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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86화 (443/2,000)
  • # 686

    686화. 이상한 뿔

    요족의 화형뇌겁에 관한 비사는 인계의 경전에는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 수사와는 별 상관이 없으니 인간들의 경전에 기록되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게다가 어떤 인간 수사가 고계 요수가 뇌겁을 치르는 것을 그리 자주 볼 수 있겠는가! 요수가 뇌겁을 치를 때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기에 결코 인간 수사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곧 한 척 길이의 두툼한 뇌전들이 장장 한 식경이나 떨어지고 나서야 천둥소리가 잠시 그쳤다.

    한립이 자세히 살펴보니 회백색 요기가 거의 흩어져 아주 얇은 한 층만을 남겨 두고 있었고 천란수는 그 틈을 타 두 날개를 펄럭이며 입을 벌려 회백색 요기를 다시 분출해냈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배는 두꺼운 요기를 뭉쳐 다시 그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때 천란수의 시선은 차분했고 맹렬한 뇌겁을 예상했다는 듯 당황하는 기색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한립이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상대의 말대로 앞쪽의 뇌겁은 스스로 막아낼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에 말해준 것은 그에게 큰 이득이 될 만했기에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저물대를 스치자 각양각색의 법기들이 날아올라 그의 앞에 일렬로 배열되었다. 샛노란 조롱박, 새하얀 사발 그리고 푸른 옥병 등 모두 용기 형태의 법기였다.

    이때 고공에서 천둥소리가 다시 들리며 두 번째 뇌전들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보다 확실히 수도 많아지고 위력도 강한 벼락이었다.

    법기들을 꺼낸 한립은 가부좌를 하고 앉아 두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한 시진이 지났을 때 천란수는 세번째 뇌전을 막아내고 있었다.

    갈수록 그 위력은 놀라웠고 은빛 뱀처럼 날아드는 벼락 때문에 한립이 펼쳐 놓은 금제도 적잖이 망가지고 말았다.

    그러나 한립의 벽사신뢰로 만든 금빛 뇌전 그물만은 멀쩡해서 그에겐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벼락의 중심에 있는 천란수는 네 번째 뇌전들이 떨어져 내릴 무렵 드디어 여유를 잃어갔다.

    술법을 펼쳐 몸집을 또 늘려 이제는 열댓 장 크기의 거대 요수가 되어 있었고 입에서 뿜어내는 요기도 회백색이 아니라 뇌전과 비슷한 은백색으로 변화한 것이다.

    은백색 요기는 괴이해서 벼락이 떨어지면 마치 금속끼리 맞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튕겨내곤 했다. 그 소리에 눈을 감고 정기를 비축하던 한립도 놀라 눈을 떴는데 은백색 요기의 눈부신 광택은 보기만 해도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내준 한수와 관련된 것일까?  이렇게 단시간 안에 한수를 연화해서 이용하다니!’

    한립이 상대를 살펴보는 동안 괴이한 요기를 분출한 천란수는 한결 편해진 얼굴로 벼락을 막아냈다. 그러나 일곱 번째 뇌전들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요수의 얼굴에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허공의 비구름이 더욱 더 요동쳤고 엄청난 수의 뇌전을 토해내 하늘 전체가 은색 뇌전 그물로 뒤덮인 것이다. 놀랍게도 벼락들이 내리치는 순간 주변 일대가 은빛으로 뒤덮여 천지간에 은색 뇌전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 수사, 인계의 뇌겁이 예상보다 위력적이라 앞으로 두 번밖에는 버티지 못할 걸세. 마지막 세 번은 수사의 도움이 필요하겠어.”

    드디어 한립의 귓가에 천란수의 희미한 목소리가 울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때가 되면 제가 나서겠습니다.”

    “그럼 수고 좀 해주게! 노부가 반드시 잊지 않고 보답할 것이야.”

    천란수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안심했다. 대수사가 호법을 서주니 화형뇌겁이 생각보다 강력해도 큰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은빛 뇌전 그물이 요수를 완전히 감싸 무수히 많은 뇌전들이 터져나갔다. 대부분의 벼락을 은백색 요기가 필사적으로 튕겨내는데도 남은 벼락의 양도 만만치 않았다.

    은색 요기는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흩어져갔고 일곱 번째 뇌전 공격이 지나고 난 후에는 거의 절반은 사라졌다.

    천란수는 벼락 소리가 멎은 순간 바로 회백색 요기를 뿜어내 은색 요기 바깥에 층층이 쌓아갔다. 이제 여덟 번째 뇌전 공격이 떨어져 내릴 때였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뇌전 그물이 흉흉한 기세로 낙하했다.

