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2
672화. 질문
“맹 형의 생각대로 합시다.”
중년 수사가 그의 말에 찬성했다. 그때 일행 중 손이 빠른 수사가 죽은 노인의 저물대를 챙기고 불덩이를 날려 재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상고 전송진이 웅웅 울어대며 빛을 뿜었다. 상상도 못한 일에 맹 거한과 중년인 등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분명 버려진 전송진이라고 했는데? ’
“어서 전송진을 없애라! 전송되는 것이 누구든 거사 직전에 문제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중년인이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이에 수사들은 각양각색의 무기를 날려 전송진을 없애려 했다.
퍼펑! 티티팅!
그러나 상고 전송진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하얀빛이 법기들을 전부 튕겨냈다. 그들은 가슴이 철렁했다.
상고 전송진은 발동하기 전에는 쉽게 훼손할 수 있지만 발동되면 강력한 영기의 보호막이 생겨 함부로 훼손하기 힘들다. 특히 결단도 하지 못한 그들에게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수사들의 눈빛을 받으며 사내와 여인의 모습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그들은 전송 후유증으로 몸을 비틀거리며 어지러워했다.
중년인은 젊은 사내와 열댓 살의 소녀를 보고 의식으로 먼저 소녀를 훑었다. 소녀가 연기기라는 것을 안 그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지만 청년이 정신을 차리려하자 마음이 급해져 소리쳤다.
“쳐라! 전부죽여!”
어린 연기기 여인과 같이 다니는 젊은 사내라면 뻔하지 않겠는가? 기껏해야 축기기 정도일 테니 전송 후유증으로 정신을 못 차릴 때 없애는 것이 나았다.
“잠깐! 모두 기다리시오!”
맹 씨 거한이 청년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당황해 소리쳤다. 그러나 마염문 수사들은 중년 수사를 우두머리로 여기고 임무를 나왔기에 그의 말은 모른 척했다.
네다섯 개의 법기들이 반짝이며 날아가 전송진을 뒤덮으려는데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가 정녕 죽고 싶으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꽝!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눈부신 푸른빛이 터져 나왔다. 마치 동굴 안에 푸른 태양이 뜬 것처럼 법기들은 산산 조각나 버렸다.
그리고 중년 수사를 포함해 공격에 가담한 이들은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오직 맹 씨 거한만이 멀쩡하게 서서는 전송진 속의 청년이 무슨 오해라도 할까 싶어 꼼짝 않고 가만히 있었다.
“나를 아느냐?”
전송진 안에서 청년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서늘하게 거한을 바라보았다. 그 뒤로는 소녀가 예의 바르게 그를 따라 나왔다.
청년은 당연히 한 달 전에 난성해에 있는 전송진을 수리해 천남으로 돌아온 한립이었다. 그리고 그 뒤의 소녀는 진법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전금아였다.
“어릴 적 가문 어른을 따라 모란인들과의 전투에 참전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선배님의 신위를 보고 용모를 가슴 깊이 새겨 두었습니다.”
“모란인들과의 전투라, 그것이 언제 적 일인데 단번에 나를 기억 해내다니 운이 좋구나. 그런데 너는 귀령문 제자인 듯한데 이 자들은 너와 동문이더냐?”
“저는 귀령문 제자이오나 이들은 마염문 수사들입니다.”
주저하던 그가 상대의 서늘한 눈빛에 기민하게 답했다.
“마염문? 영특하구나, 동문이라고 답했다면 너를 당장 죽였을 것인데……. 됐다. 네가 귀령문 제자인 것도 상관없고 마염문이 어째서 이곳에 나타났는지도 궁금하지 않다. 그저 묻고 싶은 것이 있으니 성실히 대답하거라.”
한립이 굳어 있는 그를 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
“제, 제가 아는 것이라면 최선을 다해 답하겠습니다.”
맹 씨 거한이 말을 더듬으며 빠르게 답했다.
“내가 오랜 시간 천남을 떠나있다 보니 그간의 사정에 대해 알고 싶구나. 천남 수도계에서 최근 백 년간 벌어진 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말해 보거라.”
