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680화 (437/2,000)

# 680

680화. 다시 추마골로

“송 선자를 만난 곳은 이미 외곽에서는 상당히 안쪽으로 들어간 곳이었습니다.”

거한은 옥간을 받아들자마자 의식을 불어넣고는 잠시 후 다시 한립에게 옥간을 바쳤다. 한립이 손짓하자 옥간이 푸른빛으로 변해 빨려 들어왔고 지도를 확인한 그가 눈썹을 끌어올렸다.

“중심부에 가까운 곳이로군. 수고 많았네! 후 사질, 오 사질 그럼 수사들과 이야기 나누게. 나는 먼저 가봐야겠으니.”

옥간을 회수한 한립이 세 거한에게 미소 짓고는 노인과 유생을 향해 분부했다.

“예, 한 사숙님!”

유생과 노인은 즉시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세 거한도 마찬가지였다. 한립의 몸에서 푸른빛이 크게 번지며 하늘을 가르자 눈 깜짝할 사이에 보이지 않았다.

“후 형! 정말 저 분이 새로 대수사에 오르셨다는 한립 선배님이십니까?”

푸른빛줄기가 끝까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한 번도 입을 떼지 않았던 거한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어왔다.

“저 분이 한 사숙님이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그 분을 이리 만나 뵙게 되다니 세 분의 운이 정말 좋으신 겁니다. 저희 제자들도 한 사숙님 뵙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저만해도 고작 몇 번 뵌 것이 전부고요.”

“맞습니다. 저도 금단을 한지 수십 년 째지만 멀리서 한 번 뵙고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아마 송 사저에 관한 일이 아니었다면 거처 밖으로 나서시지도 않으셨겠지요.”

후 노인이 긴장을 풀고 쓴웃음을 짓자 유생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럼 정말 송 선자 일행이 추마골에서 실종된 것이로군요?  그런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황당무계한 소리라 치부했었습니다.”

“숨길 일도 아니지요. 확실히 문제가 생긴 것이 맞습니다.”

노인이 작게 탄식했다.

“결단기 수사 셋이 들어가 실종되다니, 설마 중심부로 들어간 것일까요?”

“아마 그런 듯합니다. 그나마 중심부 금제 어딘가에 갇혀 있는 것이라면 다행일 텐데요. 한 사숙님께서 직접 나서셨으니 반드시 구해주실 겁니다.”

유생도 걱정스레 말했다.

“이전에 두 분이 하시는 말을 들으니 한 선배님께서 종문 관리에는 나서지 않으시는 것 같던데, 송 선자와 무슨 인연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나이 많은 거한이 들은 소문이 있는지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송 사저가 한 사숙님과 알게 된지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이번에 직접 나서신 이유는 다른 두 명의 동문 사저들 때문이실 겁니다! 류옥 사저는 한 선배님이 직접 거두신 기명 제자이고 모패령 사저는 한 사숙님의 시첩이라더군요. 그 셋이 동시에 실종되었으니 어찌 가만있으시겠습니까.”

‘어쩐지!’

노인이 미소 지으며 설명하자 세 거한도 이제야 알겠다는 얼굴을 했다. 결단기 수사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한립은 벌써 추마골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둔광 속에서 옥간을 든 그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제자와 시첩이 걱정되어 그러는 것이냐?  아니면 수중의 금궐옥서를 헤아릴 수 없어 그러는 것이냐?”

그의 귓가에 작게 천란 성조의 목소리가 울렸다. 슬쩍 소매 속을 쳐다본 한립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들은 십중팔구 추마골 중심부에 있을 것이니 변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당신이 전수해준 은과문으로 금궐옥서를 해석하는 것은 도저히 진전이 없군요. 분명한 것은 부적을 제련하는 술법에 대한 내용이란 것입니다.”

“무슨 그런 당연한 소리를 하느냐. 금궐옥서는 선인들이 수련하는 부적술을 담고 있을 것인데 인계 수사가 금방 헤아린다면 가짜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게다가 그나마도 반쪽뿐이니 더욱 뜻을 파악하기 어렵겠지.”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연구해 보겠습니다.”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고 금궐옥서를 다시 회수했다.

“……이미 은과문도 전수해 줬고 화령사와 파멸법목 제련법도 일러줬으니 이제 내가 화형뇌겁을 치루는 것을 도울 때가 되지 않았느냐?”

