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6
676화. 납치
추마골 외곽에서 세 여인은 초초한 기색으로 동굴에서 빠져나왔다.
“환령초가 자랄 만한 곳은 전부 다 다녔는데 아직 아무 것도 찾지 못했네요. 외곽의 환령초는 누군가 전부 쓸어 간 것일까요?”
류옥이 걸음을 멈추더니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외곽에 없다면 중심부로 들어가면 금방 찾을 수 있을 지도 몰라.”
“추마골 중심부는 안 됩니다. 우리 수행으로 들어갔다가는 십중팔구 죽을 거라고요.”
송 여인의 말에 대번에 모패령의 안색이 변했다.
“그건 알 수 없지. 예전에 한 사숙님의 오랜 벗에게 중심부를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는 지도를 받았어. 그 경로를 따라 가면 공간균열을 마주칠 가능성은 아주 적어!”
“한 사숙님의 벗이라면? 설마…….”
모패령은 말을 잊지 않았다.
“맞아, 모 사매에게도 한 번 말했었지. 자령 수사가 준 거야. 그녀는 예전에 사숙과 함께 추마골에 들어갔었으니까 안전한 길을 알게 된 거지.”
“자령 소저라면 수십 년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어.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해도 믿을 만큼 엄청난 미인이더라.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가슴이 떨릴 정도였지.
듣기로는 신분이 높은 사내들이 매달리고 싸움까지 벌어졌다고 하던데. 심지어 그녀를 천남 수도계의 제일 미녀라고 부른대. 허나 자령 소저는 배경을 알 수 없고 사부님과도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으니 조심해야겠어. 그렇지? 모 사매!”
류옥이 웃음을 흘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제가 조심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류 사매, 모 사매 좀 그만 놀려. 이제 둘은 어떻게 할 거야?”
송 여인이 표정을 가다듬고 물었다. 모패령과 류옥도 바로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송 사저, 자령 소저가 남긴 지도가 정말 이전에 사부님이 다녔던 길이 표시되어 있는 건가요? 그렇다면 시도해보지 못할 이유가 없겠죠. 어쨌든 환령초는 수련 고비를 뚫는데 꼭 필요하니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중심부에서 영초를 찾을 수만 있다면 저도 가야겠죠.”
모패령도 불안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중심부는 수백 리 정도만 들어가고 그래도 환령초가 없으면 바로 돌아 나올 거야. 아무리 단약이 중해도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으니까. 절대 더 들어가서는 안 돼!”
송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당부했다.
“그야 당연하죠. 아무리 길을 안다고 해도 우리 같은 결단기 수사는 늘 조심해야죠. 중심부의 몇몇 상고 요수들은 원영기 수사들도 마주치면 달아나기 바쁘잖아요.”
“그런 상고 요수들은 보통 중심부 깊은 곳에 서식하니까, 입구 주변은 괜찮을 거예요. 시간이 얼마 없으니 바로 출발해요.”
류옥의 걱정에 모패령이 과감히 말했다.
그들은 추마골 안에서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었기에 곧바로 몸을 날려 날아갔다. 그리고 닷새 후, 중심부의 얼음으로 뒤덮인 지역에서 세 여인이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을 뚫고 지나갔다.
그들 뒤로 거대한 빙하의 균열이 보였는데 바로 한립과 자령이 귀령문 수사들을 쫓아 중심부로 들어갔던 통로였다. 세 여인은 보호막을 두껍게 펼쳐 차가운 바람을 이겨냈다.
얼음 지대는 그다지 넓지 않아 다행히 반나절 만에 벗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녹음이 푸르른 산봉우리가 나타났다. 희색이 만연한 여인들은 흩어져 산을 중심으로 영초를 찾기 시작했다.
하루가 꼬박 지나고 세 여인이 산 정상에서 모였을 때는 서로 쳐다보며 쓴웃음을 짓기 바빴다.
“외곽에서 보지 못했던 영초들은 많지만 아쉽게도 환령초는 찾을 수가 없었어요.”
류옥이 의기소침해 하며 입을 열었다.
“저도 그래요. 환령초는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다른 단약에 필요한 재료를 얻어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않게 되었네요.”
“우리가 환령초와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야. 그럼 바로 돌아가자!”
“한 번만 더 샅샅이 뒤져 볼까요? 빠트린 곳이 있을 지도 모르잖아요.”
