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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81화 (438/2,000)

# 681

681화. 혈월멱령(血月覓靈)

반 시진 후, 그는 법력을 회복하고 즉시 옥 원반이 변한 달에 법결을 던져 넣었고 핏빛 달은 빛줄기로 변해 먼 곳으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그도 신형이 흐릿해져 푸른 빛줄기로 변해 그 뒤를 쫓았다. 핏빛 빛줄기는 시종일관 일정한 속도를 유지했고 한립은 무표정하게 그 뒤를 따라갔다.

그 결과 장장 반나절을 날아가고 서야 황량한 분지에 이를 수 있었다. 뜨거운 열기의 바람이 휘몰아쳤다.

조금 표정이 달라진 그는 분지의 모든 것이 검고 붉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지의 가장자리는 검은 돌들이 쌓여 있었고 그 중심에 새빨간 용암 호수가 있어 뜨거운 공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핏빛은 용암 호수 뒤를 돌며 웅웅 거렸는데 아래로 내려가고 싶지만 감히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한립이 턱을 쓸다가 용암 호수를 보고 피식 웃었다.

“흥, 잘도 숨겨 놓았구나. 비술이 없었다면 찾지 못했을 수도 있겠어. 허나 이미 찾아냈으니 겨우 용암 따위로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한립이 핏빛 덩어리를 향해 손짓했다.

우웅!

동시에 핏빛이 진동하며 돌아와 얌전히 그의 손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다른 한손에서 보라색 화염이 피어올라 그를 휘감았다.

그는 거대한 보라색 불덩이로 변해 아래로 수직 하강했다.

퐁.

불덩이는 용암 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고 잠시 파문이 일던 용암의 표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이때 한립은 이미 용암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 있었는데 자라극화는 극한의 화염이라 용암에서 분출되는 고온을 손쉽게 막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이백 여 장을 내려가서야 겨우 밑바닥에 도착했고 새까만 암석으로 뒤덮인 땅에 도착했다.

미간을 좁힌 그가 영력을 두 눈에 흘려보내며 명청령안을 발동했다.

주위를 돌아본 그는 수중의 핏빛 옥 원반을 들어올렸다. 옥 원반은 어딘가로 날아가고 싶어 진동하며 당장이라고 그의 손을 떠날 듯했다.

한립은 옥 원반이 가려는 방향으로 차분히 걸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옥 원반의 진동이 멈추고 아래쪽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가 가만히 고개를 숙여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일순 표정이 달라진 한립이 손을 뻗어 눈부신 금빛을 방출했다.

콰쾅!

굉음이 울리자 용암 호수 밑바닥은 금빛 검기로 일고여덟 장의 거대한 균열이 생겨났다. 평범해 보이던 암석 바닥에 즉시 남색 빛이 번지며 용암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막아냈다.

보호 금제가 쳐져 있었던 것이다.

한립은 기쁜 마음에 바로 보호막을 뚫고 내려갔다. 그다지 강력한 금제도 아니어서 자라극화에 닿자마자 금방 한 장 크기의 구멍이 뚫렸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원상태를 회복한 남색 보호막은 다시 용암이 쏟아지는 것을 막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곳은 지하땅굴 속이었는데 울퉁불퉁한 벽이나 지면으로 보아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던 땅굴이었다.

용암이 없어 그가 다시 옥 원반을 놓자 옥 원반이 빙글빙글 돌며 핏빛 달로 변해 땅굴 깊숙한 곳으로 쇄도했다. 무표정한 얼굴의 한립이 천천히 땅굴을 걸어 그 뒤를 따라갔다.

장장 5, 6리를 가서야 땅굴이 위로 향하기 시작했고 백여 장 정도 올라간 후에 출구가 나왔다. 핏빛 달이 주저 없이 그곳으로 빠져나갔다.

그러나 한립은 주위를 경계하며 소매를 털어 삼염선을 꺼내들었다. 부채를 쥐고 홀연히 출구를 빠져나온 그는 주위를 살폈다.

그 안은 어두웠지만 명청령안을 발동해 모든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뜻밖에도 자연적으로 형성된 지하 석굴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동굴 끝에 보이는 또 다른 출구를 쳐다보았다. 핏빛 덩어리도 그쪽을 향해 날아갔으나 출구에서 멈춰 귀를 찌를 듯 낮게 울어댔다.

핑!

갑자기 핏빛 달이 열댓 개의 가느다란 검은 선으로 갈라지며 흩어져 사라졌다. 그것을 본 한립은 놀라기 보다는 희색을 보였다. 성큼성큼 걸어가 살피니 역시 출구 밖으로 더 넓은 동굴이 있었다.

