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3화. 성궁에서 날아온 소식
*
연달아 들리는 좋은 소식에 한립은 내심 기뻤다.
그러나 더 좋은 소식은 송 여인이 10년 전에 천성적으로 의식이 강한 제자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한립이 폐관 수련에 들어가 있어 종문에서 홀로 수련하고 있었는데 영근 속성을 두 개 지닌 이종 영근자로 자질이 썩 괜찮은 편이었다.
한립은 곧바로 그 자를 불러들였다.
예상외로 그는 조금 허약해 보이는 용모의 열예닐곱 살의 소년이었다.
한립은 직접 소년을 시험해 보았는데 과연 동년배의 수사들에 비해 배는 강했고 성격 또한 신중하고 얌전해 보여 마음에 들었다.
그는 뜸들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년에게 자신을 사부로 맞이하고픈지 물었다.
‘석견’이라는 소년은 한립이 이미 누구인지 알고 있었고, 천남 제일수사가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여 준다는 소리를 듣고는 무척 기뻐했다.
그는 고민하지 않고 그 앞에 엎드렸고 한립의 제자로 들어가게 됐다.
한립은 소년을 자모봉으로 데리고 와 산중턱에 거처를 마련해주고 대연보경을 복제해 넘겨주었다.
그는 소년에게 반드시 대연결을 수련해야 하지만 다른 공법은 그 안에서 원하는 것을 골라 익히라고 말하고는 다른 것은 간섭하지 않았다.
대연신군 같은 천재가 대연보경에 남겨 놓은 공법과 비술이라면 어느 것 하나 얕볼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한립은 연기기 제자에게 충분한 단약을 내리고 먼저 입문한 전금아를 불러 한동안 석견을 지도하게 했다.
전금아는 용음지체를 지니고 태어나 수련이 쉽지 않았을 텐데도 인간형 꼭두각시가 가져다 준 대량의 단약에 힘입어 백 년 만에 축기 중기에 이를 수 있었다.
보아하니 한립의 예상대로 결단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소년을 제자로 맞이한 한립은 마음 쓰이던 일 중 하나를 해결한 듯했다.
대연신군이 세상을 떠나기 전 그 대신 제자 한 명을 찾아 대연보경을 전수해 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소년이 결단 이상의 수행을 지니는 대로 즉시 위력적인 보물을 주어 극서지방으로 보내 천죽교 교주의 자리를 되찾고 대연신군의 명맥을 이어나가게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자모봉에 거주하는 모패령은 남궁완이 전수해준 엄월종 비술을 익히며 수행이 크게 늘었고 이제 결단 후기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했다.
밤낮 없이 수련해 법력을 쌓고 하루라도 빨리 후기의 최고봉에 이르러 원영기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립은 그다지 희망적일 거라 여기지는 않았다.
모패령의 자질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수사들이 원영을 응결할 때는 기연과 조화가 따라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모패령이 열심히 노력해도 다른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원영 응결은 아득한 일일 뿐이었다.
이렇게 한립은 종 내의 크고 작은 일들을 살피고 난 후에야 운몽산맥을 떠나 월국으로 날아올랐다.
릉옥령이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성궁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아마 역성맹에 밀리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면 만리부를 이용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다시 상고전송진이 위치한 대 협곡 내의 지하 동굴로 돌아왔다.
이전의 전송진은 그에 의해 이미 훼손된 상태였지만 이전의 전송진을 다시 복구해 난성해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다행인 것은 겨우 연기기 제자 두 명이 이곳을 지키고 있어 눈가림용 진법을 하나 펼쳐 놓으면 성가신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한립이 저물대 중 하나를 쥐어 허공에 던졌다.
저물대는 빙글빙글 돌며 땅을 향해 하얀 빛을 뿜어냈다.
빛이 가시자 땅 위에는 한 무더기의 재료들이 허리까지 쌓였는데 대부분이 영석과 기이한 암석이었다.
한립이 손짓하자 저물대가 또 한 번 하얀 빛을 발했다.
이번에는 열댓 개의 진법 깃발과 원반이 나타나 허공에 떠서 각양각색의 빛을 내뿜었다.
그가 주술을 읊으며 소매를 펄럭이자 동시에 진법 법기들이 빛으로 변해 동굴 곳곳으로 사라지니 대량의 하얀 안개가 용솟음쳐 순식간에 한립을 덮어주었다.
