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9
679화. 행적을 쫓다
“이것들은 그렇다 치고 나머지 물건들도 무엇인지 알아보시겠습니까?”
다시 고개를 든 한립이 평온한 얼굴로 다른 물건들을 가리켰다.
“수정돌은 이몽정(離夢晶)으로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환술을 부리는 법기를 제련하는데 쓰인다. 내가 알기로 영계의 천환문(天幻門)이란 곳에서 천금을 주고 이몽정을 사들인다고 했다가 금방 취소했지.
무슨 특수한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리 흔한 물건은 아니다. 그리고 흑백의 요단은 노부도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기운이 무척 특이한 것 같구나. 요수의 모습은 어떠했더냐?”
“요수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
한립은 추마골 호수에서 죽인 짓무른 살점의 살덩이 요수를 떠올리며 자세히 설명했다. 천란 성조는 그것을 듣고 한참 생각하다가 결국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종류의 요수는 나도 처음 들어본다. 아마 변이 요수가 아니겠느냐? 신통이 대단한 것으로 보아 요단도 쓸모가 있을지 모르지.”
“기운을 숨기는데 탁월한 요수였으니 법기를 제련하는데 쓰면 비슷한 효과를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립이 허공을 쥐어 흑백 요단을 빨아들이자 검고 하얀 기운이 선명하게 갈라져 반짝였다.
“풍뢰시 제련이 완전하지 못하니 그 보상으로 화령사와 파멸법목을 어찌 연화해야 하는지 알려주마. 네가 제련을 원하든 원치 않든 이제 노부와는 무관한 일이다!”
천란 성조가 눈을 가늘게 뜨고 한립을 주시했다.
“알겠습니다. 천란 성조의 뜻에 따르지요.”
한립은 고민할 것도 없이 제안을 수락했는데 마치 상대의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태도였다. 이에 천란 성조가 이게 뭔가 싶어 멍하니 있다가 울적한 얼굴로 신형이 흐릿해져 사라졌다.
그가 들고 있던 두 가지 보물이 솥으로 떨어져 내리자 한립이 손을 뻗어 빨아들였다. 거의 동시에 한립의 귓가에 두 가지 물건을 제련하는 방법이 담긴 천란 성조의 전음이 들려왔다.
“……!”
바로 의식을 집중하고 바르게 앉은 그는 묵묵히 제련 구결을 익혔다.
반나절 후, 낙운종의 누각 속에서 축기기 수사들이 저물대 속의 재료들을 쏟아 놓고 점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붉은 빛이 날아들어 천장을 돌더니 남색 장포 수사 위에서 폭발했다. 불덩이 속에서 옥간과 영패가 떨어져 내렸고 남색 장포 수사는 재빨리 그것들을 챙기더니 안색이 급변해 두 손으로 불덩이를 받았다.
잠시 후 불덩이가 사라지고 남색 장포 수사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남색 장포 수사는 그에게 집중된 다른 이들의 시선에 쓴웃음을 지었다.
“대장로님의 전음부입니다. 사흘 내로 옥간에 적힌 재료들을 가져오라 하시는데 아무래도 꽤 희귀한 것들인 것 같습니다. 사형들께서는 지금 맡으신 일들을 미루고 우선적으로 대장로님이 원하시는 재료들을 찾아주셔야겠습니다.”
그의 말에 다른 수사들은 깜짝 놀랐다.
“대장로님의 분부라면 무엇보다 우선해야지. 일단 옥간에 적힌 재료들을 확인해 종 내에 있는 것은 확보해두고 없는 것들은 고검문과 백교원에 있는지도 확인해야 하네.
특히 백교원은 법기 제련으로 유명하니 모아둔 재료들도 상당할 것이야.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흘 내로는 무리일세!”
나이가 많은 회색 장포 노인이 과감히 방책을 제시했다. 이에 남색 장포 수사를 포함한 다른 수사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축기기 수사들은 일을 분담해 법기를 타고 누각을 나섰고 서둘러 도처로 흩어져 재료를 찾기 시작했다.
사흘 후, 남색 장포 수사가 불룩하게 부푼 저물대를 가지고 자모봉으로 왔다. 축기기 제자는 전음부를 보낸 후 저물대를 풀어 두 손으로 바치고 대기했다.
일다경이 지날 무렵 금제로 만들어진 안개가 움직였고 그 안에서 푸른 기운이 나타나 눈 깜짝할 사이에 저물대를 휘감아 돌아갔다.
