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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66화 (423/2,000)

# 666

666화. 요수의 난

릉소풍과 온청은 의혹이 가시지 않아 서로 시선을 교환했지만 더는 캐묻지 않았다.

“저희 부부가 수사를 뵙자고 한 까닭은 조 장로께 들으셨겠지요?”

“예, 들었습니다. 화신 고비를 넘길 방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신다고요.”

“저희 부부가 원영 후기에서 수백 년간 배회하고도 화신기에 이르지 못했지만 수사가 먼 길을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비술들을 꽤 알고 있습니다. 운이 따른다면 그 중 하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지도 모르지요.”

궁장 여인은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 물론 그런 비술을 그냥 알려주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물론 옥령이와 부부의 연을 맺으셨다면 아무 조건 없이 알려드렸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그 일은 거절하셨으니 거래를 하지요.”

“어떤 거래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들어 보겠습니다.”

“관련 비술과 그간의 깨달음을 대가로 수사께서 제 여식이 성궁을 관리할 수 있게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딸아이의 지위가 공고해질 때 까지만요.”

“릉 수사를 돕기를 바라신다고요.”

한립은 미간을 좁히며 입을 다물었고 천성쌍성은 서두르지 않고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릉 수사는 지금 원영 초기가 아닙니까?”

“맞습니다.”

갑작스런 한립의 물음에 온청이 그의 생각을 깨닫고는 미소 지으며 바로 대답했다.

“릉 수사가 후기에 이를 때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백 년, 이백 년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요!”

“저희에게 딸아이를 백년 내로 중기에 이르게 할 방법이 있습니다. 후기에 이르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운에 맡겨야 할 테지요.”

이번에는 릉소풍이 냉랭히 대답했다.

“두 분은 원영 후기 수사 없이 성궁이 유지된다고 보십니까?  설마 저더러 수백 년을 이곳에서 허비하라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한립은 턱을 쓸며 냉소했다. 그의 거침없는 말투에 온청의 미소가 잠시 굳었다가 재빨리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바꾸셔도 됩니다. 역성맹 패거리가 날뛴 지 오래라는 것은 아실 겁니다. 만일 저희 부부와 힘을 합쳐 육도와 만삼고 두 명을 제거 하겠다 약속해 주신다면 비술들을 모두 내어 드리지요. 어차피 허천정과 관련해 역성맹의 주요 인사들과 척을 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복수도 하고 거래도 하고 일거양득이 아닐까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육도와 만삼고는 난성해에서 이름난 대수사라 두 분과 협공해도 안전히 제거한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저는 난성해 세력 다툼에 끼어들 마음이 전혀 없고요. 외해에서 일을 마치는 대로 폐관 수련에 들어갈 계획이었으니 두 번째 조건 또한 받아들일 수 없겠습니다.”

한립이 두 번째 제안마저 거절하자 온청은 웃음기를 거두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릉소풍이 말했다.

“저희 부부가 지닌 비술들은 수많은 역대 궁주들이 오랜 시간 동안 연구해낸 것들입니다. 후기 수사라면 어떤 보물보다 귀히 여길 만하지요. 수사는 설마 공짜로 비술을 얻으려 이번 만남에 응한 것입니까?”

사내도 불쾌한 내색을 했다.

“제가 알기로 역대 성궁의 주인들도 대부분이 원영 후기에 머물고 화신기에 이른 이는 몇 되지 않지요. 그렇다면 화신 고비를 넘을 비술이라는 것이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 드는군요. 물론 도움이야 되겠지만 그것을 위해 너무 많은 세월을 허비할 수는 없습니다.”

한립은 그들이 불만을 토로하든 말든 뒷짐을 지며 입장을 밝혔다. 그 말에 부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리고는 한립을 앞에 두고 입술을 달싹이며 전음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한립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잠시 후 온청 부부가 상의를 마쳤는지 릉소풍이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

“비술을 받고 딸아이를 세 번 도와줄 것을 제안하겠습니다. 딱 세 번만 나서주면 되는 것이지요.”

“그런 조건이라면 가능합니다. 다만 옥령 수사의 목숨이 달린 문제여야 하고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에 한해서만 돕겠습니다.”

