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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662화 (419/2,000)
  • # 662

    662화. 혼란의 시작

    “그렇게 해드리지요! 허나 먼저 탁천마공의 구결을 알려주셔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극음의 원영을 삼키고 나머지 물건들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생각에 잠겨 있던 한립이 만호자의 원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만호자의 원영이 환호하며 주저 없이 답했다.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다 초췌한 원영을 보고 두 손으로 수결을 맺어 법결들을 쏘아 보냈다. 오색찬란한 영기의 빛이 원영을 감싸더니 안색이 한결 나아졌다.

    “도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만호자는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한립이 손을 내저으며 하얀 옥간을 던져 주었다. 원영이 작은 입을 벌려 금빛 기운을 뿜었고 옥간이 조그맣게 줄어들어 그의 손에 빨려 들어갔다.

    이후 고개를 푹 숙인 만호자는 법결을 복제하기 시작했다. 평생 수없이 되뇌인 구결이었기에 간단한 일이었다.

    일다경이 지나 원영이 두 눈을 뜨더니 작은 손을 뻗어 하얀 빛을 한립에게 쏘아 보냈다. 한립이 하얀빛을 받아 들었을 때는 원래 크기로 돌아간 후였다.

    “법결에 무슨 수작을 부려 놓은 것은 아니겠지요?”

    “농담도 잘하십니다. 원영 후기 수사라면 한 눈에 이상을 알아차릴 텐데 그런 짓을 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이미 이 지경이 되었는데 무슨 득을 본다고 공연히 남을 해하겠습니까.”

    원영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원영의 말에 한립은 곧바로 옥간에 의식을 불어넣었다. 잠시 몇 구절을 읽었는데도 그의 표정이 달라지며 한결 얼굴이 밝아졌다.

    한참 후 한립은 만호자가 예상한 시간보다 훨씬 오래 옥간을 살피고 의식을 회수했다.

    “만 형, 탁천마공의 유래가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유래요?  아주 오래 전부터 전수되어 왔기에 명성이 육도의 육극진마공에 뒤지지 않습니다. 다만 줄곧 일대일로 전수가 되어 와서 저도 스승님을 만나 익히게 되었지요. 어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닙니다.”

    한립은 고개를 저으며 손바닥을 뒤집자 옥간이 사라졌다.

    “한 형께서 직접 수련할 시간은 없으실 테니 웬만하면 쓸 만한 제자를 하나 들여 전승하시면 좋겠습니다. 이대로 탁천마공의 맥이 끊긴다면 아쉬운 일 아닙니까.”

    “수사께서 공법을 확인하셨으니 그럼 제가 움직여도 되겠습니까?”

    원영의 두 눈이 붉은 빛으로 번득이며 흉흉한 기세를 드러냈다.

    “그러시죠. 그런데 너무 허약해 보이시니 조금 도움을 드려도 될까요?”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괜찮습니다. 이전에 비해 새발의 피도 안되는 법력이지만 꼼짝 못하는 수사를 처리하기에는 충분합니다.”

    “그럼 만 형 뜻대로 하십시오.”

    이에 한립은 더는 권하지 않고 몸이 흐릿해 지더니 석실 입구에 나타나 아예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제 홀로 남은 만호자가 얼음 속의 극음을 쳐다보았다.

    * * *

    한립은 석실 바깥의 층계에서 옥간을 들고 말이 없었다.

    석실 안은 고요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일각 후 피곤함이 물씬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수사, 이제 들어오셔도 됩니다.”

    만호자가 탁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한립이 옥간을 회수하고 석실로 돌아갔다. 남색 얼음은 그대로였지만 안에 갇혀 있던 극음은 죽은 물고기의 눈을 하고 숨이 끊어져 있었다.

    대신 만호자의 원영은 이전보다 절반은 커져 있었고 훨씬 생기가 넘쳤다.

    “이번에 한 형에게 큰 신세를 졌습니다. 잠시 정기를 회복한 것이니 이때를 놓치지 말고 어서 세상을 떠야겠지요! 이건 비밀 동부의 위치가 있는…….”

    원영은 한립을 보곤 바로 중얼거리다가 마지막에는 목소리를 낮추며 전음으로 끝맺었다. 한립은 신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수도 갚았겠다, 이제 정말 가야할 시간이군요. 한 수사께서도 편한 대로 하시지요.”