‘흠.’

새까만 안개가 동굴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나 출구에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는 듯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았다. 한립은 명청령안을 이용해 칠흑 같은 검은 안개 중심에 쓰러져 있는 세 여인을 발견했다.

모패령, 류옥, 송 여인이었다.

세 여인은 괴상한 진법 가운데 쓰러져 있었고 진법에서 검은 안개가 쉼 없이 생겨나고 있었다. 한립은 조급히 움직이지 않고 의식으로 동굴 곳곳을 살펴 두 번째 원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한 손으로 허공을 베었다.

촤륵!

금빛이 번뜩이고 무언가가 잘려나가자 농염한 안개가 뿜어져 나와 그를 덮치려 들었다.

그러나 한립의 몸에서 천둥소리가 나며 금빛 뇌전이 먼저 번뜩였다. 검은 기운들은 뇌전에 닿자마자 흩어져 사라졌고 한립은 그대로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파츠츠츳! 파츳!

한동안 요란하게 금빛 뇌전이 튀어대자 검은 안개는 그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런데 안개 속에서 갑자기 열댓 마리의 검은 뱀들이 응결되더니 세차게 꼬리를 흔들며 그에게 달려들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그것을 본 한립은 얼굴을 굳히며 두 소매를 펄럭여 눈부신 금빛을 방출했다. 두 줄기의 금빛 뇌전 교룡이 빠져나가 검은 뱀들을 한 번에 물어뜯어 없애버린 것이다.

파치치칙!

뇌전 교룡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변의 검은 안개를 마구 휘저으며 흩어버렸다. 어렵지 않게 진법 근처에 도착한 한립은 그것이 간단한 환영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보아하니 법력을 구속당하고 있었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세 여인의 수행으로 이 정도 진법에 잡혀 있을 리 없었다. 그가 열손가락을 튕기자 금빛 검기들이 진법으로 날아갔고 진법은 암담해지며 힘을 잃었다.

* * *

멀리 칠령도의 만장 심연 속.

한립이 마수찬을 거둬들였던 곳에 커다란 체구의 검은 그림자가 마기에 둘러싸여 이상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움찔하며 소매를 뒤지더니 남색 구슬을 꺼내들었는데 매끄럽던 표면에 금이 가 있었다.

“어째서 금제가 깨진 것이지?  이렇게 빨리 그곳을 찾아내다니 말도 안 돼. 어차피 만일을 대비한 것이었으니 데려갈 테면 데려 가라지! 이제 이곳에서 오래 머물 수는 없겠구나. 마기 주입을 마치는 대로 다른 곳을 찾아 수련해야겠어.”

그는 두 눈을 감고 더 이상 금제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 한립은 이미 청록색 옥병을 꺼내 단약 세 알을 여인들의 입 안에 넣어주고 곁에서 묵묵히 기다리는 중이었다.

일다경이 지났을 때 송 여인이 먼저 천천히 의식을 차리고 일어났다.

“송 사질, 그간 수행이 꽤나 늘었구나. 내 예상보다 빨리 깨어났으니 말이야.”

그녀가 완전히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그녀가 고개를 들자 한립이 묘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사숙님! 아니, 정말 한 사숙님 맞으신가요?”

“사질이 이렇게 조심성이 있는 줄은 몰랐군. 나도 어렵게 찾아 온 것인데 어찌 가짜처럼 보이는가?”

“정말 한 사숙님이시죠?”

송 여인은 상대가 진짜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여전히 머뭇거렸다. 그러자 한립이 미소 지으며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슈슈슈슉.

그녀의 몸 곳곳에서 열댓 개의 은색 바늘이 뽑혀 나와 한립의 손에 모여들었다. 그러자 송 여인은 법력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기뻐할 때 모패령과 류옥도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들도 곁에 선 한립을 보고 깜짝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송 여인과 달리 모패령은 의식을 금제하는 술법을 통해 즉시 한립을 감지하고는 희색이 만연해 곱게 예를 올렸다.

“너희를 잡아 둔 것이 내가 잃어버린 두 번째 원영이 맞더냐?”

“사부님께서 이미 그 자를 만나신 것입니까?”

“만났다면 너희에게 물어 보았겠느냐.”

류옥이 놀라 반문하자 한립이 손짓해 다른 두 여인의 몸에서도 은색 바늘을 뽑아주며 말했다.

한립의 말에 모패령 등은 아리송할 뿐이었다.

