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668화 (425/2,000)
  • # 668

    668화. 금화(金花)와 귀구(鬼鳩)

    “수사도 한 몫 챙겨가고 싶으신 겁니까?”

    “난성해에서 유명한 수사들을 전부 만나 본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생겼는지는 대충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사는 전혀 본 적이……. 아니지, 묘하게 낯이 익은 것 같은데…….”

    곰곰이 생각하던 거한은 갑자기 표정이 달라지더니 꽁무니를 빼려 했다.

    “수사께서 이렇게 부탁하시니 그럼 만호자의 보물들은 제가 양보하겠습니다. 우리는 가자!”

    “예?”

    옆에 있던 채여인은 갑작스런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리고 대머리 거한이 금빛으로 곁의 여인까지 휘감아 날아오르려는데 한립이 즉시 팔을 뻗어 푸른 검기로 거한의 머리를 내려치려 했다.

    이에 금화 노조는 달아나지 못하고 금색 방패를 방출해 보호막을 쳤다.

    쾅!

    그러나 금색 방패와 검기가 부딪히며 강렬한 빛을 냈다. 다행히 금색 방패는 망가졌지만 대머리 거한과 여인은 멀쩡했다. 놀랍게도 한립의 일격을 막아낸 것이다.

    “왜 이러십니까?  보물도 양보하겠다는데 공격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입니다.”

    “나를 알아보았는데 이대로 보내줄 것 같습니까?”

    한립은 입 꼬리를 끌어 올리며 냉소했다. 이미 죽이기로 마음먹었기에 그는 저물대를 스쳐 항마장을 날려 보냈다. 마치 작은 산이 떨어져 내리는 듯한 중압감이 느껴졌고 아직 항마장에 닿지도 않았는데 공간이 왜곡되며 웅웅거리는 기이한 소리가 났다.

    한립의 수행이 크게 늘어 곤오삼노의 법보가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항마장 아래의 금화 노조는 기겁했다. 상대의 보물이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거한은 법보 대신 손바닥을 뒤집어 금색 부적을 꺼내 들었다.

    그가 부적을 사이에 두고 손바닥을 비비며 기이한 주술을 읊자 몸이 회전하며 전신에서 대량으로 금빛이 방출되어 아름답게 흩날렸다.

    퍽!

    항마장이 떨어지는 순간, 금빛 기운이 주먹 크기의 꽃잎으로 변해 빼곡히 거한과 여인을 둘러쌌다. 노란빛과 금빛이 기운을 겨루며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리더니 빛이 사라진 뒤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다.

    그리고 금화 노조와 채여인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립이 잠시 멈칫하다 코웃음을 치고는 의식을 도처로 퍼트렸다. 그가 홀연히 한 손으로 뒤쪽을 가르자, 거대한 검기가 허공을 베어나갔다.

    팡!

    금빛 꽃잎들이 표표히 떠서 대머리 거한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꽃잎들이 검기를 막아냈다. 한립은 눈썹을 끌어올리며 자세히 금빛 꽃잎들을 살피고는 흠칫 놀랐다.

    그는 보통의 원영 후기 수사보다 높은 수행을 지니고 있어 대충 쏘아 보낸 청원검기라 해도 상당히 위력적이었다. 그런데 금빛 꽃잎이 겨우 부적의 위력을 빌려 그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이럴 리가,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어찌 안 것입니까?  원영 중기 수사도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을 어찌!”

    금화 노조는 당황했는지 안색이 변해 있었다.

    “지닌 부적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내 손아귀에서 달아나기는 어려울 겁니다.”

    한립은 덤덤히 말하며 멀리 있는 항마장을 향해 손짓 했다. 그러자 보물이 번뜩하며 다시 금화 노조를 덮쳤다. 거한이 이를 악물고 다시 금색 부적을 비비자 금색 꽃잎들이 흩날리며 그가 또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그가 여인을 근처에 던져두고는 흉흉한 눈빛으로 한립을 향해 일갈했다.

    “한 수사, 내가 계속 참으니 머저리로 보이십니까?  겨우 허천정을 지녔다고 노부를 죽일 수 있을 거라 장담하냔 말입니다. 어디 한번 누가 이기나 해봅시다.”

    금화 노조가 허리춤을 스쳐 영수대를 날리더니 그 안에서 한 장 크기의 괴상한 새가 날아올랐다.

    새는 전신이 새까만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청록색 눈과 머리 위의 선홍색 볏이 두드러졌다.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요란한 울음소리를 낸 괴조가 사납게 한립을 노려보았다.