“예,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80년 전에도 큰일이 있었지요. 천로국(天盧國)의 현묘문(玄秒門)이 하루 만에 화령종(火靈宗)에 멸문을 당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거한은 장장 한 시간 동안 백여 년 내의 굵직한 사건들을 전부 읊고는 긴장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낙운종은 지금 어떠하더냐? 낙운종을 주관하는 이는 아직 정 장로님이 맞느냐?”
“낙운종은 이곳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금 종문을 관리하는 분은 려 씨 성의 선배님이라고만 들은 바 있습니다.
한립의 물음에 거한이 기억을 더듬으며 답했다.
“그렇다면 정 사형은 이미 세상을 뜬 것이로구나.”
한립은 혼잣말을 하며 동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맹 씨 거한은 그런 한립을 보고 불안해하며 공손히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푸른 기운이 거한의 머리를 휘감더니 눈앞이 까맣게 변해 정신을 잃었다.
한립은 바닥에 쓰러진 거한을 내려다보곤 뒤쪽으로 손가락을 튕겨 금빛 검기들을 쏘아 보냈다.
콰쾅!
굉음이 들리고 전송진이 함몰되어 커다란 구덩이만 남게 되었다. 난성해의 전송진은 이미 복구해 두었으니 이곳을 남겨 두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누군가 대나이령과 같은 물건을 손에 넣으면 또 난성해에서 천남으로 넘어올게 아닌가? 한립은 다른 이들이 이곳을 이용하게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필요하면 그때 다시 복구하면 그만이었다.
일을 마친 그가 이번에는 거한을 향해 손을 쥐었다. 그는 강력한 힘에 의해 빨려든 거한의 머리를 붙들고 푸른빛을 번뜩이며 비술을 시행했다.
“운이 좋은 줄 알거라. 난 줄곧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싫어했으니 너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내가 전송진에서 빠져나온 사실을 기억하게 둘 수는 없지.”
한립은 순식간에 상대의 기억을 바꿔 낯선 고계 수사가 나타나 그를 제외한 전부를 죽이고 상고 전송진도 훼손한 것으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화신기 수사가 나서지 않는 한 쉽게 금제를 풀고 진짜 기억을 되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립은 불덩이를 던져 마염문 수사들의 시체를 재로 만들고 푸른 기운으로 소녀를 휘감아 올라갔다.
쿠릉!
귀령문 수사들이 복구해 놓은 동굴 천장을 그대로 뚫고 푸른 빛줄기로 변해 지면 위로 솟구치더니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엄청난 소리에 다른 귀령문 수사들이 달려왔고 정신을 잃고 누워있던 맹 씨 거한을 보곤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이렇게 마염문 등 다른 세력의 기습은 어이없이 실패로 끝이 났다.
한립은 바로 계국을 향해 날아갔는데 그 속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며칠 후 월국을 빠져나온 그는 원무국 국경 내로 진입했다. 원무국에 이른지 이틀 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경로를 틀어 전금아를 데리고 다른 방향으로 날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무국의 어느 외진 산봉우리 쪽으로 열댓 장 길이의 눈부신 빛줄기가 날아들었고 빛이 가시자 한립과 전금아가 타나났다.
그는 산봉우리를 훑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의식으로 아래쪽을 훑고는 의아해 했다.
예전 신여음이 기거 하던 산봉우리는 모든 것이 그대로였지만 그녀가 머물던 거처에 너무 많은 수사들의 기운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중 대다수는 연기기와 축기기 수사들이었으나 결단기 수사도 두 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신여음이 펼쳐 놓은 진법 금제는 여전히 존재해서 하얀 안개가 짙게 산을 뒤덮고 있었다.
“사부님,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아니다. 그저 시간이 흘렀다고 이곳에 불청객들이 이리 많아졌을 줄은 몰랐구나.”
한립은 차분히 답했지만 전금아는 그가 불쾌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눈치 있게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한립이 고개를 돌려 소녀를 보고는 예상 밖의 질문을 했다.
“네가 보기에 이 산이 어떠하냐?”
“산이요? 영기가 짙지는 않지만 경치는 좋은 것 같습니다.”