남색 장포 수사는 화들짝 놀라 안개 속을 향해 인사를 올리고는 다시 법기를 타고 날아갔다.
자모봉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거처 내의 한립은 인간형 꼭두각시를 회수하며 저물대 속의 재료를 확인했다.
“정말 전부 찾아내다니, 수사들이 제법 쓸 만하구나.”
“낙운종 대장로가 시키는 일인데 누군들 최선을 다하지 않겠느냐. 그런데 화령사의 보조 재료까지 가져오게 할 줄은 몰랐구나. 불 속성 공법을 수련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불 속성 영력을 지니지 않아도 화령사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본래 화령사는 보물을 만들어낸 물건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한립이 저물대를 건들자 새빨간 작은 솥이 날아올라 허공에 떴다. 천란 성조는 가만히 불솥을 바라보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립이 미소 지으며 손에 든 저물대를 뒤집자 하얀 빛 속에서 열댓 가지의 크고 작은 옥함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가 불솥을 가리키자 새빨간 솥의 뚜껑이 소리 없이 날아가더니 쿠릉! 하며 화염덩이들이 빠져 나와 순식간에 열댓 마리의 새빨간 불까마귀로 변해 불솥 위를 맴돌았다.
“위력은 평범하지만 확실히 정순한 불 속성 보물이구나. 너를 대신해 화령사를 제련할 만하겠어. 허나 불까마귀들은 네 법력이 아니라 저 솥에서 태어난 것들이라 다루기 어려울 것인데? 화령사의 본 모습을 되찾으려면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작은 실수로도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어.”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인내심 하나는 쓸 만합니다.”
한립은 허허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이어 그가 수결을 맺어 법결을 던져 넣었고 불솥은 회전하며 몇 배로 커졌다. 그제야 그가 소매를 털어내자 투명한 무언가가 날아가 솥 안으로 사라졌다.
쿠쿵!
불솥에서 큰 소리가 울리며 새빨간 화염이 솥의 표면을 뒤덮었다. 투명한 물체는 화염 속에서 보일 듯 말 듯 했는데 불까마귀들이 그것을 쪼아 화염 위로 밀어 붙였다.
그 모습을 본 한립이 신중한 얼굴로 열 손가락을 튕기며 각기 다른 색깔의 법결들을 불까마귀들에게 날렸다. 그러자 불가마귀들이 미친 듯이 투명한 물체에 불길을 뿜어댔다.
그것은 불까마귀의 화염을 흡수라도 하듯이 점점 표면이 붉어지며 형태가 변해갔다.
그리고 한립이 늘어놓은 재료 중 하나를 가리키자 옥함이 열리며 희미한 남색의 꾸덕꾸덕한 물질이 나타났다. 그의 손짓에 따라 꾸덕꾸덕한 물체도 솥 안으로 들어가 즉시 남색의 액체로 녹아 투명한 물체에 흡수되었다.
그것을 확인한 한립이 기뻐하며 법결을 날리는 것을 멈추고 손끝에서 푸른 실을 뽑아냈다. 푸른 실이 화염 속으로 사라지자 불길이 몇 배로 치솟았고 한립의 표정은 더욱 진중해졌다.
* * *
두 달 후, 푸른 빛줄기가 낙운종 주봉으로 날아들었고 빛이 가신 후 대전 입구에 한립이 나타났다.
입구를 지키던 열댓 명의 낙운종 제자들이 한립을 보자마자 황급히 예를 올렸다. 가볍게 손을 저은 한립이 발걸음을 떼자마자 벌써 입구 안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제자들은 기겁하며 그의 모습을 쫓으려 했으나 빛이 몇 번 번뜩이더니 완전히 회랑 안쪽으로 사라졌다. 한립이 대청에 이르렀을 때 실제로 낙운종을 관리하는 려락은 초조한 기색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한 사제, 드디어 나왔구만. 내가 보낸 전음부는 받았겠지?”
“송 사질 등이 추마골에서 실종되었다고요. 모패령과 제 기명 제자까지 연관된 일이니 당연히 와봐야지요.”
“일이 조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네. 그들이 추마골에 간지 벌써 반년 째인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어. 제자들을 보내 알아본 바로는 몇몇 수사들이 그들이 들어가는 것은 보았지만 나온 것을 보지는 못했다고 하네. 아무래도…….”
“아무래도 세 사람이 추마골 중심부로 들어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거나 어딘가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시는 것이군요.”
