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694화 (451/2,000)

694화. 성궁 전투(1)

*

천성 쌍성과 육도극성 그리고 만삼고가 함께 사라지고 2, 30년 후 새로 성궁의 궁주로 취임한 릉옥령의 주도아래 역성맹의 세력은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많은 섬과 기반을 잃었다.

그런데 역성맹이 허물어지기 직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변이 발생했다.

만법문 문주 만천명이 놀랍게도 단번에 원영 후기의 경지에 이르러 새로운 대수사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러자 난성해의 정세는 급변했고 만천명이라는 원영 후기 대수사 아래 정마 양도의 힘이 똘똘 뭉쳐 그를 새로운 맹주로 추대했다.

이후 그는 성궁과의 전투에서 연달아 상대편 장로들을 죽여 명성을 떨쳤다.

성궁에서는 그 후 수십 년 동안 대수사가 나오지 않았으니 만천명이 주도하는 공격에 끝없이 밀렸다.

성궁 주변의 섬들은 하나 둘 빼앗겼고 이제는 만삼고와 육도 극성이 살아 있을 때보다 상황이 더욱 악화 되었다.

심지어 역성맹은 얼마 전 성궁으로 통하는 길목을 전부 차지하고 다시 역성령(逆星令)을 내려 수사들을 소집했다.

영패를 받은 세력들은 반드시 입장을 밝혀야했고, 성궁을 치는 것에 합류하지 않으면 역성맹의 적으로 간주하여 멸문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역성맹은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 성궁으로 진격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몇몇 성궁 세력과 가깝던 종문들이 만천명에 의해 깡그리 사라지자 난성해가 요동쳤다.

성궁을 지지하거나 역성맹에 가담하는 종문들은 물론이고 어부지리를 노리는 크고 작은 세력들이 분분히 일어났고 섬 전역을 금제로 폐쇄하거나 세력을 전부 이끌고 천성성으로 피난을 가는 경우도 있었다.

현재 난성해는 혼란 그 자체였다.

역성맹은 대군을 이끌고 천성성 인근의 몇몇 섬에 결집해 있었는데 맹의 역량을 총 동원해 일전으로 성궁을 제압하려는 전략을 세우는 듯했하지만 도대체 이 엄청난 규모의 전투가 시작되며 천성성 인근에 모인 역성맹 수사들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가에 대해서는 노인이나 중년거한 모두 답을 내놓지 못했다.

산수들이나 중립을 지키던 중소 문파들이 어느 쪽에 붙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다보니 서로의 세력을 염탐하려 첩자들을 보냈고 그들이 천성성 주변을 맴돌자 수사들의 살육전이 빈번하게 펼쳐지게 되었다.

한립은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충 상황 파악이 되었다.

릉옥령이 만리부를 통해 자신을 찾은 것은 만법문 문주를 상대하기 위함이었다.

만천명이라면 허천전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심계가 깊어 보였지만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다만 그 자가 원영 후기에 이르렀다는 것은 의외였다.

육도 극성과 만삼고를 죽이기 위해 동귀어진한 천성 쌍성 역시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었더라면 성궁은 벌써 역성맹을 물리치고 난성해의 지배권을 회복했어야 했다.

하지만 한립은 만천명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보다 뒤늦게 원영 후기에 이른 만천명이 어찌 자신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

그는 이미 원영 후기의 경지를 다지고 의식도 훨씬 강해져 화신기 수사를 마주해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그는 지금 다름 아닌 원자신광과 전설 속의 원자산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원자신광의 공법 구결은 무슨 독문 비술이 아니라 시간이 조금 걸릴지라도 적정한 대가를 지불하면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원자산은 인계의 기이한 존재로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비록 원자산이 원자신광을 수련하는데 필수적이라는 것은 몰랐지만 난성해 고계 수사라면 천성 쌍성이 그곳을 발견하고서야 원자신광을 수련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생각을 마친 한립은 노인과 거한에게 고맙다고 말하고는 그대로 푸른 빛줄기로 변해 날아가 버렸다.

노인과 거한은 공손히 그를 배웅하고는 푸른 빛줄기가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한 시름을 놓았다.

비록 서로를 다시 사납게 노려보기는 했지만 한립이 끼어들어 싸움을 멈춘 마당에 다시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으르렁 거리다 그곳을 떠났다.

그때 한립은 벌써 그곳에서 백 리는 떨어진 곳을 날고 있었다.

*     *     *

천성성 수만 리 밖의 바다 위를 열댓 개의 빛줄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둔광 속 수사들의 복색이 똑같은 것이 한 눈에 보기에도 동일한 세력에 속한 이들처럼 보였다.