    쿠르릉! 쿠콰콰콰꽝!

    천지를 뒤흔들 폭음이 터지고 요기는 순식간에 은백색 층만 남아 그마저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에 진법 바깥에서 지켜보던 한립이 순간 인상을 찡그렸으나 곧 평소 얼굴로 돌아왔다.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하늘 위에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돌연 한립의 표정이 달라져 고개를 푹 숙였다.

    “허, 재미있는 일이로구나! 천남에 저런 존재가 있었다니.”

    그가 열손가락을 땅을 향해 튕기자 열 개의 가느다란 붉은 실들이 땅 속으로 사라졌다. 갑자기 땅이 극심하게 흔들리며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괴성이 지하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곧 노란 흙먼지를 불러일으키며 수십 장에 이르는 방대한 육체를 가진 요수가 지면 위로 솟아올랐다.

    거대한 육체의 상반신에는 새빨간 실들이 붙어 있었고 거대한 요수는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러댔다. 새빨간 실들은 바로 한립이 새로 제련한 열 개의 화령사였다.

    누런 몸을 지닌 거대 요수는 상반신에 무수히 많은 촉수를 광적으로 흔들었고 머리에는 황금색 뿔이 솟아나 있었다. 이상한 것은 뇌전들이 거대 요수 주변에 이르면 황금색 뿔이 번뜩이며 흡수한다는 것이었다.

    “독각구(獨角蚯)였구나! 그런데 어찌 이렇게 커진 것이지?  게다가 원래는 뿔도 하얀색일 텐데…….”

    분노해 날뛰는 거대 구렁이를 보며 한립이 중얼거렸다.

    거대 구렁이는 괴성을 지르다 입에서 은빛을 번뜩이며 뇌전들을 분출했다. 뜻밖에도 금색 뿔로 흡수한 벼락들을 이용해 진법 옆에 서 있던 한립을 공격한 것이다.

    “지능이 이렇게 뛰어나다니! 변이 영수인 게로구나.”

    한립은 그 모습에 놀라기보다는 즐거워했다. 그가 두 팔을 펼치자 팔뚝만 한 금빛 뇌전 두 줄기가 쏘아져 나갔고 허공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꽈과광!

    굉음이 터지고 금색과 은색 뇌전이 두 마리 구렁이들처럼 얽혀들더니 미세한 뇌전들을 튕기며 폭발해 사라지고 말았다.

    거대 요수는 그것을 보고 더 흥분했는지 금빛 뿔에서 더욱 빛을 발산하며 주변의 벼락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더 강력한 공격을 날릴 기세였다.

    한립은 냉소하며 입에서 금빛 검을 분출했고 검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 기다란 흔적을 남겼다. 거대 요수는 그것이 두려웠던 지 온 몸에서 노란 빛을 뿜으며 수축해 땅속으로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상반신에 엉겨 붙은 화령사가 갑자기 붉은 빛을 번뜩이며 새빨간 불 밧줄로 변하더니 밧줄이 어린 나무의 줄기처럼 굵어졌고 동시에 불길이 크게 일어 요수의 상반신을 거의 다 뒤덮었다.

    이때 금빛 빛줄기가 날아들어 그것의 머리를 세차게 베어나갔고, 거대 요수는 금색 뿔로 거검의 공세를 맞받아쳤다.

    텅!

    가벼운 울림과 함께 눈을 찌를 듯 요란한 빛이 반짝이더니 금색 뿔이 거검을 튕겨내 버렸다. 그때 거대 요수의 머리 위에서 푸른 뇌전이 번뜩이며 한립이 나타나 또 다른 금빛 검기를 쾌속으로 쏘아 보내자 거대 요수의 몸에 사발만한 구멍이 뚫렸다.

    청록색 피가 꿀렁꿀렁 흘러내렸지만 거대 요수는 도리어 격노해 날뛰기 시작했다.

    요수는 한동안 포효하더니 상반신에 난 촉수를 수축해 채찍처럼 휘둘러 한립을 공격했다. 그러나 한립은 곧바로 수결을 맺어 몸 곳곳에서 열댓 자루의 금빛 검들을 분출했고, 검의 장막을 펼쳐 몸을 보호했다.

    한립이 주술을 외며 아래쪽을 가리키자 열댓 자루의 작은 금빛 검들이 일제히 공명하며 느닷없이 일곱 자루의 검으로 변했다. 그리고 각각의 비검들이 여섯 개의 금빛 환영을 만들어내 수십 개의 빽빽한 금빛으로 떨어져 내렸다.

    가슴이 철렁한 거대 요수는 대량의 은빛 벼락을 분출했고 이어 새빨간 불덩이를 내뱉어 엄청난 수의 검빛들을 막으려 했다.

