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4
664화. 극품영석(極品靈石)
잔해 속에서 녹색 불덩이가 빠져나오는 순간 천둥소리가 들리며 한립이 나타나 손을 뻗었다. 녹색 불덩이는 한립의 강력한 영기에 그대로 빨려 들어왔고 푸른 옥병에 담겨 사라졌다.
이때 멀리서 날아오던 두 명의 요족 수사들은 한립이 간단히 8급 요수를 죽이는 것을 보고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금빛이 또렷해지며 금교왕이 빠른속도로 날아왔고 다른 방향에서도 각양각색의 요수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에 한립이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원하던 것을 얻었으니 굳이 모험할 필요는 없겠지.”
그가 전신에서 푸른빛을 일으켜 자리를 뜨려했다.
“막아!”
금교왕은 이미 백여 장 가까이 다가와 큰 소리로 나머지 요수들에게 명을 내렸다. 어쩔 수없이 두 요수가 수결을 맺으며 두 줄기의 바람 교룡을 만들어내 한립을 덮쳤다.
그러나 한립은 웃음을 터트리며 사라졌고 스무 장 밖에서 푸른 빛줄기로 변해 하늘을 갈랐다. 바람 속성의 교룡 두 마리조차 도저히 쫓을 수 없는 속도였다.
“극품영석을 내놓거라!”
멀리서 금교왕이 이를 악물더니 엄청난 거리를 두고 금빛 창을 투척했다.
콰쾅!
굉음이 들리고 돌연 금빛 창이 번뜩이며 사라져 3, 40장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한립은 흠칫 놀랐으나 다시 무표정한 눈빛으로 은색 방패를 방출했다. 그러자 동시에 금빛 창이 그의 앞을 막으며 은색 방패와 충돌했다.
이에 금빛과 은빛이 섞이며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듯 치열하게 교전했다. 멀리서 날아오는 금교왕은 한시도 쉬지 않고 의식을 이용해 뇌전을 발동했다. 이에 창을 타고 은색 뇌전이 방패를 돌아 한립을 공격했다.
‘이까짓 잔기술을 가지고!’
한립이 코웃음을 치며 손을 뻗자 금빛 뇌전이 나타나 은색 뇌전 뱀들을 터트렸다.
펑!
금교왕도 순간 표정이 달라졌으나 한립은 이에 그치지 않고 한 손으로 은색 방패를 내리쳤다. 방패는 화려한 은빛 광채를 뿜으며 표면이 거울처럼 매끄러워져 금빛 창을 모두 튕겨냈다.
한립은 푸른 빛줄기로 변해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고 이번에는 최대한 법력을 쏟아 부어 엄청난 속도로 백 장을 벗어나 버렸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가 날아간 방향에서 검은 빛이 날아들고 있었는데 바로 독교와 같이 있던 거북 요괴였다.
매우 빠른 속도에 푸른 둔광이 강렬해 한립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8급 요수를 손쉽게 죽이고 금교왕의 일격을 막는 모습을 멀리서 보았던 터라 거북 요수는 기겁을 하며 그를 피해가려 했다.
이를 본 한립이 피식 웃으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립이 사라지자 놀란 거북 요수는 본능적으로 허공에 멈춰 섰다.
몇 장 밖에서 한립은 보라색 화염을 번뜩이며 나타났고 곧바로 거북 요수를 향해 소매를 펄럭였다. 그러자 36개의 비검들이 쏟아져 나와 백 개가 넘는 금색 검빛으로 갈라졌고 그물처럼 거북 요수를 덮쳐왔다.
“너는!”
거북 요수는 한립의 얼굴을 보고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깜짝 놀랐고 금색 검빛들이 떨어져 내리자 핏기가 사라졌다. 멀리서 금빛 비검에 동급 요수가 죽는 것을 보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겁에 질린 거북 요수는 괴성을 지르며 소매 속에서 검은 구름을 방출하고 자신은 검은 요기를 응결해 달아날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거북 요수는 극통을 느끼곤 머리를 부여잡고 귀와 코에서 검붉은 피를 흘렸다.
거북 요수가 허공에서 추락하는 바람에 검은 구름은 금색 검빛들에 의해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변해 흩어졌다. 겨우 의식이 찢기는 고통에서 벗어난 거북 요수는 다가오는 금빛 그물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절망 속에서 요수가 이를 악물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금 형! 이 자가 바로 려 씨 성의…….”