‘만나지도 않으시고 어찌 두 번째 원영의 짓이란 것을 아신 거지? ’

“저희를 잡아 가둔 것은 사부님이 잃어버리신 두 번째 원영이 확실합니다. 게다가 이미 육체를 얻었고 원영 중기에 이르렀습니다.”

류옥이 공손히 대답했다.

“육체라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자세히 이야기 해 보거라.”

이때 두 마리 금빛 뇌전 교룡이 주변의 검은 안개를 없애고 돌아와 그의 몸 안으로 사라졌다. 뇌전으로 형상을 만들어 자유자재로 부리는 신묘한 능력에 세 여인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들도 결단기 수사였기에 환영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그처럼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류옥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상세히 검은 장포 사내의 모습을 설명해 주었다.

‘역시 두 번째 원영이 천살마시를 차지했구나.’

한립은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실은 울적하기 그지없었다. 두 번째 원영은 그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에 이대로 두면 큰 후환이 될 것이다. 이번만 해도 대연보경의 혈월멱령 비술이 아니었다면 모패령 등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류옥이 말을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분부를 내렸다.

“너희 셋은 당장 추마골을 나가 본 종으로 돌아가거라. 두 번째 원영이 스스로 천남으로 돌아왔다니 반드시 회수해야겠지! 나는 중심부를 다시 수색할 것이다.”

“한 사숙님, 그 원영의 수행이 이미 중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다른 분들에게 도움을 청하시는 것이……. 사, 사숙님의 경지가 벌써!”

송 여인은 무의식중에 한립의 수행을 살피고는 경악했다. 그 말을 들은 모패령과 류옥도 의식으로 한립을 훑고는 화들짝 놀랐다.

“공자께서는 이미 대수사가 되신 것입니까!”

모패령의 고운 입술이 다물어 질 줄 몰랐다.

“너희에게 말해주는 것을 잊었구나! 반 년 전에 원영 후기에 이른 것을 축하하는 의식을 열고 정식으로 대장로의 직위를 맡게 되었다. 그러니 두 번째 원영을 상대하는 것은 문제없으니 걱정할 것 없다.”

한립이 담담히 미소 짓자 송 여인 등이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축하의 말을 건넸다. 세 여인은 즉시 예를 올리고 동굴을 빠져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개의 빛줄기가 용암 호수에 솟아올라 허공을 갈랐다.

한립은 일단 동굴 안에서 며칠 기다려볼 요량이었다. 이렇게 은밀하게 숨겨 두었다면 두 번째 원영이 볼 일을 마치고 돌아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만일 나타나지 않는다면 추마골 중심부에 다른 거처가 있든지 아니면 이곳을 떠났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레 후, 아무리 기다려도 지목령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가만히 기다리지 않고 수만 마리의 서금충을 방출해 중심부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결국 두 번째 원영은 찾지 못하고 상고 수사의 유적에 남겨진 고보들만 잔뜩 얻게 되었다.

삼염선과 같은 보물들과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천남에서는 가히 진귀한 보물로 여겨지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한립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상고 수사의 유적에서 두 번째 원영의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유적을 뒤져 고보들을 들고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한립은 그제야 두 번째 원영의 화신이 십중팔구 추마골을 떠났을 거라 판단했다.

이렇게 되면 정말 머리가 아파진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두 번째 원영을 찾을 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 원영은 어떻게든 수행을 늘려 그를 압도하려할 게 뻔했다. 세 여인의 말에 따르면 두 번째 원영은 천살마시를 육체로 얻은 후 현음대법을 주요 공법으로 수련했다고 했다.

현음마기는 극성에 이르면 오랜 시간 고된 수련을 하는 것 외에도 신속히 수행을 끌어올리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사술을 동원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사술은 본래 시전자에게 후환이 많거나 아니면 수행을 오래 유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결국 현음진경에 기재된 마기를 육체에 주입하는 술법을 이용해 단시간에 고비를 뚫고 수행을 크게 증진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물론 이렇게 해도 사악한 비술과 마찬가지로 시전자에게 후환이 상당했다. 몸이 마귀처럼 변해 모습이 기괴해지고 이지를 상실하며 반인반마(半人半魔)의 끔찍한 괴물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원영이라면 상황이 달랐다.

어차피 마화된 시체를 몸으로 삼았고 대연결을 수련할 줄 알았으니 몸이나 정신 어느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두 번째 원영이 초기에서 단시간에 중기의 수행에 이른 것도 벌써 이 방법을 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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