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1
661화. 마두 포획
한립의 다섯 손가락을 빠져나온 금색 뇌전 교룡은 기세등등하게 날아오던 검은 구렁이와 충돌했다.
“벽사신뢰!”
극음 사조가 흠칫 놀라 다른 술법을 펼치려 했으나 이미 한 발 늦은 후였다.
금빛 교룡이 검은 구렁이에 달려들자 굉음이 터져 나왔다. 금빛이 반짝이며 검은 구렁이는 무수히 많은 뇌전에 휩싸여 흩어져 버렸다.
극음 사조가 노기를 드러내며 저물대를 스쳤다. 그러자 몇 촌 길이의 핏빛 장도가 빠져 나와 한립의 머리를 내리치려 했다. 한립은 일순 얼굴을 굳히며 고개를 들어 금빛을 방출했다.
쩡!
금빛과 핏빛이 어우러지더니 핏빛 장도가 두 동강이 나 떨어져 내렸다.
“말도 안 돼!”
극음 사조는 바로 얼굴이 급변해 의식으로 한립을 훑고는 매우 놀랐다. 나중에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거듭 그의 수행을 확인했다.
“네가 원영 후기라고?”
극음은 말을 하면서도 안색이 파랗게 질려 등 뒤로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렸다.
“이제 와서 알아차려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허천정을 노리고 나를 끈질기게 죽이려 들더니 이제 당신이 허천정에 죽게 되었습니다.”
한립은 옛 일을 떠올리며 살심이 용솟음쳐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이어 입에서 푸른빛이 빠져나와 허공을 돌더니 고풍스러운 세 발 솥으로 변했다.
극음 사조는 한립이 원영 후기 수사가 된 것에 아직도 마음이 요동쳤지만 그가 허천정을 꺼내는 것을 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를 악문 극음이 그 자리에서 빙글 돌자 귀곡성이 들려오며 칠흑 같은 안개를 뿜어냈다. 그는 현음마공을 극성으로 펼치며 동시에 제련한지 수백 년 된 천도시(天都尸) 18마리를 풀었지만 감히 한립을 먼저 공격하지는 못했다.
이에 한립이 서늘하게 미소 지었다. 현음마기가 어두침침하게 상대를 가려주고 있다지만 명청령안을 발동한 그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는 곧바로 허공에 뜬 허천정을 가리켰다. 작은 솥이 푸른빛을 머금고 무수히 많은 푸른 실을 뿜어내 그물처럼 석실을 뒤덮었다.
극음 사조는 가슴이 서늘해져 주술을 읊어댔다. 검은 안개 속 귀신 그림자들과 천도시들이 동시에 돌격해 푸른 그물을 찢어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한립이 무표정하게 손가락을 들어 작은 솥을 향해 튕겼다.
텅!
가벼운 울림과 함께 푸른 그물이 눈을 찌를 듯 빛을 방출했고 남색의 화염이 그 위로 괴이하게 퍼지며 열댓 마리의 남색 불새들이 천도시를 향해 날아들었다.
천도시들은 제 위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남색 화염 속에서 얼음 덩어리로 변해 떨어져 내렸고 바닥에 떨어진 순간 산산조각이 났다.
이때 푸른 그물이 맹렬히 몸을 떨며 주먹 크기의 남색 불덩이를 아래쪽으로 마구 튕겨냈다. 검은 안개가 요동치고 무수히 많은 검은 뱀들이 불덩이를 막으려 솟아올랐다.
퍼퍼퍼펑!
폭음이 연달아 들리고 남색 수증기가 석실을 뒤덮었다. 일순 석실 안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져 바닥과 벽에 얼음이 맺힐 정도였다.
검은 뱀들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얼음 조각이 되어 바스러졌고 남색 기운에 검은 안개가 흩어져 그 안에 숨어 있던 극음 사조가 그대로 드러났다.
극음 사조는 그제야 상황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스산한 괴성을 지르며 입에서 새까만 구슬을 뿜어냈다. 구슬이 나타나자 늙은 마두가 혀끝을 깨물어 피를 뿜었다.
구슬이 몸을 떨며 칠흑 같은 화염으로 변하더니 극음을 휘감았다. 바로 극음의 필살기인 천도시화(天都尸火)였다. 극음은 검은 화염으로 몸을 두르고 자신감을 되찾았는지 석실 입구 쪽으로 날아갔다.