    길게 숨을 내쉰 원영은 차분히 말을 맺고 석실 구석으로 가 가부좌를 틀었다. 금빛이 크게 번지면서 원영 주위를 요동치며 강렬해졌다 약해졌다를 반복했다.

    그러나 한립은 신경 쓰지 않고 손을 뻗어 금빛 뇌전으로 얼음 덩어리를 폭파했고 극음의 시체도 얼음 조각과 같이 사라졌다.

    한립은 마지막까지 분혼이나 두 번째 원영 같은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는 흡족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때 금빛 영기가 흐르던 원영 표면이 갈라지며 금빛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펑!

    가벼운 폭음 속에서 원영은 흩어졌고 미세한 금빛들도 허공으로 날아갔다. 만호자의 죽음을 지켜본 한립은 작게 탄식하며 바닥에 남은 잔해를 향해 손을 튕겼다.

    불덩이가 날아가 모든 흔적들을 지웠다. 한립이 더는 지체 하지 않고 층계 밖으로 나갔다. 그는 전속력으로 날아올라 금빛 검으로 결계를 뚫고 빠르게 올라갔다.

    그런데 그때 경천동지할 굉음이 산을 울렸다.

    놀라기는 했지만 한립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누각 1층으로 올라왔고 바깥에서는 누군가의 웃음소리와 고함 소리 그리고 날카로운 폭음이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 격렬히 전투를 하고 있는 듯했다. 한립이 미간을 좁히고 있는데 누각 밖에서 붉은 빛이 날아들며 소리쳤다.

    “큰일입니다. 철석봉(鐵石峰) 요수들이 갑자기 쳐들어……. 누구십니까?  오 장로님은 어디 가신 것입니까.”

    수사가 대청에 선 낯선 수사를 보며 흠칫 놀라 물었다. 그러나 한립이 냉소하며 입을 벌리자 금빛이 번뜩이며 참혹한 비명 소리가 이어졌다.

    몇 마디였지만 한립은 대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바다 요수들이 갑자기 역성맹을 기습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일에 끼고 싶지 않았기에 기운을 숨기고 신형을 흐릿하게 만들어 누각 밖으로 나갔다.

    그가 대문에 도착하기 전에 마치 귀청을 때리는 듯 큰 소리가 울려왔다.

    “당 수사, 이번에 이렇게나 많은 화형기 바다 일족이 나섰으니 역성맹의 힘만으로는 막기 어려울 겁니다. 얌전히 최상급의 극품영석(極品靈石)을 내놓으시면 목숨만은 살려드리리다.”

    한립은 ‘극품영석’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 바로 누각 대문으로 뛰쳐나갔다. 목소리는 저 멀리 하늘 위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바깥은 아주 혼란스러워서 곳곳에서 영기의 빛이 번뜩이고 폭음이 작렬하며 수십 명의 수사들과 기이한 형태의 요수들이 싸우고 있었다.

    높은 하늘에는 희미한 남색 안개가 이 모든 것을 가려주고 있었는데 안개 아래에는 남색 장포를 입은 수척한 노인이 한 손으로 파란 거울을 들고 무수히 많은 푸른빛을 방출하며 다른 손으로는 남색 비검을 교룡처럼 조종했다.

    그의 상대는 뚱뚱한 행각승으로 몸이 기이하게 크고 두 팔에 금색 고리를 찬 채 손에 둥근 사발에서 노란 안개를 뿜어 수척한 노인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천둥소리처럼 귀청을 때리는 목소리는 행각승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한립이 남색빛이 어린 눈동자로 쳐다보니 행각승의 목에서 은빛 찬란한 비늘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핏빛 안개가 요동치며 고함소리와 폭발 소리가 연달아 들리며 격렬히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보아하니 역성맹이 다른 섬의 원영기 수사들을 불러 모은 것이 이 일을 예상해서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품영석이라니 무슨 소리입니까?”

    수척한 노인은 위력적으로 보물을 조종하며 차분히 반문했다.

    “이제 와서 모른 척 한다고 될 것 같습니까?”

    뚱보가 웃음을 터트리며 입에서 남색 기운을 뿜어 댔다.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오시다니, 어찌 극품영석 같은 물건이 아직 인계에 남아 있겠습니까?  아무 이유 없이 본 맹의 수사들을 살육하다니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수척한 노인은 싸늘하게 얼굴을 굳혔다.

