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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96화 (453/2,000)

696화. 성궁 전투(3)

*

옥 마차가 청년의 머리 위에 다다랐을 때 노인과 중년인은 호흡을 멈추고 상대를 자세히 관찰했다.

평범한 용모에 푸른 장삼을 걸친 그는 허리춤에 저물대와 영수대가 많은 것을 제외하면 전혀 특출한 점이 없었다.

융 노인이 미간을 좁히며 중년 도사를 향해 눈짓했다. 그러자 화 도사도 주저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둘이 상대에게 기습을 하려는데, 한립이 슬쩍 고개를 들어 미소 짓고는 날개를 불러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런!’

노인과 도사도 원영기 수사들이었기에 기이한 일에는 기민하게 반응했다.

융 노인은 다른 보물을 꺼낼 틈도 없이 서둘러 옥 마차를 박차며 전신의 법력을 불어 넣었고, 동시에 천풍차가 은닉술을 거두고 눈을 찌를 듯한 푸른빛을 발산해 마차와 두 수 사를 전부 휘감았다.

그동안 중년인은 검고 하얀 팔각 거울을 꺼내 머리 위로 던졌다.

그와 동시에 옥 마차 위로 푸른 뇌전이 번뜩이며 한립이 나타나 소매를 펄럭였다.

수십 개의 금빛 검들이 튀어나가 옥 마차의 푸른 보호막에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가라.”

중년인이 안색이 급변해 크게 일갈하며 머리 위의 팔각 거울을 가리켰다.

그러자 흑백의 빛줄기가 거울에서 분출되어 가느다란 실타래로 변하더니 떨어져 내리는 금빛들로 쏘아져 나갔다.

그 결과 푸른 보호막 밖에서 실타래와 금빛이 충돌하며 푸푸푹 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작은 검들이 금빛을 반짝이며 영기의 실들을 갈기갈기 잘라낸 것이다.

도사가 그것을 보고 놀라 공격하기도 전에 이번엔 비검들이 푸른 보호막을 공격했다.

실타래와 마찬가지로 푸른 보호막도 금빛을 막아내지 못하고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그 모습에 융 노인과 도사는 혼비백산해 둔광을 번뜩이며 옥 마차를 버리고 푸른색과 하얀색 빛줄기로 변해 각각 달아났다.

순식간에 열댓 장 밖으로 벗어나 겨우 금빛 검들을 피할 수 있었다.

중년 도사는 옥 마차를 벗어난 순간 영수대를 스쳐 새하얀 거대 새를 불러냈는데 짙푸른 두 눈에 새빨간 부리를 지닌 영수였다.

도사가 나타난 영수를 보고 마음이 한결 편해져서는 소매를 뒤져 새빨간 영패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영패를 발동하기 직전 머리 위에서 파문이 일어나더니 한립이 번쩍이며 나타났다.

그는 아래에 있는 도사를 보며 코 웃음을 치고는 두 눈에서 푸른빛을 뿜어냈다.

‘…….’

화 씨 성의 도사는 화들짝 놀라 보물을 발동하려 했으나 갑자기 날카로운 송곳에 찔린 것처럼 머리가 쪼개지는 극통을 느꼈다.

귀와 코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려 손에 들고 있던 영패마저 떨어뜨릴 뻔 했다.

한립은 그 사이 다섯 손가락을 튕겨 붉은 실들을 날려 보냈고 또 다른 손으로는 녹색 빛을 번뜩이며 나무 자를 꺼내 새하얀 새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새빨간 불빛과 붉은 실들이 중년 수사의 몸을 휘감았고 굵은 밧줄로 변해 완전히 포박해 버렸다.

도사가 엄청난 두통을 견디고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얼굴에 핏기가 가셨는데 화 씨 도사의 머리 위로 언제부턴가 은빛 연꽃 한 송이가 떠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연꽃은 화 씨 도사의 새를 향해 일곱 색깔의 불광을 발산했고 영수는 그가 아무리 의식으로 조종하려 해도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도사가 이제 어찌할지 고민하는데 머리 위에서 가볍게 바람이 불더니 금빛이 바람 속에서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곧 비명이 울리고 도사의 머리가 힘없이 데구루루 굴러떨어졌다.

꽈광!

잠시 후 한립이 바람 속에서 나타나 거대한 금빛 뇌전을 튕겨 보내 그물처럼 시체를 휘감았다.

이어 그가 주술을 외니 시체를 휘감았던 밧줄에서 불길이 일어 새빨간 화염을 토해냈고 도사는 순식간에 재로 변해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하얀빛에 휩싸인 도사의 원영이 하얀 여의를 휘두르며 화염 속에서 빠져나왔지만 금빛 그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영은 눈앞이 번쩍한 순간 뇌전 속에서 안개처럼 사라졌다.

