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7
667화. 마호도(魔湖島)
마호도는 내성해 외곽의 작은 섬으로 이곳을 아는 이들은 주변에 머무는 산수들이 전부였다. 그나마 수사들이 이곳을 아는 이유는 몇몇 호수에서 취동(翠銅)이라는 재료가 나기 때문인데 마호도(魔湖島)라는 이름도 이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진귀한 재료는 아니지만 몇몇 독문 법기들을 제련하는데 필수적인 재료라 가끔 저계 수사들이 이곳에 들리곤 했다.
이곳의 호수는 맑고 고운 비취색을 띄고 있는데 범인들이 호수에 뛰어들어도 저절로 떠올라 절대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나 신비한 호수의 명성에도 영맥이 없고 숲도 울창하지 않아 일부러 호수를 찾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5, 60명의 저계 수사들이 섬 중앙의 호숫가에 모여 진법을 펼치고 있었다. 그 중 대다수는 연기기 수사였고 축기기 수사는 대여섯에 불과했다.
그리고 호수 중앙에는 세 명의 결단기 수사들이 무언가를 속닥이고 있었다.
“뇌 사제, 이번에는 틀림없겠지? 금제를 뚫는다고 가산을 전부 탕진했단 말일세. 이것저것 따져보니 벌써 20만 개나 넘는 영석을 썼는데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난 어찌해야 하겠는가.”
“오 사형, 너무 과장이 심하십니다. 우리 셋 중에 사형이 가장 부유한데 가산을 전부 탕진하다니요? 사형의 금명루(金銘樓)가 인근 해역에서 가장 유명한데 영석이 부족할 일이 있겠습니까?”
“그건 사제가 몰라서 하는 말이야! 금명루 주변에 화운각(火雲閣)이며 규모가 큰 상가가 많이 들어서서 이제는 아주 근근이 버티고 있다네.”
“앓는 소리 좀 그만하세요. 금명루가 한두 해 장사를 한 것도 아니고 이익이 안 났으면 벌써 접었겠죠.”
노인의 한숨 소리에 붉은 장삼을 입은 여자가 톡 쏘며 말했다.
“정말이라니까! 금명루가 예전에 꽤 영석을 거둬들인 것은 사실이지. 그러나 백여 년 전 사부님이 실종되시고는 다른 세력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네. 게다가 스무 해 전쯤 사부님이 육도 극성에게 중상을 입고 생사를 알 수 없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로는 사정이 급격히 어려워졌네. 그나마 내가 결단 후기 수사라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지.”
“됐습니다. 사부님이 실종되시고 고생한 게 어디 사형뿐입니까? 불같은 성미에 어찌나 여러 수사들과 원한을 쌓아 두셨는지 괜히 화풀이 대상이 되어 쫓기고 공격당하기를 몇 년째입니다. 그나마 오 사형은 금명루도 운영하고 혈광문(血光門)과도 인연이 있어 근심걱정 없이 보냈지만요.”
회색 장포 노인의 말에 남색 장포 사내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대꾸했다.
“오 사형, 뇌 사제 그만들 하세요. 스승님이 안 계시고 고생한 거야 다들 마찬가지죠. 그러니 오늘 비밀 거처를 찾아 보물을 나눠야지 않겠어요? 그다음에 어딘가에 숨어 수련하거나, 세력을 넓히든 누가 상관이나 하겠어요.”
여인의 말에 노인과 남색 장포 청년이 시선을 마주치고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남색 장포 청년이 여인에게 물었다.
“채 사저, 분명 이 아래에 보물들이 숨겨진 비밀 거처가 있는 것이 맞겠지요? 확실히 스승님이 펼쳐 놓은 금제는 맞지만 워낙 작은 섬들에 임시 거처들을 많이 마련해 두시지 않았습니까. 만일 그런 곳 중에 하나라면 그간 헛고생을 한 셈입니다.”
“뇌 사제는 지금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겁니까?”
수려한 여인은 기분 나쁜 내색을 했다.
“사저는 사부님의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안다고 했지만 어찌 알아낸 것인지는 말해주지 않았지요. 이제 금제를 깨기 직전이니 말씀해 주십시오. 사부님이 사저를 총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분 성격에 이것을 말씀해주셨을 리 없으니까요.”
남색 장포 청년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무표정하게 말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네. 몇 년간 종적을 감추었던 사매가 찾아와 뜬금없이 보물을 찾자고 하니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회색 장포 노인도 청년의 말을 거들었다.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둘이서 힘을 합쳐 나를 어쩌기라도 하겠단 말인가요?”