전금아는 영문을 몰랐지만 자세히 산세를 훑으며 신중히 답했다.
“그러하더냐. 이곳은 내가 예전에 알던 벗의 거처였다.”
약간 실망하는 기색이 스쳤지만 그는 얼른 평소대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손을 뻗었다.
화륵!
그의 손바닥 위에서 불덩이가 나타나 무럭무럭 자라더니 순식간에 머리통만 하게 커졌다. 한립은 냉랭히 아래쪽을 보더니 손을 휘둘렀고 커다란 불덩이가 유성처럼 안개 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쿠쿵!
안개가 요동치며 붉은 열기가 폭발하더니 금제에 열댓 장 크기의 구멍이 뚫렸고 나머지 안개도 눈 녹듯이 사라졌다. 손짓 한 번에 금제를 없애 버린 것이다.
하얀 안개가 가시자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여러 누각들이 드러났는데 신여음이 머물던 대나무 집은 보이지 않았다.
한립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대놓고 소란을 피우자 아래쪽의 수사들이 깜짝 놀라 허공 위의 한립과 전금아를 올려다봤다. 동시에 열댓 명이 법기 등을 타고 날아오르는데 맑은 목소리가 산 중부에서 들려왔다.
“어느 선배님께서 저희 화령문(化翎門)을 찾아 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미처 몰라 영접하지 못하였으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곧 붉은 빛줄기가 번뜩이며 날아올라 먼저 출발한 축기기 수사들보다 먼저 한립 앞에 다가왔다. 빛이 가신 다음에 나타난 이는 유생 차림의 결단기 중년 수사였다.
그리고 아래쪽의 가장 높은 누각에서도 노란 빛줄기가 솟아올라 도착했는데 새까만 얼굴의 결단기 노인이었다. 축기기 수사들은 한발 늦게 도착해 조용히 유생과 노인 뒤에서 멈춰 그들이 명을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화령문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데 새로 만들어진 곳인가?”
한립이 눈썹을 끌어올리며 말을 하는데 엄청난 영기의 압력이 앞의 두 수사를 향해 날아들었다. 유생과 노인은 안색이 변해 몇 걸음을 연달아 물러나고서야 겨우 중심을 잡았다.
‘원영기 수사!’
“선배님께서는 원영 후기의 대수사십니까?”
새까만 피부의 노인은 의식으로 한립을 훑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리쳤다. 의식이 강한 편이라 그대로 드러난 한립의 수행을 짐작한 것이다.
“원영 후기 수사!”
유생도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이고는 의식으로 상대를 훑었다. 한립은 그저 뒷짐을 쥐고 그 둘을 응시했는데 유생이나 노인이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동시에 깊이 허리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
“선배님을 뵙습니다. 말씀대로 본 문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곳입니다. 시키실 일이 있으시면 최선을 다해 수행하겠습니다.”
노인의 말에 유생도 조심스런 얼굴로 동의했다. 손짓 몇 번에 화령문 정도는 간단히 멸살시킬 수 있는 대수사가 나타났으니 가슴이 떨리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한립은 방금 가볍게 금제를 깨지 않았던가!
뒤쪽의 축기기 수사들도 그들의 사부와 사백들이 갑자기 쩔쩔매자 다들 숨소리도 조심하며 불안해했다.
“종문을 열 정도면 원영기 수사는 있겠지. 너희 사부는 어디에 계시더냐?”
“사부님이신 황약 진인께서는 한 달 전에 벗을 만나러 가셔서 지금은 저희 둘이 종문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노인이 난처한 기색으로 답했다.
“없다면 상관없다. 너희는 이곳에 언제 터를 잡은 것이며 원래 이곳에 살던 이들은 어찌 되었느냐?”
“본 문은 70년 전에 이곳으로 이전하였고 본래 이곳에 살던 이들은…….”
노인은 자기도 모르게 유생을 향해 눈짓했다. 유생도 한립의 질문에 당황하며 바로 무슨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봉지는 나오거라! 선배님께서 긴히 물으실 것이 있으니 어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든 축기기 수사들이 그들 중 한 명을 쳐다보았다. 그는 육십 대의 기품 있어 보이는 노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