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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83화 (440/2,000)

# 683

683화. 마화(魔化)

마기의 심연에 있던 마기는 두 번째 원영의 예측을 초월했던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 한립이 추격해 올 것이 두려워 마음이 급해 마지막 순간 마기의 흡수를 더욱 늘렸을 것이다.

대연결을 익혔다지만 현음대법을 수련하는데 바빠 겨우 2성이었으니 장시간 마기에 노출되어 이지를 상실했을 것이다. 결국 천살마시의 몸은 어느 정도 버텨냈지만 두 번째 원영은 마기의 침입을 이기지 못하고 말았다.

앞으로 큰 화가 될지 몰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다급히 달려왔는데 이 꼴이라니 한립으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한립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한 손을 들어 삼염선을 쥐었다. 의식도 없는 상대를 봐줄 이유도 없었고 삼염선으로 천살마시의 육체만 처리하면 두 번째 원영은 그의 손에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삼염선이 삼색의 화염을 일으킨 순간 앞쪽의 천살마시가 포효하며  잘려나간 팔을 주변의 정순한 마기들로 다시 만들었다. 그러자 이미 잘려나간 팔이 완벽히 다시 살아났다.

“불멸체(不滅體)!”

한립은 피식 웃으며 삼염선에 더 많은 영력을 불어넣었다.

불멸체라는 신통이 드물기는 하지만 태생적으로 저런 능력을 지니는 요수를 한두 마리 죽여 본 것이 아니었다. 그저 훨씬 더 강한 힘으로 육체를 완전히 훼손하면 제 아무리 회복을 하려해도 원형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봉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몇 척 길이의 삼색의 주술을 휘감은 불새가 부채에서 날아올랐다. 주변의 마기가 삼색 화염에 닿자마자 사라질 정도로 엄청난 힘의 공격이었다.

천살마시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끼곤 미친 듯이 주변의 마기를 빨아들였다. 만일 두 번째 원영이 정신을 차렸다면 바로 도망갔을 것이다.

마기를 흡수해 몸집이 커진 천살마시가 입을 벌려 새까만 빛기둥을 뿜어냈다.

쿠콰콰쾅!

경천동지할 굉음이 마기의 심연 깊은 곳을 쩌렁쩌렁 울리고 삼색의 광채와 검은 빛덩어리가 폭발해 순간적으로 대치했다.

“흠?”

한립은 의외의 결과에 조금 놀랐다. 삼염선의 위력은 원영 후기의 수사들도 막기 어려웠는데 잠시라도 막아낸 것이 신기했던 것이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삼색 광채의 표면을 흐르는 주술들이 반짝이며 검은 빛덩이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천살마시는 자신이 밀리자 눈빛이 포악해지며 다시 마기를 흡수해 새까만 빛기둥을 쏘아 보내려 했다.

이번에는 한립도 표정이 굳었다.

꽈광!

천둥소리가 울리고 그의 등 뒤로 푸른색과 하얀색의 날개가 펼쳐졌다. 바로 새로 제련한 풍뢰시였다. 날개가 펄럭이자 한립이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순간 천살마시의 등 뒤로 푸른 뇌전이 번득였고 한립이 소리 없이 나타나 주먹을 내질렀다. 푸른 거대 손이 홀연히 나타나 강력한 일격을 날린 것이다.

펑!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천살마시가 주먹에 맞아 그대로 삼색 광채 속으로 튕겨나갔다. 천살마시는 겁에 질려 비명을 내지르며 새까만 마기를 증폭했다.

하지만 삼색 화염에 둘러싸인 천살마시는 전혀 버티지 못하고 한 호흡 만에 형체도 없이 완전히 녹아 내렸다.

한립은 삼염선을 돌려 화염을 흩어버리고 두 번째 원영을 거둬들이려 했다. 그런데 그때 삼색 광채가 맹렬히 진동하며 핏빛이 터져 나왔고  그 틈에 검은 빛이 달아나 서른 장 위로 치솟았다.

서둘러 쳐다보니 검은 빛 속에 칙칙한 녹색 원영이 새까만 깃발을 품고 날아가고 있었다.

바로 두 번째 원영이었다. 원영의 눈빛은 냉랭했고 완전히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한립은 그저 코웃음을 치며 뒤쪽의 날개를 펄럭여 다시 사라졌다.

두 번째 원영이 대번에 표정이 달라져 깃발을 던지고 수결을 맺어 법결을 날렸다. 한립이 직접 건네준 귀라번이 빙글빙글 돌아 검은 빛을 번뜩이더니 스스로 폭발했다.