“제가 약속한 일이니 어기지는 않을 겁니다. 이번 일이 마무리 되는대로 한적한 곳을 찾아 돕지요.”

잠시 뜸을 들이던 천란 성조가 차분히 물어오자 한립이 흔쾌히 약속했다.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구나.”

천란 성조는 그의 대답이 무척 흡족했던지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반나절 후, 만령산맥 추마골 입구.

귀령문 수사들이 건립한 전송진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먼지가 두껍게 내려앉은 것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에 추마골은 금제와 공간균열이 빽빽이 둘러싸고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후였다.

결단기 이상의 수사라면 충분히 금제가 허술한 부분을 파고들어 추마골로 들어갈 수 있었기에 굳이 입구로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대다수 수사들이 추마골 입구를 이용하는 것은 많은 수사들이 들어간 만큼 안전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먼지가 앉은 전송진 근처에 대여섯 명의 수사들이 서서 무언가를 상의하고 있었다. 복색이 다른 결단기 수사들 중 한 명은 결단 후기 수사였는데 마치 추마골로 들어가기 위해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멀리서 갑자기 파공음이 들리자 재빨리 고개를 들어 주변을 경계했다. 다시 열댓 장 앞의 허공에서 파공음이 들리며 그들을 스쳐 추마골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들 중 푸른 빛줄기 안의 인영을 제대로 본 자는 한 명도 없었다. 결단기 수사들은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어안이 벙벙해했다.

푸른 빛줄기의 주인은 바로 한립이었는데 그는 금해종 거한이 알려준 곳을 향해 두 말 않고 뻗어나갔다. 기억대로라면 그곳은 그와 자령이 귀령문 수사들을 쫓아 추마골 중심부로 들어갔던 입구와 멀지 않았다.

게다가 송 여인과 자령은 친분이 깊으니 그곳에서부터 그녀들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공간균열은 대부분 사라졌기에 그는 겨우 반나절 만에 거대한 빙하 균열이 있는 곳에 이를 수 있었다.

푸른 빛줄기가 하늘을 선회해 그 안으로 들어갔다.

* * *

몇 시진 후, 한립은 드디어 추마골 중심부로 통하는 빙하의 틈을 빠져 나와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멈춰 섰다.

중심부에는 아직도 의식이 제한되어 있어 의식만으로 그녀들을 수색한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한립은 잠시 생각하다 허리춤의 영수대를 건드렸다.

웽웽!

동시에 무수히 많은 서금충들이 주머니에서 쏟아져 나와 금빛 구름을 형성했다. 그는 수결을 맺어 연달아 법결을 던져 넣었고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펑.

금빛 구름이 폭발하며 금빛 꽃잎처럼 흩어져 사방팔방으로 날아갔다. 한립은 의식화천의 술법을 이용해 세 여인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여인들은 겨우 결단기 수행이었으니 중심부 깊이는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수색 범위가 대폭 축소되었다.

수많은 서금충들은 곳곳을 뒤져도 아무런 실마리를 찾지 못하자 그는 그 범위를 백여 리 늘려 수색했다.

“……!”

이렇게 세 여인이 영초를 채집했던 산까지 수색할 무렵 그는 드디어 여인들이 영초를 채집하며 남긴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근처를 뒤지던 서금충의 의식을 통해 이를 알아낸 한립은 반가운 마음에 직접 그곳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상 세 여인이 확실히 추마골 중심부로 들어왔다는 것은 알아냈지만 주변에서 그들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한립은 산 정상에 서서 고민에 빠졌다.

휘익!

잠시 후 그가 휘파람을 길게 불자 주변 수십 리에 있던 서금충들이 분분히 날아들어 영수대 속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바로 다른 저물대를 건드리자 이번에는 12마리의 새하얀 지네들이 나타났다.

수결을 맺고 의식을 움직이자 12마리의 육익상공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모습으로 감추었다. 한립은 그저 가만히 자리를 지켰는데 돌연 표정이 달라지더니 빛줄기로 변해 왔던 길을 돌아 날아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새하얀 지네 한 마리가 빙글빙글 돌며 낮게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뜬 그가 번뜩이며 지네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거무튀튀한 무언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래서 아까는 찾지 못했구나!’