그들은 천성성이 가까워지자 얼굴색이 밝아지며 몇몇은 작게 한담을 나누기도 했다.

그때 이변이 발생했다.

쿠르릉!

아래쪽 바다에서 하얀 빛이 크게 번지며 열댓 개의 희끄무레한 빛기둥이 치솟아 수사들을 공격한 것이다.

수행이 높은 결단기 수사들은 급히 피했지만 나머지 수사들은 그 자리에서 재로 변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세 명의 결단기 수사가 분노해 법보 등을 꺼내 아래쪽을 주시했으나 이미 일고여덟 개의 빛줄기가 솟아올라 그들을 포위한 후였다.

“역성맹의 사냥개!”

결단기 수사 중 회백색 수염을 가진 노인이 그들 중 누군가를 알아보고 분개했다.

“누가 성궁을 도우러 날아가나 했더니 백수검종(白水劍宗)의 노 형 아니십니까? 귀 종은 줄곧 중립을 표방하며 전투는 나 몰라라 하시더니 오늘 장리도(長離島)를 떠나 이곳에 오신 것은 무슨 뜻입니까?”

빛이 가시고 음산한 얼굴의 중년인이 나타나 노인을 훑었다.

“홍, 뻔히 알면서도 음흉하게 모른 척 하기는. 우리 백수검종은 본래 성궁의 숨겨진 분파입니다. 성궁이 위기에 쳐했으니 응당 나서서 도와야지요.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움직입시다.”

노인은 눈을 부릅뜨고 음산한 중년인을 노려보더니 곁의 결단기 수사 둘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세 수사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세 개의 빛줄기가 튀어나갔고, 도중에 하나로 합쳐져 붉은색, 노란 색, 하얀색이 어우러진 기다란 빛줄기로 변해 적들의 포위를 뚫고 나아가려 했다.

겨우 세 명의 힘으로는 몇 배에 달하는 적을 이길 수 없으니 과감히 달아나려고 결심한 것이다.

그들이 뚫고 나가려던 쪽의 역성맹 수사 둘은 빛줄기의 흉흉한 기세에도 당황하지 않고 두 팔을 뻗었다.

그러자 대량의 푸른 기운이 불쑥 튀어나와 삼색의 빛줄기를 휘감아 버렸다.

이어 두 수사가 주술을 외니 푸른빛이 번뜩이며 그물로 변해갔고 거대한 푸른 그물은 세 명의 수사를 단단히 속박해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노 형, 달아날 생각 마십시오! 이 건곤망(乾坤網)은 본 종의 장로께서 특별히 내려주신 물건으로, 우리 같은 결단기 수사들은 결코 빠져 나갈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곳을 빠져나간다 해도 천성성은 벌써 우리 역성맹에 포위 되었으니 점령 되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그냥 여기서 제가 수사들을 편히 저 세상으로 보내드리지요.”

음산한 중년인이 광소하며 입을 벌렸고 하얀 검이 분출되어 세 수사를 차례차례 베어나가려 했다.

“오, 천성성이 포위되었단 말이냐? 그럼 어디 자세한 이야기나 좀 들어 볼까?”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모두의 귓가를 생생히 울렸다.

“누군데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것이오!”

음산한 사내는 가슴이 서늘해져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역성맹 수사들도 의식을 퍼트려 주위를 경계했고 당장이라도 적과 맞설 준비를 했다.

그러나 주변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고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어딜 그리들 보는 것인지. 너희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낯선 사내는 냉소하며 백수검종 수사들 앞에 푸른빛을 번뜩이며 나타났다. 스물 몇 살 정도의 푸른 장포 청년은 무표정하게 그들을 둘러보았다.

“이런, 원영기 수사!”

가장 가까이 있던 역성맹 수사들이 의식으로 그를 살피고는 안색이 급변해 소리쳤다.

정확한 수행은 몰라도 원영기 수사인 것은 확실했다.

중년인이 그 말을 듣고 자세히 청년을 살피다 대경실색해 뒤로 물러났다. 하얀 빛이 몇 번을 번뜩이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모습에 한립은 눈썹을 끌어올렸고 나머지 역성맹 수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사실 원영기 수사라 해도 이렇게 많은 결단기 수사들이 모여 있으면 싸워 볼만 했다.

게다가 그들의 우두머리인 중년인은 벌써 결단 후기의 최고봉에 있었는데 상대의 신분도 확인하지 않고 즉시 달아나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나를 알더냐?”