한립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융 씨 노인은 이미 40장 밖을 날아가고 있었는데 저물대에서 푸른 놋쇠 원반을 꺼내 협공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벌써 도사가 죽어 곧바로 도망친 것이다.

깜짝 놀란 노인은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한립의 서늘한 시선이 그에게 향하자 노인은 한 손을 휘둘러 본래 타 악기로 활용되는 푸른 동발의 날카로운 면으로 자신의 팔을 갈랐다.

펑!

그의 팔뚝이 스스로 터져나가며 핏빛 안개를 방출했고 노인을 휘감은 기운 속에서 처절한 절규소리가 울려 퍼졌다.

융 노인을 휘감은 핏빛 안개는 핏 빛 그림자로 변해 번뜩이더니 별안간 백 장 밖으로 달아나 한립을 크게 놀라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립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핏빛 그림자는 하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턱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저은 한립은 안타까운 기색을 비추었다.

‘놀랍게도 혈영둔과 비슷한 둔술을 익히고 있었다니.’

천성성으로 들어가는 것이 급한 그 로서는 법력을 크게 허비하며 그의 뒤를 쫓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다시 고개를 돌려 팔령척에 잡힌 조류형 영수를 본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금빛이 날아가 순식간에 영수를 두 조각내 버렸다.

다른 수사의 정혈을 통해 배양한 영수는 길들이기도 어렵고 그냥 놔 둘 수도 없어 처리한 것이다.

이제 그는 푸른 빛줄기로 변해 천 성성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전력으로 밀고 들어간 지 일다경 만에 풍화천절진의 금제를 뚫고 섬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높다란 천성성의 성벽은 남색빛의 장막으로 견고하게 둘러싸여 있었고 그 위로 대량의 푸른색과 붉은색 기운이 날아들어 공격을 가했기에 그 굉음이 온 천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한립은 지체 없이 천성성으로 다가갔다.

푸른 빛줄기가 성문 앞에 이르자 이를 본 성궁 수사들은 호각을 불어 다른 수사들을 불러 모았다. 순식간에 열댓 명의 수사들이 몰려들어 한립을 응시했다.

역성맹 금제를 뚫고 들어온 수사일 텐데 홀로 나타난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한립은 명청령안으로 보호막 속 수사들의 모습을 보며 손바닥을 뒤집어 예전에 성궁에게 받았던 객경장로 영패를 던졌다.

영패가 천천히 보호막으로 날아가 그들 앞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자 그중에서 비교적 수행이 높은 수사들이 영패를 확인하더니 그중 하나가 안색이 급변해 주변 수사들에게 재빨리 분부했다.

동시에 다른 이들도 깜짝 놀라 서둘러 품에서 진법깃발을 꺼내 남색 보호막에 휘둘렀다. 그러자 보호막이 흔들리며 영패가 숙! 하고 날아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한립은 냉랭히 지켜볼 뿐 보호막 밖에 떠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때 객경영패를 확인한 수사들이 희색이 만연해 떠들기 시작했고 누군가 전음부를 꺼내 성 내부로 날려 보냈다.

이어 그자가 품에서 진법 원반을 꺼내 들더니 큰 소리로 소리쳤다.

“한 선배님이십니까? 저희가 큰 무례를 범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특수한 상황이고 이전에 선배님을 뵌 적이 없는 데다 방 장로님마저 자리를 비우셔서 그렇습니다. 궁주님께 전음부를 보냈으니 직접 나오실 것 입니다!”

이 말은 진법 원반을 통해 한립의 귓가로 전달되었다.

눈썹을 끌어올린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뒷짐을 진채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부신 빛줄기 세 개가 성 내부에서 날아들어 성문 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들은 사내 둘에 여인 한 명이었는데 여인을 가운데 두고 나머지 사내들은 옆으로 물러나 있었다.

아름다운 용모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여인은 바로 릉옥령이었고, 옆에 선 이들은 노란 장포 수사와 수염과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었다.

“정말 한 수사시군요! 저는 제때 도착하지 못하시는 줄 알고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여봐라, 어서 금제를 개방해 한 수사를 안으로 모시거라!”

릉옥령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반갑게 외쳤다.

“궁주님 정말 괜찮을까요? 역성맹에서 외양을 바꿔 보낸 첩자일 수도 있습니다.”

노란 장포 수사가 의심스럽게 물었다.