풀숲에 놓여 있는 물건은 새까만 나뭇가지 모양이어서 의식화천의 술법으로 찾지 못했던 것이다. 미간을 좁힌 한립은 손을 뻗어 마른 나뭇가지 같은 것을 빨아들였다. 그런데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던 한립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것은 분명 잘려나간 곤충의 촉수로 발산하는 한기로 보건데 육익상공의 촉수였다. 변해버린 육익상공의 촉수에서 뜻밖에도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현음마기! 이렇게 정순한 현음마기라면 극음 사조 이상이 아닌가!’

잘려나간 촉수를 매만지는 그의 마음에 파도가 일렁였다. 현음마기는 현음대법에서 나온 마공으로 이것을 익힌 이는 그의 손에 목숨을 잃은 극음 사조와 오축뿐이었다.

극음 사조의 나머지 제자들은 전수를 받지 못했고 이렇게 정순한 경지에 이르러 천남까지 왔을리 없었다.

“현음대법의 완전한 구결을 알고 현음마기를 수련했던 적이 있었지…….”

번뜩이는 생각에 한립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지목령영도 천남으로 돌아왔단 말인가!”

그는 잃어버린 두 번째 원영을 신경 쓰고 있었는데 천남으로 돌아와 바로 찾으러 가고 싶었지만 남궁완이 아직 빙벽에 갇혀 있어 또 먼 곳으로 떠나기가 꺼려졌었다.

게다가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 두 번째 원영은 자의식이 생겼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예 잠시 미뤄두고 몇 년 후에 다시 모란 초원을 다녀오려 했는데 두 번째 원영이 먼저 천남으로 돌아와 추마골에 숨어든 모양이었다.

만일 그렇다면 모패령 등의 실종도 그것과 연관되어 있을 테고 아직 큰일이 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쨌든 두 번째 원영은 그와 동일한 기억과 감정을 복제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세월이 흘러 성격이 달라졌다 해도 아무 이유 없이 그들에게 악독한 짓을 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추마골 중심부로 들어와서 희미하게 천살마시에 심어둔 자신의 의식 한 줄기가 감지된 것으로 보아 두 번째 원영이 천살마시를 차지한 것일 터였다.

그는 두 번째 원영의 입장에서 생각하니 모든 것이 이해가 됐다. 그때 나머지 육익상공들이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서금충을 회수하고 육익상공 12마리를 방출한 것은 류옥이 지닌 육익상공의 유충 때문이었다. 그녀의 영충은 어렸지만 육익상공들끼리 서로 감응해 위치를 파악하는데 문제가 없으리라 여겼는데 상대가 두 번째 원영이라면 이미 대비책을 세웠을 것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지네들을 거둔 한립은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보아하니 그들의 행방을 찾아내려면 방법이 이것밖에는 없겠구나. 두 번째 원영을 잃어버린 후에 얻은 비술이니 대비하지 못하고 있을 터.”

낮게 탄식한 그는 별로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의 손이 허리를 스치자 옥으로 만든 하얀 원반과 새빨간 깃발이 저물대를 빠져나와 하얗고 빨간 빛덩이를 이루었다.

그는 푸른 기운을 진법 원반에 불어넣고는 한 손으로 다른 손 팔목을 천천히 그었다. 그러자 푸른빛이 번뜩이며 손목의 상처에서 핏방울들이 흘러나왔다.

그가 입에서 기운을 불어내자 핏방울들이 하얀 원반으로 흡수되었다. 한립이 새빨간 깃발을 가리켰고 돌연 핏빛 안개로 변한 그것은 원반을 휘감았다.

동시에 원반에서도 그의 정혈로 이루어진 핏빛 안개가 새어나와 섞여드니 구분이 가지 않았다.

갑자기 그의 얼굴에서 푸른빛이 번뜩였고 신중한 얼굴로 옥 원반을 가리키자 핏빛이 크게 번지며 핏빛 안개가 모조리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틈에 한립이 낮게 일갈하며 신중한 기색으로 옥 원반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파앗!

그러자 청록색 빛줄기가 손끝에서 뻗어 나가 옥 원반 중심으로 사라져갔고,  핏빛 달도 몸을 부르르 떨며 당장이라도 하늘 높이 치솟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이제 한립은 조금 피로해 보였다.

“대연보경의 혈월멱령(血月覓靈) 비술이 적혀 있는 대로 신통해야 할 것인데……. 그나마 모패령에게 금제를 걸 때 핏방울들을 남겨 놓아 다행이구나. 그렇지 않았다면 이것마저 시도할 수 없었을 테니.”

중얼거리던 그가 단약을 하나 복용하고는 바로 가부좌를 틀고 휴식에 들어갔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