    “귀구(鬼鳩)?  이런 귀물을 다 데리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한립이 혀를 차며 저물대를 스치자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검은 빛이 허공을 돌아 원숭이가 내려앉았다. 바로 새까맣게 윤기가 흐르는 원숭이 요수, 제혼이었다.

    제혼은 큰 코를 벌름거리며 단번에 허공의 귀구를 발견하고는 눈을 반짝였다. 검은 빛을 반짝이며 열댓 장 크기의 거대 원숭이로 변하더니 사납게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하는 소리가 하늘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어서 한립은 소매를 털어 금색 소검을 날렸고 두 줄기의 금빛이 십자를 그리며 날아갔다. 그가 손짓하자 항마장도 금화 노조를 향해 다시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기세등등하던 귀구가 두 날개를 펄럭이며 겁에 질린 얼굴로 금화 노조의 머리 위로 날아가 꼼짝하지 않았다.

    금화 노조는 무거운 마음으로 금색 종을 꺼내 비취색 빛줄기를 뿜어냈다. 빛줄기가 허공을 돌아 옥으로 만든 비취색 갈고리 두 개로 변했는데 그 중 하나가 뜻밖에 거한의 손으로 번뜩이며 날아갔다.

    서걱.

    손가락 두 개가 소리 없이 떨어져 내렸고 상처 부위에서는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거한이 속으로 법결을 발동하자 손가락 두 개가 핏덩이로 바뀌어 머리 위의 귀구에게 날아갔다.

    귀구는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핏덩이를 단숨에 삼켰다.

    몸이 배로 불어난 괴조는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요동쳤고 맑던 청록색 눈은 핏빛으로 물들어갔다. 이제 괴조는 더는 제혼이 두렵지 않은지 날개를 활짝 펴고 검은 기운을 뿜으며 날아들었다.

    또한 두 개의 청록색 옥 갈고리는 금빛 비검들을 향해 날아갔고 금색 종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거대한 항마장을 막아냈다.

    금화 노조는 그제야 안심했으나 한립은 비웃는 기색이 역력했다.

    귀구가 거대 원숭이에게 검은 기운을 뿜어댔지만 제혼이 흥! 하고 콧바람을 불자 노란 기운이 물밀듯이 밀려 올라갔다. 순식간에 노란 기운에 휘말린 귀구는 격렬히 반항하다 결국 제혼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헛!”

    거한은 너무 놀라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귀구가 거대 원숭이의 적수가 아닐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한순간도 버티지 못하고 바로 잡아 먹힐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귀구는 우연히 알게 된 귀수의 비술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이제 막 제련한 것으로, 두 눈에 귀안을 타고나 혼을 빼앗는 비술에 정통한 귀물이었다.

    다른 수사들은 도검으로 귀구를 베려다 입에서 뿜어져 나온 음기에 혼백이 요동쳐 속수무책으로 당하곤 했다. 그런데 그런 귀구가 사라졌으니 금화 노조는 속이 쓰려 미칠 것 같았다.

    그러나 귀구를 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비취색 옥 갈고리가 금빛 검기에 산산조각이나 사라졌다. 이제 금빛 두 줄기는 청량한 소리를 내며 그를 베려고 날아들고 있었다.

    금화 노조가 당황해 다른 보물을 꺼내려는데, 머리 위에서 불경 소리가 들려왔다.

    “……!”

    거한은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노란 빛의 항마장이 갑자기 일곱 빛깔의 불광을 발산하며 엄청난 중압감을 뿜었기 때문이다.

    간신히 버티던 금색 파동이 어그러지며 항마장은 이제 그에게서 서너 장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금화 노조는 고민할 것 없이 다시 금빛 부적을 비벼 또 한 번 금빛 꽃잎을 남기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립도 은빛을 번뜩이며 풍뢰시를 펼쳤다.

    부적의 힘으로 허상의 공간에 들어간 거한은 등 뒤에서 소리 없이 다가온 공격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금빛 꽃잎들을 응결해 겨우 막아냈지만 충격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쾅!

    강제로 원래 있던 공간으로 튕겨 나온 거한은 새빨간 피를 연거푸 토해냈다. 겁에 질린 금화 노조가 고개를 돌리자 열댓 장 밖에서 한립이 나타나 푸른 주먹을 거둬들였다.

    금화 노조는 이제 상대가 원영 중기 이상의 수행을 지녔고 영수나 법보도 모두 엄청난 것들임을 확실히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한립과 싸우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는 금빛 부적을 허공으로 던져 금색 빛줄기로 변해 하늘을 갈랐다.