“좋습니다. 대수사이신 한 형의 신분에 불필요한 맹세 같은 것은 필요 없습니다. 상고 수사들이 이용하던 만리부(万里符) 세 장입니다. 반쪽에다 글귀를 적으면 천만리가 떨어져 있어도 나머지 반쪽에서 동일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지요.”

릉소풍이 소매를 펄럭이며 하얀빛이 반짝이는 옥 부적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가 손짓하자 금색 실이 번뜩이며 세 장의 부적이 정확히 여섯 조각으로 나뉘어졌다.

세 장은 그의 소매 속으로 돌아갔고 나머지 세 장은 한립에게 날아갔다. 부적은 옥 표면에 복잡한 주술들이 가득했고 절반으로 조각난 후에도 영기의 흐름이 만연한 것이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그는 즉시 손바닥을 뒤집어 만리부를 저물대 속에 챙겨 넣었다.

“옥간 속에 저희 부부의 깨달음과 비술을 담아 놓았습니다. 견문이 넓은 한 형이라면 단번에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아시겠지요.”

다시 미소를 회복한 온청이 고운 손을 들어 비취색 빛을 쏘아 보냈다. 한립은 손바닥만 한 푸른 옥간을 들고 서슴없이 의식을 불어넣었다. 안에는 여러 가지 비술들이 적혀 있었다.

한립이 옥간을 살피느라 여념 없을 때 온청이 뿌듯한 얼굴로 릉소풍을 향해 눈짓을 했다.

“맞습니다, 가짜가 아니군요.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럼 거래는 성립된 것이군요! 저희 부부는 다른 볼 일이 있어 오래는 머물지 못하겠습니다.”

“이곳은 아직 귀 궁의 범위니 인사를 하려면 제가 해야겠지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릉소풍이 하는 말에 한립이 웃으며 포권을 하곤 푸른 빛줄기로 변해 날아갔다. 말이 끝나자마자 스무 장 밖을 날아가고 있는 그를 보며 천성쌍성의 표정이 미미하게 달라졌다.

“오만한 태도를 보일만한 신통이네요. 부군이 보기에는 한 가 녀석이 속은 것 같습니까?”

푸른빛이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자 온청이 사내를 돌아보았다.

“화신기에 이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면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오! 우리가 알려준 비술들이 가짜는 아니지만 시도해보면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것이오. 그저 오행(五行)의 힘을 빌려 화신 고비를 넘기는 방법이 가장 쓸 만하다 여기겠지! 아직 나이가 어리니 원자신광을 수련하기에 적합할 테고 수명이 다하기 전에 대성할 수 있다 여길게요.”

릉소풍이 입 꼬리를 끌어 올렸다.

“일부러 원자신광의 특징과 대성 후의 신통을 언급해 놓았으니 욕심이 생기기는 할 거예요. 화신 고비를 넘길 수 있다는데 쉽게 포기할 리 없죠! 저 자가 원자신광을 수련하기로 마음먹으면 원자산의 힘이 필요해질 테고 우리와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얌전히 천성성을 지키며 늙어가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고서야 원자신광을 대성하기 위한 극악한 조건을 알아차릴 테죠. 물론 그 전에 옥령이 원영 후기에 이르러야 화를 피할 수 있겠지요.”

“허나 옥령이 원영 후기에 이르지 못하면 큰일이 아니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벌어 주었는데도 원영 후기에 이르지 못하면 그 아이의 운명이라 여겨야지요. 그럴 바에야 하루 빨리 천성성을 떠나 산수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을 겁니다.”

릉소풍의 걱정에 온청이 탄식했다.

“이제 저 녀석은 대충 해결이 되었고 남은 백여 년 동안 육도와 만삼고만 처리하면 되겠어요. 그런데 하필 지금 외해의 요족 수사들이 난동을 부리니 일단 역성맹과 휴전해야 할까요?”

“흥, 그것들이 내해에 오랜 세월 화신기 수사가 나오지 않고 대수사의 수도 이전과 비교해 적어 졌다고 딴 마음을 품는 것이 분명하오. 아마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거겠지!

허나 오랜 세월 수많은 정예 제자들을 양성해왔으니 10급 요수들이 한 번에 몰려와도 내해를 점령할 수는 없을 것이오. 게다가 들려오는 소리에 의하면 외해의 요족 수사들도 하나의 세력으로 통합된 것이 아니라지 않소.”