이제 누군가 이곳을 지나간다 해도 동굴 안이 텅 비어있다 여길 것이다.
진법이 만들어낸 금제가 철저히 한립과 재료들을 가려주고 있었다.
한립은 그 안에서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진법 실력에 재료까지 충분하니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고, 겨우 이틀 만에 동굴 구석에는 새로운 상고 전송진이 만들어졌다.
한립은 자세히 살펴보다 법결을 던져 넣었다.
그러자 진법 중앙에서 하얀 빛이 반짝이며 전송진이 윙윙 울었고 곧 진법의 다른 부분으로도 빛이 퍼져 나갔지만 곧 암담해졌다.
‘아무 이상도 없군.’
한립은 기뻐하며 바로 그 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진법을 발동하려던 그가 동 굴을 훑더니 잠시 주저 하다 허리춤의 영수대 하나를 건드렸다.
스스스슷
그 안에서 하얀 기운의 눈보라가 분출되었다.
12마리의 새하얀 지네들이 눈보라를 타고 모습을 드러냈는데 각각이 한 척은 되어 보였고 네 개의 날개가 달려있어 흉악해 보였다.
한립은 육익상공들을 방출하고 주술을 옮으며 법결을 던졌다.
그러자 영충들이 손바닥 크기로 줄어들더니 입에서 한기를 내뿜어 스스로를 에워쌌다. 잠시 후에는 수정처럼 반짝이는 구슬 12개로 변해 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놀려 각 구슬에 푸른 실을 쏘아 보냈고, 순식간에 얼음 구슬 속으로 푸른 실이 사라졌다.
구슬들은 한립이 술법을 펼칠 필요도 없이 곧바로 땅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야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12마리의 7급 영충들이 이곳을 지킨다면 원영기 수사라 해도 쉽게 전송진을 훼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전송진을 발동해 하얀 빛 속으로 사라졌다.
* * *
눈앞이 캄캄하고 머리가 어지럽다고 느낀 한립은 천남에서 멀리 떨어진 알 수 없는 작은 섬에 나타났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폈지만 모든 것이 떠나기 전과 다르지 않았고 보아하니 아직까지 아무도 이곳을 발견하지 못한 듯 했다.
한립은 전송진을 걸어 나오며 손을 허공에 대고 갈랐다.
쾅!
금빛이 번뜩이며 전송진이 두 동강이 났고 한립은 그대로 석실을 빠져 나갔다.
잠시 후 푸른 빛줄기가 섬을 날아올라 어딘가를 향해 방향을 틀더니 번뜩이며 사라졌다.
* * *
한립은 천성성으로 향하며 많은 섬들을 지나쳤지만 잠시도 쉬어가거나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을 지나는 수사들이 다들 무척 바빠 보이고 낯선 무리가 마주치면 상대를 무척 경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긴장된 분위기만 보아도 난성해가 얼마나 격동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가 천성성에 가까워질수록 바삐 날아가는 수사들은 점점 많아졌고 서로 대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육전이 벌어지는 모습도 보였다.
그들은 거리낌 없이 서로를 공격했고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의지가 보였다.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점점 이런 광경이 잦아지자 그들 대부분이 성궁과 역성맹 사이의 전쟁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역성맹이 우위를 점하고는 있지만 오랜 세월 난성해를 통치해온 성궁과 연관이 깊은 종문과 세력도 허다했다.
평소에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다가 성궁의 존망이 걸린 시점에서는 전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이것은 정말 성궁이 생사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유구한 역사를 지닌 성궁이 자신의 저력을 쉽게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그가 난성해의 정세를 파악하지도 않고 이대로 성궁과 역성맹의 전쟁에 끼어 들 생각은 아니었다.
그는 푸른 빛줄기로 하늘을 날아가다 언뜻 표정이 달라져서는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그곳으로 쏘아져나갔다.
그의 수행에 전력으로 둔술을 펼치니 푸른빛이 몇 번 번뜩이는 것만으로도 벌써 십여 리 밖에 도착했다.
그는 아래쪽을 훑으며 묘한 얼굴을 했다.
진회색 장포를 입은 노인과 인상 사나운 거한이 노란 비검과 푸른 고리 법보를 이용해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는데 둘 다 결단 중기 정도에 법보의 위력도 엇비슷해 막상막하였다.
한립이 볼 때 그들이 특별한 보물을 꺼내거나 비술을 사용해 승부를 결정짓지 않는다면 반나절 이상은 지나야 싸움이 끝날 것이다.