그러나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립이 인상을 쓰며 청원검결을 북돋았다. 금빛 그물이 급격히 수축해 거북 요수의 몸을 산산 조각냈고 요수의 혼백인 녹색 불덩이마저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몇 호흡 만에 거북 요수를 죽인 한립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다시 엄청난 둔광을 내뿜으며 수백 장 밖으로 날아갔다.
금교왕은 안타까운 마음에 그를 쫓아 벽령도 밖까지 날아갔지만 너무 빨라 따라 잡을 수가 없었고 홀로 상대해 이길 거라는 확신도 들지 않아 결국 음울한 얼굴로 돌아왔다.
“려 씨 성이라…….”
금교왕이 산봉우리 위에서 중얼거렸다. 이때 화형기 요수들이 몰려들어 난색을 표했다.
“금 형, 원영 후기 수사의 정체가 뭘까요. 육도나 천성쌍성과는 전혀 다르게 생겼는데 설마 새로 대수사가 된 인물일까요?”
새빨간 화염에 둘러싸인 요족 수사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사용하는 공법과 보물이 낯선 것이 난성해의 원영기 수사가 아닌 듯합니다.”
“신통이 대단하던데요. 남 수사와 오 수사가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당한 것을 보면 육도나 천성쌍성보다도 수행이 위인 듯합니다.”
또 다른 녹색 장포 요족 수사가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는 듯 말했다. 8급 요수들은 죽어나간 거북 요수 등과 수행이 비슷했으니 자신이 한립을 마주치지 않은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육도 극성과는 한 번 겨뤄본 일이 있는데 이 자는 훨씬 상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육도라 해도 기습하지 않고서는 우리 바다 일족의 화형기 수사를 단번에 죽이기 어려운데 말입니다.”
금교왕의 차분한 설명에 9급 요수 한 명이 나섰다. 처음에 수척한 노인과 싸우고 있던 뚱보였다.
“금 형, 오 수사가 죽기 전에 한 말이 무슨 뜻일까요? 갑자기 려 씨 성을 지닌 자라니 정체를 알아 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제 기억대로라면 예전에 교룡 일족과 산예 왕족이 려 씨 성의 인간 수사를 찾아 다녔던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 말에 주변 요족 수사들이 소란스러워졌다.
“그 일과는 무관하지 않을까요. 당시 손자가 결단기 인간 수사의 암습을 받아 쫓기기는 했으나 그가 원영 후기 대수사와 같은 인물일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금교왕이 침묵하다 고개를 저었다.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일전에 원영기 수사 한 명을 죽여 알아낸 것이 있는데, 난성해 제일의 보물이라 불리는 허천정을 한 씨 성의 결단기 수사가 가져갔다더군요. 나중에 원영기 노괴들이 조사를 하니 외해에서는 한동안 려 수사라고 자칭하며 돌아다녔답니다.
그리고 허천정에는 보천단을 비롯한 알 수 없는 상고 영단들이 들어 있었다고 하니 그 도움을 받아 엄청난 속도로 경지가 높아졌을지도 모르지요.”
뚱보의 말에 요족 수사들이 어안이 벙벙해져 수군거렸다. 금교왕도 한참을 생각하다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섭 수사의 말대로라면 확실히 그가 동일인일 수도 있겠군요. 그러면 더더욱 가만둬서는 안 되지요! 손자의 복수를 하든 오 수사와 남 수사를 해친 대가를 치르게 하든 반드시 피를 보고야 말 것입니다. 게다가 극품영석을 탈취해 갔고 허천정이라는 보물도 지니고 있으니 반드시 찾아내야 합니다.”
“원영 후기 수사에다 신통이 뛰어나 그 자를 궁지로 몰려면 금 형 수준의 수행을 지닌 수사가 셋은 모여야 할 것 같습니다.”
뚱보는 신중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만만히 볼 자가 아니니 계획을 세워봐야겠지만 산 형과 벽 수사에게 연락을 취하면 될 겁니다. 허나 급할 것은 없습니다. 상대가 난성해에 있는 한 언젠가는 기회가 올 테니까요. 비록 두 수사를 잃었지만 여섯 명의 원영기 인간 수사를 죽였고 벽령도를 점령했으니 됐습니다. 채굴을 하다보면 또 다른 극품영석이 나올 지도 모르지요. 우선 서둘러 금제를 복구하고 인원을 모아 역성맹과 성궁의 반격을 대비합시다.”
