸르고 붉은 빛의 장막이 어지럽게 물러나며 녹색 교룡 네 마리가 끄는 거대한 요수 마차가 날아들고 있었다.

    그 뒤를 무수히 많은 수사들이 벌떼처럼 따라 나오니 별안간 허공에 수천 명의 수사들이 빽빽하게 늘어섰다.

    풍화주 곁을 지키던 역성맹 수사들도 힘을 비축하며 기다린 지 오래라 적이 등장하자 바로 날아올라 기둥을 중심으로 대치했다.

    노부인과 융 노인은 이제 남 씨 남매는 신경 쓰지 않고 요수 마차에 탄 네 명을 주목했다.

    그리고 노인은 그 중 누군가를 보고 가슴이 서늘해졌다.

    바로 마차 중앙에 뒷짐을 지고 선 한립이었다.

    지금 그는 노인은 바라보지 않고 오직 만 문주만을 찾고 있었다.

    “남씨쌍마!”

    보라색 장포를 입은 거한이 남녀 수사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한립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릉옥령과 조 노인은 그야말로 화들짝 놀랐다.

    “마 장로 확실합니까? 남씨쌍마는 전대 성주들의 협공으로 진즉 제거 되지 않았습니까?”

    릉옥령이 놀라 물었다.

    “제가 어찌 저들을 몰라보겠습니까? 전대 성주님들께서 오랫동안 저들을 추격하다 일을 완수하고 나서야 동시에 후기의 경지에 이르셨는데요. 그런데 당시 죽지 않았더라도 수명이 다했을 텐데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저들의 수행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원영 중기 정도군요.”

    “이상할 것이 무엇입니까. 수명을 2, 3백년 정도 늘려줄 영약은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몇 가지는 될 텐데요. 운이 좋아 그것들 중 하나를 복용했겠지요.”

    한립 만이 남씨쌍마를 개의치 않고 대충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저들은 전대 궁주님들이 살아계실 때부터 마명(魔名)을 떨치던 자들입니다! 사내는 살육을 좋아해 하룻밤 사이 두 개의 섬을 도륙하고 거의 천 명이 넘는 수사들과 십만 명의 범인들을 잔혹하게 죽인 전례가 있습니다.

    게다가 여인은 유명한 마공인 음녀살양결(陰女殺陽決)을 익혀 각 종문의 어린 사내들을 납치해 양기를 빨아들이고 죽을 때까지 학대하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하필 둘 다 원영 중기의 경지를 지닌 데다 절대 서로 떨어져 지내지 않아 협공을 하면 대수사의 손아귀에서도 목숨을 부지한다더군요.

    그때 전대 성주들께서 나서지 않으셨다면 오늘날까지 끔찍한 짓을 저 지르며 돌아다녔을 것입니다.”

    조 노인이 어두운 얼굴로 한립을 향해 설명해 주었다.

    “보아하니 상대도 철저히 준비한 것 같은데 내가 만천명을 붙들어 주어도 필승하기는 어렵겠습니다.”

    “맞습니다. 최대한 많은 장로들을 모아 상대를 압도하려 했는데 남씨쌍마의 실력이 듣던 대로라면 버티는 것만으로도 다행이겠군요.”

    릉옥령이 어두운 얼굴로 답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기둥 쪽에서 누군가 천천히 날아왔다. 바로 만천명이었다.

    “한 수사, 허천전에서 헤어질 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수행이 진보할 줄은 몰랐습니다. 제 예상대로라면 수사는 난성해 출신도 아닐 텐데 굳이 본맹과 성궁의 다툼에 끼어드는 것 입니까? 이렇게 하시지요! 릉옥령 저 아이가 약속한 것이 무엇이든 그 두 배의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그러니 그저 이번 전투에서 물러나 주십시오.”

    쌍방이 대치하는 중심에 선 그가 놀랍게도 한립을 향해 거래를 제안했다. 그 말에 한립은 눈썹을 끌어 올렸고 릉옥령과 다른 수사들은 안색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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