게다가 한 쪽이 압승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고 아마 지는 쪽이 열 받아 달아나는 것으로 마무리 될 것이 뻔 했다.
그런데 그들 위로 한립이 나타나자 노인과 중년인 모두 깜짝 놀라 싸움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의식으로 상대를 훑고는 표정이 달라졌다.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아 수행을 숨겨 원영 초기로 보였지만 그래도 결단기 수사들에게는 압도적인 존재였다.
그들은 바로 법보를 거두고 허리를 굽혀 공손히 예를 갖췄다.
“저는 낙혼도(落魂島)의 필손이라 합니다. 선배님의 존성대명을 알 수 있을 지요? 무엇이든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중년 거한도 한립을 향해 예를 올 리고 비슷한 말을 외쳤다.
“내가 누구든 너희가 알 것은 없고. 그저 바깥을 돌아다닌 것이 오래 전이라 몇 가지 물을 것이 있어 왔을 뿐이다.”
“무엇이든 아는 대로 대답하겠습니다.”
그저 말이나 물으려 한다는 소리에 두 수사는 안심했고 노인이 먼저 분별 있게 답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한립이 난성해에 지난 백 년 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노인과 중년 거한은 한립을 오랜 세월 폐관 수련을 하다 나온 원영기 노괴라 여기고 성실히 답변했다.
당시 외성해의 요수들이 인간 수사들을 섬에서 몰아내고 주도권을 쥐었고 주변 섬에서 인간들을 전부 내 쫓으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성해의 열댓 개 섬을 둘러싸고 인간과 요족들 간의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그 전쟁에는 성궁과 역성맹 모두 크게 관여하지 않았고 관련 섬에 이해관계가 있는 산수들과 중소 문파들이 연합해 전송진이 있는 섬을 위주로 싸움을 벌였다.
물론 말이 전투지 인간 수사들은 섬에 갇혀 미리 펼쳐 놓은 금제의 힘을 빌려 수비할 따름이었다.
이런 일에 끼어들 만한 수사들은 적어도 축기기 이상의 수행을 지녔는데 수 만 명 이상이 참여했고 각 섬을 5, 6천 명 이상의 수사들이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모든 섬들을 저계 요수들이 층층이 에워싸 물 샐 틈 없이 포위해 인간 수사들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결국 며칠 버티지 못 하고 보름 만에 열댓 개 섬들이 방어에 실패했다.
화형기 고계 요수들이 나서지도 않았는데 저계 요수들이 끝없이 밀려들어 그대로 금제를 뚫고 섬을 공략 했다는 것이다.
외해에 남은 수사들로는 물밀듯이 밀려드는 요수들과 맞서기 어려웠고 어쩔 수 없이 인간 수사들은 내성해로 퇴각하며 전송진을 파괴했다고 한다.
다시 외성해는 요수들의 천하가 되었다.
물론 인간 수사들이 정말 외성해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닐 것이다.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이 지나면 인간 수사들은 다시 외성해를 노리고 나타날 것이다.
그곳의 무궁무진한 요수의 내단과 재료들은 난성해 수도계에서 꼭 필요한 자원이었다.
또 하나 귀 담아 들을 소식은 천성 쌍성이 수십 년 전에 벌써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였다.
부부가 죽기 전, 그러니까 수십 년 전 어느 날.
그들은 역성맹 총단을 쳐들어가 원자신광의 위력을 이용해 원영기 정마 수사들을 연달아 죽였고 마침 밀실에서 상의 중이던 만삼고와 육도 극성이 튀어 나와 응전했다고 한다.
정마 제일의 수사들인 만삼고와 육도 극성은 천성 쌍성이 원자산의 영향권을 떠나지 못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에 수사들은 모두 기함했다.
천성 쌍성은 온갖 괴이한 비술을 발동해 단번에 수백 년간 체내에 품어온 원자신광을 폭발시켰고, 그 어마어마한 위력에 역성맹 총단 대부분이 재로 흩날리게 되었다.
그들과 가까이 있던 만삼고와 육도 극성은 원영조차 달아나지 못하고 순식간에 죽어나갔다.
역성맹과 성궁은 동시에 가장 수행이 높은 수사들을 잃었는데 당시에는 역성맹의 피해가 훨씬 극심했다.
그 일로 장로급과 결단기 수사들이 대부분 사망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