이에 한립은 손으로 통보결을 발동했다. 그러자 석실 입구에 돌연 푸른빛이 번지며 무수히 많은 푸른 실들이 벽을 타고 날아들어 봉쇄했다.
“이런!”
극음은 가슴이 철렁했다.
돌연 머리 위에서 전해지는 차가운 기운에 그가 고개를 쳐드니 거대한 얼음 연꽃이 푸른 그물이 되어 그를 덮치고 있었다.
늙은 마두가 놀라 서둘러 연꽃의 포위 범위를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때 밑에서 푸른 실 뭉텅이가 두 개 솟아올라 두 발을 옭아맸다.
“안 돼!”
그가 꼼짝 못하고 몸부림치자 푸른 실은 그의 종아리를 타고 올라가 하반신을 뒤덮었다. 검은 화염이 활활 타며 극음을 보호하려 했지만 푸른 실들은 전혀 물러나지 않았다.
이에 남색 얼음 연꽃이 빙글빙글 돌며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이에 극음은 혼비백산했다. 그가 급한 마음에 입을 벌려 새까만 옥패를 뿜어냈지만 옥패가 발동하기도 전에 푸른 실 뭉텅이가 날아들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옥패마저 푸른 실에 휘감겼다.
극음이 의식으로 옥패를 움직이려 했지만 푸른빛이 몇 번 반짝이고는 보물과의 연계가 끊어졌다. 푸른 실은 옥패를 감아 허천정으로 돌아갔고, 솥이 번뜩이자 옥패는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이것을 본 극음 사조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극음은 포기하지 않고 연달아 여러 비술을 사용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고 결국 마지막에는 천도시화마저 꺼지고 말았다.
촤륵!
겁에 질린 극음은 그대로 얼음 덩어리가 되었다. 한립은 시종일관 허천정을 제외한 어떤 보물도 사용하지 않았고 심지어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은채 늙은 마두를 포획했다.
그가 허천정을 회수해 입을 벌려 삼키고는 극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립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남색 얼음 덩어리 앞에서 섰다.
“잠시만요, 한 수사! 제 일족 전체가 그 자의 손에 도륙 당했습니다. 그 악마 같은 놈을 제 손으로 죽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돌연 익숙한 목소리가 석실 한쪽에서 들려왔다. 한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얼음이 맺혀 있던 벽에서 갑자기 금빛이 반짝이며 주먹 크기의 빛이 빠져나왔다. 그리고 전신에 금빛을 발산하며 원영이 얼음을 뚫고 그의 앞으로 날아왔다.
“만호자?”
한립이 원영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일순 멍해졌다. 기억대로라면 만호자는 당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 벌써 세상을 떠났어야 했다.
그런데 원영이 윤회의 길에 오르지 못하고 극음의 수중에 있었다니 뜻밖의 상황이었다. 이상하기는 했지만 한립은 극음을 서둘러 죽이지 않고 만호자를 살폈다.
그가 손을 뻗어 허공을 쥐자 거대 손이 나타나 번개처럼 원영을 잡아챘다.
“이렇게 경계하실 것 없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순간이동도 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건 모르는 일이지요. 당신이 아직까지 살아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허천전에서 내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먼저 내 앞에 나선 것은 조금이라도 빨리 죽고 싶어서 입니까?”
“수사께서 벌써 원영 후기에 이르렀으니 당시의 일을 추궁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허나 당시 한 형은 겨우 결단기 수사였는데 제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게다가 수사가 손을 쓰지 않아도 금제를 뚫고 나오느라 남은 원기를 다 써버려 얼마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그렇게 허약한 것을 보니 원영이 스스로 붕괴할 때가 머지않은 것이군요. 비록 당시 무례하게 나를 겁박한 것은 사실이나 황린갑(皇鱗甲)을 주어 내 목숨을 한번 살렸으니 당신을 해치지는 않겠습니다. 이것으로 그간의 은원은 없었던 것으로 하지요.”
“그때 갑옷을 내준 것은 한 형의 도움을 받아 보물을 얻으려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까?”
“의도와 상관없이 당신이 준 황린갑으로 위기에서 벗어났으니 그것만으로 충분 합니다. 허나 내가 당신을 도울 이유도 없지요. 죽든 살든 알아서 하십시오.”
한립은 담담히 말하며 손을 펼쳐 푸른 거대 손에 잡혀 있던 만호자의 원영을 풀어주었다.
“한 수사, 극음 사조에게 피맺힌 원한이 있으니 제발 내가 처리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죽기 전에 간절한 소원입니다.”
