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677화 (434/2,000)

# 677

677화. 천남을 뒤흔들다

당시 대수사 중 한명의 공격에 중상을 입어 흩어졌어야 했는데 하필 한립이 전수한 현음마기를 수련해 귀라번 속 심연의 마기를 흡수하고 목숨을 부지한 것이다.

한립과 그의 거리가 너무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의식을 되찾는 즉시 바로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한립도 중상을 입고 얼음으로 봉인돼 대진을 떠다니던 때라 두 번째 원영이 기운을 회복하고도 한립의 행방을 찾기 못하고 초원을 떠돌게 된 것이다.

2, 30년 후 약간의 이지를 갖게 된 그는 은밀히 추마골로 돌아가 중심부에서 천살마시를 찾아냈다. 고마의 공격에 원기가 크게 상했지만 시소의 육체로 만들어졌기에 천천히 원래 상태를 회복하고 있었다.

천살마시도 몇 백 년이 지나면 스스로 이지를 되찾을 터인데 한립의 두 번째 원영이 먼저 그를 찾아내 금제를 걸고 몸을 차지해 버렸다. 그렇게 두 번째 원영은 다른 수사의 몸을 빼앗지 않고 추마골에 머물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원영은 고마의 육체가 숨겨져 있던 공간균열 틈에서 흘러나오는 마기와 천살마시의 수행 그리고 귀라번의 도움으로 겨우 수십 년 만에 현음마기를 대부분 익혀내고 원영 중기의 수행에 이르렀다.

그는 추마골을 돌며 몇 가지 보물을 찾아 나가려다가 우연히 세 여인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현음마기를 수련한데다 정순한 마기를 주입해 마성이 강해진 그는 한립의 성격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원래는 단숨에 잡아먹고 자신의 행적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을 심산이었는데 한립의 기억이 살아나 주저하게 되었고 결국 그들을 생포해 금제를 걸어 가둔 것이다.

“언제까지 저희를 가두어 두실 작정입니까?”

모패령이 용기를 내 물었다. 그녀가 단번에 두 번째 원영을 알아본 것은 은월이 그녀에게 단약을 전달 할 때 이름 모를 옥패 하나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옥패에는 기령의 신분으로 숨기고 있던 두 번째 원영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은월은 만일에 대비해 두 번째 원영이 통제를 잃을 것을 염려해 그녀가 옥패를 지니게 한 것이다. 검은 장포 사내는 모패령의 질문에 냉랭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이 세상에 한립이 단 한 명이 될 때까지다.”

“사숙님의 신통과 수련 속도를 아시면서 희망이 있다고 보십니까?”

송 여인이 겨우 안정을 되찾고 차분히 물었다.

“지금 내 상태로는 상대가 되지 않겠지만 달아날 자신은 있다. 게다가 너희가 내 손에 있으니 그 자도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하겠지. 내가 어찌 그 자를 손에 넣을 지는 너희가 걱정할 것 없다.”

“그럼 당신은…….”

류옥이 눈을 굴리며 무언가 말하려는데 사내가 말을 끊었다.

“무슨 생각인지 아니 다들 조용히 있거라. 너희는 내가 그 자를 먹어 치우든지, 아니면 그 자가 내 의식을 지워 다시 두 번째 원영으로 만들던지 해야 이곳을 빠져 나갈 수 있다. 그러니 일단 한 숨 자는 것도 괜찮겠지!”

그가 수결을 맺어 주술을 외자 세 여인이 앉아 있던 바닥에서 영기의 빛이 번뜩이며 대량의 검은 기운이 치솟았다. 그들은 뜻밖에도 대형 진법 중앙에 있었는데 검은 기운이 여인들을 뒤덮자 그들은 다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검은 장포의 사내는 주술을 멈추고 검은 기운을 보며 복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 * *

한 달 후, 천남 제일의 정도 문파 태진문의 현무대전에서 백발의 수염과 머리를 늘어트린 노인이 하얀 옥간을 쥐고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잠시 후 길게 한숨을 쉬더니 그가 바깥을 향해 외쳤다.

“누구 없느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명의 중년 수사들이 들어왔다.

“예, 분부가 있으십니까!”

