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691화 (448/2,000)
  • 691화. 목생주(木生珠)

    *

    ‘불멸체’

    이런 신통은 아주 귀한 것이었다.

    상고 시대 요수나 고마 혹은 마화된 천절마시 등에서는 보았어도 인간 수사가 이런 신통을 부린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것이다.

    “목생주 한 알이 단 한 번 불멸체의 신통을 부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지! 구슬이 발동하는 동안에는 목이 떨어지고 몸이 두 동강 나도 다시 처음처럼 회복될 걸세.”

    “하지만 그렇게 되면 소모성 보물이 되는 것 아닙니까?”

    “불멸체 신통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목숨이 하나 더 생기는 것과 같네. 그 정도면 만족하고도 남음이지. 게다가 취령주가 있지만 다른 재료들도 인계에서는 찾기 어려워 제련하고 싶다고 제련할 수 있는 보물이 아니네.”

    “어떤 재료지요? 나무 속성 재료들이라면 저도 적잖이 모아두었습니다.”

    “필요한 재료는 바로 복제해 주겠네. 하지만 제련 방법을 알고 싶다면 수사도 노부와 거래를 해야 할 걸세!”

    사내아이가 솔직담백하게 조건을 걸었다.

    “그럼 수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보겠습니다.”

    한립은 사내아이의 이런 태도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알려준다고 했다면 오히려 의심했을 것이다.

    비록 화형뇌겁을 치른 후 친분이 두터워졌지만, 그들은 인간과 요족이었고 서로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기에 공존하는 관계였다.

    그는 인간과 요수가 겨우 이런 짧은 교류로 진정한 신뢰 관계를 쌓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자신을 돕는 것도 허천정이 그의 수중에 있고 그것을 떠나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내 비록 화형에 성공했지만 단약을 좀 복용해 경지를 다져야 하지 않겠나. 한 수사라면 구하기 어려운 단약들은 아닐 걸세.”

    “알겠습니다. 필요한 단약도 옥간에 함께 적어주십시오.”

    “좋네! 수사가 거처로 돌아가는 대로 재료와 제련법을 내어주겠네.”

    사내아이는 한립의 간결한 답변에 무척 만족하는 듯했다.

    한립이 미소 지으며 취령주를 목함에 넣고는 저물대 속에 넣어두었다.

    “천란 수사는 귀령문 수사들이 취령주의 폐해를 전혀 몰랐다고 보십니까?”

    “그거야 알 수 없는 일이지. 상고 수사들이 제련을 포기하며 그 폐해 역시 알려지지 않았을 테니까! 만일 귀령문의 나무 속성을 지닌 원영기 수사가 이 구슬을 사용한 적이 있다면 알았을 것이고, 아니라면 구슬만 가지고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들 이 고의로 구슬을 건네 수사의 화신기 진입을 막으려는 것이라 여기는가?”

    “처음에는 저도 그렇게 의심했으나 귀령문이 그렇게 나올 이유가 없습니다. 화신기 진입을 막더라도 저는 여전히 원영 후기의 경지에 이른 천남 제일의 수사일 텐데요.

    이 일이 발각되는 날에는 그날로 귀령문은 끝이 아니겠습니까? 아마 다른 내막이 있을 것입니다. 귀령문이 이렇게 하도록 유도한 자라면 그 배후는 분명 천남 현지 세력이겠지요.

    제가 화신기에 이르든 말든 다른 수사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어차피 천남에서 저를 대적할 자가 없으니까요. 그저 수명이 천여 년에 그쳐 낙운종이 천남을 압도하는 시일이 짧아질 따름입니다.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질 세력은 손에 꼽히지요. 화의문, 합환종 그리고 태일문 이 세 종문 중의 하나이거나, 아니면 그 세 종문이 합심하여 벌인 일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자네의 말을 들으니 명확하게 이해가 되는군. 그래서 다른 세 명의 원영 후기 수사들이 이 일에 가담했다고 여기는 것인가?”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추측에 불과합니다. 어찌 된 일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귀령문 수사 셋을 잡아들여 추혼술을 펼쳐보면 어떠한가? 그럼 진상을 밝힐 수 있을 텐데.”

    사내아이가 낮게 웃으며 제안했다.