송 여인의 탄식에 류옥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지 조금 더 머물 것을 제안했다.
“아냐. 원래부터 운이 따라 줘야 하는 일이었어. 게다가 중심부는 너무 위험해서 아무리 입구 근처라도 오래 머무는 것은 좋지 않아.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빨리 이곳을 떠나자!”
송 여인이 고개를 저으며 주저 없이 결론을 내렸다. 류옥이 그래도 아쉬워 무어라 하려는데 멀리서 천둥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쿠르릉 꽈광!
저 멀리 하늘에 음산한 구름이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불어난 음산한 구름은 거세게 요동치며 천둥소리를 내었다.
“상고 요수인가!”
그 모습을 보고 위험을 감지한 세 여인은 재빨리 바닥을 박차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에 검은 구름도 세 여인을 발견했는지 이전보다 더 빨리 그들을 추격했다.
“상고 요수가 아니라 마도 수사 같아요!”
류옥이 검은 기운을 살피더니 안색이 달라져 모두에게 알렸다.
“수사이든 요수든 좋은 뜻으로 쫓을 리 없으니 잡혀선 안 돼!”
송 여인이 검은 구름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저물대를 스쳐 하얀 구슬을 손에 들었다. 그녀가 주술을 외자 구슬이 빛나며 하얀 안개가 세 여인을 감싸 안았다.
그러자 하얀 구름처럼 변한 기운이 유성처럼 하늘을 가르며 날아갔는데 뜻밖에도 뒤따르는 검은 구름 속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까짓 어린애 장난을 내 앞에서 펼치다니!”
음산한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갑자기 검은 손이 나타나 폭발적인 힘으로 그들과의 거리를 반으로 좁혔다.
“원영기 마수가 따라 붙었으니 이제 어찌 해야 하지!”
“제가 영충을 풀어 볼게요! 상대를 막을 수는 없어도 이것들이 잠시 시간은 끌어 줄 거예요.”
송 여인의 다급한 목소리에 류옥이 서둘러 답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고여덟 개의 하얀 한기에 휩싸인 지네들이 구름을 빠져나왔다.
“육익상공! 누군가 했더니 류옥이었구나! 허나 감히 이런 걸로 나를 상대하려 들어?”
검은 구름은 지네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오히려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곤 갑자기 새까만 실들이 검은 구름을 뚫고 나와 지네들을 꿰뚫었고 놀랍게도 육익상공들은 반항도 하지 못하고 펑! 터지며 검은 화염에 휩싸였다.
순식간에 영충들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 어떤 괴이한 공법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육익상공들은 검은 화염을 전혀 막아내지 못했다. 그것을 본 여인들은 혼비백산했고 특히 류옥은 가슴이 철렁했다.
‘누군데 육익상공과 나를 단번에 알아본 거지?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
검은 빛은 세 여인이 대책을 강구하기도 전에 쾌속으로 다가와 하얀 구름을 따라잡았다. 빛이 가시자 나타난 검은 거대 손은 주저 하지 않고 그들을 낚아채려 하자 세 줄기의 검빛이 하얀 구름을 빠져 나왔다.
거대 손은 검은 빛을 번뜩이며 보물들을 전부 잡아챘고 다시 손을 펼쳤을 때는 괴이하게도 보물들이 사라진 후였다.
하얀 구름 속에 여인들은 찰나의 순간에 폭발을 일으켜 새 개의 빛줄기로 변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갔다. 그런데 그들이 흩어져 달아나자마자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검은 거대 손에서 홀연히 검은 기운이 흘러나와 세 방향으로 밀려든 것이다. 순식간에 세 여인은 검은 기운의 거대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그들은 너무 놀라 필사적으로 달아나려고 했지만 누군가의 코웃음 소리만이 귓가를 파고들었고 검은 기운이 그들을 휘감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잠시 후 검은 거대 손은 의식을 잃은 그녀들을 이끌고 그를 쫓아온 수사에게 데리고 갔다. 그는 전신이 새까맣고 두 눈은 녹색으로 형형하게 빛나는 기이한 인물이었다.
“이들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잘 만하면 큰 도움이 되겠어. 이 여인들을 위해 목숨을 걸지는 않겠지만 협박은 할 수 있겠지.”