“초청장을 금하곡(金霞谷)에 전달하고 오거라. 계국에서 네 번째 대수사가 나왔다는 낙운종의 초청장이라 말씀드리고, 태상 장로께서 직접 다녀올 것인지 아니면 사조들 중 누가 다녀오실지 여쭙거라.”

“예! 반드시 직접 사조님께 전달하겠습니다.”

노인이 신중히 옥간을 건네자 두 수사도 안색이 달라져 대답했다. 그들은 당장 옥간을 들고 대전을 떠나 뒤쪽 산으로 날아갔다.

* * *

천양담(天陽潭)은 합환종 내부의 유명한 금지였다. 면적은 넓지 않아 수백 장 정도였지만 연중 짙은 회색 안개가 덮여 있어 원영기 장로조차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했다.

평소에는 천양담 주변 이십 리 내로는 돌아다니는 수사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대여섯 명의 수사들이 다양한 복장을 하고 열댓 장 밖에 서 있었다.

“네 번째 대수사가 되었다니, 한 가 녀석의 수련 속도가 너무 빠르구나! 조만간 그리 되리라고는 생각했지만 겨우 백 년만이라니……. 허나 이미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내 직접 다녀와야겠다.”

안개 밖의 수사들은 숙연히 손을 모으고 서있었다.

* * *

칠령도의 어느 섬. 평범한 외모의 푸른 장삼 노인이 절벽 끝에 서서 뒷짐을 지고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차분했다. 뒷짐 진 그의 손에서 하얀 옥간이 반짝이고 있었다.

* * *

북량국(北涼國) 영롱산(玲瓏山)의 어느 누각 안.

반듯한 외양의 사내와 뚱뚱한 노인이 나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노인이 조심스럽게 사내를 향해 물었다.

“저……. 오 선배님, 이번 낙운종의 의식에 직접 가실 생각이십니까?  그 분이 그렇게 어린 나이에 원영 후기에 이르렀으니 앞으로 천남을 7, 8백 년은 호령할 것 아닙니까. 아무래도 옛정에 기대 좋은 관계를 쌓아 두는 것이 저희 여섯 종파의 앞날을 위해 좋을 듯합니다.”

“뇌 사질, 다시 한 번 한 수사를 포섭할 생각이던가?”

“오해십니다. 지금 그 분의 신분에 겨우 황풍곡 같은 작은 종파로 돌아오실 리 없지요. 그래도 본 문과 귀 궁은 그 분과 인연이 깊은 편이니 미리미리 교분을 쌓아 두는 것이 육파의 미래를 위해 좋지 않겠습니까.”

“그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 해도 내게 큰 기대는 하지 말게. 남궁 사매와 잘 지낸 편이긴 하지만 그 자를 따라 떠난 후 연락을 주고받은 적은 없으니까. 허나 내가 엄월종을 대표해 의식에 참관하는 것이 가장 마땅하겠지.”

“오 선배님이 직접 가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뚱뚱한 노인이 원하던 답을 듣고 희색을 보였다.

“하긴 황풍곡이 그 자의 거동에 민감할 만 하구나. 령호 수사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원영기 수사가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야! 령호 수사가 생전에 그 자에게 도움을 청하고 이를 다른 다섯 종파에 알리지 않았다면 벌써 황풍곡은 북량국에서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

“맞는 말씀이십니다.”

사내는 뚱보 노인을 힐끗 보며 미소 지었다.

* * *

두 달 사이 천남 전역이 떠들썩해졌다.

천남 수도계에서 제법 규모가 있다는 종문들은 전부 낙운종의 초청장을 받았는데, 원영 후기 대수사가 나와 성대한 축하 의식을 치를 것이니 참석하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작은 종문들은 황공하다는 태도로 반드시 참석하겠다고 알려왔고, 규모가 있는 종문들은 속으로는 철렁했지만 차분히 장로 이상을 참가시키겠다고 대답했다.

다시 한 번 한립의 이름이 천남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 은거하는 산수부터 영맥이 있는 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수도가문의 수사들까지 한립의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

다들 어린 나이에 원영 후기에 이른 천남의 네 번째 대수사에 대해 아주 흥미가 많았던 것이다. 이렇게 세 달이 지나고 낙운종은 의식을 개최했다.

도착한 원영기 수사만 백 명을 넘었고 그들이 대동한 결단기 수사까지 합치면 그 몇 배가 되었다.