퍼펑!

굉음이 울리고 무수히 많은 검은 빛들이 빽빽하게 쏘아져 나가 원영 아래쪽을 뒤덮었다. 원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면을 향해 날아올랐다.

검은 빛들이 그물처럼 덮쳐오자 푸른 뇌전이 반짝이며 한립이 괴이하게 나타났다. 그는 검은 그물과 두 번째 원영을 서늘하게 번갈아 보더니 소매를 털어 눈부신 금빛을 휘둘렀다.

그러나 검은 그물은 빛이 약해졌을 뿐 잘려나가지 않았다. 이에 미간을 좁힌 한립이 금빛을 날렸다. 동시에 금빛 뇌전이 금빛 검을 타고 흘러 다시 검은 그물을 베려했다.

쾅!

이번에는 검은 그물이 터져나가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고 한립은 곧바로 푸른 빛줄기로 변해 솟구쳤다. 마기의 심연 해수면 위에서는 수십 명의 수사들이 봉인을 둘러싸고 진법 법기며 원반을 들고 서 있었다.

그들은 긴장된 기색으로 아래를 응시했고 손에 든 진법 법기들은 빛을 내며 언제라도 발동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 순간, 봉인 안에서 괴성이 울리며 새까만 검날이 표면을 갈랐고 벌어진 틈 사이로 검은 빛이 빠져나왔다.

“진법을 펼쳐라!”

봉인만 쳐다보고 있던 규환과 여인이 주저하지 않고 명을 내렸다. 그러자 36명의 낙운종 제자들이 동시에 진법 깃발과 원반을 투척했고 법기들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오색찬란한 결계가 층층이 퍼져나갔다.

한립의 두 번째 원영은 아무 준비 없이 날아오르다가 오색빛에 둘러싸이고 말았다.

한립의 기억을 지닌 그는 과감히 마기 적혈검을 폭발시켜 삼색 화염을 뚫고는 풍뢰시로 쫓아오는 한립을 보고 귀라번 마저 폭발시켰다. 그래서 원영은 두 보물이 내는 위력에 한립의 눈앞에서 빠져나갈 기회를 얻었다.

그는 이곳을 떠나는 대로 원영의 순간이동 술법을 이용해 칠령도 중 한 섬으로 숨어들 계획이었다. 갖가지 보물로 완벽하게 기운을 숨겨 진법을 펼치면 한립의 의식도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원영은 늘 홀로 움직이는 한립이 봉인 주변에 저계 제자들을 시켜 위력적인 진법을 펼쳐 놓았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분노한 원영이 작은 손을 마구 휘두르며 칠흑 같은 검기를 사방으로 날렸다. 그러나 오색찬란한 기운이 신묘하게도 검기에 잘려 나갔다가도 다시 원상태로 돌아와 원영이 달아날 틈을 주지 않았다.

안색이 변한 두 번째 원영은 두 팔을 맹렬히 펼쳐 검은 빛기둥으로 한 장 길이의 거검을 만들어 한 지점을 갈랐다.

이에 필사적으로 진법 법기들을 부려 버티던 저계 수사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말았다.

쿠콰쾅! 쿠쿵!

두 번의 굉음이 가시고 오색찬란하던 보호막에 몇 척 길이의 구멍이 뚫렸다. 수사들이 서둘러 진법 법기를 조종해 구멍을 메우려했지만 바로 회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두 번째 원영이 희색이 만연해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오색찬란한 보호막을 빠져나온 원영이 주변의 수사들을 노려보더니 다시 수결을 맺어 순간이동을 하려했다.

그런데 그때 그의 등 뒤로 작게 바람이 일며 한립이 나타났다.

“이런!”

두 번째 원영은 주저 없이 신형이 흐릿해져 재빨리 사라지려 했다. 그러나 그는 원영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빼려는 것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별안간 그의 양 미간에 가느다란 혈흔이 생기며 검은 기운이 밀려나와 검은 눈동자로 응결되었다. 그리고 눈에서 검은빛이 튀어나가더니 스무 장 밖의 허공에서 폭발했다. 두 번째 원영이 비틀거리며 나타나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이쪽을 보았다.

피식 웃은 한립은 입을 벌려 작은 솥을 방출했고 날개를 펄럭이며 바람 속으로 스며들었다.