평온한 기색으로 한립이 그가 하려던 말을 이었다.
“그렇지, 바로 그 말이네! 추마골 중심부가 예나 지금이나 위험하다지만 사제는 대수사인데다 이미 한번 그곳에 가본 적이 있으니 수색을 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겠지?”
“추마골 중심부의 공간균열은 제게 큰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특별히 위험한 곳을 찾아 들어가지 않는다면 큰 문제야 없겠지요. 마침 제련도 마쳤으니 한 번 다녀오겠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한립은 흔쾌히 답했다.
“사제가 다녀와 준다면 가장 좋겠지. 다만 이제 사제는 낙운종의 대장로이니 본 종의 흥망성쇠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안전에 유의해야 하네.”
“려락 형, 안심하십시오. 천남에서 저를 해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저도 조심할 것이고요.”
웃고 있었지만 한립은 불현 듯 추마골에서 잃어버렸던 천살마시를 떠올렸다.
‘세 여인들의 실종과 천살마시가 관계된 것은 아니겠지? ’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한립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고 려락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틀 후, 한립은 금지로 들어가 남궁완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홀로 추마골로 향했다.
* * *
달포 후, 동유국(東裕國) 창주(昌州).
세 개의 빛줄기가 극히 빠른 속도로 날아들어 이름 모를 산에 내려섰다. 그들은 전부 키가 크고 건장했으며 어깨에 각기 다른 색의 작살을 메고 있었다. 다들 용모가 비슷비슷한 것이 마치 형제처럼 보이기도 했다.
작은 산의 정상에는 또 다른 세 명의 수사들이 미리 와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노인과 중년 유생 그리고 미소를 띤 청년이었다.
“후 형,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는 길에 약간 문제가 생겨 늦은 것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오, 두 수사들은 귀 종의 제자들입니까?”
나이가 가장 많은 거한이 호방한 얼굴로 노인을 향해 웃더니 청년과 중년 수사를 훑었다.
이상한 것은 노인과 중년 유생이 얌전히 청년 옆에 서서 거한의 인사를 듣고도 슬쩍 눈인사를 했을 뿐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거한이 흠칫 놀라 의식으로 청년을 훑고는 경악했다.
안개로 감싸인 듯 상대의 수행을 전혀 알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세 거한의 안색이 급변했다.
“너희가 금해종(金海宗)의 조 씨(氏) 형제들이더냐?”
청년이 세 거한을 향해 미소 지었다.
“누구십니까? 후 수사,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조 수사 예를 갖추시오. 이분은 본 종의 대장로님이십니다. 이쪽은 임 사제이고요.”
노인의 말에 거한 셋이 깜짝 놀랐다.
“대장로님이라면! 설마 낙운종의 한 선배님!”
나이 많은 거한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리쳤다.
“그래, 내가 낙운종에서 대장로의 직책을 맡고 있다. 후 사질에게 수사들을 불러 달라 이른 것이 실례는 아니었는지 모르겠구나.”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청년은 바로 동유국으로 날아온 한립이었다.
“실례라뇨, 당치도 않으십니다. 선배님을 직접 뵙게 되다니 저희 형제의 영광입니다!”
거한은 상대가 소문 속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서둘러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 나머지 두 거한들도 당황했으나 뒤따라 허리를 숙였다.
“세 수사들은 낙운종의 제자도 아니니 그리 예를 차릴 것 없네. 다만 후 사질에게 들으니 추마골 안에서 본 종의 여제자들을 보았다던데 사실인가?”
“선배님께서 말씀하시는 제자가 송 선자 일행이라면 확실히 추마골 안에서 본 일이 있습니다.”
“오,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들려주었으면 좋겠네만.”
“그리 하겠습니다. 몇 달 전, 저희 형제는 제련을 위한 재료를 구하러 추마골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외곽에서 빠져 나오던 중, 송 선자를 비롯한 두 여인과 마주쳤습죠.
과거에 몇 번 본 적이 있어 송 선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셋 다 안색이 좋지 않더군요. 무언가를 찾는 눈치였는데 오래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바로 추마골을 나와 그 후로는 본 적이 없습니다.”
거한은 조심스럽게 그때의 상황을 서술했다.
“그들을 만난 위치가 어딘지 기억하는가? 추마골 외곽 지도이니 대략적인 위치를 표시해주게.”
한립이 소매를 털어 미리 준비한 푸른 옥간을 거한에게 날려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