    “뭐 당 형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난 극품영석을 손에 넣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이 소식은 직접 영석을 관리하는 수사에게 추혼술을 써서 알아낸 것이니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지 마십시오.”

    뚱보가 냉소하며 소리치니 전신의 비대한 살들이 출렁거렸다.

    “이 호법이 당신 손에 죽은 것이었다니!”

    수척한 노인이 분노해 손에 든 푸른 거울에서 더욱 굵은 빛기둥을 뿜어내 공격했다.

    “어찌 이제는 부인하지 않으십니까?”

    뚱보가 비웃으며 둥근 사발을 가리켜 대량의 노란 기운을 뿜어 빛기둥을 모조리 흡수했다.

    “인정한다면 어쩔 것이요?  극품영석이 경지의 고비에서 불가사의한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어찌 요족 수사들에게 넘길 수 있겠습니까. 이리 본 맹을 공격하다니 그 틈에 성궁이 어부지리를 누릴까 두렵지도 않으십니까?”

    수척한 노인이 노기를 거두고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설마 우리 바다 일족이 역성맹만 건드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가 이번에 정예들을 이끌고 나선 것은 이 섬 전체의 영석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원래 외해는 우리 일족의 천하였는데 처음부터 세 등분을 한 것이 문제였지요. 이전에는 필요한 인원이 충분치 않아 잠시 놔둔 줄 아십시오.”

    뚱보가 비대한 얼굴로 괴이한 표정을 지었고 그 말에 당 노인의 안색이 급변했다. 마치 뚱보의 말을 증명하듯 저 멀리서 무언가 길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고 또 다른 남색 안개가 하늘 끝에서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미 성궁 쪽 수사들은 해결했나 봅니다. 과연 역량을 집중해 한쪽을 먼저 제거하는 것은 옳은 전략이었어요. 이제 당신들도 끝입니다.”

    뚱보는 남색 안개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수많은 요수들을 반기며 광소했고 둥근 사발에서 더 많은 노란 안개를 뿜어 노인을 뒤덮으려 했다.

    그리고 팔뚝의 금빛 고리에서는 환영이 형성되어 날아갔다. 절대 놔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수척한 노인은 놀라고 분노했지만 당장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제 역성맹 원영기 수사들이 단시간 내에 적들을 떨쳐내고 달아나기 어려워진 것은 분명했다.

    그 순간 또 다른 남색 안개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고 그 안에는 흉흉한 요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역성맹도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고 누군가 큰 소리로 퇴각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저계 수사들은 사방팔방으로 튀어나갔고 공중의 원영기 노괴들도 하나 둘 몸을 빼낼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싸우면서 슬금슬금 산봉우리 쪽으로 물러났고 또 누군가는 미친 듯이 공격하며 잠시 요족 수사를 밀어붙이기도 했다.

    아래쪽에서 극품영석이라는 소리를 들은 한립은 당장 떠나려던 마음을 접었다. 한 번도 전설 속의 최상급 영석을 본 적은 없었지만 소문이나 효과에 관해서는 수많은 경전에서 읽어 보았다.

    인계에 남아 있는 강력한 상고 시대 진법을 펼치는데 필수적이었고 경지를 뚫는 고비에서 도움이 된다는 소리도 있었다. 어쨌든 결단부터 화신까지 모두 효과를 볼 수 있다니 인계 수사들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광산에서 극품영석이 하나 발견되자 역성맹은 바로 주변 원영기 수사들을 불러 모았고 요수들은 만 리 밖에서 달려왔다.

    다들 첫 번째 극품영석이 채굴되었다면 광산 속에 두 번째, 세 번째 극품영석도 있으리라 예상한 것이다. 한립은 숨을 고르며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이렇게 엄청난 보물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포기하고 떠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극품영석이라는 것이 도대체 누구의 손에 있느냐였다. 보통은 수행이 가장 높은 자가 지니고 있어야 했으니 수척한 노인이 유력했다. 하지만 반대로 적을 속이려 일부러 눈에 띄지 않는 수사에게 맡겨 빼돌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한립은 미간을 좁히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바로 얼굴을 폈다. 화형기 요수들은 인간 수사들과 지능이 비슷해 아마 한립과 같은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그가 나서지 않아도 어차피 기습한 요족 수사들이 역성맹 수사라면 한 명도 놓치지 않으려 할 게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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