    이제 채여인을 챙길 틈 따위는 없었다.

    파앗!

    한립이 입 꼬리를 꿈틀하며 쫓아가려했지만 상대가 던진 금빛 부적이 흩어지며 금빛들이 순식간에 천 마리가 넘는 손톱만한 벌들로 변해 그를 덮쳐왔다.

    붕붕붕붕.

    벌들의 날갯짓 소리에 한립은 잠시 멈칫했지만 푸른 기운에 휩싸인 작은 솥을 뱉어냈다. 솥이 빙글 돌며 몇 장 크기로 불어나자 한립이 솥을 내리쳤다.

    텅!

    거대한 솥에 남색 불길이 화륵 타오르며 솥을 감싸 안자 솥뚜껑이 천천히 밀려 틈이 벌어지더니 푸른 기운이 빠져나와 열댓 장 길이의 명주 천처럼 늘어졌다.

    온 하늘이 푸르게 변했다고 느낀 순간, 명주천이 금색 벌들을 전부 휘감아 번개처럼 솥 안으로 돌아가 버렸다. 허천정이 발동하자마자 금색 벌떼들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그가 벌떼 들을 치우는 사이 금화 노조는 5, 60장을 날아가고 있었는데 원영 초기 수사치고는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그러나 한립은 서두르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 어느 샌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백여 장 밖까지 달아난 회색 장포 노인과 남색 장포 청년이 보였다.

    그들은 한립과 금화 노조가 연달아 나타나자 보물을 포기하고 달아나기로 마음먹고 한립이 금화 노조와 싸우는 중에 천천히 뒤로 물러나 달아날 궁리를 했다.

    그런데 한립이 서늘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그들은 화들짝 놀라 즉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다.

    이에 멀리서 결계를 치던 축기기, 연기기 제자들은 가만히 지켜보다 자신들의 사부가 달아나자 겁에 질려 뿔뿔이 흩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한립의 얼굴이 서늘해지더니 저물대를 허공에 던졌다. 그러자 열두 마리의 새하얀 지네들이 크게 울부짖으며 하얀 한기를 품고 나타났다.

    한립이 말없이 손을 들자 육익상공들은 동시에 세 무리로 나뉘어 결단기 수사 셋을 향해 날아갔다. 그 속도는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 빨랐다.

    이렇게 세 수사와 육익상공들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한립은 오히려 저계 수사들은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들이 이 일을 알리려면 며칠은 걸릴 테니 그쯤이면 그는 이곳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달아나는 금화 노조를 보는 그의 눈빛은 달랐다. 살기를 번뜩인 한립이 풍뢰시를 가볍게 펄럭이며 은색 뇌전과 함께 사라졌다.

    이미 금화 노조는 백 장 밖으로 달아나 있었지만 그가 번뜩이며 나타날 때마다 거리가 스무 장씩 줄어 그를 따라잡았다.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보라색 화염이 거대 손으로 변해 맹렬히 상대를 내리쳤다.

    “헛!”

    금화 노조는 한립이 순간이동을 하며 그를 따라잡자 겁에 질렸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입에서 금색 비도를 뿜어내 거대 손을 막고 서둘러 달아날 방법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자라극화로 만들어진 거대 손이 겨우 원영 초기 수사에게 간단히 막힐 리 없었다. 한립이 만들어낸 극한의 화염은 원영후기 대수사나 10급 요수라 해도 꺼릴만한 강력한 무기였다.

    금색 비도는 거대 손을 베려다 오히려 꽁꽁 얼어 떨어져 내렸고, 거대 손은 활짝 펴지며 기이하게 늘어나 금화 노조의 몸을 잡아챘다. 비명이 터져 나오고 금화 노조마저 보라색 얼음 조각으로 변해갔다.

    지켜보던 한립이 머뭇거리지 않고 법결을 북돋자 거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쾅!

    보라색 얼음 조각이 부서져 내리며 그 안에서 금빛 원영이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미리 준비하고 있던 한립은 의식을 움직여 보라색 불길로 금화 노조의 원영을 가뒀다.

    이에 원영은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가 사라지자 한립은 금화 노조의 저물대를 챙기고는 다른 방향을 돌아보았다.

    결단기 수사들과 지네들은 아주 멀리까지 가버린 것 같지만 한립은 신경 쓰지 않고 작아진 제혼을 불러들여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았다.

    바닷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제외하면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일다경쯤 지났을 때 한립이 슬며시 미소 지으며 눈을 떴다.

    잠시 후 먼 하늘 끝에서 하얀빛이 번뜩이며 순식간에 날아들어 그의 머리 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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