작은 검을 꼭 쥐고 있던 두 번째 원영이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다시 몸이 흐릿해 지려는 순간, 허공에서 푸른 실뭉치가 날아들어 원영을 꽁꽁 포박하려 했다.

기겁한 원영이 검은 검기를 마구 뿌려댔지만 연달아 폭음이 울린 후에도 푸른 실들은 계속해서 밀려들었다. 겁에 질린 원영이 다른 비술을 사용하려 하자 푸른 뇌전이 번뜩이며 솥을 든 한립이 나타났다.

그는 두 번째 원영을 향해 서늘한 눈빛을 보내더니 곧바로 작은 솥을 튕겼다.

텅!

솥뚜껑이 날아가자 푸른 기운이 솟아올랐고 원영을 포박하려는 푸른 실들은 거기에 반응하듯 더욱 꽉 조여 왔다. 법력이 응결돼 아무 짓도 못하게 된 원영은 순식간에 푸른 실에 잡혀 솥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한립이 허공의 솥뚜껑을 가리키자 뚜껑이 푸른빛으로 변해 하강하더니 굳게 닫혀버렸다. 허천정에 가두었으니 원영 후기 대수사라해도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한 사숙님, 큰일을 완수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규환과 여인이 축기기 제자들을 데리고 와 인사를 올렸다. 어떻게든 호감을 사려는 것이다.

“이번에 너희의 공도 적지 않으니 이것을 받거라! 두 약병에는 단약이 들어 있으니 수행에 도움이 될 것이다. 가져가 나눠 쓰고 마기의 심연은 지키는 인원을 늘려 다른 요마가 침입하지 못하게 엄히 단속해야 한다.”

한립이 저물대를 스쳐 하얀 옥병 두 개를 규환에서 던져주었다.

“예! 다른 종문과 상의하여 바로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숙님 영별도로 가셔서 며칠 쉬다 돌아가시지요.”

규환은 옥병을 받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됐다. 본 종에서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고 다른 일이 있어 오래 머물지 못 한다.”

손을 저은 한립이 바로 솥을 회수해 푸른 빛줄기로 날아올랐다. 규환과 여인이 정중하게 예를 올리며 그가 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한참 후에야 몸을 폈다.

“규 수사, 한 선배님이 남겨주신 단약이 무엇입니까?  대수사이신 선배님이 아무 단약이나 하사하시진 않으셨을 텐데요.”

멀리서 붉은 장포 수사가 문하의 제자들을 데리고 날아들어 규환을 보며 부러운 내색을 했다.

“그야 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좋은 물건이겠지요?  일단 봉인을 다시 굳건히 하는 것부터 서둘러야겠습니다!”

규환이 마른 웃음을 흘리고는 약병을 감추고 문하의 제자들에게 바삐 명을 내리기 시작했다.

봉인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가 붙었으니 멀쩡할 리 없었다. 낙운종 수사들은 각 기둥으로 바삐 움직였고 붉은 장포 수사는 더 이상 캐묻지 못하고 봉인을 재건하는데 합류했다.

* * *

십여 일 후, 한립은 운몽산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바로 낙운종으로 가지 않고 자모봉으로 향했는데 금제를 열기도 전에 그를 기다리고 있는 여인들을 발견했다.

“사부님을 뵙습니다!”

여인은 자세를 단정히 하고 예를 올렸다. 그의 기명 제자 류옥이었다.

“줄곧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냐?”

한립이 순간 미간을 좁히며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패령 소저와 송 사저도 걱정이 되어 사부님이 무사히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잠시 전 사매의 거처에 모여 있고요.”

“겨우 내 두 번째 원영을 잡으러 간 것인데 걱정할 것이 무엇이더냐. 그런데 너희가 벌써 금아를 만난 게로구나.”

“예, 전 사매가 총명한 것이 사부님이 친히 문하에 들이실 만합니다.”

“금아는 너희와 다르다. 용음지체라는 특수한 체질을 타고나 아마 수행을 크게 쌓기는 어렵겠지. 그 아이를 들인 것은 다른 이유가 있으니 그리 떠볼 것 없다.”

“제가 감히 어찌요!”

류옥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는 기뻐했지만 겉으로는 민망한 듯 웃어 넘겼다.

“됐다. 어차피 모여 있다니 가서 전부 불러 오거라. 마침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턱을 쓰다듬던 그가 류옥에게 명했다.

“예, 사부님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한립이 굳게 닫힌 동굴 대문을 향해 소매를 펄럭였다.

쿠르릉.

석문이 천천히 들리고 그가 홀연히 안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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