    퍼퍼펑!

    연달아 폭음이 울리고 수십 자루의 금빛이 은빛 뇌전과 화염에 흩어졌지만 남은 것들은 여전히 거대 요수에게로 쇄도했다.

    거대 요수가 대비하기도 전에 검들이 윙윙거리며 하나로 응결되어 다시 거검으로 변했고 번개처럼 요수의 허리를 도려냈다. 요수의 비명이 하늘에 울려 퍼졌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녹색 핏방울들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그러나 한립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불가사의한 장면이 펼쳐졌다. 죽은 줄 알았던 요수의 상반신이 금색 검빛이 가시자마자 펄쩍 뛰어 올라 한립을 삼키려 달려든 것이다.

    동시에 요수의 잘려나간 하반신에도 노란빛이 번뜩이며 촉수가 뭉쳐져 다시 입이 만들어지더니 땅속으로 파고들어 자취를 감추었다.

    “어딜 가려 하느냐!”

    흠칫 놀라던 한립이 눈썹을 끌어 올리며 수결을 맺었다.

    “터져라!”

    한립의 말에 요수의 몸에 들러붙어 있던 굵직한 불 밧줄들이 빛을 번뜩이며 폭발하기 시작했다.

    쿠콰쾅!

    화염 구름이 피어나며 요수의 상반신이 화염에 휩싸여 참혹한 비명을 질러댔다. 맹렬한 기세에 금색 뿔도 화염을 전부 흡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굵직한 검빛이 방향을 틀어 구름 속을 베어냈다. 그러자 그 안에서 들려오던 비명이 뚝 끊기고 녹색 피가 비처럼 흩날리더니 새까만 잔해 두 덩이가 살타는 냄새를 풍기며 떨어져 내렸다.

    한립이 차분히 의식으로 살피니 땅속으로 파고든 하반신 요수의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아 이제 겨우 몇 리밖에 달아나지 못했다. 이에 한립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허리춤을 건드려 수많은 금빛 곤충 떼를 불러냈다.

    그리고 그가 무표정하게 땅의 한 지점을 가리키자 웽! 하는 소리와 함께 곤충 떼가 일제히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팟! 하고 흩어져 땅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는 더 이상 그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고 다시 불 구름을 향해 손짓했다. 맹렬히 타오르던 불 구름은 빠르게 줄어들어 마지막에는 굵은 밧줄로 돌아왔는데 각각의 불빛이 이전보다 암담해져 있었다.

    한립이 입을 벌려 푸른 기운을 내뿜자 두 장 길이의 화령사 10개가 저항하지 않고 푸른 기운에 휩싸여 그의 체내로 돌아갔다. 그제야 땅에 떨어진 검은 잔해를 본 한립은 미간을 좁히며 허공을 쥐었다.

    슉!

    새까맣게 탄 시체 속에서 나타난 금빛의 구렁이 요수 뿔은 방대한 요수의 몸에 비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여섯 척은 되었고 뿔의 금빛 찬란한 표면에 오묘한 주술 문자들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그가 연달아 법결을 날리자 금빛 뿔이 작아지더니 반 척 길이로 줄어들었다. 그제야 그는 금제 부적을 붙이고 목함을 꺼내 저물대에 넣어두었다.

    한립은 가볍게 손을 털며 만족한 기색을 보였다.

    그때 십여 리 밖에서 땅이 크게 흔들리더니 거대 요수의 남은 절반이 땅속에서 솟아 올랐고 전신에 금빛이 반짝이는 것이 수천 마리의 서금충들이 다닥다닥 붙어 빠르게 요수의 몸을 뜯어먹고 있었다.

    거대 요수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대며 땅 위를 굴러다녔다. 서금충을 털어내려는 것이겠지만 금빛 딱정벌레들은 이미 요수와 한 몸이라도 된 듯 딱 달라붙어 거대 요수를 갉아먹는 데만 열중했다.

    잠시 후 마지막으로 발작하듯 솟아오른 거대 요수는 그대로 땅에 떨어져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립이 허공에 떠서 그것을 지켜보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하늘 위에서는 여전히 벼락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지만 처음보다는 하늘의 그물이 듬성듬성한 것이 천란수가 여덟 번째 벼락 공격도 버텨낸 듯했다.

    ‘이제 슬슬 내가 나설 때인가.’

    하지만 먼저 그는 남색 빛이 일렁이는 눈으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잠시 후 벼락이 또 한 번 완전히 멎자 먹구름 사이로 기이한 약 향이 퍼져 나왔고 구름이 요동치며 그 사이로 거대한 달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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