여인의 얼굴이 차갑게 변하며 한손을 들어 올리자 새하얀 손목에 찬 보라색 팔찌가 드러났다. 신비한 주술이 새겨진 팔찌를 보며 노인과 청년이 동시에 안색이 급변했다.
“사부님께서 자빙탁을 사저에게 주셨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 고보를 지니고 있는데 저와 사형이 협공한다고 사저의 상대가 될 수 있겠습니까?”
남색 장포 청년은 고보를 보고 질투와 분노를 드러냈다. 그의 분노는 여인이 아니라 사부를 향한 것이었다. 곁의 회색 장포 노인도 표정이 시시각각 달라지더니 마음을 정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가 어찌 사매에게 딴 마음을 품겠어. 그저 호수의 금제를 깨느라 들어간 영석이 많으니 확실히 해두자는 것뿐이지.”
“어차피 보물을 찾으면 영석들은 전부 보상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래도 오 사형과 뇌 사제가 계속 궁금해 한다면 알려줄 수도 있어요.”
“오, 그런가?”
노인은 만면에 웃음을 보였지만 청년은 아직도 어두운 표정을 하고 듣고만 있었다.
“사부님의 제자라지만 사실은 시첩이었다는 것을 다들 아실 거예요. 시중을 들고 있는데 잠결에 이곳에 대해 중얼거리더군요. 아마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 그간 모아온 보물들을 어찌 처리할까 고민이 많았던 거겠죠.”
“그렇게 간단히 비밀 거처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요?”
오수사와 뇌수사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고, 뇌수사는 참다못해 반문했다.
“믿든 안 믿든 그건 내 알 바 아니지만, 이 밑에 보물이 없다면 사부님이 임시 거처에 왜 이렇게 복잡한 금제를 걸어 놓으셨겠어?”
“보아하니 나와 뇌사제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구만. 그나마 이제 금제가 마지막 한 층을 남겨두고 있어 다행이지. 안 그런가? 그럼 난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보고 오겠네.”
회색 장포의 오수사가 헛기침을 하며 노란 빛을 뿜어내 호숫가로 날아갔다.
“저도 상황을 좀 보고 오겠습니다.”
뇌수사가 눈썹을 끌어 올리며 채수사를 향해 말하고는 즉시 핏빛을 번뜩이며 호수 아래로 내려갔다. 여인은 오사형와 뇌사제가 가버리자 입을 비죽이며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한식경이 지나고 오수사가 돌아왔을 때 호수 표면이 요동치며 뇌수사도 호수 속에서 솟아올랐다.
“뇌 사제, 채 사매 진법이 이미……. 저, 저건?”
오수사는 미소 지으며 무어라 하려다가 일순 안색이 달라져 어딘가를 올려다봤다. 채수사와 뇌수사가 놀라 그의 시선을 따라 가보니 푸른빛이 번뜩이며 눈부신 푸른 빛줄기가 그들이 있는 호수로 날아들고 있었다.
“이런, 고계 수사가 이쪽으로 오고 있군!”
“이렇게 외진 곳에 고계 수사라뇨? 설마 사형이 부리는 자들이 말을 흘린 거 아니에요?”
채수사는 오수사를 향해 따졌다.
“다른 이들에게는 아예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어찌 말이 새어 나갈 수 있겠나?”
“괜히 당황할 것 없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길일지도 모르죠.”
뇌수사의 말에 채수사와 오수사가 일단 평정을 되찾았는데 푸른 빛줄기가 순식간에 가까워지며 어렴풋이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렇게 빠르다니!”
결단기 수사들은 불길한 예감을 느끼곤 안색이 급변했다. 푸른 빛줄기는 세 수사의 머리 위에 멈추었고 그 푸른 장포를 입은 젊은 사내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가 만호도인가?”
청년의 거침없는 말투에 수사들은 의식으로 청년의 수행을 훑고는 경악했다.
“만호도가 맞습니다, 선배님. 혹여 저희에게 분부하실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수사는 놀란 표정을 지우고 얼른 허리를 굽히며 미소 지었다.
“그래, 그럼 너희는 여기서…….”
청년이 호수의 저계 수사들을 훑어보더니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을 했다.
“저희는 특수한 법기를 제련하느라 대량의 취동이 필요해 제자들을 이끌고 작업하던 중이었습니다.”
“취동? 설마 재료를 구하기 위해 봉인을 깨는 진법을 펼치고 있다는 것인가?”