한립은 의식 첫날 잠깐 얼굴을 비추고 몇 마디를 한 후 원영 중기 이상의 수사 열댓 명 만을 따로 대전에 모았다. 그들 중에는 놀랍게도 합환 노마와 화의문 위무애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흘 밤낮이 지나고 다시 대전 밖으로 나온 원영기 노괴들은 하나같이 안색이 창백하고 어렴풋이 겁에 질려 있었다. 위무애와 합환 노마도 낯빛이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몇몇 수사들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지만 다들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의식은 보름 정도 진행되었지만 한립은 그 후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수행이 가장 높은 열댓 명의 수사들이 그것에 대해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의식이 끝나는 날까지 머물다 즉시 낙운종을 떠났다. 이렇게 되니 대전 안에서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욱 궁금해 했다.

그 자리에서는 다들 입을 다물었지만 몇몇 친한 벗들과 가까운 수족들에게는 이야기 했던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부 내용이 퍼져 나갔고 소문을 들은 천남 수도계는 다시 한 번 뒤집혔다.

대전 안에서 낙운종의 네 번째 대수사는 먼저 위무애와 합환 노마에게 실력을 겨루어 볼 것을 제안했다.

그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원영 후기에 이른 것을 축하하는 자리이니 대수사들끼리 교류도 하고 그 사이에 중기 수사들 앞에서 위세를 세우려는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립은 일대일 대련이 아니라 위무애와 합한 노마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하겠다는 것이어서 그곳에 있던 수사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위무애와 합환 노마도 무슨 생각인지 조금 고민하다 제안을 수락했고 그 결과에 나머지 노괴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립이 홀로 기상천외한 신통 몇 가지를 연달아 사용해 두 명의 대수사를 참패시킨 것이다.

천남을 수백 년간 호령했던 위무애와 합환 노마가 협공했는데도 한립의 적수가 되지 못했고 작은 부상을 입은 채 대결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노괴들이 더욱 놀란 것은 시종일관 태평하던 한립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다들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한립의 주도로 원영기 노괴들은 수련 상의 깨달음을 교환하는 자리를 가졌는데 다들 입으로는 떠들면서도 속으로는 가시 방석에 앉은 듯 불편해 했다.

이런 엄청난 소문이 퍼져나가자 대부분은 믿지 않았지만 아무리 이런 이야기가 떠돌아도 의식에 참석했던 열댓 명의 노괴들은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러자 몇몇은 사실일 거라고 생각했고 한립을 거론하는 일조차 조심스러워했다.

곧 그가 천남 제일 수사라는 수식어가 조용히 퍼져나갔다.

* * *

칠령도 인근의 바다 위에 중년 도사가 푸른 장삼을 입은 노인과 유유히 떠 있었다. 노인은 한참동안 생각하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지양 형께서 직접 찾아오시다니 무슨 일이십니까?  할 말이 있으면 하시지요.”

푸른 장삼 노인은 삼대수사 중 하나인 위무애였다.

“위 형은 아시면서 그럽니다. 지금 나눌 이야기가 그 일 말고 또 있겠습니까?”

“보아하니 지양 형도 소문을 들은 것이로군요!”

위무애가 한쪽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조소했다.

“소문이 어느 정도 사실이었나 봅니다. 위 형과 합환 노마가 정말 그 자에게 밀릴 뻔한 것입니까?”

“어디 그 정도겠습니까.”

위무애가 눈을 가늘게 뜨고 지양 상인을 응시했다.

“설마 둘이 협공을 하고도 그 녀석 하나를 어쩌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이냔 말입니다.”

“노부를 너무 높게 쳐주십니다. 둘이 함께 덤볐지만 잠시 버티다 결국 원기를 상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아무리 신통이 대단해도 그렇지 방금 후기에 이르렀는데 대수사 두 명도 적수가 되지 않다니요.”

지양 상인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막 후기에 이른 수사에게 진 것이 무슨 좋은 일이라고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게다가 그 날도 전력을 다하지 않아 상대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그의 실력이면 원영 후기 수사도 충분히 죽일 수 있습니다.”

위무애는 그 날을 떠올리며 안색이 달라졌다. 그 말에 지양 상인은 그저 멍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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