    “그들을 잡아들이기는 쉬워도 추혼술로 알아낸 정보만으로 한 종문 전체를 어찌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귀령문 원영기 수사들을 마음대로 잡아들였다가는 천남 수도계의 공적(公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천남 제일의 수사라 해도 사실은 질투와 두려움을 지닌 자들이 대부분이지요.

    그들이 이번 기회에 명분을 만들어 저를 천남 수도계 적으로 만든다면 제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홀로 전부를 상대할 수는 없지요. 비슷한 선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어두운 얼굴로 한립은 고개를 저어 댔다.

    “한 수사도 너무 몸을 사리는구먼. 노부의 성질이었으면 그냥……! 허나 마음대로 하시게. 수사가 목숨만 부지한다면야 나는 관여치 않을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이미 누군가 모략 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앞으로는 더욱 조심할 것입니다. 일단 이 일은 모르는 척 넘어가야겠지요. 만약 또 다른 수작을 부린다면 그 때는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증거를 잡는 순간, 무엇이 진정한 고통인지 알려줘야겠지요.”

    한립은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말투에 감도는 한기는 누구라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잠시 대청을 거닐던 한립은 그곳을 나와 다른 누각을 바라보았다.

    ‘함운지는 그렇다 치고 동흰아는 무슨 일이지?’

    예전에도 그는 동훤아와 그리 유쾌한 사이가 아니었고 교태가 흘러넘치던 여인의 얼굴도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일전에 합환종에서 버려진 수사의 말에 따르면 동흰아가 결단을 이루고 한동안 그의 행방을 찾아 돌아다녔다고 하지 않았는가?

    한립은 누각을 바라보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름다운 여인 둘이 말없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은 노란 장삼을 입은 온화한 인상의 여인이었고 다른 한쪽은 하얀 장삼을 걸친 매혹적인 분위기의 여인이었다.

    그들은 한립이 나타나자마자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수사들이 여기까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놀랐소. 오래 전부터 알 고 지내던 두 분을 보니 감회가 남 다르군.”

    한립이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며 미소 지었다.

    “한 형……. 아니, 한 선배님! 바쁘신데 제가 뵙자고 청해 실례를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노란 장삼의 여인이 반갑게 한립을 맞이하며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하얀 장삼을 입은 동훤아는 붉은 입술만 떼었을 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나 격동, 기쁨 그리고 원망이 섞여 있었다.

    “함 소저가 찾아주어 기쁠 따름이오. 어차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에 선배라는 칭호는 그렇고 편히 한 형이라 불러주오. 이미 결단 중기에 이르렀으니 후기에 이를 날도 머지않아 보이는데.”

    한립이 함운지를 향해 미소를 짓자 노란 장삼의 여인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이렇게 찾아뵌 것은 사실 한 형의 은혜에 감사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두 번이나 저를 살려주셨지요. 만일 다른 수사와 마주쳤다면 저는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함운지가 감격스런 마음으로 낮게 읊조렸다.

    “보아하니 혈금시련(血禁試煉) 때의 기억을 되찾은 모양이오. 이후 월국에서의 일도 알게 된 것 같고.”

    “얼마 전 류옥 사저를 만나 그때의 일을 듣게 되었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감히 이렇게 한 형을 찾아뵙지도 못했겠죠.”

    한립은 그녀를 자신의 어린 누이라고 생각해 수차례 구해 주었는데 함운지도 그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그의 신분도 잊고 정답게 바라보게 되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들은 태남소회(太南小會)와 혈금시련에서 만났던 일까지 회상하게 되어 감개가 무량했다.

    그때의 그들이 겨우 2, 3백 년 후 에 이렇게 변해있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심지어 한립은 겨우 축기기 수사에서 이제는 누구나 우러러보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아, 맞다. 이분은 제가 이번에 알게 된 동 소저인데 한 형과 동문이었다고 들었습니다.”

    함운지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고 개를 돌려 동훤아를 보며 웃었다.

    “동 선자와는 황풍곡 문하에서 함께 수련했던 적이 있소, 허나 오고 가며 한두 번 보았을 뿐 이렇다 할 친분을 쌓지는 못했소.”

    한립이 그녀의 소개에 그제야 동훤아를 쳐다보았다.