팔짱을 낀 청년은 한눈에 저계 수사들이 호수를 중심으로 여러 진법을 설치하고 있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웃으며 말했지만 결단기 수사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상대가 진법에 능통한 줄 몰랐던 오수사가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채수사와 뇌수사는 모든 것을 오수사에게 맡긴다는 듯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해십니다. 제가 진법에 관심이 많아 여러 진법들을 펼쳐두고 효과를 시험하는 중이었습니다.”
오수사는 급한 마음에 변명했지만 청년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그들을 훑어보았다.
“너희는 만호자와 무슨 관계더냐?”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채수사가 고개를 번쩍 들며 대답했다.
“너희가 익힌 공법은 모두 다르지만 다들 만호자의 탁천마공과 닮아 있다. 다른 이들을 만났다면 속일 수 있었겠지만 나는 다르다. 하필 나를 만나다니…….”
“저희 사부님을 아십니까?”
더 이상 속일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뇌수사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물었다.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사이다. 너희는 아마 호수 밑바닥의 보물을 노리고 온 것이겠지. 만호자가 이곳은 그만 알고 있다고 했는데 너희가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내가 속은 것이냐? 아니면 너희가 다른 경로로 이곳을 알아낸 것이냐?”
한립의 말에 수사들은 가슴이 철렁했다. 어찌 들어도 세 수사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다. 상대의 어투로 보아 만호자가 직접 알려준 것이 분명했다.
‘사부가 아직 살아있단 말인가? ’
같은 생각이 세 수사의 뇌리를 스쳤다.
“저희 셋은 만 사부님 문하의 제자들이 맞습니다. 혹시 선배님과 사부님께서는 어떤 사이신지요?”
채수사가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간신히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만호자는 그냥……. 흠, 이 작은 섬이 아주 북적이는군.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당장 나오시지요.”
한립이 표정이 달라지며 호숫가의 언덕을 향해 다섯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남색 실이 나타나 기다란 빛줄기로 변하더니 언덕을 향해 날아갔다.
채여인이 그것을 보고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쿠콰쾅!
푸른빛이 지나고 언덕 절반이 잘려나가자 그 안에서 대머리 거한이 떠올랐다. 거한은 험상궂은 얼굴에 의복은 물론이고 몸까지 금빛으로 빛나 금으로 만든 사람 같았다.
그는 금빛이 찬란한 방패를 들어 반원형의 보호막을 만들고 놀란 눈빛으로 한립을 바라보았다.
“금화 노조!”
오수사가 놀라 중얼거렸다. 이때 붉은 빛이 호수를 지나 거한의 뒤로 숨었는데 놀랍게도 결단기 여인이었다.
“채 사매! 금화 노조를 끌어들이다니!”
오수사는 순간 어떻게 된 일인지 곧바로 파악하고는 소리쳤다.
“칫, 두 사람은 그런 말 할 자격이나 되나요? 오 사형은 혈광문 수사들과 작당해 돌아가는 길에 날 죽일 계획이었죠? 초도도(草都島)의 목검각(木劍閣)에 귀의해 곧 각주의 딸과 혼인할 예정이라면서! 혼사의 예물이 이곳에서 나올 보물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내가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면 오늘 목숨을 잃는 것은 나였을 거라고요! 하지만 이미 혈광문과 목검각 쪽은 노조님께서 막고 있으니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만호자 곁에서 오랜 세월 함께 한 내가 그의 유산을 갖는 게 합당한 것 아니겠어요? 노조께서도 나를 정식으로 맞겠다고 약속해 주셨고요.”
채여인은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금색 장포의 거한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럼 처음부터 우리는 왜 찾아온 거요?”
“바로 호수 아래의 금제 때문이죠. 제자들 중에 오 사형과 뇌사제만이 만호자에게 진법을 전수 받았잖아요.”
보아하니 이미 채여인은 오수사와 뇌수사에게 본색을 드러내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이에 오수사와 뇌수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됐으니 저들과의 일은 나중에 이야기 하자꾸나. 일단은 저 수사와 몇 마디 나눠봐야겠다.”
대머리 거한이 미간을 좁히며 채여인의 말을 끊었다.
“수사께서도 만호자의 비밀 거처를 찾아오신 것입니까?”
원영 초기 수사인 금화 노조는 한립의 수행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자 경계심이 일어 한립을 위아래로 훑으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호수 아래의 물건들은 내 것이니 수사는 그만 가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한립의 말에 대머리 거한은 화가 치밀었으나 동시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상대의 말투로 보아 대단한 신통을 지닌 자가 분명했다. 그러나 거한은 화를 가라앉히며 정색을 했다.
“지금 보물을 홀로 차지하려 저를 내쫓으려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