검은 기운 속의 목소리는 세 여인을 보며 서늘한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들 중 가장 수행이 높은 송 여인이 먼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반짝이는 종유석 기둥을 보며 몸을 일으킨 그녀는 수결을 맺어 보호막을 펼치려 했다.
“읏!”
그러나 송 여인은 곧바로 전신에 힘이 빠져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금제를 걸어 두었으니 함부로 영력을 쓸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게다.”
태연자약한 목소리가 들려와 송 여인의 시선을 끌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동굴 한쪽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체내의 법력을 전혀 응결할 수 없자 두려움에 떨었다.
“누구신데 저희를 이리 가둔 것입니까!”
송 여인은 누워 있는 모패령과 류옥을 보며 소리쳤다.
“송 사질, 얌전히만 있으면 예전의 정을 보아 한동안은 너희를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달아나려 한다면 쓴 맛을 보게 될 것이야.”
“송 사질이라니 저는 당신을 사문 어르신으로 모신 적이 없습니다. 혹여 잘못 보신 것은 아니신지요?”
송 여인이 흠칫 놀라 반문했다.
“나를 몰라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허나 내가 너를 알면 그만 아니겠느냐. 그래, 자령은 어찌 지내더냐?”
“자령을 아십니까? 도대체 누구십니까!”
“그렇게 내 정체를 알고 싶으냐? 그렇다면 알려줘야겠지.”
검은 인영은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곤 어둠 속에서 얼굴을 드러냈다. 까만 장포에 해골 같은 머리와 입 밖으로 빠져 나온 송곳니가 무척 기괴했다. 게다가 팔뚝은 금이나 은으로 주조한 것 마냥 반짝여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누구십니까? 저는 만나 뵌 일이 없는데요.”
송 여인은 상대의 흉악한 외모에 잠시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그런가? 하긴 이 모습을 보고 알아보기는 어렵겠지.”
검은 장포의 사내는 화내는 기색 없이 돌연 송 여인을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눈을 마주친 송 여인은 무언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자 곧바로 누군가를 떠올렸다.
“다, 당신은……. 말도 안 돼!”
“드디어 알아보다니. 허나 놀랄 것 없다. 아직 나는 사람이 아니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곧 그가 될 것이다.”
검은 장포 사내가 낮게 키득거리며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 가부좌를 하고 더는 송 여인을 상대해주지 않았다.
여인의 얼굴이 혼란스러움을 가득 찼다.
‘설마 한 사숙님? 큰일을 당하셔서 저렇게 되셨나? 아니야, 원영 중기시지만 후기 수사에게도 밀리지 않는 분인데 큰일을 당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육체가 손상되었으면 낙운종에 돌아와 요양을 하면 될 일이지 추마골에는 왜? 우리를 이렇게 대할 이유도 없고…….’
송 여인은 고요히 사내를 주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너희도 깨어났으면 굳이 기절한 척 할 필요 없다.”
검은 장포 사내가 눈을 번쩍 뜨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송 여인이 움찔해 기쁜 마음으로 돌아보는데 모패령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공자님이 아닙니다. 공자의 두 번째 원영일 뿐이지요! 어떻게 공자님의 통제를 벗어나 의식을 장악한 것이지요? 공자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여인의 목소리에 걱정과 의심 그리고 당황스러움이 가득 묻어났다.
“모 사매, 무슨 말이야? 저 분이 사부님이 제련하신 화신이란 말이야?”
송 여인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몸을 일으켜 앉은 류옥도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도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희귀한 비술을 수련해 두 번째 원영을 응결하셨다는 것과 그것이 굉장히 위험하고 통제를 잃으면 상대에게 반서를 당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요.”
모패령은 검은 그림자를 주시하며 표정이 좋지 못했다.
“본 존의 정체를 알아보다니 놀랍구나? 아, 생각났다. 은월 그 녀석이 입을 놀렸구나. 확실히 나는 그 자의 두 번째 원영이었지. 허나 그 자의 원신을 잡아먹고 나면 내가 곧 그가 될 것이다. 이곳은 추마골 중심부에 은밀히 숨겨진 곳이라 그 자가 직접 온다 해도 너희를 찾아내지는 못할 것이야.”
검은 장포 사내가 숨기지 않고 가볍게 인정했다. 그는 놀랍게도 한립이 돌올인 대수사들과 싸우며 잃어버린 지목령영이 변한 두 번째 원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