만호자가 한숨을 내쉬고는 얼음 속에 갇힌 극음을 노려보며 말했다.
“나도 극음에게 맺힌 것이 적지 않습니다. 알아서 죽일 것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수집해 둔 진귀한 재료들과 비밀 경전으로 저 놈을 죽일 기회와 바꾸고 싶습니다.”
한립이 단박에 거절하자 다급해진 만호자가 서둘러 조건을 제시했다. 그제야 고개를 돌린 한립이 원영을 보며 웃었다.
“솔직히 무슨 일인지 말씀해 보세요. 겨우 원한 때문에 거래까지 하며 이런다는 것은 믿지 못하겠군요! 또한 어찌 만 형이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극음의 수중에 떨어지게 된 것인지 그 연유 또한 궁금합니다.”
한립의 말에 이번에는 원영이 조급한 기색을 지우며 머뭇거렸다.
“어차피 비밀이랄 것도 없는데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귀 기울여 듣겠습니다.”
한립이 무표정하게 소매를 펄럭여 금색 비검들을 거둬들였다.
“한 수사께서도 알다시피, 백여 년 전에 저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 허천전에 들어가 수명을 연장할 영약이나 방법을 찾았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원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극음이 악독한 비술을 걸어 억지로 버티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목숨을 연명하는 대가로 윤회의 기회를 잃은 것이죠.”
만호자는 이야기를 하며 이를 갈았다.
“보천단(補天丹)을 구해 허천전을 나온 뒤, 세상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다녔습니다. 솔직히 단약 때문에 저를 공격할 만한 자들은 많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수명이 거의 끝나갈 무렵 갑자기 육도 놈이 쳐들어와 죽은후에 제 시체를 그에게 넘기라는 겁니다.
마공을 수련하는데 쓰겠다고요. 당연히 그 제안을 거절했는데 그 놈의 육극진마공(六極眞魔功)에 당해 중상을 입고 말았죠. 위급한 순간 비술을 이용해 빠져나왔는데 도중에 저 간악한 놈과 마주친 겁니다.
한 눈에 중상을 입은 것을 알아본 극음은 싸움을 걸어왔고 삼일 밤낮을 싸우다 육신이 괴멸하고 원영만 남게 되었죠. 극음은 제가 아직 보천단을 지니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틈날 때 마다 고문을 한 겁니다.”
“고문이 왜 필요합니까? 추혼술을 쓰면 될 일에.”
“다른 수사였다면 후기의 대수사라도 저 놈의 손에서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익힌 탁천마공(托天魔功)은 특수한 성질을 지녀서 강제로 의식을 헤집을 수 없습니다. 억지로 추혼술을 펼치려 들면 혼백이 흩어져 버리니 어쩔 수 있겠습니까?”
“그런 비술이 다 있었단 말입니까.”
한립은 눈썹을 꿈틀하며 관심을 보였다.
“괜히 탁천마공이 유명하겠습니까? 극음도 어쩔 수 없이 일정 시간마다 천도시화를 이용해 고문을 하곤 했죠. 허나 제가 쉽게 굴복할 성미가 아니지요. 어차피 사실대로 털어 놓는다고 해도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니까요.
비술로 백여 년 넘게 수명을 연장했지만 이미 꺼져가는 촛불과 다름없는 상태입니다. 비술을 펼쳐 원영을 잡아먹지 않고는 윤회의 길에 이를 여력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도 정말 윤회의 길로 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요.”
만호자의 원영이 극음 사조를 사납게 노려보며 원한에 사무친 얼굴을 했다.
“극음의 원영을 잡아먹어 내세에 다시 태어날 기회를 얻겠다.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비술이지만 효과가 있을 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한립은 턱을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효과가 있든 없든 이게 마지막 남은 희망입니다. 어차피 숨겨 놓은 보물들을 누가 발견할지도 모르는데 이번 거래에 쓰기에 아까울 것도 없고요.”
“그렇다면 보천단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허천전을 나온 날 바로 삼켜버렸지요. 허나 별 효과가 없을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극음도 제 수행이 이전과 비슷한 것을 보고 아직 단약을 복용하지 않았다 여겨 지금까지 고문한 것이지요.”
“그런가요?”
한립의 눈에 이상한 기색이 스쳤다. 그는 보천단을 먹고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았던가! 그러나 상대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아마 만호자는 본래 자질이 뛰어나 효과가 미미했고 그는 영근 자질이 형편없었기에 개선될 여지가 많았던 것이리라.