    “……제가 이리된 것은 전부 당신 때문입니다.”

    그의 시큰둥한 말투에 붉으락푸르락하던 동흰아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한립은 어리둥절했고 함운지도 놀라 눈을 깜빡였다.

    “동 선자, 그게 무슨 말이오. 수사의 수행에 진전이 없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당신이 제 심마(心魔)가 되어 수련의 고비를 넘기는 데 실패만 하지 않았다면 세월을 이렇게 흘려보냈을 리 없었겠지요.”

    동훤아는 화를 참지 못하고 한립의 신분도 잊은 채 따지기 시작했다. 거의 억울하고 분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심마라…….”

    한립은 중얼거리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 연 씨 가문에서 전부결에게 납치당해 합환종에 간 이후에야 제 신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뜻밖에도 제가 합환종 운로 노마의 직계 자손이더군요. 이런 사정을 모르고 황풍곡에 입문하였던 것이고요.

    제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운로 노마께서 혁몽결(奕夢決)이라는 비술을 걸어 미혼술과 연관된 공법을 익히며 쉽게 대성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공법들은 쉽게 심마라는 번뇌를 불러들여 간단한 것은 쉽게 넘어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평생 그 관문을 넘지 못하게 되지요. 심지어 심마가 심할 경우에는 수행이 퇴보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어찌 내가 동 수사의 심마가 된 것이오? 이렇다 할 교류도 없었는데.”

    “그걸 저라고 알겠어요? 결단에 성공한 이후 온갖 잡다한 상념으로 당신의 모습이 나타나 수련을 방해했고, 외적인 힘을 빌려 간신히 결단 초기는 넘겼지만 중기에 이른 이후로는 어떤 방법도 소용이 없었어요.

    결국 제 선조 되시는 운로 노마께 그 이유를 여쭸더니 아마 당시 당신이 익혔던 특수한 공법 때문에 미혼술이 간파당하고 이후 전부결의 손에 납치되면서 강한 인상을 남긴 게 아닐까 하셨습니다.”

    동훤아도 난감할 따름이었다.

    그 말에 한립은 할 말을 잃었고 듣고 있던 함운지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결단을 이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찾아 다녔다고 들었소. 그때 나를 찾아냈다면 어찌 심마를 해결할 참이었소?”

    잠시 후 한립이 평정을 되찾고 물었다.

    “심마를 해결할 방법이 뭐가 있나요. 스스로 이겨내거나 심마가 된 인물을 찾아 죽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죠. 그때는 두 번째 방법으로 심마를 해결하려 했어요.”

    동횐아는 떠듬거리며 말을 마치고는 두 뺨이 붉어졌다.

    한립은 그녀가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이해하고는 표정이 어색해졌다.

    “이곳에 찾아온 목적은 알겠소. 내가 의식으로 비술을 펼쳐 심마를 넘기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겠지.”

    “맞아요. 모란인들이 침략했을 때 당신을 보고 도와달라고 청하려고 했지만 이미 원영기 수사가 된 것을 알고 주저하다 기회를 놓치고 말았지요.”

    “내가 당신을 도와줄 거라 여긴 것이오?”

    “당신은 이미 천남 제일수사인데 어째서 저 같은 결단기 수사를 도와주겠어요. 그저 이번 생애에 원영기에 이르려면 이 방법 밖에 없으니 무턱대고 찾아온 것이죠.”

    “우리가 이전에도 그리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동문이었고 또 심마가 나로 인해 생겼다 하니 이번만은 도와주겠소.”

    “정말이예요?”

    한립의 말에 동훤아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겨우 이런 일에 허언을 할 리가? 다만 이후 나와 동 선자는 아무런 관련도 없으니 알아서 잘 살아가시오.”

    “한 수사께서 도와주신다니 감사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다른 망상은 품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순 얼굴이 창백해져 침묵하던 동훤아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그럼 동 수사는 이곳에서 사흘간 휴식을 취하시오. 사흘 후 내 이곳을 찾아 심마를 넘길 수 있게 도와주리다.”

    그의 차분한 말에 동흰아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그는 함운지와 잠시 더 한담 을 나누다가 며칠 더 낙운종에서 쉬다가라 이르고는 누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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