“교룡 일족과 산예 왕족 사이에 싸움을 말하는 거죠?”

“그렇소. 외해의 왕족인 산예 일족은 본래 교룡족보다 세가 강했는데, 삼백 년 전 10급 요수 중 하나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요즘은 전세가 역전되었다지. 계획을 잘 세워 두 요족 세력의 불화를 조장하면 힘들이지 않고 내해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오.”

사내는 이미 계획한 바가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안심이네요. 다만 벽령도 영석 광산이 아깝게 되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극품영석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극품영석과 최근 채굴한 고계 영석을 전부 회수해 내해로 돌아오라 했을 텐데. 한 발 늦고 말았네요. 계 장로마저 금교왕의 손에 잃고 말이에요.”

온청이 아쉽다는 얼굴로 말했다.

“어차피 외해는 요수들의 천하이니 예상한 일이지 않소. 이전에는 큰 충돌이 없었고 고계 요수들이 지능이 낮은 저계 요수들을 동족으로 여기지 않아 우리들이 드나드는 것을 보아 넘겼다지만 이번에는 다르오. 고계 영석 광산은 그들도 간절히 원하던 것이니 나설 수밖에.”

릉소풍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우리야 모든 역량을 집중해 옥령이가 성궁의 주인으로 집권하기 전에 내실을 기하려 했지만, 역성맹이나 산수들은 쉽게 외해를 포기하지 못할 텐데요?”

“그러니 더 좋은 일이지 않소! 돌아가는 대로 외해로 향하는 전송진을 개방해 영석만 치른다면 누구나 이용하게 할 것이오. 역성맹이 생긴 이후 산수들이 우리 성궁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불손해졌는데 이번 기회에 호되게 가르침을 줘야겠지. 나중에 외해 요수들이 잠잠해 지면 역성맹만 뿌리 뽑으면 될 일이오. 육도와 만삼고는 우리가 천성성을 절대 떠나지 못한다고 생각해 안심하고 있을 테지만, 그것이 오해라는 것을 아는 날 그들은 죽은 목숨이 아니겠소?  백 년마다 원자산이 한 달간 자성을 잃으니 그때…….”

릉소풍의 얼굴에 살기가 어렸다.

“그때 나와 육도의 은원도 막을 내리겠지요!”

“아직도 그때 일을 잊지 못한 것이오?”

“그 일을 어찌 잊겠어요.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벌써 죽어 먼지가 되어 버렸을 텐데요. 지난번에도 원자신광의 제약만 없었다면 절대 그 자가 달아나게 놔두지 않았을 거예요.”

온청의 아름다운 얼굴이 일그러졌고 릉소풍이 그런 여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그들과 싸울 때가 되면 육도는 당신에게 넘겨주겠소.”

말을 마친 릉소풍이 먼저 하얀 빛줄기가 되어 날아갔고 그 뒤로 온청이 따라갔다.

* * *

한립이 떠난 다음날, 은사도에는 벽령도 수사들이 전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동시에 영석 광맥에서 최상급 영석인 극품영석이 나왔다는 이야기에 난성해가 들썩거렸다.

그리고 그가 천성쌍성과 만난 지 이틀 후, 외해의 고계 요수들이 외해에 있는 인간 수사들에게 축객령을 선포했다.

모든 인간들은 반드시 3개월 내로 외해에서 나가야 하며 기간이 지나면 전부 죽이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되자 산수들은 물론이고 내해의 크고 작은 세력들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난성해 수도자들에게 외해 요수들의 요단은 영석처럼 필수품이 된지 오래였고, 이렇게 중요한 수도 자원을 얻을 수 없게 되면 각 세력은 치명타를 입게 된다.

이에 성궁과 역성맹은 외해로 통하는 전송진을 개방했고 많은 세력들과 산수들이 외해로 나가 극품영석이 나왔다는 고계 영석 광맥 근처로 모여들었다.

인간 수도계와 외해의 요수들 간의 대대적인 전쟁이 발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리고 이런 혼란스런 와중에 허천정이 다시 나타났고 그 안에 든 영단을 먹고 결단기 수사가 이백 년도 되지 않아 원영 후기의 대수사가 되었다는 소문이 아주 멀리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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