금교왕은 복수는 급하지 않다는 듯 서둘러 화제를 영석 광산으로 돌렸다. 모두의 이익이 걸린 일이니 다들 금방 금교왕의 말에 빠져 들었으나 뚱보만은 미간을 좁히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때 만 리 밖의 어딘가를 날아가던 한립은 의식으로 쫓는 자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속도를 줄였다. 그는 이제 뇌공도가 아니라 방향을 틀어 은사도로 날아가는 길이었다.
한립이 돌연 손을 뻗어 푸른 저물대를 꺼내 뒤집었다. 그러자 하얀빛 속에서 비취색을 머금은 엄지 손가락만한 영석이 흘러나와 그의 수중에 떨어졌다.
영석의 표면에는 영기가 좌르르 흘렀고 녹색 빛이 깜박 거리며 살아 있는 듯 움직였지만 너무 미세해서 자세히 확인하기 어려웠다. 이상한 마음에 한립이 명청령안을 발동해 즉시 빛 속의 물체를 살펴보았다.
뜻밖에도 눈꽃 같은 주술이 하얗게 떠다니고 있었다. 하얀 눈꽃은 비취색 영석을 넘나들며 스스로 폭발해 정순한 나무 속성 영기를 뿜어냈다.
한립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전설 속의 극품영석이 공교롭게도 나무 속성이라니 그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벽령도 자체가 나무 속성 영석을 채굴하는 광산을 품고 있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한립은 잠시 눈을 감고 영석의 나무 속성 영기를 느꼈다. 잠시 후 주저하던 그가 다섯 손가락에서 푸른빛을 번뜩이며 영석의 충만한 영기를 흡수해 보려했다.
다섯 줄기의 세밀한 영기가 서서히 빨려 들어오는데 청량하면서도 그윽한 것이 작은 뱀들이 흡수되는 것처럼 생생했다.
놀란 그가 손을 털어냈고 동시에 영기의 뱀들이 그의 경맥을 타고 오르려다 스스로 흩어져 버렸다. 그러나 충만한 영기가 그의 전신에 퍼져나갔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서늘하다가 다시 따뜻해졌고 온 몸이 나른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극품영석이란 건가? 과연 고계 영석과는 비교할 수도 없구나!’
한립은 바로 소량의 영기를 연화하며 기뻐했다. 순간적인 흡수로 보름동안은 수련해야 얻을 영력을 보충하다니, 영석 전체를 완전히 흡수하면 십 여년간 수련해야할 영력을 얻는 셈이었다.
이번에는 그가 손바닥을 뒤집어 푸른 목함을 꺼내 조심스럽게 극품영석을 목함에 담고 여러 부적을 붙여 저물대에 넣어두었다. 뜻밖의 수확에 그는 상쾌한 마음으로 하늘을 갈랐다.
몇 개월 후 한립은 아무 일도 없이 은사도 근처로 돌아왔다. 그런데 은사도를 돌아다니는 수사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의아한 얼굴로 멀리 은사도를 바라보자 은사도에 남색의 보호막으로 된 강력한 진법이 발동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 ’
그가 의식을 퍼트려 주변을 확인하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남색 보호막 앞에서 그가 손짓을 해 전음부를 날려 보냈다.
“누구시기에 지금 같은 때에 섬으로 들어오시려 하시는지 존성대명을 여쭐 수 있겠습니까?”
조심스러운 사내의 목소리가 들리고 의식 한 줄기가 한립의 몸을 훑으려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한립은 전신의 푸른빛을 크게 방출하며 가차 없이 의식을 튕겨냈다.
“내 이름은 알 바 없고, 급한 일이 있으니 통로나 열거라.”
“원영기 선배님이셨군요! 무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평소였다면 바로 모셨겠으나 최근 요수들이 대규모로 쳐들어와서 드나드는 수사들의 신분을 엄밀히 검사하라는 상부의 명이 떨어져서 그러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더냐? 신분 증명은 어찌 하면 되느냐.”
동시에 벽령도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린 한립이 안색을 풀었다.
“출신 섬과 성함을 밝혀 주시거나 아니면 신분을 증명할 물품을 제시해 주셔야 합니다.”
“신분을 증명할 거라면, 이것으로 되겠구나?”
한립은 미간을 좁히다가 대충 손을 뻗어 금빛을 보호막 속으로 던져 주었다. 천성쌍성에게 받은 객경령패였다.
“아, 한 선배님이셨군요! 제가 몰라 뵙고 불편을 드렸습니다. 바로 안으로 모시지요!”
그 말에 한립은 의아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자 잠시 후 남색 보호막이 그의 눈앞에서 흔들리며 통로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