그는 한 달 넘게 이곳에 날아온 한립이었다. 그는 안색을 굳히며 묻고는 대충 손을 튕겼다. 그러자 붉은 실 한 줄기가 파공음을 내며 뻗어나갔다.

슉!

실이 허공에서 번뜩이며 사라지자 이미 수십 장 밖으로 달아난 하얀 빛줄기에서 중년인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하얀 빛은 불길에 휩싸여 바다 속으로 떨어져 그대로 사라졌다.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잠시 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붉은 실이 돌아왔고 다시 그의 소매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한립이 시선을 돌려 나머지 수사들을 쳐다보았다.

“이제 내 물음에 답할 준비가 되었겠지?”

그다지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듣고 있는 역성맹 수사들은 온 몸에 한기가 감돌았다.

이제야 중년인이 달아난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눈앞의 수사는 그들이 전부 덤벼도 절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성맹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중년인이 눈앞에서 죽어나 갔으니 더는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선배님께서는 무엇을 알고 싶으신지요?”

잠시 후 매부리코를 한 거한이 헛기침하며 억지 미소를 머금고 한립의 물음에 답했다.

“이미 말하지 않았더냐? 내가 또 반복해야겠느냐?”

한립은 차가운 눈길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거한은 웃는 얼굴 그대로 굳어 차마 반문하지 못하고 말했다.

“아, 아닙니다. 성궁은 이미 본 맹에 포위된 것이 맞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희가 이렇게 성궁 가까이에 접근할 수도 없었겠지요.”

“오, 역성맹의 계책이 꽤 쓸 만하구나! 공표한 것보다 훨씬 앞당겨 포위를 시작했으니 성궁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테고 지원을 나오는 상대편 세력은 매복해있다 한 번에 치면 되고 말이야.”

한립이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웃는 듯 마는 듯 중얼거렸다.

“그것은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저 희 같은 자들이야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따름이지요.”

“허나 아무리 역성맹이 우세해도 천성성 같은 넓은 곳을 어찌 물 샐 틈 없이 포위할 수 있지? 몇 만 명의 수사들이 모였다고 해도 어려울 텐데.”

한립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것이……. 만 맹주님께서 108개의 풍화주(風火柱)를 제련하시고,  어디선가 진법대가들을 모아 천성성에 있는 섬 곳곳에 풍화천절진(風火天絶陣)을 펼치셨습니다.

바람과 불의 힘을 빌려 성궁을 포위하고 본 맹의 수사들은 풍화주 108개만을 지키면 된다 하셨습니다.”

거한은 역성맹으로 돌아가면 징계를 받을 것을 알면서도 한립의 서늘한 눈빛에 얼이 빠져 모든 것을 실토했다.

그는 말을 하고 바로 후회했으나 솔직히 역성맹 결단기 수사들이라면 다들 아는 사실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풍화천절진.”

한립도 흥미가 도는 얼굴이었다.

이 상고 진법은 여러 경전을 읽다 몇 번 본 적이 있었는데 경전에 따르면 천지의 바람과 불의 힘을 빌릴 뿐만 아니라, 엄청난 규모 때문에 상고 시대에도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누군가 이 진법을 펼칠 수만 있다면 천성성 같은 엄청난 크기의 성도 쉽게 포위할 수 있을 것이다.

만천명이 직접 지키고 있는 진법의 눈만 파훼되지 않는다면 성궁 수사들이 풍화주를 없앤다고 해도 진법만 복구하면 그만이었다.

한립이 깊은 생각에 잠기자 인근의 역성맹 수사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다들 한립이 성궁을 도우러 온 수사일 것이라 짐작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푸른 그물에 갇힌 백수검종의 수사들은 희색이 만연해 서둘러 소리쳤다.

“선배님, 저희는 성궁을 돕기 위해 온 것입니다. 저들은 역성맹의 집법당 수사들로 수많은 성궁 수사를 해친 자들이지요. 죽어 마땅한 자들이니 절대 저 사악한 자들을 그냥 놔 주시면 안 됩니다!”

그 말을 들은 역성맹 수사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특히 한립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수사 두 명은 서로 시선을 마주치더니 갑자기 손바닥을 뒤집어 노란 깃발을 꺼내들었다.

그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 바로 깃발을 집어던졌고 노란 구름 두 덩이가 생겨나 그들을 휘감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들은 스무 장 밖에서 나타났다가 다시 흐릿해지며 곧바로 사라졌다.

“순간이동!”

그들의 바라보는 한립이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그는 피식 웃으며 한 손을 들어 백수검종 수사들을 가둔 푸른 그물을 풀었다.

그러자 보물을 조종하던 역성맹 수사 두 명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기절했다.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