“걱정 마세요! 이 객경영패는 특수하게 제작된 것이라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물건입니다.

한 수사의 신통에 난성해에서 그와 싸워 이것을 빼앗을 자가 있을 리 없지요.”

릉옥령은 고개를 저으며 확신했다. 궁주가 이렇게 말하자 노란 장포 수사도 더는 무어라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성문을 지키는 수사들이 그것을 보고 재빨리 움직였다.

그들이 진법 깃발과 원반 등을 꺼내 허공으로 투척하자 각양각색의 빛이 흘러나오며 보호막 속으로 스며들었다.

남색 보호막에서 빛이 크게 번지며 중간에 한 장 크기의 원형 통로가 만들어졌다. 한립은 푸른 빛줄기로 변해 날아갔고 몇 번 번뜩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금제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보호막이 부르르 떨리더니 통로가 바로 사라졌다.

“한 수사, 드디어 와주셨습니다!”

푸른빛이 가시고 한립이 나타나자 릉옥령이 활짝 웃으며 맞이했다.

“릉 선자께서 만리부를 써서 청하는데 약조를 어기고 오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한 형이 도움을 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수사가 계시니 이제 역성맹 조무래기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요.

아! 이곳은 말씀나누기에 적당하지 않으니 저를 따라 성산으로 가시지요! 손 장로는 장로들을 모두 성전으로 모아 주세요. 상의할 일이 있습니다.”

릉옥령은 한립을 안내하며 곁의 노란 장포 사내에게 일렀다.

“예, 궁주님!”

이후 그는 릉옥령의 분부를 받아 성궁의 장로들에게 전음부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제 한립의 시선은 백발의 노인에게 향했다.

“못 본 사이 조 수사의 수행이 크게 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노인은 당시 은사도에서 그에게 혼담을 제안했던 조 씨 노인이었다. 못 본 사이에 릉옥령과 똑같이 원영 중기 수행에 이르렀던 것이다.

“제가 그럴 능력이 어디 있겠습니까. 전부 전 궁주님들의 덕택이지요.”

“그런가요?”

“조 장로께서 한 형과 아는 사이셨군요! 그럼 더욱 잘 되었습니다. 일단 성전으로 가셔서 자세히 이야기 나누시지요.”

릉옥령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곧바로 천성성 중간의 성산으로 향했고, 릉옥령의 안내를 받아 성산의 가장 높은 층에 있는 석회암 대전 앞에 내려섰다. 한립은 대전을 쳐다보며 조금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본 궁의 성전이 너무 평범해 보여서 그러십니까?”

릉옥령은 고개를 돌려 그의 표정을 보곤 미소를 지었다.

“예상과 다르기는 합니다.”

“본 궁을 창립하신 조사님이 수련을 하던 곳이라 그대로 보존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 외부인은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지만 한 형께서 도움을 주기 위해 멀리서 찾아와 주셨으니 특별히 모시는 것이고요.”

숨김없는 한립의 태도에 릉옥령이 미소를 머금고 설명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여도 영기가 굉장히 농밀하니 확실히 수련하기에는 최상의 공간이겠군요.

내성해의 유명한 섬들 중에서도 이렇게 좋은 수련 장소는 찾기 어려울 겁니다.”

그 말에 릉옥령이 밝게 웃으며 그를 안으로 안내했다.

그와 릉옥령이 지나가자 문밖을 지키던 열댓 명의 성궁 제자들은 서둘러 허리를 굽혀 인사했고 한립을 보며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곧 작은 회랑을 지나 고풍스러운 대청 안으로 들어갔다.

“한 형께서도 오는 길에 본 궁의 상황에 대해 들으셨겠지요?”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릉옥령이 곧장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귀 궁의 상황이 썩 좋지는 않더군요.”

“그럼 만천명이 갑자기 원영 후기에 이르러 전세가 역전되었다는 것도 아시겠군요! 그들은 하나 둘 본궁 주위를 잠식해 나가더니 이제는 천성성까지 포위하였습니다.

한 형께서 만천명만 붙들어 주신다면 본 궁도 역성맹을 멸할 기회가 생길 텐데요.”

“릉 수사는 내가 만 문주를 상대하기를 바라십니까?”

“네, 맞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지요?”

한립이 눈을 반짝이며 조용히 반문 하자 릉옥령이 멈칫하며 물었다.

“글쎄요, 문제라기보다는. 릉 선자께서 무언가 착각하는 건 아닌가 싶어 그럽니다.”

“착각이라니 무슨 뜻입니까? 한 형께서 이번에 오신 것은 저를 도와주시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의 거침없는 말투에 릉옥령의 표정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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